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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일상에 마을이 없다
– 청년 진아 씨의 일주일 –
김진아 (문화예술교육기획자, 인천문화통신3.0 시민기자)
#1.
수요일마다 서구 도시재생대학의 보조연구원으로 참여한다. 도시재생대학은 동네 주민들이 직접 낙후한 동네를 살릴 방법을 고민하는 곳이다. 이번 주 수업에서는 ‘영희의 일주일’이라는 활동을 진행했다. 일주일동안 동네를 몇 번이나 돌아다녔는지, 동네의 어떤 곳을 방문하고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활동이었다. 주민 분들이 활동지를 작성하는 옆에서 종이 한 장을 얻어 ‘진아의 일주일’을 작성해봤다. “월요일 아침,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편의점에 들름.” 한 줄을 적고 더 이상 적을 것이 없었다.
인천광역시 남구 용현동 XX-XX번지 101호. 이름 없는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작은 원룸에 친구와 함께 산다. 처음 이 방을 구했을 때는 꼭 시간여행을 온 것만 같았다. 후문가에 청년들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골목골목에는 돗자리를 펴고 과일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어르신들이 계셨다. 아파트에만 살며 ‘응답하라 1988’에서나 보던 모습을 매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골목을 지나며 덕선이처럼 어른들에게 수박 한 조각을 얻어먹는 나의 모습도 상상했다. 하지만 마을의 일상은 나의 일상이 되지는 않았다. 막상 살아보니 자취방은 그저 잠만 자는 곳이었고, 골목은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통로에 불과했다.
#2.
용현동에도 봄이 왔다. 슈퍼에 가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화단에 물을 주는 옆집 할아버지를 보았다. 골목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슈퍼에서 돌아오는 길, 골목의 평화는 깨져있었다. 눈치 없는 한 청년이 할아버지의 화단 옆에 쓰레기를 내다버린 것이다. 화단의 꽃을 바라보던 할아버지의 인자한 눈빛은 간데없고 무서운 눈빛만 남아있었다. 청년은 종량제 봉투에 고이 넣어 쓰레기 버리는 날에 맞춰 버리는 데도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었고, 할아버지는 환한 대낮에 정성스레 가꾼 화단 옆에 쓰레기가 놓이는 것이 싫었다. 청년은 곧 해가 질 시간이고, 새벽에 늦게 돌아올 예정이라 지금이 아니면 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노인과 청년 사이의 다툼에서 으레 듣는 대사들이 이어졌다. ‘어디 어른이 말하는데 바락바락 대드느냐’, ‘애미애비도 없느냐’하는 뻔한 공격에 청년은 지지 않고 반격했다. 격해진 싸움은 몸싸움으로 번지기 직전 골목을 지나던 사람들의 만류로 제지되었다. 청년에게 동네가 잠만 자는 곳이자 통로에 불과한 만큼, 동네 사람들에게도 청년은 이웃이기보다 잠시 살다 떠나는 사람, 가끔 동네를 시끄럽고 더럽게 만드는 불청객에 지나지 않는 듯했다.
#3.
월세가 밀렸다. 지원금으로 먹고사는 문화예술계에서 행정이 사업을 정비하는 1월과 2월은 보릿고개다. 올해는 e나라도움*(국고보조금의 보조금 처리 전과정을 전자화, 정보화하여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의 등장으로 보릿고개가 4월까지 이어졌다. 보통 하루 이틀은 밀려도 별 말씀이 없으셨지만 이번에는 하루 이틀 안에 돈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아 집주인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렸다.
“죄송해요. 제가 돈 들어오는 대로 바로 보내드릴게요.”
“아휴, 딱해라. 힘들어서 어째. 천천히 보내줘요.”
온갖 핑계와 사과의 말들을 준비했는데, 돌아온 건 오히려 걱정과 위로였다. 따뜻해진 마음을 안고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집주인할아버지였다. 중간에 나갈 수가 없어 문자를 드렸다. ‘수업 중이라 쉬는 시간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하지만 잠시 뒤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당장 월세를 내라는 연락일까. 조심스럽게 강의실을 빠져나와 전화를 받았다.
“자꾸 전화해서 미안해, 진아 학생. 내가 문자를 보낼 줄을 몰라서. 가스 검침하러 왔는데 집에 들어가도 되냐고 물으려고. 문자로 간단하게 하면 될 이야기를 가지고 늙은이가 자꾸 전화하니까 싫지? 미안해.”
#4.
책장 정리를 하다 5년 전에 썼던 다이어리를 찾았다. 재밌는 얘기가 없을까 내심 기대하며 맨 앞 페이지를 여니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네가 살아내는 오늘이 되기를‘이라는 글귀가 보였다. 꾹꾹 눌러 옮겨 적은 걸 보면 꽤나 감명을 받았었나본데, 하나도 공감이 가지 않고 오히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책장을 덮고 주방으로 향하면서,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내지 않아도 그냥 살아지는 하루였으면, 생각했다. 한 망을 사다놓고 반도 채 먹지 않은 양파는 몽땅 상해있었고, 그제 해놓은 밥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햇반 하나를 꺼낼까 하다 냉장고로 향했다. 3주 전 부모님 집에서 가져온 반찬들이 있었다. 고구마 순, 콩나물 무침, 연근조림, 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챙겨올 땐 뭘 그렇게 욕심을 냈는지. 상했을 게 분명한 그 반찬들을 언젠가는 꺼내서 버려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지금 열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먹을 반찬이 없으니 햇반도 소용없었다. 결국 찬장에서 라면 하나를 꺼냈다.
#5.
후문 가의 청년들은 학교를 다니는 4년간 동네에 거주한다. 요즘은 휴학도 많고 졸업도 늦어져, 4년보다 훨씬 긴 기간을 동네에서 지낸다. 스무남은 해를 산 청년에게 4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하지만 청년들의 일상에는 마을이 없다. 동네 주민과 청년은 이웃이 아니라 집주인과 세입자일 뿐이다. 동네에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은 채로 그저 같은 공간에 있을 뿐이다. 잠시 사는 공간이 아니지만, 잠시 살다 떠날 것처럼 청년들은 동네에 얹혀 지낸다.
후문 가에 동네 주민과 청년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쉼터가 될 수도 있고, 장터가 될 수도 있고, 학교가 될 수도 있는 공간. 동네 주민들이 저녁 반찬을 할 때 조금씩만 더 해서 싼 값에 내다 놓으면 청년들은 라면이 아닌 맛있는 집밥을 먹을 수 있다. 청년들끼리도 혼자는 다 먹지 못할 양파 한 망을 사서 나눌 수 있다. 동네의 청년들을 강사로 스마트폰 교실이나 컴퓨터 교실 등을 열면 어르신들은 집 앞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어 좋고, 청년들은 멀리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겨울에는 함께 모여 김장을 할 수도 있겠다.
부모님 곁을 떠나 타지에서 지내는 청년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마을을 내어주는 마을정책이 필요하다. 그저 몸만 뉘여 쉴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놓고 편하게 쉴 수 있는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다. 방 안에 콕 박혀 혼자 아등바등 살지 않고 마을의 온기를 느끼며 지낼 수 있도록, 동네 주민의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마을 속으로 청년이 들어오고, 청년의 일상 속으로 마을이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