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of contents
서구 가좌 3동에 있는 <가좌마을 신나는 공간>(이하 가좌신공)은 주민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마을사랑방이다. 공간이 생긴 것은 작년 8월. 주민이 원하는 일, 할 수 있는 일들을 펼칠 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공간 설립으로 이어졌다. ‘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 단체와 이웃들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낸 이곳의 지난 1년은 어땠을까? 공간 실무자 세 분과 만나서 ‘단체’, ‘공간’, ‘활동가’라는 키워드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민단체는 왜 풀뿌리 조직이 되었을까? – 박재성 공동대표 인터뷰
▲ “아는 것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옮길 때 변화하지요. 그래서 나부터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생활 속에서부터 변화해야 주변의 변화, 사회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무엇이 행복한 삶이고 공동체를 위한 삶인지, 왜 그래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삶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Q) <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은 어떻게 생겨난 단체인가요?
기존의 시민사회운동에서 “시민 없는 시민운동”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시민이 아니라 활동가가 주체인 시민운동의 한계, 활동의 결과가 쌓이지 않고 변화로 이어지지 않는 한계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주민이 주체가 되는 풀뿌리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1년정도 논의 끝에 ‘시민운동’이 아닌 ‘지역’에 기반을 둔 풀뿌리 조직으로 변화하자, 주민자치에 대한 시민운동 뿐 아니라 마을공동체 운동도 함께 전개하자라는 취지로 2007년 6월에 ‘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을 설립하게 되었다.
Q) <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이 무슨 뜻인가요?
단체명을 지을 때 회원들과 함께 ‘꼭 들어가야 할 말’과 ‘들어가면 안 될 말’에 대한 의견을 모았는데, 그렇게 나온 키워드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사람들의 삶터인 마을에서부터 희망을 만들어가자는 의미이다. 지금도 참 마음에 든다.
Q) 활동가 중심이면 안된다는 자각에 의해서 시작된 단체이지만, 막상 동네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면 초기에는 활동가 중심으로 시작될 수밖에 없지 않나요?
그래서 이전에 했던 사업을 많이 털어냈다. 새로운 지향에 맞는 사업만 남기고 주로 대중 강좌를 많이 했다. 주민들과 많이 만나고 접촉면을 넓히자는 생각에서였다. 서양미술사, 인문학, 고전강좌 등을 열었는데, 하다 보니 동네 특성에 맞는 것, 동네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을 적용하며 방향을 잡아가는 중이다.
Q) 동네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사람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사소한 일상에서 이웃과 자주 만나게 되고, 관계가 형성되면서 ‘아, 나도 마을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들을 느낀다. 또 하나는 마을의 발견이다. 동네 안에는 다양한 자원들이 있고, 사람들이 각자 필요를 느끼는 상황들이 보여지기 마련인데 이 둘을 연결해주면서 보람을 느낀다.
‘마을사람들’에서 대외적으로 가장 크게 하는 행사는 ‘초록장터’다. 학교, 도서관, 공부방 등 20여 단체가 공동주최로 여는 행사인데, 참여단체들이 역할을 분담해 가면서 진행하는 과정이 참 좋다. 각자 기존에 하고 있던 일들을 모아 놓았을 뿐인데도 재미있더라. 이런 과정에서 관계도 풍성해지고, 서로의 필요나 욕구를 알게 되면서 상향식 주민제안사업들로 이어지기도 한다.
▲올해 4월 진행된 <재활용 나눔을 위한 초록장터> 16회 사진. 2008년부터 시작해서 매년 2회씩 진행한다.
ⓒ가좌신공
Q) 마을 일을 하게 되면 일터와 삶터의 경계가 사라질 것 같습니다. 애초에 그러한 구분이 필요 없어질 것 같은데, 활동의 방향이 변화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수다가 많아졌다.(웃음) 그리고 만나는 사람들이 다양해졌다. 이전엔 일과 삶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동네 안에 있으면 그 둘이 만나지더라. 마을이 재미있는게 이런 거다. 주민센터에서 진행되던 오카리나 교실이 있었는데, 강좌가 끝나도 여전히 오카리나를 하고 싶었던 주민들이 이 공간을 찾아와서 연습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동네에서 알게 된 사람과 알고 지내다가 녹색장터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참여하게 된다거나 하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그런 일상이 모이면 마을잔치를 열어 발표도 하는 거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여기서 하는 일들을 알게 된다. 전에는 그냥 좋은일 하는 곳, 장터 여는 곳으로 알다가 이제는 “동네 사랑방이고 카페인데 뭐 하는지는 몰라도 책도 보고 차도 마시고 모임도 하는 곳이구나.” 라고 느끼시는 것 같다.
Q) <가좌신공>이 문을 연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어떻게든 공간 주변에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 이웃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예전과 비교한다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온 느낌이다.(웃음) 사무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과 사람들이 오가며 들리는 열린 공간은 다르다. 일상적인 만남, 취미 나눔,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 회원 단체에 그치지 않고 개방적이고 편한 공간이 되길 바란다. 이웃 분들이 처음엔 “여긴 뭐하는 데에요?”라고 물으시다가 소개를 듣고 공감하고 함께해 준다. 그래서 다른 단체에도 이런 식으로 공간을 운영하도록 권하고 있다.
Q)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부터 시작해 활동의 저변을 넓혀가는 일들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주민과 천천히 오래 만나는 과정에서 오는 속도의 차이나 성과에 대한 부담이 생기지는 않으신가요?
답답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마을 일이라는 게 애초에 나와 뜻이 맞는 사람하고만 같이 하는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변한다는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단 나 자신이 먼저 변해야 한다. 일단 내가 변하고, 재밌게 살고 있으면 함께 하는 사람이 생긴다.
결국 말이 아니라 실제 모습이 중요하다. 옳은 일이어서 함께하는 게 아니라 얼굴을 보고 지낸 시간이 길면 긴 만큼, 쌓인 신뢰 만큼 함께하는 것이다. 신뢰가 깊은 친구가 있었으면 엉뚱한 짓을 해도 “이유가 있겠지” 라며 이해를 하려 하지 않나.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고, 그렇게 쌓인 신뢰 없이는 어느 것도 작동되지 않는다. 그래서 과정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관계를 만들고, 서로 깊어지는 것이 일이다. 활동가들에게도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을에서 함께 하라고 말한다. 그래야 재미있고, 지속될 수 있다. 노래가 좋으면 노래를 하고, 사진이 좋으면 사진을 촬영한다. 동네 사진을 찍다가 동네에 문제가 발견된다면 바꿔볼 수도 있고. 그런 것이다.
시민의식도 그런 것 같다. 생활 속에서 변화해야 바뀐다. 그래서 스스로 생활 속에서 변화시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아는 것만으로는 삶이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활동 속에 녹여내려 한다. 무엇이 행복한 삶이고, 서로를(공동체를)위한 삶인지, 왜 그래야 행복할 수 있는지를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랑방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안정호 사무팀장 인터뷰
▲”아이들이 잘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말썽을 피우던 아이들이 어딘가에 소속감을 가지게 되면서 자기 목표와 이유를 세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을 갖고 자기 행동을 수정하게 되더군요. 그런 모습을 본 부모님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모임으로 만나 든든한 후원 그룹이 되어 주시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을 볼 때 뭉클합니다.”
Q) 가좌신공은 어떤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가요?
단체에서는 가좌동 사업을 4년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가 뭘 하는지 잘 모르고, 오는 사람만 온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주민들이 지나가다가 차를 마시러, 쉬러 들릴 일이 없었던 거죠. 그때 우리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가를 상기해 봤습니다. “주민과 만나고, 주민과 소통하며, 주민과 함께 배우면서 함께 성장해서 지역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단체의 목표인데, 계획해 놓은 프로그램에 오는 수강자만 만나게 되니 한계를 느끼게 된 거죠. 그래서 공간을 마련하는 계획은 그 고리를 끊고 나가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주민들과 함께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활용되길 바라는지 1년 동안 준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사진수업을 했으면 좋겠다.”, “공동부엌을 만들자.”, “마을사랑방 또는 카페였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Q) 공간에선 어떤 일들이 생겨나고 있나요?
요즘은 공간이 비어있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월요일은 청소년 음반 제작활동, 화요일은 사진 동아리, 수요일은 공동부엌, 목요일은 인문학 강좌, 금요일은 생태 프로그램, 토요일은 공부방처럼 이용되고 있습니다. 종일 프로그램이 아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는 주민분들이 지나다니면서 들르시는 등 편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Q) 공간의 역할에 따라서 주변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간이 변했으면 주민과 만나는 방법도 변해야 합니다. 앞서 말한 활동 외에도 단체에서는 지역 참여예산 활동, 마을단체 연대활동 등도 하고 있는데, 가좌3동이 오래된 동네이다 보니 토호 분들이 많습니다. 처음엔 우릴 보고 저게 뭔가 하시며 경계하셨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계가 생기고, 지금은 가깝게 만나고 있습니다. 자생단체와도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너무 많은 일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내부 실무 인력으로 전부 소화가기가 벅찬 상황입니다. 그래서 주민과 만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민강사가 재생산되는 과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활동가 개인이 멘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는 생명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사람을 재생산하고, 그럴 수 있도록 촉진하는 역할을 하려 합니다. 자매 기관인 부평구 청천동에 있는 ‘청천극장’에는 음악교육을 받던 청소년들이 자라서 다시 청년 강사가 되어 후배들에게 음악을 알려주고 있는데,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계속 그런 일들을 해 나가야지요.
가장 보람있는 순간이요? 아이들이 잘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말썽을 피우던 아이들이 어딘가에 소속감을 가지게 되면서 자기 목표와 이유를 세우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존감을 갖고 자기 행동을 수정하게 되더군요. 그런 모습을 본 부모님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모임으로 만나 든든한 후원 그룹이 되어 주시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을 볼 때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평범한 주민은 어떻게 주민조직가가 되었을까? – 이정미 교육팀장 인터뷰
▲“나 스스로가 주민이라고 생각하는 상태였기에 주민과 주민운동가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어요. 둘 사이엔 역할의 차이가 있더라고요. 주민운동가는 주민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가능한 천천히, 느리게, 오래 기다려주어야 해요.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끌고 나가게 되면 끌고 가는 그 운동성이 사라지는 순간 그 조직은 동력이 멈추게 되거든요.”
평범한 동네 주민이 어떻게 단체 활동가가 될 수 있었나요?
이 동네는 재정비촉진지구라고 하는 넓은 택지개발 수용지구였어요. 단독주택의 거주 특성상 노인들이 많이 살다보니 아파트처럼 주민협의기구 같은 게 없었거든요. 단독주택이 면적만 넓고 보상이 미비한 상황인데 대처가 안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이웃 한 분이 찾아오셔서 좀 알아봐달라고 하셨어요. 예전에 제가 동네 도시가스 배관공사를 할 때 단가 등을 따져 가면서 일괄로 계약을 해서 할인을 받은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의지를 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동네일을 보게 되었는데, 동네 개발문제하고 관련해서 ‘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이 소식통 역할을 하고 있더라고요. 주민들께 “이대로 그냥 있으면 안 된다”고 알려주고 있었어요. 어떤 곳이기에 이런 일을 할까? 하는 궁금함에 회원이 되었죠. 정당활동이나 시민단체 활동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사람 사이에 낯설음을 의식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아요.
회원으로 있을 땐 주로 돌직구였어요.(웃음) 선배 활동가들이 회의 중에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던가 “시민들은 이렇게 생각할거야”라고 안일하게 이야기하면 바로바로 문제제기를 했었거든요. 나는 회원으로 모든 행사에 참여해서 자원봉사를 하는데, 임원들은 평가회 때나 나와서 이런저런 훈수를 두니까 “평가는 누가 하는 것이며, 왜 하는 것이고 서류상 평가가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봐야하는 것 아닌가? 왜 회원과 주민을 구분지으면서 운영위원들은 함께 하지 않는 것인가, 그러면서 어떻게 주민화합과 공동체를 이야기하는가.”하고 따졌던 거죠. 시민의 눈으로 봤을 땐 그런 모습이 잘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선후배 관계라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눈치 없는 어린애가 한마디 하듯 던졌던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었죠.(웃음)
그런데 어떻게 전임 활동가가 되신 건가요?
제 의지는 아니었어요.(웃음) 2009년 12월에 단체를 알게 되고 이듬해부터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부분강사를 맡고 있었는데, 당시 단체가 공모 중이던 프로젝트 사업 담당자가 일을 할 수 없게 된 거에요. 설상가상으로 대체할 실무자도 없었죠. 얼떨결에 제가 일을 맡게 되었어요. 단체에선 실무를 맡겨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부분강사였던 제가 실무를 떠안는 일은 무척 버거웠어요. 공모를 준비하면서 단체의 1년간 전체 사업에 대한 흐름과 이 일을 왜 하려고 하는지, 보조강사로서 느꼈던 배움터의 가치와 방향을 내 언어로 숙지하는 작업을 했어요. 이후에는 반상근 간사로 실무를 배우게 됐고요. 그런데 3일을 출근하고 쉬는 이틀마저 얼마나 교육을 받으러 다녔던지. 전 대표님이 저한테 욕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주민자치대학에서 완주군도 다녀오고, 비폭력 대화, 생태교육, 인문학 교육, 연극놀이수업, 사회적기업 심화과정까지 하면서 참 많이 배우고 사람들도 다양하게 만났어요.
어쩔 수 없이 맡게 되었다 해도, 이후에는 마음이 있으니까 계속 한 것 아닌가요?
사업 책임자로 서류가 올라간 다음에 담당자를 바꾸긴 어려웠어요. 단체활동에 대한 적응기간 없이 다급해서 시작된 일인데, 인간적인 관계상 일을 끊을 수도 없어서 극기훈련 받는 기분이었어요.(웃음) 그런데 내게 왜 이렇게 갈등이 생기고 부딪히게 되는지를 살펴보니 단체의 비전이 내게 체화되지 않았고, 나는 내 안의 비전이 무엇인지 생각해본 준비된 활동가가 아니었던 거예요. 어떻게 보면 나는 그냥 마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단체의 조직가가 되어 버렸으니 내 역할에 대한 갈등이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조직가처럼 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던 거죠. 게다가 상근훈련은 하면 할수록 더 힘든데 할수록 더 복잡해지고, 얼마나 더 해야 되는가가 불분명하니 ‘과연 이대로 계속 간다면 지금은 내가 언덕을 올라가지만 내려올 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계속 고민이 되었던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내 비전을 어떻게 활동에 녹여내 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은 ‘나는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이 일을 왜 앞으로 하려고 하는지’를 정리하는 시기에요. 최근 코넷(한국주민운동정보교육원)에 교육을 받으러 다니는데, 교육을 받는다고 해서 맡은 일을 줄이거나 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오죽하면 기획과 관계 영역의 일을 해야 하는 실무자가 강사로 뛰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그런 면에서는 단체가 아직 확실한 조직운동 틀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드러나는 거니까 있는 그대로 반성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마을사람들>이 지금 많이 어렵다고 느껴요. 문제도 많다고 느끼고요. 달려가기 급급해서 소통이 잘 안된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동안 해왔던 역사와 시간의 무게감에 딸려가고 있는 탓인 것 같아요. 더 천천히, 더 많이 내려놓고 한두 가지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안정호 팀장과 둘이 하기에는 버거울 정도로 일이 많아요. 설령 어설플지라도 함께하는 마을활동가가 있어야 해요. 환경단체 등 목적을 두고 하는 시민운동가는 많은데, 공동체 운동가는 별로 없어요. 실무를 담당하는 주민조직 활동가, 젊은 활동가가 계속 있어야 할 텐데 고민이에요.
▲화요일 사진 동아리(가좌마을 지오그래픽) 수업 중인 모습
조직가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그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나 스스로가 주민이라고 생각하는 상태였기에 주민과 주민운동가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거든요. 살펴보니 역할의 차이가 있더라고요. 주민운동가는 주민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가능한 천천히, 느리게, 오래 기다려주어야 해요. 사람들 사이에서 의지가 생기지 않는데 끌고 나가게 되면 끌고 가는 그 운동성이 사라지는 순간 동력이 멈추게 되거든요. 누군가에 의해서 다 만들어진 다음에 ‘이제 스스로 알아서 변하겠지’라고 생각해 봐야 그 누군가가 빠지면 정지상태가 되고 말아요. 한번 헤어지면 다시 만나기가 더 힘들잖아요. 여태껏 이만큼 오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이 아니온만 못한 시간이 되어 버릴 수도 있는 거죠.
그래서 자발적인 욕구에 의해 만들어진 모임이 중요해요. 그동안은 동아리를 먼저 만들고 그 안에서 리더를 발굴해내려 했는데, 코넷의 교육방식에 의하면 동아리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욕구조사를 먼저 하고, 그 안에서 리더가 될 만한 사람이 발견되면 리더를 통해서 일련의 일들이 진행되게 해야 해요. 우리 같은 조직가는 그걸 서포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거고요. 조직가는 욕구를 조사해서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망을 계속 만들면서 받쳐 줘야 하는 거죠. 그렇게 보면 프로그램 하나 운영하는 게 훨씬 쉬워요. 우리가 그동안 쉬운 길로만 갔었구나 하는 걸 느끼게 됐죠.
지금도 사진수업에서 여러 가지를 접목해 보고 있어요. 우선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만나기 위해 호칭을 깨 보고, 모든 소통이 모두가 볼 수 있는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밴드 안에서 대화하고, 과제물을 제시하거나 할 때 숙제검사 하듯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받아가며 사람들이 스스로 성장하게 만들어 가고 있어요. 비록 모이는 것은 프로그램 하듯이 모았지만 조금 지나면 전시회 기획 등을 할 때 직접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성장해 나가겠죠. 가을학기쯤 되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촬영한 사진에 설명을 쓰려니 글자를 더 잘 쓰고 싶고, 사진을 더 잘 찍고 싶으니 나가서 더 찍어보자고 하고, 그밖에도 같이 할 수 있는걸 해보자는 식으로 점점 욕구가 발산되고 있거든요.
겉으로 비춰지기에는 누군가가 리더십을 발휘해서 조직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을 모으고, 결과물을 도출해 내면 잘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져요. 하지만 그것 없이 살아남는 모임이 되어야 지속 가능한 모임이 돼요. 프로젝트 비용이 없고, 강사가 없고, 운영비가 없어도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 내자는 얘기가 나와야 되는 것이죠. 천천히 가자고 하는 것은 더 오래, 멀리 갈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조직가는 디딤돌은 되어 주어도 머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거죠.
시민운동가가 마을활동을 하면 시민단체에서는 ‘탈정치적이다’라는 지적을, 마을에서는 마을활동과는 다른 결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구분된 입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일을 천천히 하면 뭘 하는지 잘 안 보여요. 안보이니까 운동을 어떻게 하는 거냐는 얘기를 듣게 되는거죠. 이를테면 “전 천천히 갈래요.” 라고 하면 “수다나 떨고 있는 게 무슨 활동이냐?” 는 말을 듣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우리 활동 안에서도 성과주의가 얼마나 많이 배어 있는지, 얼마나 많이 포장되어있는지를 느껴요. 하루빨리 직시하고 벗어나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같은 일을 주민이 하면 그런 지적을 안 들어요. 그래서 “나도 주민인데. 왜 내게 활동가의 영역을 강요하지? 내 삶에서 내가 좋다고 하는 것만 봐주면 안 되나? 왜이렇게 많이 요구하지?”라는 생각과, 또 한편으로는 “주민 안에서 내가 이만큼 더 일을 할 수 있다고 해도 필요할 때만 써먹고, 하는 일은 단체활동이라고 왜 욕을 하지?”라는 낀 입장 사이에서 갈등을 많이 겪었어요. 그러다가 주민조직가 훈련을 받으면서 정리가 많이 되었는데요. “나는 내 삶 안에서 활동을 하고 있고, 내 삶과 운동이 한 곳에서 움직이는 이상 나는 다른 사람에게 더 디딤돌이 되어야 하겠구나. 그게 아니라면 나는 훈련 받고 와서 잘난 척 하는 것밖에 안되겠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용하려 하면 내가 더 잘 쓰이게끔 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게 만드는 접착제 역할을 해야겠다.”라고요. 그래서 남들이 내 활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하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게 됐어요.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이유와 내용을 분명히 직시한다면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게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 속에서 나를 생각하면 그 안에서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는 거죠.
희망을 만드는 마을사람들
서구 가좌3동 하나상가 5호
032-507-2811~2
글/사진 : 이광민(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