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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프랑스는 병인박해를 이유로 강화도를 침공하여 성벽을 부수고 방화와 약탈을 일삼았던 병인양요를 일으켰다. 병인양요는 유명한 역사적 사건이라 내용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주목할 만한 말이 있다. 프랑스의 해군장교 주베르는 “이곳에 와서 놀랍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책이 있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강화도는 책과 문화재가 많은 섬이었다.
그로부터 세월이 지나 강화도,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 인터뷰 대상지인 강화도 길상면 온수리에는 지금으로부터 지난 70년 동안 책방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이야 강화대교에 이어 초지대교도 생기면서 서울이나 인천 도심과 가깝게 연결이 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그런 인프라가 없어서 개발이 늦었던 지역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이 즐기거나 학습할 수 있는 문화공간은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인 ‘사람과 생각을 잇는 모임’은 그러한 지역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사람과 생각을 잇는 모임’, 줄여서 ‘사각모’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 아이들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젊은 엄마들이 서로 얘기를 하다가 아이들이 너무 스마트폰을 많이 본다는 걱정과 불만을 드러냈고, 이것을 무엇으로 풀 수 있을까 고민하다보니 책이 생각났다. 책을 가까이 하게 하면 스마트폰과 거리를 두게 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들어가보면 근본적인 원인은 길상면 온수리에 학생들이나 주민들이 즐길 만한 문화공간이나 요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뜻있는 주민, 젊은 엄마들이 이런 환경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책을 가지고 놀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해보려고 했고 그 시기에 맞추어 도시재생사업에 공모를 내어 선정이 되면서 ‘사각모’라는 이름을 만들고 간단한 동네 수다모임을 체계적인 공동체로 바꾸어나갔다.
처음에는 ‘책-문화-사람이 함께하는 온수마을 만들기’라는 주제로 사업에 참여하여 주민교육을 하고 꼬마도서관을 만드는 것을 기획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도서관 등 전반적인 교육 인프라가 부족했기 때문에 차라리 학부모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서 아이들과 같이 책을 통해 서로 생각도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을 배우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열린 교육, 그리고 하브루타 방식을 사용해서 2018년에는 ‘온수마을 주민과 함께하는 열린 부모교육’을 6회의 과정으로 진행했다.
사각모가 책과 관련해서 또 하나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꼬마도서관이다. 원래는 작은도서관을 운영하고 싶었지만, 인건비나 운영비 등의 지원이 어렵고 순수하게 봉사만으로 운영을 해나간다는 점에서 한계점이 보였다. 그래서 노선을 바꿔 택한 것이 꼬마도서관이었다. 꼬마도서관의 원리는 간단하다. 책을 놓아둘 곳, 예를 들어 선반 등을 설치해서 그곳에 자신의 책을 가져다놓는 것이다. 그러면 책을 읽고 싶은 다른 사람이 그 책을 읽고 돌려놓는 방식이다. 외국에도 이미 많은 사례들이 있고 한국에도 꼬마도서관들이 있다.
사각모의, 그리고 온수리만의 꼬마도서관 특징이라고 한다면, 꼬마도서관을 초등학생들이 직접 디자인하고, 샘플을 만들고, 제작해서 설치 결정, 운영까지 한다는 점이다. 사각모는 꼬마도서관 설치를 기획하면서 마을의 초등학생들을 모집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과 함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작은 북을 재활용하여 꼬마도서관을 설계하고 만들었다. 방수를 위해 플라스틱 빨대도 붙였다. 특히 설치 장소를 정할 때는 아이들 간의 대립이 있었는데 이것도 아이들이 서로 토론을 하여 정했다. 그렇게 지금도 꼬마도서관은 설치되어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사각모와 아이들의 꼬마도서관은 잘 운영되고 있을까? 다행히 아이들의 만족도도 높고 운영도 지속되고 있다. 아이들이 좀 더 자주 찾을 수 있도록 안에 사탕이나 간식들도 넣어놓는다. 사각모의 신희자 님은 “지금 당장은 책을 잘 안보더라도 책과 간식이 있는 편한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면서 결국엔 책을 가까이하고 읽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각모는 꼬마도서관 뿐만 아니라 독서토론동아리도 만들고, 공간 안에서 아이들과 주민들이 같이 어울릴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해서 진행했다. 온수리 안에서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각모 회원들의 활동 소감이 궁금했다.
정형숙 님은 “아이가 꼬마도서관을 만들 때 참여했는데 제작 활동을 참 좋아했다”면서 “아이가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방식을 배운다면 어디에 가더라도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마을공동체의 취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명은 님은 “처음에 활동을 시작할 때에는 급하게 진행해서 잘 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점차 하나씩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못할 일은 없다고 느꼈다. 결국 마을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원들 사이에서 주고 받는 충분한 배려와 기회인 것 같다. 협동하고 생각을 맞출 때 일들이 원활하게 되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희자 님 또한 “활동을 급하게 하다보니 어려운 점들이 있어 올해에는 회원들의 시간과 마음이 함께 움직일 때까지 조금씩 기다리는 배려를 우선했다”고 하면서 “기다림이라는 배려가 회원 간에 더 잘 이해하고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고 부담없이 편하게 마을 활동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람과 생각을 잇는 모임, 사각모는 온수리 지역의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속에 가치를 포함시키고 행동하는 한 발자국의 능동성, 그리고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용기가 갖춰지면 평범이 비범이 되고 특별함이 된다. 이는 사각모 회원들의 생각이다. 거기에 덧붙여 사각모는 말한다. 사람이 바뀌어도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사각모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틀은 만들어놨지만 누군가가 또 새로 들어와서 현재 회원들이 없더라도 사각모는 계속 이어나가 마을의 문화를 바꿔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책이 많았던 동네, 그리고 다시 책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 책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글 홍보담당 / 사진 사각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