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 : 29/08/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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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비움, 배다리에 날아들다. <나비날다> 책방

        헌책방 거리로 잘 알려진 인천 동구 배다리. 배다리 마을은 2007년부터 마을을 관통하는 ‘산업도로 공사’를 주민과 문화예술인이 함께 막아내면서 […]
Written by: doo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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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책방 거리로 잘 알려진 인천 동구 배다리. 배다리 마을은 2007년부터 마을을 관통하는 ‘산업도로 공사’를 주민과 문화예술인이 함께 막아내면서 새로운 마을공동체를 가꿔오고 있습니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배다리 마을 안내소’와 만나게 되는데요. 마을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쉼터, 전시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 곳은 “배다리가 헌책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 온기와 체취를 퍼트리는 곳”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안내소 안쪽에는 책방 ‘나비날다’가, 2층에는 생활문화공간 ‘달이네’와 ‘생활사 전시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편한 느림과 묘한 재미가 있는 배다리 안내소(이면서 ‘나비날다’, ‘달이네’)로 찾아가 보았습니다.

 

▲책방 ‘나비날다’를 운영하고 계신 청산별곡 님과 인터뷰를 나누었습니다.

 

언제부터 배다리에서 활동하게 되셨나요?

  배다리 마을에 오게 된 건 2009년이었어요. 당시 대안화폐, 마을공동체라는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었는데, 서울에서 이와 관련된 소모임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 부모님이 편찮으셔서 인천에 내려왔었는데, 당시 외부 활동이 많았던 탓인지 저도 많이 지쳐 있었어요. 인천에 와 있다 보니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역과 내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내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죠.

  당시 배다리에는 친구가 활동하고 있었어요. 그 친구를 따라 1년 정도 배다리를 지켜봤죠.(웃음) 접근하기까지 좀 오래 걸리긴 했는데, 한번 들어오면 혼신을 다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신중히 결정했던 것 같아요.

  당시 이곳에는 마을을 가로지르는 <산업도로 건설 계획>에 따른 투쟁이 한창이었고, 마을활동가들은 다들 자기 역할이 있었어요. 전 그때 “재개발이 되지 않게 하려면 동네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있었고, “한 점포라도 셔터가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자”라고 마음을 먹었죠. 배다리 마을이 헌책방 거리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책방거리의 맥을 살려줄 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에 책과 관련된 일을 선택하게 된 거에요.

 

▲’나비날다’ 책방 입구. 배다리 안내소가 생기면서 책방은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비날다’라는 책방 이름은 어떻게 지어진 건가요? 뜻이 궁금해요.  

  나비에는 나비(곤충) + 나비(고양이) + ‘나’눔과 ‘비’움의 준말 이 세 단어의 의미가 한꺼번에 들어 있어요. 처음에 오래된 책방이 있던 자리에 공간을 새로 열었는데, 이게 기존에 있던 것을 걷어내고 새단장을 하는 게 아니라, 이전의 모습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색깔을 덧입히는 방식이었거든요. 그래서 ‘나비, 오래된 책집에 날아들다’ 라는 뜻으로 지었어요. 또 이 곳은 고양이가 사는 공간이기도 하고, 나눔과 비움이 있는 곳이길 바라는 의미도 담겨 있었죠.

  책방은 책이 전부인데, 나비날다는 책이 다가 아니라 차도 마시고, 쉴 수 있는 ‘책 쉼터’이길 바랐어요. 헌책방 골목 끝에 있으니까 책방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는 쉬었으면 했죠. 판매가 목적이 아닌, 마을 쉼터이자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생활문화공간인 ‘달이네’는 혼자 지은 이름은 아니에요. 어쨌든 공간이 ‘집’의 형태로 있으니까 ‘철이네’, ‘영수네’ 처럼 누구네 집 이름으로 친근하게 불리길 바랐었고, 또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 반달이, 보름이였거든요. 둘다 ‘달’ 이름이 들어가잖아요.(웃음) 그리고 배다리 초입에 있으니까 ‘배다리네’라는 뜻을 가져가자고 했는데 여러 사람이 좋다고 해서 지어졌어요. 영어 이름은 ‘Full Moon House’였어요.(웃음)

 

▲배다리 안내소 안쪽으로 책방이 보인다. 안채는 게스트하우스로도 이용된다.(우측 하단)

 

본명이 아닌 ‘청산별곡’ 이라는 예명을 쓰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청산별곡이라는 닉네임은 말 그대로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그렇게 살고 싶다”는 뜻이에요. 남들이 나를 보고 이름을 불러주면, 불러준 이름이 곧 내가 되잖아요. 청산별곡 같은 삶을 살고 싶었어요.

  이전에는 환경단체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그때도 “일상이 바뀌지 않으면 여러 활동들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생활이 기본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삶 속에서의 되살림운동을 해 왔죠. 배다리는 옛것들을 가지고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었어요.

 

삶 속에서의 되살림운동이라면 공간 속에도 그런 것들이 녹아 있었을 것 같아요.

  조흥상회로 옮겨 오고 나서는, 집의 특성을 살려서 공간들을 만들었어요. 1층엔 책방과 게스트하우스, 2층엔 책쉼터와 유기농 작은가게, 벼룩이네(재활용품 활용)를 열었죠. 책방을 운영할 때 친구들이 놀러오면 자고 가곤 했는데, 손님맞이 방을 생각하게 되면서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하게 되었고, 유기농을 알리기 위해서 ‘유기농 작은가게’를 시작했는데, 이 곳이 잘 알려지지 않은데다 2층에 있으니 이용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먹거리를 다루다 보니까 유통기한도 있는데… 그래서 쫄딱 망했죠(웃음) 대신 내가 다 섭취하는 바람에 나는 건강해졌어요.(웃음)

 

▲2층으로 올라가면 ‘생활사 전시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2층은 올해 생활사 전시관으로 새단장을 했어요. ‘날아들다’ 라는 이름에서 보여지듯 공간은 언제든 그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어요. 고정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유기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생활사 전시관 모습. 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생활사를 들여다볼 수 있게 전시를 하고 있다.

특히 이 곳이 조흥상회 터였던 만큼, 7~80년대의 중상류층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배다리 안내소 모습. 손님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배다리 안내소가 궁금해요.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안내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어요. 배다리를 찾는 사람들이 여행만 하고 책에는 관심이 많이 없었거든요. 또 이 곳(조흥상회)이 위치한 곳이 배다리 초입이잖아요. 위치가 갖는 의미도 있었어요. 마을회의를 통해서 나비날다 공간을 안내소로 사용하도록 했죠. 그래서 책방이 집 안쪽으로 들어가고, 마을 입구에서 안내소 역할을 하게 되었어요. 안내소는 주민들이 편하게 회의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쉼터이기도 해요.

  ‘제대로 관리할 누군가’가 이 일을 맡아서 해야한다는 것이 관건인데, 문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에요. 그래서 자연적으로 자율적인 이용공간이 되었어요.(웃음) 덕분에 이 곳은 함께하는 사람들이 꾸며나가는 곳이 되었죠.  이 곳에 있는 문화공간들이 진열장 한 칸씩 맡아서 자기 공간을 소개하고, 배다리의 상품들, 기증품들을 진열해 놓기도 했어요.

 

▲안내소 한 켠에 마련된 책장에는 마을 책방, 문화공간들이 한 칸씩 맡아서 장소를 소개하고, 배다리와 관련된 물건들을 진열해 놓았다. (냥이를 찾아보세요!)

이번 여름에 배다리에서 ‘밭캉스’ 행사가 있었는데요.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밭캉스는 ‘스페이스 빔’에서 여름 특별 프로그램으로 준비하던 행사에요. 작년부터는 마을활동가와 주민들이 함께 꾸려가고 있지요. 올해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 친구, 연인 단위로 신청해서 참가하셨어요. 밭캉스에서 대안화폐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는데,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잘 이해한 것 같아서 뿌듯했어요. 주민들도 이런 활동을 경험하고 좋아하셨어요. 동네 분들이 감자도 삶아다 주시고, 수박도 사와서 나누어 먹고 함께 참여했죠. 그렇게 진행도 잘 되고, 잘 마쳤어요.

 

마을 행사를 할때 동네 사람들도 많이 참여하시나요? 주민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구도심에서 공동체를 만드는 일은 (특히 배다리는) 지금도 어려운 것 같아요. 배다리 마을이라고 하지만 앞쪽의 상업지와 안쪽의 주거지 간의 공동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아요. 주민들은 동네에 사람이 오든 말든 관심이 없고, 앞쪽 상업지는 생계와 관련이 있으니 중요하거든요. 그리고 산업도로와 관련한 개발 문제에 있어서도 아직 갈등이 사라진 건 아니에요. 주민 간에, 또 단체 간에 갈등구조는 늘 있어왔죠. 하지만 현상이 그런 것이고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해요.

    어디까지가 주민이고, 또 주민을 끌어내서 함께 하는 일이 좋은 일일까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배다리에서 열리는 행사. 특히 밭캉스는 작년부터 주민들이 진행하기로 했는데, 생계가 있으니까 일이 생기면 중간에 가야 하고 그래요. 결국 문화공간들이 주최를 할 수밖에 없었죠. 주민 대상으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을 ‘함께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없는 이웃을 끌어내서까지 해야할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바깥에 보여지기 위해서 마을사람을 ‘끌어들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청산 님은 “이미 있는 공간에 내 손길을 더하고, 보태서 아기자기하게 잘 꾸미고 싶다.”며 “이 곳은 내가 꾸리는 곳이지만, 함께 운영하는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아닌 누군가와도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 하는 청산님의 바람처럼 마을 사람, 또 마을에 방문하는 여러 사람들의 손길 안에 나눔과 비움의 마음이 ‘날아들길’ 기대해 봅니다.

 

 

 

배다리마을 생화문화공간 달이네 http://cafe.naver.com/fullmoonh

배다리마을 안내소 https://www.facebook.com/baedari?fref=photo

 

글, 사진 : 이광민 (사업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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