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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함께 어울리는 우리 아파트 마을사랑방
연수구 동춘동 <너나들이 도서관> 김수경 관장 인터뷰
‘너나들이’는 “신뢰가 두터워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사이”를 일컫는 우리말이다. 연수구 동춘동 대림2차아파트 단지 내에는 그 이름처럼 이웃들이 사이좋게 만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마을 사랑방 <너나들이 도서관>이 있다. 이곳이 처음 문을 연 것은 20년 전. 입주 당시 연수구 관내에는 공공도서관이 전혀 없었는데, 도서관의 필요성을 느낀 주민들이 삼삼오오 책을 기증하고, 직접 시설을 마련해 가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마을문고를 열게 된 것이 첫 출발이었다. 아파트 주민이 아니어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어떤 만남이 이어지고 있을까? 김수경 관장과 만나 아파트 공동체의 작은 사랑방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서관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수경 관장(좌)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작은도서관은 처음입니다. 위치적인 특징도 그렇고, 주민이 만든 도서관이라는 점도 그렇고, 도서관 나이가 스무 살이라는 점도 놀랍습니다. 너나들이 도서관은 어떤 도서관인가요?
연수구 내 사립 도서관으로는 너나들이가 1호 도서관이에요. 개관 당시에는 관내에 도서관이 없어서 그 필요가 절실했죠. 너나들이 이후에도 아파트 작은도서관이 하나 둘 만들어졌는데, 유지가 어려워서 지금은 다들 문을 닫았어요. 그래서 유일하게 남은 아파트 도서관이기도 합니다. 쭉 마을문고로 운영하다가 2010년에 공모사업을 통해서 <작은도서관 너나들이>로 새단장하게 되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아파트 도서관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아도 오늘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관심을 갖고 함께한 이웃들 덕분이에요. 하루 2시간씩 3개조로 나누어 봉사하는 30명의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입주자대표회의 및 관리소 직원분들의 적극적인 협력이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지금은 인천시와 연수구에서 도서구입·프로그램 운영 지원을 받아 규모와 내용면에서 내실을 갖춘 지역 작은도서관으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어요. 다만 예전에 비해 봉사 지원자가 줄고 있어 참여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해요.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도서관 활동을 시작했었는데, 그때는 정말 필요한 공간이었고 또 좋은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늘 북적였죠. 사교육 자체를 잘 시키지 않을 때라 엄마들이 돌아가면서 종이접기, 미술 등을 가르치기도 했어요. 이 동네에는 입주 때부터 살아온 분들이 많은데, 그런 경험이나 기억들로 인해 공간을 아끼고 좋아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로 인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거죠.
Q) 처음 도서관을 만들 때는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 같은데요. 준비할 때 어떻게 마음을 모아 갔나요? 관리사무소에 마을문고를 설치할 때의 우여곡절 은 없었나요?
아주 오래전 이야기고, 그래서 지금과는 상황이 정말 많이 달랐어요. 그때는 모두가 입주 직후였으니까 동네일에 관심이 많았고, 관리사무소 지하 공간이 남으니 잘 활용해서 사랑방으로 쓰자는 의견이 금방 모아졌죠. 도서관에 대한 필요가 제기되면서 동대표들이 머리를 맞대고 준비모임을 시작했고요. 집에 있는 책이나 책장을 가져다 두면서 만들기 시작한 거죠. 처음 시작했던 분들은 여기서 공동구매 같은 것도 하고 소식지도 만들었다고 해요. 그게 바탕이 되어서 소식지 만들던 분이 <연수신문>을 만들면서 나가고, 공동구매 하시던 분들이 <푸른두레생협>을 만들면서 나갔다고 해요. 지금도 지역에서 각각의 역할을 하는 단체들인데 그 시발점이 우리 도서관이었다는 게 뿌듯하죠. 그만큼 이 공간은 많은 사람들의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에요.
다만 아파트 도서관의 약점이 이사를 가면 활동도 끊긴다는 건데요. 일반적인 작은도서관은 설립 목적을 가지고 시작하기 때문에 목적이 바뀌지 않는 한 관계가 지속될 수 있는데, 아파트 도서관은 내가 이사를 가 버리면 더 이상 여기서 활동할 근거가 사라지게 돼요. 초기 운영 주체였던 멤버들은 전부 이사를 갔고, 그렇다 보니 열정을 가지고 운영하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으면 운영을 할 수가 없게 되었죠. 그래서 이곳의 운영 주체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주체가 없다”고 말해요. 아파트 도서관은 어느 누구도 주인이 아니에요. 누군가 맡아서 책임지고 운영하면 지속되고, 관두면 방학이 되는 거죠.
▲▼도서관 전경. 30명의 주민 자원봉사자가 꾸려가고 있다. 도서는 8600권 정도.
어른 책과 아이들 책이 반반씩 있는 것이 특징이다.
Q) 하지만 여전히 아파트 도서관이기 때문에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인 지분이 있는 공공의 공간, 공동 소유물 아닌가요?
맞아요. 운영의 측면에서는 아파트 차원의 지원이 있죠. 아파트마다 발생되는 잡비들이 있어요. 재활용품 판매비용 등의 잡비가 생기면 일부를 도서관에 지원을 해요. 입주자 힘으로 하는 것이기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그밖에 도서구입이나 프로그램 진행에 필요한 비용은 지원금을 활용해서 운영하고요.
다만 지속적으로 운영하기엔 자원봉사만으로는 힘든 부분이 있어요. 고정적으로 도서관에 근무할 사람이 있어야 해요.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에 의해 해결되기 때문에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 100% 평범한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꾸려 나가는데, 경기가 안 좋아져서인지 일하러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젊은 엄마들은 자격증 공부를 하러 가면서 봉사에 시간을 낼 여력이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여유가 없으면 도서관을 찾기 힘들어지거든요. 그런데 갈수록 그 정도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람(상근자)에 대한 지원이 필요해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원봉사로 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해요. 아파트 도서관은 아파트의 소유니까 입주자들이 힘을 합쳐야 우리를 위한 운영을 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원봉사자들이 없어서 운영이 힘들어요. 매번 봉사자 찾는 게 일이죠.(웃음)
▲부모와 자녀가 함께 하는 도서관 프로그램들. 김 관장은 “프로그램 운영은 시나 구 차원의 지원을 받아서 진행하기 때문에 폐쇄적이면 의미가 없다”며 대림아파트 입주자가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도록 열어 두고 이웃들과 너나들이 한다고 말한다. 이용자의 1/3정도는 아파트 밖 이웃들이라고.
Q) 그럼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자원봉사 선생님들은 언제 기쁨이나 보람을 느끼시나요? 관장님 개인이 도서관 활동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는 도서관을 만들다시피 했기 때문에 애정이 많아요. 우리 아이가 자랄 때 이 공간이 너무 소중했고, 우리 애가 누렸던 만큼 다른 아이도 누렸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서 도서관을 좀 더 활성화시키자는 생각에 관장을 다시 맡게 된 거고요. 저도 책을 좋아하지만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꽤 있어요. 그럼에도 어른 책을 볼 곳은 마땅치가 않아요. 여기는 신간이 계속 들어오니까 읽기 좋고, 책에 관한 정보도 얻고 관심을 계속 쏟을 수 있으니까 좋죠.
아이들이 옛날만큼 책을 잘 안 봐요. 매일 학원에 끌려 다니느라 쉬는 시간이 없는 아이들이 도서관을 쉬는 공간으로 이용하면 좋겠는데, 도서관에 오면 책이 있으니까 이것도 공부하는 공간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학습만화를 많이 들였어요. 여기서 책 읽는 아이들은 대부분 만화책만 봐요. 잠깐 만화만 보더라도 그게 걔네들에게는 휴식의 시간이고, 다른 곳보다는 도서관이 낫잖아요. 잠깐이라도 휴식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에 대한 보람이 개인적으로 있어요.
가끔 보면 책을 좋아하는 애들이 있어요. 그런 애들이 책을 계속 빌려 가는데 내가 골라둔 책을 빌려 가면 참 뿌듯해요. 그렇게 읽은 책이 그 아이 인생의 어떤 밑거름이 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사회란 것 자체가 부분적으로 살아갈 수 없고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라 모두 잘 되어야 나도 잘 되는 것이잖아요. 나만, 내 아이만 잘 키우려 해서 아이가 잘 클 수 없는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전반적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작은 부분에서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독후활동으로 진행되는 ‘자연과 함께하는 독서수업’ 모습. 그밖에도 어른을 위한 독서 소모임, 바느질 소모임, 아이들 수업을 진행하며 이웃들이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Q) 도서관에 익숙하게 오갈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할까요?
어른들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아이들은 스스로 안 와요. 하지만 엄마가 오면 애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죠. 그래서 엄마나 아빠가 도서관에 오지 않으면 저변이 확대될 수가 없어요. 자꾸 아이들 도서관만 생기는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그럼 엄마들이 도서관 이용 자체를 학습과 관련해서만 생각하거든요. 자기가 책이 좋으면 아이한테도 좋은 감정이 전달되게 마련이에요. 그런 감정이 전달되면 아이도 어릴 때부터 ‘책이 참 재밌는 거구나’란걸 알게 되죠. 그걸 맛본 아이들은 언제라도 책을 읽게 되어 있어요. ‘책이 재밌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하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해요. 독서라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인식이 생기기까지는 무엇보다 부모의 역할이 커요. 그래서 어른들이 책을 읽게끔 유도를 해야 하는데 보통은 애들만 책을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른을 위한 도서관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계획이 있으시다면?
어떻게 하면 어른들을 도서관으로 오게 만들지 고민중이예요. 요새 아파트에는 자녀가 떠나고 50대 부부만 남아있는 가구가 많거든요. 그래서 극장에 가보면 부부만 영화 보러 오거나, 큰 도서관 열람실에 중년 분들만 계시는 경우도 많아요. 사람들이 은퇴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50대 60대까지도 올 수 있는 도서관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그리고 공동체의 일원인 노인 분들에게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어요. 노인정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 하면 도서관 쪽으로 발길을 돌리게 할까 고민중이예요.
갈수록 책 읽는 인구는 줄어들고 있어요. 출판사가 점점 문을 닫듯 도서관 이용객도 줄어들고 있지요. 사람들은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만 하지 실제로 잘 이용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도서관에 아이들을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을 때는 편의성이 좋은 큰 도서관을 보내려고 하지 작은도서관은 잘 이용하려 하지 않아요. 그래서 작은도서관은 차별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어른들도 책을 읽으러 오는 도서관’으로 포커스를 맞추게 된 거고요.
도서관에 오래 있다 보니 청소년 필독서를 빌려가던 아이가 자라서 결혼을 하고 아들 손을 잡고 와서 책을 빌려가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어린이가 대학생이 되어서 자기가 기증한 그림책이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을 보며 반가워하는 모습도 보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너나들이가 이웃들에게 즐겁고 소중한 추억의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그리고 아파트 안에 이런 나눔터가 있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해요. 이만큼 잘 유지되고 관리되는 도서관이 많지 않거든요. 꾸준히 찾아주고 함께 활동하며 아파트에서 자랑할 만한 사랑방이 되기를 바라요.
글/사진 : 이광민(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