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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다리, 인천 가치 재창조의 뿌리
박현주|화도진도서관 독서문화과장
배다리를 지키자
2007년 배다리주민과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이 함께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산업도로를 반대했다. 물리적으로는 청라경제자유구역과 송도경제자유구역을 잇는 산업도로 반대였지만, 문화적으로는 개발논리의 질주가 아닌 마을주민의 정주, 더 나아가서는 시민의 자주(自主)를 지킨 일이었다. 계양산골프장건설반대운동이 인천의 자연생태계를 지켜냈다면, 배다리산업도로무효화는 인천의 문화생태계를 지켜낸 시민자치의 저력이었다.
배다리를 가꾸자
2007년 4월 26일. 수도국산 터널 앞에서 ‘동구 관통 산업도로 무효화를 위한 주민대책위원회’ 사무실 개소식이 열렸다. 예쁜 분홍색 컨테이너가 사무실이었다. 같은 해 5월 10일 송림동성당에서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 발족식을, 6월 2일 ‘배다리를 지키는 인친시민모임’ 사무실 여는 잔치를 하였다(지성소아과 옆 건물). 그야말로 배다리를 지키고자 마을주민과 인천문화예술인들의 연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후 배다리산업도로 반대 시위와 매월 문화행사를 열며 배다리의 가치를 알렸다. 그러나 2년쯤 지나자 한계에 부딪쳤다. 반대만으로는 운동을 지속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2009년 4월 10일 단체명을 방어적인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에서 자애적인 ‘배다리를 가꾸는 인천시민모임’으로 변경하였다. 대항문화의 분투기에서 대안문화의 모색기로 진입한 셈이다.
2009년은 ‘인천세계도시축전’이라는 대형이벤트가 인천의 비전을 ‘명품도시’로 내세웠다. 배다리는 부동산이 아닌 공동체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모색을 마을화폐 ‘품’ 발행이라는 실험과 배다리문화축전의 정착, 그리고 새로운 연대로 나아갔다. 가장 큰 성과는 2010년 제7회 도코모모 코리아 디자인공모전 “배다리 : 또 하나의 인천, 삶의 가치와 맥락을 잇다”를 통한 배다리의 재발견과 재해석이었다. 배다리 밖에서 보내준 관심과 대안이 마을주민의 자부심과 긍지로 성장하였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배다리를 다녀갔고, 새로운 관계와 함께 관계에서 오는 문제도 생겨났다. 그 중에서도 외부 시선에 따른 대상화로 인한 주체성 상실과 배다리를 향수의 공간으로 고착시키는 부작용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면서 배다리 사람들도 학습이 되면서 포괄적 연대에서 선별적 연대로 통제력을 발휘하고자 선택과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밖에서 보면 폐쇄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배다리는 관광지나 유원지가 아닌 개인들의 삶터이자 직장이다. 추상적인 공동체라는 미명과 그럴듯한 연대와 소통이라는 수사로 친절과 미소를 강요할 수는 없다. 배다리 사람들은 대화를 원한다. 대화의 핵심은 배려와 경청이지 간섭과 질문이 아니다. 그동안 배다리 사람들은 외부인들의 천편일률적인 질문과 시선에 지쳤다. 이제 배다리는 호기심과 향수의 대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책을 읽듯이 자신만의 호흡으로 배다리를 걸으며 보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다리 요일가게’ 운영은 자율과 자치의 장이다. 요일가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곳은 아니다.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이 분명한 사람들에게만 의미 있는 곳이다.
배다리는 이제 구경꾼이 아닌 주체적인 개인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배다리 문화의 계승과 세대교체를 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새로운 도시문화와 시민자치의 장을 열고 있다. 이 곳은 헌책을 사고파는 가게만 나열된 곳이 아니다. 상품의 거래가 아닌 문화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한다. 배다리는 다시, 일상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현재 다섯 곳의 헌 책방이 남아 있다. 이것 만으로 배다리를 ‘헌책방거리’라 언제까지 부를 수 있겠는가. 배다리가 독서생태계의 허파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 다양한 책들이 유통되는 서점, 북카페, 출판사, 인쇄소, 독서클럽이 모일 수 있는 공간, 작가들과의 교류의 장, 예술문화 공간, 게스트하우스들이 들어 정주와 정체성이 공존하는 공간으로서의 ‘배다리 책마을’ 공동체를 꿈 꿔 봄직하다.
역사적으로 배다리는 인천 3.1독립운동의 진원지이고, 한국미학을 배태시킨 교육의 장(최초의 공립학교인 창영초는 미술사학자 고유섭의 모교)이고, 여성문화의 시원이 되는 곳(영화학교는 최초의 여성사립학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배다리는 지명이 아닌 정신이자 역사이고 문화이다.
사실, 배다리는 원래 고유명사가 아니다. 그리고 정확한 행정구역도 아니다. 하지만, 배다리는 분명 인천가치 재창조의 뿌리가 되는 곳이다. 배다리 부근에는 도서관(화도진, 송림, 율목)과 학교들, 시장과 극장, 아파트단지와 청소년수련관 등 문화적 다원성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다원성이 분열되어 고립되지 않게끔 배다리는 헌책이라는 문화적 꽃가루를 퍼뜨리고, 독서라는 주체적 개인 행위를 장려하고, 소통과 연대의 강력한 고리인 글쓰기를 가르친다. 배다리는 인문학 넘어 인문주의를 실현하는 곳이다. 배다리는 책과 땀이 함께 흐른다. 배다리 곳곳에 걸린 현수막 내용처럼 배다리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인천의 역사이자 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