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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가 중요한 이유
김용구(남구사회적경제지원센터 센터장)
요즘 마을공동체운동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마을공동체란 ‘마을을 지역 범위로 설정하고 성원들이 소속감을 가지며 그 집단 내에서 공동목적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성원들로 구성된 집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마을공동체 구축과정과 마을지도자들은 지역현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옹진군 덕적도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1962년 외국인 신부인 최분도신부가 연평본당 보좌신부로 임명된다. 그는 덕적공소에 매월 1회씩 방문하였고, 1966년 덕적도본당 신부로 부임한다. 신부님은 낡은 미군 함정을 인수해 병원선으로 개조하여 덕적도 주변섬인 굴업도・백아도・울도 등을 돌면서 환자를 호송해 오고, ‘복자 유베드로 병원’에서는 입원과 치료를 담당했다. 낮은 문턱과 최신 진료시설로 주변 섬에서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어 의료혜택을 받은 주민 수는 연인원 7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주민과 혼연일치 되어 신부님이 직접 전주를 메고 산을 넘어 전봇대를 설치하고 50KW발전기 4대를 구입해 덕적도 집집마다 전등을 달아 깜깜한 섬마을에 빛을 밝혔다. 또 상수도시설을 구축하고 농지를 개간하며 ‘김 양식’을 보급하는 등 주민들 스스로 자립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논경지 확보를 위해 바다 제방을 막게 하고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밀가루를 배급하였다. 밀가루를 그냥 지급하는 것 보다 노동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공사에 참여 하도록 하였다. 대규모 간척사업은 90%를 완성해 놓고 1971년 정부에 이관했는데 덕적도 주민 4개월분 식량을 증산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최분도 신부와 마을주민들은 신뢰와 협력을 통한 다양한 마을만들기를 통해 (종교적)마을공동체를 구축하였다. 1972년 덕적면 인구는 7,190명 중에서 천주교 신자는 약 22%(1,584명)를 차지하며 덕적본당은 자월・이작・승봉・소야도・백아도・울도 등 주변의 많은 공소를 관할한다.
이렇게 형성된 마을공동체 활동 속에서 마을 지도자들이 만들어진다. 마을 지도자들은 마을공동체를 발전을 위해 리더십을 발휘한다. 1994년 12월 정부가 일방적이고 밀실에서 굴업도 핵폐기장을 건설을 추진하려고 하자 마을지도자들은 반대투쟁의 중심에 서서 활동하였다.
지금까지 마을공동체의 구축 방법과 마을지도자들이 지역현안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옹진군 덕적도 사례를 들어 보았다. 마을공동체의 사례를 다른 나라나 멀리서 찾지 말고 가까이서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투쟁 관한 자료는 인천in 참고)
http://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26741&thread=001003000&m_no=1&sec=4
기고: 덕적도에 마을공동체를 건설한 최분도 신부 – 인천in (10/17)
http://incheonin.com/2014/news/news_view.php?sq=27000&thread=002000000&m_no=&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