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of contents
십정동 열우물이 궁금해! ②
<거리의 미술> 이진우 선생을 만나다.
선생님과 십정동 열우물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1995년도에 십정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땐 IMF 전이라 동네가 와글거리던 시절이었다. 이곳에서 20년을 살았으니 살면서 가장 오래 지낸 곳이다. 그냥 내가 사는 동네고, 주민의 한 사람으로 이웃들과 어울려 지냈다. 나는 동네 화가 이진우다. 동네 의사, 동네 목수가 동네에서 자기 역할을 하듯이, 페인트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동네를 꾸미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열우물에서 벽화를 그린 건 1997년부터다. ‘열우물길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게 된 것은 2002년도부터고. 올해가 11차인데 8차까지는 공식적으로 진행했고, 재개발지구 지정 이후 9차 10차는 조용히 진행했다. 개발을 놓고 입장이 첨예했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개발을 떠나서 진행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대대적으로 진행하게 됐다.
작가마다 작품활동을 하는 범위는 다양한데, 특별히 벽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미술이 전시장에서 전시될 때는 보통 사람들을 부르게 된다. 작업할 때는 작업실에서 나혼자 만들어 누군가를 전시장에 오게 만드는 관계의 미술이라면 거기 올 수 있는 특정 대상. 그러니까 미술 애호가이거나 금전적 여유가 있는 사람하고만 소통하는 것이 된다. 그런 미술은 그들만의 미술이다. 현실의 많은 사람들은 평생 전시장에 못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전시장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의 미술이 아니라 미술의 민주주의 측면에서 내 그림도 민(民이) 주(主)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사람들에게 가는 방법으로써 벽화를 선택한 것일 뿐이다. 민주주의라고 해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만 그리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 속에 가서 미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겐 가장 중요하단 뜻이다.
하고많은 동네 중에서 열우물에서 작업하시는 이유, 애착을 갖는 이유는 뭔가요?
나는 십정동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벽화작업을 한다. 제물포에서도 작업을 했었다. 원래 화실이 그쪽에 있었다가 재개발로 인해 2010년 봄, 자연스럽게 십정동으로 옮겨 오게 되었다. 열우물이 아직 헐리지 않고 남아 있으니 지속적으로 하게 되는 상황인 셈이다. 다만 굉장히 오랫동안 작업을 했으니까 내게는 이곳이 나의 내면이자 토대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1차 동안 나 혼자 한 것은 아니잖나. 늘 도와주는 사람들이 같이 와서 함께 했다. 저 사람들이 동네에 대한 애정에서 작업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기가 악하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적어도 이런 일을 함으로써 본인들은 즐겁고, 꾸준히 하면서 나름대로 자기 삶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단순히 ‘봉사활동 하러 왔어요.’ 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벽화는 내게 □□이다 한마디에서 ‘인생이다’, ‘마음이다’라고 답하는 까닭이다.
오래된 빈민 지역인 열우물이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보면 사는 사람에게 정말 열악한 동네다. 여기는 구조적으로 도시가스가 들어올 수 없다. 사회적 기반시설 혜택을 못 받는 곳이다. 단지 여기 산다는 이유만으로 못 받는게 온당한가? 세금은 똑같이 내는데. 행복추구의 차원에서 주민들이 그런 혜택을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개발 이슈가 걸려 있으니 진행이 안 되는 것이다. 행정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개발할건데 기반 시설을 닦아 놓기가 난처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민들에게 마냥 동네에 오래 있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미 많은 사람이 집을 팔고 떠났다. 지금 집주인들은 부동산 피크에 구입한 사람들이라 지금 나가면 막심한 손해다. 왜 계획 부동산이 사람들 끌어들였다가 빠져나간 일련의 흐름들이 있잖나. 대부분 그렇게 산 사람들이다. 투자를 잘못한 본인 탓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지금 그냥 나가라고 하는 게 합당한 것도 아닌 것이다. 어쨌든 이래도 손해 저래도 손해인 상황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는 개발 찬성이나 반대 논쟁 이전에 둘 중 뭐가 되었든 빨리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20년째 지연되고 있으니 주민들이 불편해도 집을 고치지 않는다. 지금 동네에 파란 지붕 집들은 개발이 안 되니까 부랴부랴 고친 것이다.
이곳 주민들은 두 유형이다. 오래 살아왔던 사람이거나 값이 싸니까 어쩔 수 없이 사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노인들이다. 요즘 아파트는 옆집도 이웃이 아니잖나. 그럴 바에 어르신들은 주변에 이웃 있는 이곳에 사는 것이다. 노인들. 아파트는 옆집도 이웃이 아니니까. 계속 사는 거다.
▲”잘 그린 그림이기보다 꾸준히 했다는 게 정말 대단한 거에요. 하는일이 그림이니까 그림으로 드러나지만, 시멘트 외벽이 드러난 것과 도장이 되어 있는 것은 다르거든요. 단순히 미관상으로 좋은 것만이 아니라 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벽화는 어떤 스토리(개연성)을 가지고 진행되나요?
특별히 스토리가 있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워낙 긴 시간동안 그려졌기 때문에 그때마다 흐름이 다르다. 되도록 단순하게,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그림으로 간다. 디자인에 대해서는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하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개별 그림에 스토리를 넣는다는 것은 적어도 이 동네에서는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의미를 담아봐야 동네분들이 벽화에서 의미를 느끼고 인문학적인 상상을 한다는 것은 블랙 코메디다.
다만 개발이 불가하고, 동네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니 동네를 꾸밈으로써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일단은 낡아가는 느낌이 아니라면 안전을 담보해주는 역할을 한다. 안전 문제가 요즘 화두잖나. 아직 돌봄을 받고 있구나, 누가 봐도 동네가 아직 살아있구나 하면 위험 인자가 줄어든다.
다양한 사람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왔는데, 어떻게 모이게 된 것인가요?
자원해서 오는 사람들이다. 이 일은 가난하면 못한다. 참가비를 5천원씩 받으니까.(웃음) 점심은 프로젝트 안에서 주지만 뒤풀이 비용은 걷어서 먹어야 하니까. 그래도 마을에서 후원을 하기도 하고, 모자란다 싶을 땐 뭐가 생긴다. 누가 와서 수박을 가져다주는 등. 그럴 때 나는 주로 삥 뜯는 사람이 된다.(웃음)
인천희망그리기(인천벽화봉사활동), 거미동(전국단위 벽화봉사단) 중심으로 참여한다. 전국구다보니 멀리 사는 분이 참여하시기도 한다. 하자고 하면 늘 같이 와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속적으로 오는 사람도 있고. 개별 사안마다 그때그때 참여한다. 지나고 보면 나쁜 기획이 아니었다면, 어딘가에는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느낀다. 이들은 간단한 일회용 벽화자원봉사라기 보단 벽화자원봉사 공동체다. 각자 자기 먹을 것을 챙겨 와서 풀어놓곤 한다. 그래서 물론 힘들고 피곤하지만 이들과 함께 있는것이 좋다.
ⓒ거리의미술
계속 그림이 생겨나면서 동네 분위기가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동네 분들은 뭐라고 하세요?
당연히 벽화 그리는 일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동네는 개발로부터의 피해자들이 태반이다. 개발 자체가 안 되서 짜증나는데 뭔 짓을 하는가 싶은 거다. 이미 지장물 조사까지 마쳤는데 보상협의가 지연된다. 안 한다는 것도 아닌데 하면 손해를 보니까 멈춰 있는 것이다. 가스, 연탄 배달도 꼭대기까진 안 간다. 주민들 불편이 상상이 가는가?
오랜 시간동안 벽화를 그리게 만드는 동력은 무엇인가요?
함께하는 저 사람들과 동네 사람들, 그리고 동네인 것 같다. 벽화 덕에 동네가 피폐함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동네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편하게 인사하게 되는 관계 안에서의 편안함. ‘우리 동네’라는 말에 모든 게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동네 살면서 언제가 제일 즐거우신가요?
동네 어르신들과 미술수업을 진행하고 동네를 나와 야외스케치를 할 때가 가장 즐겁다. 어머님들 미술수업을 12월까지 진행한다. 마을잔치 때에는 전시를 하려고 한다.
공공미술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요?
많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이 작가가 그 동네에 들어가서 제작·설치 등을 한다. 나도 다른 동네에 가서 작업을 하기도, 몇 달씩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가장 관건은 주민들과 소통이 되는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통이 잘 되면 결국 꽃 그림을 그리고 만다. 주민들이 원하는건 단순하거든. 주민들의 요구대로 진행하되 요구를 넘어서는 것은 작가주의적인 경향이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벽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면 판이한 결과가 나온다. 상투적인 결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출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벽화가 정형적인 상을 그리는 게 전부가 아니다. 페인트만 예쁜 색으로 칠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필요가 있고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면 큰 차이가 없다. 살면서 어떻게 잘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것 아닌가?
송월동 동화마을의 벽화는 관광벽화다. 지역을 광광지로 만들었다고 할 때는 가능하다고 본다. 월미도도 벽화가 많다. 이건 유원지형 벽화다. 다만 그냥 관광지 사업인데, 한국의 근현대 유산이 많은 곳에서 그런 상징성을 살렸다면 인천의 정수를 더 잘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걸 버리고 어디에 있어도 똑같을 것을 입혀서 장소의 의미를 죽인 것은 퍽 아쉽다.
글/사진 : 이광민 (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