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공동체 네트워크 형성과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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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 호 (성공회대학교 사회적경제대학원 겸임교수)
마을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마을공동체 활동은 단순히 일부 마음 맞는 주민들이 뭔가를 함께 하는 것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는 단지 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필요한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킨다는 것도 특정 모임이 자신만의 발전을 추구하는 것과도 다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공동체 운동은 경쟁 중심의 관계망과 이에 따라 초래되는 서열화를 강화하는 현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하는 대안 운동이다 즉 경쟁과 서열화를 중심으로 한 사회 기반을 상호부조, 수평적 관계망 형성 등에 기반한 공동체적 관계로 대체하고자 하는 게 공동체 활동의 핵심 가치이자 목적이다. 현재의 마을공동체 활동은 그런 지향을 추구하는 과정이기에 마을공동체‘운동’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랜 역사를 지닌 공동체 운동은 끊어짐 없이 추구되고 실천돼 왔지만, 우리 사회의 핵심적 가치로 주목받은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하다. 마을공동체가 우리 사회를 질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대안 운동이라면 그리고 이를 조금씩이나마 실천하고 실현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공동체 연결망의 사회적 확산을 위한 실천이 더 진지하게 고민되어야 한다. 확산의 가장 강력한 방법은 공동체라는 수평적 연결망을 사회적으로 점점 더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마을공동체 네트워크가 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네트워크라는 연결망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마을공동체 네트워크는 당위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당위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하나의 마을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유지·발전시키는 과정 그 자체도 쉽지 않고, 이런 상황에서 긴밀한 네트워크는 피부에 와닿지 못한다.
또한 여기서 네트워크 또는 협의회나 연합 같은 연대체 조직 간의 차별적 특성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대체는 더욱 큰 힘을 가진 상대에 맞서기 위한 ‘힘의 결집’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이런 연대체에서의 결정이 개별 구성 단체의 일상 활동에 우선해야 한다.
하지만 네트워크는 이와 다른 유연한 연결망이다. 네트워크 자체의 결정이 개별 구성 주체들의 일상 활동에 우선시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일상 활동을 유지한 채, 자신의 일부 자원과 역량을 투여하는 방식이다. 물론 네트워크 형태에도 다양한 수준이 있다. 더욱 느슨하게 각자 정보를 교환하고 친목을 다지는 등의 형태, 필요에 따라 공동의 프로그램 또는 사업을 진행해 보는 정도의 형태도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는 특정 사안에 이해가 있는 구성 주체들이 해당 사안 해결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각자 내어놓고 공유해 활동하는 더 긴밀한 실천 네트워크도 가능하다. 그런데, 네트워크 내에서 마치 무슨 협의회나 연합과 같은 결속력을 요구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면 많은 역량을 투여하는 주체들과 그렇지 못한 참여 주체들 간 갈등이 생기곤 한다.
또한 네트워크 구성 시 단체나 모임별 연결망인지, 개인도 포함된 연결망인지도 논란거리가 되곤 한다. 네트워크는 조직과 조직, 개인과 개인, 조직과 개인 간 다양한 연결망이 가능하다. 네트워크 구성의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 주체들을 굳이 경직된 방식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네트워크 운영 시 고려해야 할 점들
■ 네트워크 결성 단계 시
네트워크를 구성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네트워크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하는 것이 좋을지 결정하는 것이다. 이 수준이란 참여하는 개인 및 단체들이 공유할 자원의 정도와 역량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참여하는 개인 및 단체의 능력에 적절한 정도의 책임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후 활동 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네트워크 운영 능력도 고려해야 한다. 여기서 운영 능력을 고려한다는 것은 각 단체와 개인 간을 중재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상호 경쟁을 조정하고 공동의 합의를 도출하며, 갈등 발생 시 이를 원만히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런 능력 정도에 따라 네트워크의 형태나 수위를 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네트워크가 처음부터 특정 활동이나 사업을 중심으로 만나게 되면,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견들로 인한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런 갈등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신뢰가 클수록 유리하다. 이를 위해 초기에는 상호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각각의 욕구에 맞는 공동 실천 사업들을 배치해 공동의 경험을 쌓아나가는 것이 적절하다.
■ 특정 공동 활동·사업 추진 시
네트워크가 특정한 공동 활동을 계획할 때는 각 참여 단위가 함께 공유해야 할 부분과 각 참여 주체의 네트워크 활동 관련 처지나 환경 등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동의 문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문제 해결을 위해 각 단위는 어떤 자원(기술, 전문성 등)이 있는지, 특정 문제가 공유되는 지리적 범주가 어떤지, 활용 가능한 자원(재정적, 비재정적)이 어느 정도인지 등이 그것이다.
특정 사안에 대해 공동 대처 즉 공동 활동이나 사업을 계획할 때는 공유해야 할 부분만이 아니라, 각 참여 주체의 과업 환경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각 참여 주체의 사회·경제·환경적 처지가 어떤지, 네트워크 의사결정에 있어 어느 정도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가질 수 있는지 등이 그것이다.
이런 환경을 확인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는 단지 네트워크 내 갈등이나 함께 해결하고자 한 사안의 성과 부족 등 네트워크 그 자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해당 네트워크에 참여한 각 단체 내부적으로도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면 각 단체의 대표자들이 네트워크에 참여해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정작 그 실행을 담당할 실무자들은 불만이다. 결정하는 이와 실행하는 이 간의 의견 차이 때문이다. 역으로 의사 결정권이 부족한 실무자들이 네트워크에 참여하게 되면, 네트워크 자체에서는 독자적 결정을 하기 어렵다. “우리 단체에서 논의해 보고 결정해 알려주겠다.”는 등으로 의사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자체의 의사결정이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참여에 대한 각 단위 내부에서 네트워크에 파견하는 이의 권한과 책임 등에 대한 충분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 활동에 있어서 많이 문제가 되는 것 중 또 다른 하나는 참여 주체들 간에 사회적 성과를 무엇으로 둘 것인가가 합의되지 않았을 경우다. 활동을 통해 일정한 성과가 생길 경우, 어떤 참여 단위들은 공동 활동의 취지가 달성됐다고 판단하고 다른 참여 단위들은 아직 그 정도로는 미흡하므로 좀 더 공동 활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공동 활동에도 힘이 빠지고, 이는 네트워크에 대한 의구심을 낳는 원인이 된다. 따라서 특정 사안에 대한 공동 활동을 합의할 때는 공동 활동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성과에 대한 구체적 합의가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각자가 원하는 정도의 사회적 성과를 거둘 때까지 참여하기로 합의할 수도 있다.
■ 네트워크 운영 시
네트워크에 있어 중요하게 강조되는 원칙 중 하나는 각 주체가 공유하기 위해 내어놓은 자원들에 대해 같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즉, 공유된 자원의 등가(等價) 원칙이다. 이는 성과의 균등한 배분을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 네트워크에 참여하는 각 단위 주체가 공유하기 위해 투여하는 자원은 양적으로 차이가 난다. 이런 경우 성과에 대한 사회적 인정을 가장 많은 양의 자원을 투여한 참여 주체가 가져가곤 한다. 그러면 적은 양의 자원을 투여한 주체들은 그 사회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유를 위해 내어놓은 자원의 양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같은 가치로 인정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네트워크와 관련한 고려 사항은 네트워크 참여 주체들 간의 상호작용과 그 절차에 대한 것들이다. 이러한 사항을 명확히 합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서로 이런 합의를 남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왜냐하면, 합의가 이뤄졌다고 생각했지만, 서로의 기억에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합의를 명확히 하는 것은 상호 불신을 사전에 방지하고 서로 간 명확한 관계와 상호작용의 근거가 되며, 네트워크를 통한 사회적 성과를 적절히 배분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네트워크와 마을공동체 활동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럴 때 우리가 처음 무슨 취지와 어떤 합의로 함께 하기로 했는지를 명확히 상기하는 것은 필요하다. 상호작용에 대한 합의는 그런 점에서 유용하다.
인천시와 마을 네트워크에 대한 제언
현재 인천시와 각 자치구에서 추진하는 네트워크는 지역의 특정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기보다 일상적 네트워크 형태라 볼 수 있다. 그런 경우에는 네트워크의 긴밀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정 이해나 욕구보다는 당위에 의해서 모였기 때문이다. 그 출발이 특정 사안에 대한 공동 대응을 통한 연대의 필요성이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지역별 일상 네트워크는 긴밀한 공동 실천보다는 해당 지역 마을공동체들을 담는 그릇 또는 느슨한 연결망으로서 중요한 역할이 있다.
이런 일상적 네트워크는 사안별 공동 대응을 위한 기반으로 작동될 수 있다.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 해도 어떤 공동체에서 어떤 관심을 두고 있는지 또 어떤 자원이 있는지 서로 확인할 수 없다면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없다. 무엇보다 공동 대응이 필요한 사업이나 활동이 무엇인지를 서로 확인할 수 없다면, 긴밀한 네트워크가 아예 형성될 기회조차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인천시 또는 자치구별 네트워크는 일상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기반으로 작용하는 역할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가 특정 사업이나 활동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마을공동체들이 생기면 그 마을들이 해당 사안 관련 활동을 공동으로 수행하기 위한 실천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방식이 지역별 네트워크의 적절한 운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마을 네트워크는 그런 다양한 공동 활동 및 사업들이 이뤄지는 마중물 기능을 중요 역할로 삼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면 지역별 네트워크 자체가 지나치게 참여 주체들에게 많은 책임과 역할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책임과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여 특정 활동을 수행하고자 하는 단위들이 감당하면 될 몫이다. 지역별 네트워크 내에서는 참여 주체들의 관심과 이해에 따라 다양한 실천 네트워크들이 형성될 수 있고, 또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특정 사안별 네트워크가 애초의 목표를 달성하면, 그 사안별 네트워크는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이럴 때도 지역별로 구성된 일상 네트워크 안에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다 또 다른 공동의 관심과 목표가 생기는 마을공동체들과 또 다른 활동을 위한 사안별 실천 네트워크를 형성해 활동할 수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 관련하여 중요하게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인천시 또는 자치구별 마을 네트워크가 해당 지역 마을공동체를 대표한다는 위상을 강조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현재 진행되는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는 마을공동체들도 많다. 이들과도 공식 비공식적으로 만나고자 노력하는 개방성은 중요하다. 하지만, 기존 네트워크들이 해당 지역 마을공동체의 대표성을 강조하기 시작하면 이들에게는 그 네트워크가 폐쇄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보다는 네트워크 그 자체의 개방성을 항상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설령 특정 지역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던 단위들도 사안에 따라서는 함께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역별 일상적 네트워크의 가장 핵심적 역할은 서로 만나 자유롭게 대화하는 ‘수다의 장’, 또는 ‘대화의 장’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때로는 자유로운 수다를,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등으로 말이다. 이를 위해 공식성을 띠는 회의장 등의 장소에서 만날 수도 있지만, 함께 식사나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서로를 알게 되고, 또 다양한 이슈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공동체들을 확인할 수 있고, 특정 이슈에 공감대를 형성한 공동체들이 사안별 실행 네트워크를 형성해 공동 활동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을 운동을 발전시키고 그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고려하고 고민하고 또한 조금씩이나마 실천해야 할 과제가 있다. 그러한 과제를 실천하고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활동에 활동가의 역할이 중요하듯, 네트워크에도 네트워크 활동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활동가의 역할은 앞서 언급한 네트워크의 특성 및 고려 사항 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활동가의 존재 및 그 역할, 그리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여건 등에 대한 합의 또한 네트워크 내에서 이뤄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