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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기 주민자치 인문대학 2강
‘마을에서 노동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
10/24일(금)
주민자치 인문대학 2강은 <마을에서 노동이 분리될 수 없는 이유>라는 주제로
박영길(생활교육공동체 ‘공룡’ 활동가) 님께서 강의해 주셨는데요.
‘마을만들기’가 어떤 흐름을 가지고 가고 있는지,
또 그 안에서 (살기 좋은 마을에) 필요한 노동은 무엇이고, 누가 일하고 있는지,
우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해 개관해 주셨습니다.
마을만들기, 언제부터?
마을만들기가 한국사회에 등장한 것은 아마도 1992년에 있었던 <리우 지구정상회담> 이후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회의는 당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국제회의로, 이 회의에서 ‘리우 선언’과 ‘의제 21’을 채택한 이후 한국의 각 지자체에서도 유행처럼 아젠다21을 만들면서 지금까지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등으로 이어져 오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살고싶은 마을만들기> 등이 처음 진행되었다. 한 때 이슈였었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었거나 폐기된 마을만들기가 다시 열풍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서울시장에 의해 마을만들기가 대대적으로 부상하면서 이 사업 방식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된 것이 첫 번째이고, 박근혜 정부가 천명한 ‘제2의 새마을운동’에서 강조된 것이 ‘지역공동체 복원’과 ‘마을경제육성’ 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둘이 갖는 의미가 ‘공적 자금이 대대적으로 풀린다는 것’이기도 하기에, 여러 지자체에서 열풍처럼 마을만들기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마을공동체란 무엇일까?
여기저기서 흔하게 마을을 말하지만 사실 마을 자체는 너무 다양한 층위를 가지고 있다. 옛부터 우리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크기에 따라 구분해왔다. 농경사회에서 생산 조직별로 구분한 것이다. 대개 이웃-동네-마을-고을 순으로 분류했는데,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과 농사일을 함께 하는 적당한 규모(40호-70호)의 두레공동체 ‘동네’, 이러한 작업공동체 3-5개가 모여 이루는 ‘마을’, 마을 여러 개를 편의에 따라 행정구역으로 묶은 것이 ‘고을’이었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자본주의 체제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생산체계도 동네에서의 품앗이 위주가 아닌 공장 중심의 대규모 기계생산이 되었다. 공동체 단위도 변화했고, 남은 것은 개인 혹은 가족단위의 소비생활 뿐이다 보니 더 이상 한 동네/마을이 삶에 있어서 유의미한 단위가 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공동체는 어떤 기준으로 구분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공동체를 복원하자는 것인가? 사라진 공동체로 인해 잃은 것이 무엇이기에? 사라져버린 마을을 복원하자고 약 20년간 말해온 수많은 일들은 어떤 변화를 만들었을까?
마을에서 노동을 만난다는 것
마을에서 노동을 만난다는 것이 아주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서울의 몇몇 지역이나 노동자가 밀집한 지역에서는 노조와 마을이 만나 마을카페도 열고, 노동상담도 하는 등 노조와 마을이 만나는 지점을 창출하려는 흐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활동가 그룹에서도 개별적/전국적 사안에서 나름 연대하려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노조라는 것도 결국 개인의 직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니 직접적으로 마을과 관계되어 있지는 않다. 하나의 공장이 마을 단위와 이해관계가 맺어지지 않는 한 노동 자체가 이슈가 되기 어려운 것이다. 사업장에서 파업이 있을 때 지지와 연대하는 것만이 마을에서 노동을 만나는 방법은 아닌 것이다.
우리가 노동을 대하는 몇 가지 자세
이미 거대 자본, 외부자본에 의해 지역경제나 노동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안에서 노동, 혹은 노동하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청주에서 있었던 사례를 몇 가지 소개하겠다.
#1. 우리 아이가 밥 굶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청주의 한 학교. 학교 급식조리원들이 처우 개선 등의 이유로 파업을 했다.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밥을 못 먹는다는 사실만으로 협박 등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서 몇 년 째 요리를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불안정한 고용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벌인 단 한번의 파업을 (단지 점심 한 끼 정도인데) 참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친환경, 유기농 급식을 한다고 한들 정작 만드는 사람이 당사자를 생각할 때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드는 음식이 좋은 음식일 수 있을까? 이 난장판을 지켜보는 학생들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2. 취업했어요. 하지만 비밀로 해주세요
청주의 공부방에서 함께 지내던 아이들 중 몇몇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공장으로 취업했다. 공장에 취업한 아이들의 반응은 언제나 똑같다. “선생님, 저 ㅇㅇ공장에 취업했어요.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대학에 가지 않고 취업한 것이, 그것도 공장 생산직으로 취업한 것이 아이들에겐 창피한 일이 되었다. 왤까?
#3. 너희 아버지 뭐 하시니?
내가 가르친 아이들 중 부모님이 폐지 줍는 일을 하시는 자녀들이 있다. 아이는 한 번도 부모님 직업을 말한 적이 없고, 부모님도 자기 일을 주변에 이야기하지 않는다. 부모님이 식당 주방에서 일하는 아이들 중에는 지인들이 그 식당에 가는 일을 부끄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4. 우리 아이들의 꿈은 무엇일까?
충남 서산에서 마을조사작업을 할 때 중.고등학생들의 면접조사에서 아이들이 장차 하고 싶은 직업 선호도 1위가 ‘부동산 기획자’였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유는 “일은 안하고 돈은 많이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충남 예산에서 청소년 대상 마을 캠프를 진행할 때, 아이들 중 가녹 농사를 짓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부모들의 대부분은 자녀가 농민, 노동자로 살아가길 바라지 않는다고 답했다. 모든 부모와 아이들의 꿈은 노동하지 않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갖는 것인가?
#5. 우리 아파트 경비아저씨는 우리마을 주민이 아니에요.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24시간 우리 아파트에 있지만 우리 마을 주민이 아니다. 반대로 아저씨는 절대로 자신이 거주하는 마을에서 경비를 서지 않는다. 이웃 주민들이 경비 일을 업신여기기 때문이다. 최근 한 경비원이 분신하는 사고로 인해 세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마을만들기의 대상은 누구여야 하는 걸까?
도시에서 마을이 존재한다는 건 그저 주민들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파트라면 아파트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매우 다양한 기본노동들이 필요하다.(경비, 청소, 시설관리 및 가스, 수도 전기의 ‘공적 서비스’, 요식업, 마트, 세탁소 등 기반시설)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우리 주민일까 아닐까? 아니면 매일 잠만 자고 나가는 사람이 주민일까?
#1. 마을의 경계는 어디인가?
생활구역을 중심으로 한 지리적 경계, 혈연이나 지연 등 관계에 의한 심리적 관계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 공동체의 기본 속성이다. 우리는 어느 선까지 공동체의 경계라고 말하고 있는가? 도시는 지역이 넓고, 경계가 불분명하고, 장기 거주자 뿐 아니라 다양한 세입자들, 체류자들, 유목민처럼 이동하는 사람들이 혼재되어 있다.
#2. 누구를 위한 마을만들기인가?
다양한 지역에서 수행되고 있는 마을만들기 사업은 대개 지역과 상관없이 대동소이한 경우가 많다.(벽화 등의 환경개선, 교육사업 등) 기획력의 부재라기보단 사업의 대상이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마을을 꿈꾸지만, 비슷한 마을사업으로 모두가 행복한 마을을 만들 수 있을까?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대상 간에 의견이 상충될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마을인가?
#3. 살기좋은 마을에 꼭 필요한 노동은 무엇인가? 누가 일하는 것인가?
장애인 시설이나 노인세대를 위한 치유시설이 동네에 들어서는 것을 부동산과 연관지어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다. 또한 환자/노인/장애인 가족을 둔 주민들이 있다. 이들이 한데 어울려 사는 공동체가 마을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필요한 공적 서비스를 외부에서 가져와 적용하고 수행된 다음에는 마을 밖에 가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일까? 또한 그러한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는 함께 사는것이 아닌 외래인으로서 방문하는 방식이어야 하는 것일까?
마을에서 사라진 노동
현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생산(자본-공장)과 재생산(개인-가족)을 중심으로 구분되던 초기 질서가 무너졌다. 생산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아동, 혹은 여성이라는 (직접 고용된 노동자는 아니지만) 가족 구성원에 의해 가내노동이 이루어져 재생산 기능을 담당했으나, 생활의 다양한 측면들이 상품경제로 편입되어 버리면서(아침밥 배달 서비스 등) 이제는 더이상 가족 내의 노동이 불필요해질 정도가 되었다. 극도의 개인주의적 생활시스템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부족한 재생산을 위하여, 이제는 좀 더 확대된 공동체들이 담당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최근 공동체를 강조하는 이유이자 흐름이 아닐까 한다. 정부나 자본도 이런 차원에서 공동체를 자본주의 문제의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현상에서 볼 때 우리가 하고 있는 마을만들기/마을공동체는 마을을 만드는 사람이 직접적인 주체가 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다른 방식의 소비 측면’, ‘문화적 측면’, ‘사회복지적 측면’에서만 이상하리만치 마을만들기가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있는데, 정작 마을에서 사라진 생산이나 노동은 마을의 문제로 인식되는 것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마을만들기나 마을공동체 복원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이유이면서, 일정 정도 무기력한 상태로 지속되는 원인의 한 측면이라고 본다. 결국 마을공동체의 복원에서 생산-노동이 배제된 소비-문화-복지-예술의 측면을 강조한 것은 기형적일 정도로 무기력한 마을의 복원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마을과 노동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한 몇 가지 시선들
1) 마을의 모습은 낮과 밤에 따라 달라진다. 실제로 사람들에 따라 활동 시간대가 다르다.
2) 공동체의 긍정성과 부정성을 동시에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라고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완고하고, 편협하고, 공격적일 때가 있다.
3) 마을만들기는 이웃이라는 관계와 마을이라는 장소에 대한 인식과 관심에서 출발해 태도의 변화를 갖기 위한 움직임이다.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를 조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4) 마을공동체 복원은 프로그램 도입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지역의 문제발견->문제제기->해결을 위한 학습->조직화의 단계를 밟아나가야 한다. 결국 공통 문제에 관련된 거주자 뿐 아니라 제반 노동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시작되고 완결되어야 한다.
5)공동체에 소속감을 갖지 않는 외부자는 어떤 존재인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기본 방식인 문제제기-학습-조직화라는 지난한 대화 과정에 함께하고 기다리고, 들어주며 같이 움직이는 조력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글/사진 : 이광민(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