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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월곳리는 깨끗하고 맑은 동네다. 근처에는 연미정이 있어서 고려시대부터 시작하여 근대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이 유명한 건축물의 이름을 따서 연미마을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월곳리는 마을 주민들도 점잖고 순박하며, 마을 경관 또한 편안하고 아름답다.
이번에는 연미마을로 찾아가 월곳리 부녀회장 겸 ‘연미마을 공동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월숙 대표를 만나서 마을에 대한 생각, 마을의 고민, 마을공동체 공모사업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안녕하세요?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최월숙 대표(이하 최): 저는 원래 경상북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직장을 다니면서 서울로 가게 되었는데, 태생이 시골사람이다보니 도시에서 살 수 있는 자신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고민 끝에 1997년에 무작정 강화로 왔지요.
원래는 3년 정도 머무르다가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여기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그대로 정착을 하게 되었어요. 그 후에 여러 활동을 하던 중에 2016년에 부녀회장을 맡게 되었고, 마을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올해 처음으로 마을공동체 공모사업에도 응모하여 선정이 됐고요.
최: 연미마을은 행정지명으로는 월곳리라고 해요. 연미정이라고 하는 유명한 곳이 근처에 있어서 마을 이름도 연미마을이에요. 이 마을에는 130가구 정도가 있는데 거의 70~80대 어르신들이 대다수에요.
연미마을은 민통선 지역에 자리잡고 있어요. 이것이 마을의 강점이나 약점인데, 외부인들의 출입이 제한되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요. 난개발도 없었으니 마을 자체가 깨끗하고 경관이 좋아요. 마을 주민 분들도 순박하고 점잖으신 편이에요.
저도 마을을 잠깐 둘러봤는데 정말 편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을에도 고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 마을 주민들이 모임을 가지고 서로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얘기를 했어요. 또 마을의 장점이 무엇이고 어떤 자원을 발굴할 수 있을지도 논의해봤어요. 그렇게 얘기를 하다보니 마을 자체가 고령화되어서 앞으로 한 40년 후에는 마을이 없어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결과로 나온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이 마을을 앞으로도 지속시킬 수 있을지 고민을 해보니 결국 외부에서 사람들이 유입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 다음에는 농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생업이 가능한 토대가 마련되어야 외부인들도 마을에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럼 외부인들을 마을로 유입시키기 위한 방법을 찾으셨나요?
최: 마을 근처에 연미정이 있잖아요.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고요. 그래서 일주일에 약 4천명 정도의 관광객이 연미정에 들러요. 그렇지만 주변에 편의시설은 거의 없고요. 그래서 마을 주민들이 이런 자원들을 활용하여 일을 할 수 있는 것들을 마련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준비 작업으로 마을의 자원을 조사하고 주민들이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자 모임도 가졌고, 충남 홍성으로 선진지 견학도 갔어요. 이것들은 마을공동체 공모사업을 통해서 진행한 것들인데 이를 통해 마을 주민들이 자신감도 많이 얻었어요.
또 연미정 앞에서 마을장터가 가능할까 싶어서 시범적으로 마을장터를 열어봤는데 생각보다 잘 되었어요. 마을 어르신들이 텃밭에서 수확하신 야채들을 가지고 나오셨는데 손님들이 잘 사가셨어요. 앞으로 장터를 열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겨울에는 수확해놓은 야채들로 부각을 만들어서 마을 주민들끼리 힘을 합쳐서 공동판매를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이렇게 수익을 내려고 하는 것은 결국 마을에 외부에서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이죠?
최: 그렇지요. 사실 연미마을에서 살고 계신 분들은 큰 소득에 연연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가실 수 있어요. 나이가 들었을 때는 소득보다도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일거리가 있어야 해요. 1차적으로는 마을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마련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마을 주민 분들의 2세, 즉 현재 50대 정도 되시는 분들이 마을로 다시 돌아오려고 할 때, 연미마을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에요.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연미마을로 와서 뭘 하려고 하면 너무 막연하죠. 그래서 우리 주민들이 힘이 있을 때 조금이라도 터전을 만들어서 마을을 지속시키고 싶은 마음이 커요.
앞서 강화군 양사면의 양사초등학교에도 다녀왔는데, 그곳도 외부에서 사람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노력들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최: 그곳은 학교에 아이들이 있어서 마을에 아이라고 하는 매개체를 통해 모습이 바뀌고 있지요. 연미마을에서 제일 어린 아이는 13살이거든요. 그 말은 즉, 마을에서 10년 넘게 아기가 탄생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그 위기감에 대해서 모든 마을 주민들이 공감을 하고 있지요. 연미마을 주민들은 이 마을을 사랑해요. 그래서 당신들이 돌아가셔도 마을은 계속 존재하기를 바라고 계세요.
고민이 많으실텐데 마을 활동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나요?
최: 홍성의 홍등마을로 선진지 견학을 갔을 때, 같이 갔던 어르신들이 해맑게 웃고 장난도 치고 소녀같은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동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연미마을의 향후 계획은 마을의 미래를 만드는 것, 그것을 위해서는 농업 이외에 다른 수익이 생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인가요?
최: 올해는 공모사업을 통해 가능성을 봤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년에는 그 가능성들 중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살려서 사업을 벌여보는 것이 바람이에요. 연미마을 공동체의 목표는 마을 주민들이 서로 소통을 해서 마을이 어떻게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 논의를 해서 마을의 미래를 만들고 마을을 홍보하는 것이에요. 또 부녀회원들이 작업을 할 수 있는 공유공간이 부족해서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여러 계획들 중 하나에요.
앞으로 마을공동체가 더욱 활성화되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최: 현재 활동을 하면서 힘든 점은 활동할 수 있는 인력이 적다는 것인데, 마을 주민 분들이 그걸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많이 미안해하세요. 그러다보면 혼자서 이것저것을 해야할 때가 있는데 행정공무원들이 그걸 오해하더라고요.
바쁜 와중에도 마을을 위해서 이리저리 고민을 하면서 활동을 하는데 이것을 지원금 사냥하는 것처럼 보더라고요. 솔직히 그 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 후에 이장님과 노인회장님이 “그렇게 힘들게 하지 말고 차라리 우리 동네 돈을 털어서 쓰자”고 말씀해주셨는데 말씀만으로도 참 감사했어요.
공모사업은 마을활동을 하면서 꼭 필요할 때 쓰이는 마중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중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사업을 제대로 하기에는 부족한 예산이거든요. 하지만 공모사업에 관환 활동을 바라보는 행정과 주민의 관점이 너무나도 차이가 커요. 이 간격을 생각하면 답답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마을공동체가 더 활성화되려면 행정과 마을이 같은 시선에서 마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태도가 변화할 때 마을공동체도 더욱 힘을 얻을 것이라고 봅니다.
협치는 마을에 있어서 참 중요한 개념이지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 어찌됐든 우리들은 계속 연미마을에서 살아야 해요. 행복하게 살아야 하고요. 그리고 같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 찾아나갈 거에요. 여기서 7남매를 낳았는데, 7남매가 나중에 다시 돌아올 고향이 있어야 하니까요.
글 홍보담당 / 사진 연미마을 공동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