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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
(더 이음 공동대표)
주민자치의 가장 핵심적인 주체는 당연히 주민들이다. 그냥 특정 지역에 거주하기만 하는 주민이 아니라 참여하는 주민, 즉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시민이다. 그런데, 주민자치회는 행정의 정책에 의해 추진되는 주민자치 관련 정책이다. 그런 점에서 행정도 중요한 한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주민자치라는 것은 주민들이 자치의 주체가 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주민과 행정이 주민자치회의 중요한 두 주체라 하더라도 이 둘의 역할은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행정의 주요한 역할은 주민자치를 ‘지원’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의 지역사회 거점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참여와 역량이 강화되는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주민자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단지 참여하는 주민들의 역량이 강화되는 것으로는 미흡하다. 주민자치는 주민들에게 자치의 권한이 부여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들이 자치의 권한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참여 주민들의 역량 강화와 더불어, 권한을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이는 기존 행정이 가지고 있던 권한을 주민들이 실제 사용할 수 있도록 대폭 양도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주민자치의 두 주체 간 관계가 이러하니, 두 주체 간에는 일정한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주민들과 행정 사이에는 단순히 각각의 역할을 넘는 다양한 차이가 존재한다. 이는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봐도 잘 드러난다. 일정한 가치를 지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참여하는 주민들의 언어는 가치 지향적이고 그에 따라 추상적일 때가 많다. 반면, 행정의 언어는 실무 중심적 성격이 강하고, 그러다보니 매우 구체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성과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주민들은 가치를 중심으로 성과를 드러내고자 하는 반면, 행정은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구체적 성과를 요구한다. 이 두 주체 간의 차이는 누가 옳고 그르다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이 둘의 차이를 각자의 특성으로 여겨 잘 조화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이러한 차이는 갈등의 주요한 원인이 되곤 한다. 특히 정책적으로 함께 만나고 협력적 실천을 해야 하는 주민자치회 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양자 간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일 수도 있다. 지금의 역학관계로 볼 때, 이는 자칫 행정이 결정한 계획대로 주민들이 따라가는 형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둘 간을 일정하게 연결하고 조율하기 위한 중간 매개자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이 중간 매개자를 포함하면, 주민자치회와 관련한 세 이해 당사자 또는 세 주체라 표현할 수 있겠다. 주민자치회와 관련해서는, 지역에 따라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주로 자치지원관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 이들과(이하 글에서는 ‘자치지원관’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관련 업무를 지원하는 지원센터가 그들이다.
그런데, 최근 주민자치회를 지원하는 역할이 주로 이 자치지원관이나 지원센터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해당 정책의 주요한 의사결정은 아직도 행정이 독점하고 있다. 그러니 결정하는 이와 현장을 지원하는 이가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행정과 현장 주민과의 사이에서 지원역할을 하는 이들을 일컫는 중간지원의 의미가 행정과 주민 사이에서 역할을 하는 조직이나 사람으로 단순하게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엄밀히 중간지원조직의 위상이나 역할이 아니다.
이러한 단순한 역할과 위상을 가진 지원자나 지원조직이라면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중간지원조직’이라 할 수 없다. 그보다는 행정의 말단 집행기구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굳이 민간에서 특히 주민자치와 관련된 활동 경력이 있는 시민들에게 이러한 역할을 맡길 이유가 없다. 행정의 입장에서는 현장의 민원을 최전선에서 몸으로 막아내는 방패막이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는 단지 행정 편의적 입장에서 중간지원 역할을 하는 이들이나 센터를 바라보는 것일 뿐이다.
중간지원의 역할을 민간에서 관련 활동 경력이 있는 이들에게 맡기는 것은 행정이,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민자치 현장의 유연성을 따라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현장의 필요에 적절히 조응하고 이를 지원하기 힘들다. 이에 현장의 필요에 유연하게 잘 조응하고 지원하는 적극적 역할을 위해 중간지원조직과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중간지원의 역할을 하는 조직이나 사람들에게 자율적 권한이 보다 많아질 필요가 있다.
아무런 권한 없이 지원의 역할을 하라는 것은 행정의 결정을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래서는 중간지원조직이나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지원의 역할을 못할 것임은 자명하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오랫동안 축적된 행정의 경직성으로는 현장의 주민들을 적절히 지원할 수 없으니, 주민들과 오랫동안 호흡해 온 이들이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주민들을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다. 단지, 행정의 결정 사항을 그대로 집행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따라서 주민자치회를 지원하기 위한 자치지원관과 지원센터의 위치와 위상, 그리고 역할은 항상 행정과 갈등을 일으켜 왔다. 어차피 주민자치회를 안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자치지원관이나 지원센터가 필요하다는 것은 정책적 결정이다. 이는 이 양자 간에 일정한 갈등이 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이런 현상을 문제로 보기보다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로 삼는 것이 더욱 현명하다.
그런 점에서 인천시 주민자치회 관련 지원 정책과 관련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자치지원관과 지원센터가 현장의 상황에 맞게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기 역할에 대한 일정한 자율적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행정의 관점에서만 이들의 역할에 대한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이들이 행정의 방식과 관점으로 일하기를 바란다면, 굳이 민간에서 경험을 쌓은 이들을 주민자치회 지원 역할로 내세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권한에는 책임이 항상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치지원관에게 자기 역할에 대한 일정한 자율적 권한 부여와 함께 이들이 주민자치회를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잘 지원하는 역할을 하도록 역량 강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단지 개인적 역량을 발휘해 자신의 역할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그러한 역량을 훈련받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이는 별로 없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하기 위한 훈련의 기회와 그러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셋째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들을 총괄적으로 관리하고 훈련시킬 수 있는 지원기구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 별도의 지원기구를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마을과 주민자치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일란성 쌍둥이’와 같은 관계다. 따라서 인천마을공동체지원센터와 같은 지원센터들이 앞서 언급한 두 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명시적인 정책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인천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각 자치구에 설립돼 운영 중인 기존의 마을지원센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이 지원센터들이 각 동에 배치된 주민자치회 지원 활동가인 자치지원관들이 제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훈련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하자. 이는 자치지원관을 자치지원센터 기능을 하는 곳의 소속으로 귀속시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첫 번째 제안에서 언급했듯이, 이 지원 센터들에게 지금보다는 많은 자율적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행정의 결정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단순 집행 역할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곧바로 정책의 실패로, 그리고 결국 행정의 실패로 귀결될 뿐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현장도 행정도 많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굳이 개인들 사이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행정과 현장, 그리고 주민자치회 정책 취지를 현장에서 구현하기 위한 지원 활동가(자치지원관 등)와 지원센터들 사이에서도 그런 마음의 자세들이 필요하다. 어차피 그 성과와 과실은 모두가 함께 짊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니 서로 다른 입장으로 상대방을 규정하려 하기보다, 서로의 차이와 상대방의 필요를 인정하는 것부터 새롭게 관계를 규정하려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