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 : 24/0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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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탐방_”청춘부라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따뜻함이 함께 있는 “청춘부라보” “청춘부라보” “저는 황해도에서 피난 온 이인배입니다. 13살에 피난을 왔고 교동도는 제2의 고향이자 그리울 […]
Written by: doo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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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따뜻함이 함께 있는 “청춘부라보”

“청춘부라보”

“저는 황해도에서 피난 온 이인배입니다. 13살에 피난을 왔고 교동도는 제2의 고향이자 그리울 때마다 찾는 곳입니다. 대룡시장은 연백 사람들이 피난 나와 형성된 시장입니다. 강화 교동 분들이 사람이 좋아 피난시절에 기거하면서 정착했다가 서울로 이사했어요. 서울에서 공부하고 노년에 고향이 그리워 교동으로 이사 오게 되었습니다. 평화의 마을이고 친환경 지역이며 어느 섬보다 아름답고 깨끗한 동네입니다. 인심이 좋아요. 고향이 언제 통일이 될런지 모르지만 북녘에 있는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평화로운 대한민국이 언제 통일이 될런지. 통일을 기다리며 교동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합니다.” – 이인배 어르신

“연백군 적지에서 치안사업을 하다가 인민군에게 납치를 당했어요. 집에서 잠복하고 있다가 치안사업 하는 사람들끼리 나룻배를 타고 와 교동에서 군대생활을 했습니다. 군복무를 하다가 제대하고 여기 교동을 제 2의 고향 삼아 집 짓고 농사 여지껏 짓고선 이제는 나이가 많으니 남을 줬어요. 나 혼자 여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 김재철 어르신

“저는 1951년도에 교동으로 피난을 와서 군대생활을 하다가 마치고 사회에서 자식을 낳아 키워가며 안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니 항상 그리운 것은 고향이고 교동을 늘 다니다가 교동 대룡시장 안에 ”청춘부라보“라는 간판을 걸고 노인들의 휴식터가 생겼습니다. 활성화되려면 많은 과제가 남아 있지만 고향 사람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나뿐만 아니라 황해도에서 피난 온 사람들은 교동을 잊지 못해요. 내 고향에 온 것 같아 교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채재옥 어르신

강화도 교동지역은 대한민국 최북단 접경지역 섬으로 1.8km 앞 이북을 바라보고 있다. 실향민들과 고향이 그리워 떠나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4대에 걸쳐 살고 있는 가정들이 있다.

2016년 5월 28일 민통선 철책 어린이 그림 그리기 대회를 진행하면서 교동 대룡리 마을 어르신, 부녀회가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380여명 아이들의 발걸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지켜보던 어르신들이 6.25 참전용사 전적비 행사에 있어서도 80, 90대 어르신들만 있는 것보다는 젊은 세대와 어린이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끼게 되었다. 강화 또는 인천광역시 어느 쪽이어도 젊은 친구들의 발걸음을 통해 다양한 접경 이북 지역의 음식들과 할아버지들의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들이 모여 “청춘부라보”가 만들어졌다.

“청춘부라보”는 참여 어르신들이 80, 90세가 넘는 분들이다. 교동시장 안에 위치한 “청춘부라보”는 실향민 어르신들의 사랑방이자 교동시장을 알리는 안내소 역할을 한다.

“참여 어르신들이 80에서 90세 분들입니다.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이팔청춘이세요. 올해 1월에 시작했는데 교동 시장에 오는 손님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먹을거리를 직접 체험해보고 같이 먹어보면 일단 맛을 보면 알잖아요. 여기 교동 쌀이 좋구나 사자발쑥이 좋구나 하고 홍보도 되고요. 그리고 우리 어르신들이 우선이니 돌아가시기 전에 떡메 칠 수 있다는 힘자랑도 하실 수 있고.

지나가는 아이들도 떡메 치고 옛날 모습도 되새길 겸 3월에 떡 만들기를 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아버님 어머님들이 드시던 이북음식이 있는데 지금 세대는 잘 모르니까 후세들에게 남겨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안타깝더라고요. 이것 역시 살려보자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리고 집에서 어르신들이 절약하는 것이 몸에 배어서 돈이 아까워 보일러를 안 때세요. 추워도 보일러를 안 켜니 안 되겠다 싶었어요. 풍부하게 나무를 때야겠다 싶어 화목난로를 놓고 보니 어르신들이 나중에는 여기가 너무 좋아 하루 종일 있다 가세요. 그러다보니 간식들이 필요하시기도 하고. 피난 올 때 같은 동네인데도 60여년이 지나도 고향으로 못 가신 사랑방 어르신들이 얼마 사실지 모르지만 사랑방에 안주인은 아니고 머슴이 되어서 마음 따뜻하게 정담 나누시다가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게 “청춘부라보”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 ”청춘부라보“ 대표 손효숙

접경지대이다 보니 바닷가 생선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교동은 고려 때부터 세 개의 강이 흘러 주업이 새우를 잡아 새우젓을 만들었다. 황해도 연백이 곡창지대라 배운 그대로 평야가 넓어져서 농사만 40여 평이 되었다. 옛날에는 돛단배가 많이 다녀 새우젓을 전국으로 마포나루터부터 만석동까지 갔다. 그 맛이 다르니 이곳 어민들은 새우젓과 해파리를 못 먹을 정도로 가격이 킬로그램에 3만원에서 30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토질 역시 다르다. 교동은 쌀과 콩을 같이 둬서 밥을 해도 잘 무른다. 교동에서 나는 다른 곡식들을 같이 씻어서 밥을 지어도 맛있는 이유는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 맛이 더 뛰어나다. 쌀 역시 윤기가 흘러 교동 쌀을 한 번 드신 분들은 교동 쌀만 고집한단다. 단맛과 고소한 맛이 으뜸이라 고유한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다 안다.

어르신들은 잠시 나온 것이라 생각하고 교동에 머물렀다. 그래서 집수리도 안 하고 살았다. 천막을 치면서 살아서 막을 치고 산다해 “막촌”이라 불렀다. 가마니로 막아 살다보니 가마니를 열면 바로 옆집이 보였다. 피난민들이 교동에 와서 연백평야에서 배운 농사짓는 방법을 알려주고 살았지만 통일이 되면 고향땅으로 간다는 생각은 가슴 속에 버리지 않았다. 자식들을 공부시키며 타지로 보내면서도 그리운 고향 생각에 어르신들은 제2의 고향을 떠나지 못했다.

“어르신들이 가진 지혜가 자꾸 없어져 가는 게 안타까웠어요. 예전에는 ”엄마, 나 허리 아파.“라고 말하면 어머님이 산에 가서 참빗살나무를 구해 식혜를 하시더라고요. 젊으니까 하루 이틀 마시면 나아요. 이북에서는 바닷가에 사셨기도 하고 병원이 멀어 민간요법으로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황해도 만두, 강정, 강아지 떡 등 이북 향토 음식들이 정말 많아요. 옛날 여기 분들은 다 아시는데 지금 세대들은 몰라요. 다음 세대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게 우리가 책임을 가지고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르신들이 기억이 있을 때 젊은 사람들에게 전수해야지요.” – 손효숙

“청춘부라보”는 마을과 고장을 위해 교동면을 소개하고 솔선수범하여 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 손효숙 대표는 30여년을 넘게 살다보니 동네에 할머니들이 어떤 음식을 더 잘하시는지 안다. 그래서 할머니들에게 부탁해 모시고 옛 엄마들이 해 주던 이북음식 등을 만들어 대룡시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팔려고만 하지 않고 이북음식을 알리려고 시식을 할 수 있게끔 한다.

“청춘부라보”의 활동을 지원하는 “한두 뼘1.2갤러리” 손윤경 대표는 갤러리 일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전문 작가들의 한두 뼘 마음과,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가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체험을 통한 문화예술 활동을 기획하고 실천하고 있다. 작가는 청출어람을 기원하고 어르신들은 장한 내 손자손녀들이라 생각하고, 아이들은 예술 분야의 재능과 꿈을 키워가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마치 스펀지처럼 녹아 들 수 있는 바람을 담아서 어르신들이 도움을 요청하셔서 시작한 “청춘부라보!” 그러나 “청춘부라보”에서 활동하시는 어르신과 손효숙 대표의 모습을 보며 내어주기 보다는 배우는 것이 더 많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함께 하며 응원하고 격려하는 “한 두뼘 가족”에 대해 고마워하신다. 손윤경 대표는,

“열정이 있는 어르신들에게는 마을에 일거리가 있어야 해요. 다른 세대에게 물려줄 것을 배우고 나누는 일을 나누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여기 ”청춘부라보“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시만 건강하시잖아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여기 계신 분들은 스스럼없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이세요. 어르신들의 이런 모습을 뵈니 어르신들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서 어린 친구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게 많아요. 어린 친구들이 와서 그림 그리기도 하고 어르신들에게 이끌려 이북음식도 먹어보고 알콩달콩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는 등 사라져 가는 이북 음식에 대한 입맛과 문화를 꼭 남겨주고 싶어요.”라 한다.

열여섯 살에 6.25를 맞은 장영호 어르신, 배가 뒤집혀 함께 한 전우들을 잃고 그 전우들을 전부 묻어준 김청산 어르신, 열일곱에 아버지와 헤어져 교동에 자리를 잡은 민옥순 어르신, 피난 오면서 올케네 배가 가라앉은 것을 본 박옥순 어르신과 고향이나 6.25 때 피난 나온 것은 같다며 “청춘 부라보“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좋다는 최봉렬 어르신. 한 분마다의 살아온 이야기는 다르지만 마음속에 품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같다. 교동을 제2의 고향으로, 어르신들의 음식과 생활문화를 세대 공감을 통해 이어나가는 ”청춘부라보“는 먹먹한 그리움과 따뜻함이 함께 있는 마을공동체이다.

글  홍보담당 /사진 “청춘부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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