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미디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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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미디어가 필요하다
정은선(공동체라디오 서구FM 대표)
마을공동체 미디어란 지역 주민들이 소유하고 함께 운영하는 미디어를 말한다. 마을공동체의 관계를 형성 또는 재형성하며 마을공동체의 연대를 진작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지역적으로 넓게는 구 단위에서부터 좁게는 동 단위의 범위로 활동하며 신문, 라디오, 영상, 잡지를 만들어 마을의 이슈를 나눈다. 마을 미디어는 마을의 이슈를 찾아 소통하고 공론장을 만들며 대안 미디어로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담아낸다. 또 사람과 마을의 네트워크 매개가 되어 주고, 재해 방송으로 재난 시 전국 방송에서 담을 수 없는 마을만의 상황을 공유하여 대처할 수 있게 하며, 재개발과 상업화로 변해가는 마을의 이야기를 아카이빙한다.
“이번 주에는 해야 하는데… 15일은 어때요?”
2020년,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녹음실이 있는 노인복지관 서구FM 담당자와 라디오 방송녹음 일정을 잡으려고 애쓰는 70대 방송활동가 어르신의 말이다. 2주마다 꼬박꼬박 본인의 생각과 일상의 일을 펜으로 정리하고 음악도 선곡하여 본인의 방송을 진행한다. 외국에 있는 자녀와 멀리 있는 지인, 또래 어르신들도 방송을 듣고 응원과 격려를 보내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것이 이 활동가 어르신에게는 삶의 즐거움이며 가족과의 화목한 소통의 장이 되는 것이다.
“(깔깔깔) 너무 웃겨~ 이게 공동체 활동이지 뭐야”
얼마 전, 광고 후원업체를 위한 30초짜리 광고를 만들던 3명의 중년여성 방송활동가들이 배꼽을 잡고 웃는다.
“어떤 콘셉트로 광고문구를 만들까?”
“거기가 뭐하는 곳이지?”
의견을 나누고, 광고문구를 만들고, 역할을 나누어 녹음하면서 얼마나 재미가 있던지 각자의 머리에 담긴 골치 아픈 일들을 잠시 잊는다.
‘공동체라디오 서구FM’은 주민들이 지역 소식을 전달하며 소통하는 매개체로 마을미디어를 고민한 인천시 서구노인복지관과 시민단체가 2015년에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방송통신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주파수를 갖게 되는 곳이 공동체라디오이기에 마을라디오라고 해야겠지만, ‘공동체라디오 서구FM’은 고유명사로써 사용하고 있다)
‘마을공동체 향상과 미디어를 활용한 노인의 사회 참여 기회 제공’이라는 취지를 인정받아 2016년도에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사업에 선정이 되어 서구노인복지관에 방송실도 마련되었다. 2015년부터 3년간 주민을 대상으로 마을 방송 진행자 양성과정을 진행하고 방송프로그램을 팟캐스트로 송출하고 있다. 그러다 지속적이고 확장성있는 마을 라디오 활동을 위해 2022년 3월부터 서구 심곡동으로 녹음실 공간을 이전하여 방송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관 안에 있었기에 유리한 점도 있고 편한 점도 있었지만, 더 많은 주민과 더 다양한 활동을 하기 위해 독립해야 했다. 1년간 서구사회적경제마을지원센터와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의 지원사업에 참여하며 주민들과 만나고 역량을 만드는 작업을 하였고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는데, 일 년간 방송프로그램도 많이 늘어 현재는 6개의 라디오방송이 ‘팟빵’(팟캐스트)앱을 통해 주기적으로 송출되고 있으며, 약 400여개의 에피소드가 업로드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팟빵 앱을 통해 ‘서구fm’을 검색하여 방송을 듣는 주민의 수가 늘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네이버 카페로도 소식을 올리고 있는데 홍보가 문제일까? 프로그램이 문제일까? 음악을 온전히 올리지 못해서일까? 그렇다면 청취율은 과연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일까? 여러 가지 관점으로 고민을 해 보게 된다.
위의 제기된 의문점들은 모두 맞기도 하다.
네이버 카페나 카카오 채널로도 소식을 올려 보고, 페이스북에도 방송 링크를 올려 보지만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여의도 정치 이야기, 재미있거나 자극적인 소재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즐기는 음악과 노래를 틀면 좋지 않을까?
서구FM은 신청곡이나 노래를 선곡하여 틀 때도 1분 미만으로 틀고 있는데, 저작권 문제 때문에 그렇다. 비영리로 소수의 주민이 이용하는 마을 방송이기에 공익적인 의미를 두어 괜찮다고 여기어 사용하는 마을 라디오방송국이 있기도 하지만,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즉 시사 보도 목적으로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더라도 아직은 시민 활동가를 언론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하고, 비영리 목적의 이용이라 하더라도 어떤 형태의 수익이나 대가가 발생하면 안 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조심해야 한다.
음악 효과음도 저작권 영역에 있기에 마찬가지이다. 제한적으로 가능한 경우는, 음악은 라이브러리(www.youtube.com/audiolibrary/music), 효과음은 사운드바이블(soundbible.com). 두 사이트 모두 기본적으로 CC 라이선스를 따르는 소스를 제공하고 있기에 제작자가 적어둔 조건만 따른다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You’re free to use this song in any of your videos‘ 같은 설명이 붙어있다면 그 어떤 조건도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사용해도 된다.
비단 공동체라디오 서구FM뿐 아니라 마을공동체 미디어 활동에 있어서 저작권 문제 외에 어려운 점은 많다. 2019년에 시청자미디어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방송학회에서 수행한 마을공동체 미디어 조사 자료를 보면, 마을공동체 미디어 활동에 있어서 어려운 점으로 재정 마련(20.1%)과 참여 인력 확보(16.5%)가 높은 비중으로 나타났다. ‘재정’과 ‘인력’으로 크게 나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보고서에서 눈길이 가는 자료를 더 보자면, 마을공동체 미디어 활동에 있어서 주된 참여 연령층은 40대(32.0%)와 50대(24.6%)가 많았고, 10대(5.6%)와 20대(7.4%)는 적은 편이었다. 마을공동체 미디어 참여자들의 직업에 대한 응답에서는 직장인(21.1%)이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전업주부(20.7%), 프리랜서(20.7%) 순으로 높은 비중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학생(6.5%), 대학생(3.7%)의 참여는 적은 편이었다. 마을공동체 미디어가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10대, 20대의 참여가 많아질 필요성이 있다.
마을공동체 미디어 활동을 위해서 독립된 공간이 있는 경우(39.7%)와 활동 시에만 활용하는 공간이 있는 경우(39.7%)가 비슷하였다. 독립 공간의 유형은 단체 자체의 직접 운영(56.3%)이 가장 비중이 높았으며, 복지관이나 주민 센터 등 공공기관의 장소에 안정적인 독립 공간을 마련하여 활동(27%)하는 경우도 많았다. 활동 시에만 활용하는 경우는 미디어센터가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었다. 단체들이 마을공동체 미디어 활동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으로는 공모사업(35.7%)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후원/기부(19.5%)와 공공기관 예산(13.4%) 순이었다. 기타 응답으로는 활동가 각자가 부담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마을공동체 미디어 활동에 있어서 주요 목표는 지역/공동체의 소통(38.9%) 비중이 가장 높았으며, 지역/공동체 성장/변화(35.5%), 지역/공동체 참여(15.7%) 순이었다. 미디어의 기본 속성 중 하나인 ‘정보 전달(0.8%)’은 낮은 수치를 보여서 현재 마을공동체 미디어 활동의 취지가 ‘지역/공동체’에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전국의 마을공동체 미디어 수는 약 350여 곳이 있다. 그 중, 서울과 경기도가 54%(서울 27.59%, 경기 26.44%)이다. 강원, 경기, 광주, 대전, 서울, 울산, 전북, 제주가 인구 비율 대비 마을공동체 미디어 수가 많은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해당 지역 내에 미디어센터가 소재하고 있고, 마을공동체 미디어 관련 공모·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특히 전북의 경우는 전국 인구 비율 대비해서 상대적으로 많은 마을공동체 미디어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마을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지원사업과 지역 미디어센터의 역할이 마을공동체 미디어의 확산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보여준다.
즐기고 싶은 음악방송도 자유롭지 않고, 시민이 만드는 방송이라 내용이 전문적이지도 않으며 심지어는 발음이나 발성 등도 완벽하지 않다. 진행자가 방송 시나리오도 직접 써야 하고, 녹음과 편집도 공동체 구성원이 해야 한다.
이쯤에서 의구심이 생길텐데, 이런 수고로움과 고민거리들이 있고 유명한 공중파 방송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시민들은 직접 마을 미디어를 제작할까?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이후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마을공동체의 쇠퇴와 파괴를 경험했다. 경제성장과 개발 위주 정책 속에서 인구의 도시 집중과 농촌의 공동화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됐다. 이러한 산업화 시기의 부작용과 문제점을 되돌아보면서 지역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마을만들기 활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마을공동체 미디어는 마을의 사회자본을 강화하는 매개체로서 작동하며, 공동체 활동에서 필수불가결한 소통방식의 확장을 의미한다. 마을공동체 미디어는 주류 미디어에 의존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목소리는 자신들이 낸다는 지역 공동체 주민들의 주민 자치적 커뮤니케이션 실천이다. 서울의 경우에는 2012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마을 미디어 지원사업을 통한 공적 지원의 연계로 공동체 미디어들이 매체 확장에 큰 힘이 되었다.
2020년부터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고, 디지털 기기에 의존하는 사회의 변화 속에서 소통 단절로 인한 양극화와 디지털 격차는 점점 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시민들의 삶을 유지하고 지역과 공동체를 연결하며, 공론장을 형성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핵심적 역할로써 미디어 또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마을공동체 미디어는 마을 주민들이 수동적인 미디어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소통하며 공동체의 문제를 들여다 보고, 소외된 이웃의 표현과 권리를 보장하여 궁극적으로 지역 공동체 발전을 위한 공공적 활동을 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천에는 공동체 미디어가 매우 적다. 필자는 인천에 있는 마을공동체 라디오를 찾고 있다. 서로 연대하여 정보교류도 하고 서로 힘이 되고자 함이다. 마을 미디어 상호교류를 통해 마을 미디어의 친밀감과 연대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찾기가 어렵다.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거나 마을 미디어의 필요성이 아직 전파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오죽하면 경인ifm에서 ‘인천라디오 방송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 ‘서구FM’만 마을공동체 라디오를 대상으로 인터뷰했을까.
지역마다 참으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다. 비가 오면 질퍽질퍽한 곳이 있고, 대규모 공업단지로 조성된 마을이 있고, 사람보다 차들이 더 많이 다니는 신도시 마을도 있다. 사람들의 모습도 그렇다. 각기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지역 안에서 어떤 관계로 이어져 있는지, 나와 이웃은 서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 마을은 어떤 역사문화와 유래가 담긴 곳인지, 정치인들은 누가 있으며 의회에서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기 힘들다. 주민 관계의 단절을 이어주고, 일상에서의 유익한 정보뿐 아니라 재난 상황 시에도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에서는 절대 다루지 못하는 우리 마을만의 상황을 공유하며 지역의 현안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을 미디어의 역할과 당위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지역 내 도서관, 쉼터 등 기관의 휴무 여부를 매일 파악하여 마을 미디어 사이트에 기재해 놓음으로써 주민들이 정보를 하나하나 구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주었으며, 또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웠던 때에는 지역의 마스크 공급처를 안내하기도 했다. 이처럼 마을 미디어는 마을만의 소식에 집중함으로써 주민들이 일상에서 겪을 재난 상황의 혼란을 줄여 주었다. 주류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 오직 마을만의 소식을 전한다는 점에서 재난 상황 속 마을 미디어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더 강조된다. 또 다른 예로, 이주민 방송을 운영하는 곳에서는 이주민들과 함께 각자가 현재 겪고 있는 일들을 말하며 안부를 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웹캠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비대면으로 모임으로써 주민들은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유대감을 느낄 수 있고, ‘코로나 우울’을 극복할 에너지를 얻는다. 공동체 구성원 간의 소통 콘텐츠는 공동체의 유대감과 연대 의식을 유지, 발전시킨다는 의의가 있다.
필자 역시 주민들과 함께 이런 마을 방송을 만들고 싶어서 노인복지관에서 나와서 주민결사체로써 독립을 했지만, 사비로 공간마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행정에서는 관심을 가지긴 했으나 지원과 관련해 근거가 없으니 쉽지 않고, 운영관리도 후원 회원들에게 십시일반 모으는 회비와 공모사업으로 주민 대상 교육과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형편이다. 녹음 공간이 반지하의 빌라 주택이라 비가 많이 오면 창틀로 물이 들어오거나 윗집 수도관이 터져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장비가 물에 젖을까 노심초사하며 녹음실의 장비를 비닐로 덮는다. 우리 공동체 미디어가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당장 활동가의 활동비는 차치하고라도 공간과 사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마을공동체 미디어의 어려움과 필요성과 사례 등을 언급했다. 하지만 마을 미디어를 고민하다 보면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은 마을 미디어의 활성화방안이다. 마을 미디어 활동가들이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생산한다고 해도 이용자가 없으면 그 콘텐츠는 가치가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현재 대부분의 마을 미디어는 인터넷, SNS로 그 유통 방식이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지점에서 마을 미디어 활동가들이 한계를 느끼고 지속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지역 생활 문화 차원에서도 공동체 미디어는 꼭 필요하다. 문화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누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어야 한다. 지역 단위의 생활 현장에서 시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의 문화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은 정책적으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일상생활 전반, 삶의 전반 영역으로 확장되어 기성 언론이 들여다보지 못하는 지역 및 다양한 소외계층이 함께 하는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민과 공동체 의제를 확인할 수 있는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정책적 지원이 꼭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각 공동체 미디어를 지원하고 교육하고 엮어주고 도와주고, 행정 등 관계부처와의 협력과 연계도 지원하는 체계적인 마을 미디어 지원센터 같은 앵커 시설이 있어야 하며, 미디어 격차 해소와 지역 공동체 발전을 위해, 마을공동체 미디어의 법적,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시민의 미디어권을 보장하는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향후 지자체나 정부에서도 미디어 정책 추진 시, 시민참여 기반의 민관협력과 마을공동체 미디어 활성화방안을 포함하는 정책 마련도 필요하겠다. 지역 곳곳에서 피어나고 더 확산되어야 할 마을 미디어 정책이 진전은 커녕 후퇴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는 절실함으로 글을 맺는다.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 웹진 98호 동시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