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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정열 센터장(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
지난 9월, 인천에서는 마을공동체 정책 시행 10주년을 기념하여 인천을 비롯해 전국단위의 마을공동체들이 모여 한마당을 펼쳤다. ‘마을’이라는 생경한 개념을 알리고 더불어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다양하게 세우는 과정이 지난 10년의 역사 안에 응축 되었다. 이제 앞으로의 10년은 마을 안의 여러 활동들을 ‘마을생태계’ 안에 안착시키고 모두가 행복한 마을, 서로를 신뢰하며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마을을 일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더욱 명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의 한마당은 주로 마을 관련 활동가들과 공모사업을 통해 진입한 다양한 공동체가 함께 자리를 만들어 왔다면 이번 전국 규모의 마을 한마당은 마을의 생태계를 이루는 다양한 활동 조직들이 함께 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인천의 마을 생태계를 보는 듯했다. 환경 분야나 마을 미디어, 교육과 돌봄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공모사업을 하는 시민들이 모두 모여 말 그대로 한마당을 펼쳤다. 그동안 각 영역별 사업은 그 사업들을 주무하는 행정 단위로 나뉘거나 각각의 발전을 위하여 애써왔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의 커다란 마을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각자의 역할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더 나아가 협업할 수 있는 틀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영역들은 그동안 고유한 사업으로 인식되어 마을 안에서도 분절되어 왔다. 환경은 환경의 영역으로,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경제의 영역 만으로 인식하고 각자의 고유 영역 안에서만 발전을 추구하여 왔다. 심지어 마을이라는 영역도 하나의 개별화된 사업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타 영역 간의 협업을 추구하긴 하지만 결국에는 여러 형태의 칸막이를 넘어서지 못하고 서로가 고립되어 왔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 이런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왜냐하면 마을은 사업으로 존재하기 보다는 다양한 활동의 가장 토대가 되는 커다란 기본 생태계라는 사실을 더욱 확고하게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마을이라는 생태계 안에 사회, 문화, 예술, 경제 그리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사업을 주관하는 주무에 따라 작은 차이점들은 인정하지만 결국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사업의 최종 목표는 마을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더욱 이롭고 행복하게 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각자 사업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더 나아가 모두가 함께 협업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더 많은 실제적 혜택이 마을과 시민에게 흘러가도록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마을생태계(ecosystem)란 무엇인가? 근래에 들어와 플랫폼 기업이란 개념이 보편화 되고, 이는 플랫폼 생태계라는 용어로 전환되기도 한다. 생태계란 본래 일정한 지역에 포함되는 모든 동물이나 식물, 심지어 미생물과 무기 환경이 서로 어우러지며 상호작용을 통해서 유지되는 하나의 시스템을 의미한다. 이처럼 기업이나 비즈니스도 유사한 구조로 운영되어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그 토대가 되는 일반적인 환경까지 모두를 일컬어 생태계라고 말한다. 우리 눈에는 쉽게 발견되지 않지만 생태계 안에서 보이지 않는 유기적인 관계와 상호작용들이 우리가 머물고 있는 이 생태계를 유지하여 그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마을 역시 이런 생태계와 흡사하다. 그 영역은 좁아지거나 조금 더 넓어질 수 있지만 그 규모와 상관없이 마을은 생태계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 운영된다.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다양한 방식의 유기적 관계망 등이 존재한다. 마을생태계 안에서는 우리가 만나는 다양한 영역들이 존재한다. 유형의 건물이든 혹은 앞에서 지적하였던 정책에서 지향하는 일을 위해 만들어진 사업이든 마을 안에서 생태계를 형성하며 운영한다.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 초기에는 시행착오와 영역 간 불협화음이나 칸막이 등으로 고전했지만 이제 마을은 하나의 토대로 존재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사업과 정책 그리고 실질적인 마을 사람들의 삶이 조화를 찾아가며 운영된다. 어쩌면 지난 10년 동안 마을 토대의 다양한 정책들이 이제야 조금씩 마을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운영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을을 하나의 생태계로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유기적인 활동들은 대부분 우리가 생각하는 절망의 해시태그(hashtag)를 없애거나 그 영향력을 줄이려는 시도에서 만들어졌다. #기후 위기, #3포 세대, #초고령화, #지방인구소멸, #인구절벽, #고독사, #혐오, #핵 개인화, #1인 가구 같은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현실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개선해 내고 마을생태계를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공모사업이 설계되었고 다양한 시민참여 정책들이 등장했다. 물론 여기에 소용된 예산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예산이다. 하지만 실제로 지난 10여 년 동안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집행된 예산은 다른 예산에 비하면 그리 많지 않다.
자치구 단위에서 시행되는 작은 규모의 공동체 공모사업은 대부분이 100만 원에서 300만 원 사이로 집행된다. 시민들은 그 예산으로 1년 동안 마을을 거점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 나간다. 정산을 비롯한 불편한 과정을 기꺼이 감수하고서라도 기후 위기로부터 발생한 환경파괴 문제는 물론이고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 고독한 1인 가구를 위한 밥상 사업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이지만 누구도 그 대안을 쉽게 말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시민들이 지혜를 모아 실행해 나가는 것이 바로 공모사업의 참모습이다.
공모사업은 3인 이상의 공동체가 신청하면 일종의 적격성 심사를 거쳐 지원하게 된다. 인천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2,300여 개의 공동체가 활동했다. 수치상으로는 약 6,900명 정도가 참여한 것이다. 3명의 기초인원은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 중에서 작게는 7~8명, 많게는 10명 이상을 만나고 나누고 연결한다. 단순 계산으로 그 수치는 인천시민 2만 명 정도가 마을생태계 안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형태의 공모사업을 통해 연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예산보다 가장 적은 양으로 제일 큰 효과를 거둔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마을생태계 안에서 진행되는 일은 공모사업이 전부가 아니다. 공모사업은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의 시민참여 정책이라고 보면 된다. 이와 더불어 마을에서는 시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마을생태계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공동체성을 확보하는 일들을 만들어 간다. 마을을 위한 다양한 교육 과정들을 마련하여 시민들에게 필요한 강좌를 개설하기도 하고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활동했던 선배 시민(다년차 활동가)을 위한 집중 강좌를 마련하기도 한다. 마을의 공간과 사람, 공동체 활동의 휘발을 막기 위하여 체계적으로 기록, 보관하는 일을 위해 마을 아카이빙 과정을 만들어 기록과 자료의 소중함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런 분야는 군·구 단위나 광역시 단위에서 자칫 소홀할 수 있는 생활 반경에 관한 기록들이기에 그 가치를 인식하고 활동하는 활동가들을 성장시키지 못하면 대부분의 기록이 유실될 수 밖에 없다.
마을에 관한 정책, 어쩌면 시민들의 입장에서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을 미리 연구하고 실험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현재는 다소 낯선 개념이라도 미리 연구하지 않으면 실생활에서 필요가 도래한 뒤에는 다급한 방안이 마련되고 졸속으로 급조되는 일이 다반사이다. 시민들의 삶에 천착한 다양한 정책들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연구하거나 혹은 마을생태계 안에서의 생활을 위한 연구소, 즉 로컬 랩(Local Lab)이나 리빙 랩(Living Lab)을 운영하는 일은 바로 이와 관련이 깊다. 모든 마을이 같진 않지만 대체로 유사함을 상정하여 하나의 표본이 되는 마을에서 시민들의 실생활과 직결되는 일들을 진행하고 연구하는 일은 마을생태계 안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내가 속한 마을센터에서는 지난 2022년, 기초연구를 했고 올해에는 사회적 인정 체계로서의 타임뱅크(Time Bank)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타임뱅크는 말 그대로 시간을 저축하는 은행이다.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고 그것을 품의 단위로 계산하여 적립하게 되는데 이런 일을 나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 있는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실제 화폐가 통용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확장해 나가는 일종의 재능공유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나의 재능 기부 시간을 적립하고 내게 필요한 또 다른 재능을 기부 받음으로써 선순환을 이끌어 가는 개념인데, 이미 활발하게 운영되는 곳도 있고 이를 운영해 보려는 마을도 생겨나고 있다.
이런 연구 과정은 마을생태계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형식의 순환 경제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시민들의 노고에 대한 인정은 물론이고 공유경제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라고도 할 수 있다. 불과 10년도 안된 시간 속에서 처음에는 너무나 낯설어 했던 ‘기본소득’의 개념이 코로나 팬데믹(pandemic)을 거치며 국가나 지자체가 얼마든지 시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앞으로의 마을생태계에서는 자신의 재능이나 재물을 공유하고 순환하는 일들이 얼마든지 보편적인 일들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를 선제적으로 실험하고 그 방법론을 마련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우리는 또한 시민들이 건강하고 민주적인 의사소통과 더불어 스스로의 문제를 의제로 형성하고 대화의 틀을 만들어 공론으로 연결해 가는 과정을 위한 상설 공론장도 운영하고 있다. 본래 ‘공론화’라는 것이 쉬운 개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렵게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마을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불편감은 물론이고 향후 미래의 마을을 위한 필요한 제안들이 있다면 함께 모여 궁리하는 것이 당연하다. 중차대한 문제일수록 공론의 과정은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모은 의견들이 합의를 도출하여 끝내 마을을 위한 좋은 의제로 만들어진다면 그야말로 공론장을 통해 만들려는 ‘마을 공론의 문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마을생태계는 이처럼 현재와 미래를 함께 살아내고 있다. 비록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많은 문제에 직면하여 그것을 풀어보기 위한 방법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멀지 않은 미래를 예측하며 이전보다 더 나은 미래 세대를 만들어 보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행정이나 대의민주제에 기반한 의원들의 노력만으로는 마을생태계를 아우르는 피부에 와 닿는 해결방안이 선뜻 연결되지 않을 때, 시민들의 자발적인 활동과 노고가 그 틈새를 메울 수 있다. 그리고 그 일을 도우며 시민과 행정을 연결하고, 나아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시행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뒤에서 돕는 것이 바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이다.
모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인천의 마을은 불혹을 넘겼고 그를 지원하는 마을 지원 정책은 10년이나 되었다. 마을은 점점 더 탄탄해지고 있으며 생태계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저마다의 역할과 이루어야 할 가치가 있는 일들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와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력이 증가하고 모두가 살기 좋은 마을은 그냥 주어지거나 자연스럽게 도래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10년, 혹은 그 이상의 마을의 미래는 우리 모두의 노력에 달려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24년의 인천마을은 과연 얼마나 성숙해 나아갈 것인지를 기대하며 한 해 동안 마을에서 수고하신 모든 시민분께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 웹진 109호 동시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