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 : 26/09/2016
조회수 :

배다리에 함께 살기, 배다리 사랑방 <배다리주민협의체>

배다리에 함께 살기, 배다리 사랑방 <배다리주민협의체> 곽현숙(아벨서점), 김은영(배다리머리방) 님을 만나다   <배다리주민협의체>는 동구 금창동 일대에 저층관리사업을 통해서 생긴 주민협의체이다. 헌책방 […]
Written by: doogak
  • 네이버 블로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table of contents


배다리에 함께 살기, 배다리 사랑방


<배다리주민협의체> 곽현숙(아벨서점), 김은영(배다리머리방) 님을 만나다


  <배다리주민협의체>는 동구 금창동 일대에 저층관리사업을 통해서 생긴 주민협의체이다. 헌책방 거리와 문화공간으로 유명한 배다리는 바닷물이 통하여 배가 드나들고 선창이 있었던 곳으로, 다리가 아니라 배가 닿았던 나루터이다. 19세기 말까지 이곳에 큰 갯골이 통해 있어 만조 때가 되면 중앙시장 입구와 송현 초등학교 일대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배를 댈 수 있는 다리가 만들어지면서 ‘배다리’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배다리는 배들이 들어와 도매거래를 하고 생활필수품을 싣고 가는 등 물길이 교통수단 일때 자연스럽게 장이 들어서고 현 미림극장 쪽이 제재소여서 나무 자체를 물에 띄어서 들어오는 곳이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며 열악한 시대적 배경에서 각지에서 일거리를 찾으러 몰려들어 사람들이 부대끼면서 사는 배다리 장터가 되었다. 헌책방 거리가 활성화된 것은 60년대, 학교가 주변에 많이 있어서였다. 배가 드나들기에 상공업이 왕성하게 일어났고, 일제 강점기가 끝나면서 집에 있는 또는 버려진 일본책과 고서 등을 내다팔고 그 책을 아까워해서 책을 알 만한 사람들은 책장사를 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배다리 헌책방 거리의 이야기보다는 ‘사는 동네’로서의 이야기를 듣고자 곽현숙 님(아벨서점)과 김은영(배다리 머리방)님께 인터뷰를 청했다.



 


– 사는 동네로서의 배다리는 어떠신가요?


김은영 : 우리가 옛날에 살 때 보면 옆집 숟가락 젓가락 개수를 다 안다고 하는데 아직도 배다리는 어느 정도 사는 게 같이 어우러져요. 사람들이 친밀감이 있어요. 오래 사신 분들은 50년 이상 배다리에서 사셨어요. 그래서 젊어서부터 같이 늙어가고 죽어가는 것까지 보니까 너무 끈끈한, 형제보다도 정이 더 많이 있는 곳이에요.


곽현숙 : 여기가 집 하나에 두 집이 세를, 이렇게 시작했어요. 돈을 별로 못 갖고 출발하여 온 사람들이 셋방부터 시작해 일하면서 집을 짓고 살아서 동네에 골목집들이 다 달라요. 부자로 이사 온 사람들은 거상(巨商)들이고 대개는 자기네 생활을 좀 더 잘 살아보려는,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에요.

  격변 속에서 사셨던 분들이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보는 눈이 굉장히 빨라요. 인천에서도 각처에서 모인 사람들이 살아왔기 때문에 사람들 속에서 결론이 빨리빨리 나요. 손해 볼일들은 안 움직여요. 그렇지만 또한 그 속에는 강한 힘이 있어요. 옳은 것을 판단하는 힘이 강해요. 배다리 사람들은 평범한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보다 더 내다보는 눈이 빠르고 깊고, 이해력의 폭이 넓어요. 그러나 이해력으로 상대방을 포용하는 것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것에 대해 단절이 빠르지요. 입으로 인심 쓰는 걸 안하는, 여기는 그래요.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들이 많아요.


– 배다리는 각 언론매체에서 취재를 하고 그 영향으로 배다리를 방문하는 단체나 개인이 많은데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나요?


김은영 : 방문객이 많다고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별로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여기에 올 때 그다지 공부하고 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요. 깊이 있고 내용을 가지고 오는 방문객이 조금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여기가 어떤 곳인지 알고 와야 볼거리가 생기고, 여러 역사를 다 듣고 보면 깊이가 좋은데 사실은 그런 깊이로 오는 사람이 많지 않고 구경만 하고 모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옛날에 살았던 사람들은 향수에 보고 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어요.


곽현숙 : 언론매체에서 홍보는 해 줬으나, 배다리는 깊이를 알고 오는 사람들과 여기를 거쳤던 사람들이 오는 게 50퍼센트 정도라고 생각해요. 학창 시절, 가난했던 시절에 대해 또는 다들 어렵게 셋방 살다가 집을 샀다든지 이사를 갔던지 변화가 많은 곳이에요. 그런 추억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뭇 사람들 눈에는 초라해 보일 수도 있으나 110년 역사와 개성이 뚜렷합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허기를 다스리는데 막걸리 한 병 마시면 누군가가 옆에서 기싯거리면 나눠서 먹었어요. 말없이, 저 사람과 내가 사귀지 않아도 얼굴과 눈을 보면 정말 고프구나, 그래서 자기 먹던 것을 나눠 먹던 게 여기에요. 그렇게 엮어서 살던 시장 군락이었어요.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런 게 힘이에요.


  

  

▲ <배다리 사랑방>의 고치기 전, 공사 모습

– <배다리 사랑방>을 만드셔야겠다고 생각하신 까닭은 무엇인지요.


김은영 : 이웃끼리 서로 만나는 시간이 적고 이해를 잘 못해요. 조금만 더 알고 소통한다면 우리 동네가 단합이 잘 될 것 같고 마음이 잘 맞춰질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동네는 사랑방이 꼭 필요해요. 다른 곳에 비해 우리 동네가 환경적으로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어요. 주민들이 마음이 맞아서 하면 주거환경개선도 빠르게 진행될 수 있고 일이 훨씬 빨리 될 텐데 마을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하면 삶의 질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곽현숙 : 내가 허리가 아플 때 이렇게 하면 좋더라, 뭘 끓여먹었더니 좋더라, 라는 작은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생활 속에서 같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곳이 된다면, 텔레비전 앞에서 있는 시간보다는 잠깐 쉴 수 있는 공간. 그런 바람이에요. 아이들도 집에서 책을 보고 하는 것보다 여기 온다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동네 사람들이 자기 집이 아닌 공간에서 쉴 수 있는 곳, 앉아서 차를 마시는 공간 그게 얼마나 여유인지. <배다리 사랑방>이 그런 것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여서 집을 고치면서 색이나 이런 것에 굉장히 신경을 썼어요. 나라면 이런 공간에 앉아있고 싶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앞으로 3년을 내어드리겠지만 넓은 공간으로 오래 좋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 <배다리 사랑방> 공사 후 모습 및 동네 분들과의 열린 잔치

– <배다리 사랑방>을 만들면서 힘드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곽현숙 – 오래된 집을 고치니 끊임없이 무엇이 터져요. 두 달 반 작업하면서 생각 못했던 것들과 돌아서면 일감이 나와요. 그런데 어려움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좋은 약이지요. 배다리에 도로가 난다는 일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내가 이렇게 배다리에 대해 공부하고 가치를 절절하게 알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로 뭔가 문제가 있을 때는 답을 찾아가잖아요. 그 어려움을 이겨내면 길이 됩니다. 다음에 갈 수 있는 길을 조금 크게 열어주지요. 그렇게 살아온 게 배다리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배다리에 담겨 있는 내공의 힘을 발견하게 됩니다.






▲ <배다리 사랑방>에서 진행할 <금창동 주민분들의 장수 사진을 찍어드립니다>


– 앞으로 <배다리 사랑방>이 어떻게 쓰여 지시길 바라시나요?


김은영 : 어르신들 모임과 함께 동네 아이들이 와서 아이들끼리 모여서 불안한 거 없이 놀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넣으려고 생각해요. 할머니들 계시는 방이 있으면 아이들 노는 방도 있으니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되잖아요. ‘정’으로 살기 좋은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곽현숙 – 동네 사람들에 의해서 어떻게 엮어질까 또는 사용될까 오히려 기대가 되어요. 제가 사랑방을 꾸미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쓴 것은 자기 공간, 자기 집에서 떠나서 조금은 쾌적한 곳에서 우리 집도 이렇게 꾸몄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무언(無言)의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생활에 파묻히게 되면 별로 다듬지 않게 되어요. 너나들면서 서로 가꾸게 되는 그런 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배다리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산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김은영 : 우리가 어렸을 때 놀았던 골목처럼 그런 것들이 잘 되었다면 지금 사람들이 하는 ‘묻지마 살인’ 등을 저지르는 정서는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곽현숙 : 아이들은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시원하게, 기쁠 때는 막 웃기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사회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아요. 아파트에 들어가면 끝이에요. 사람들은 곡선으로 생겼어요. 사람들은 자신의 꼴과 닮은 것을 좋아해요.

  동네 아이들이 정말 잘 놀아요. 동네 아이들이 노는 골목이 유산이에요. 골목에서 주는 게 얼마나 큰 것인지 사람들이 잘 몰라요. 우리도 살고 나니 나이를 먹고 나니까 골목이 주는 것이 얼마나 정서에 큰 영향을 주었던지.



· 사진 : 양지나 (홍보담당) / 사진 : <배다리주민협의체>

답글 남기기

RELATED POSTS

Check other posts you may like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만들기 지원센터의 새로운 소식을 가장 빠르게 받아보세요.

뉴스레터 구독하기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뉴스레터 발송을 위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이용합니다. 수집된 정보는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서비스가 종료되거나 구독을 해지할 경우 즉시 파기됩니다.

crosschevron-downchevron-down-cir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