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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이쿱생협> 이영희 이사장, 권오남 활동국장 인터뷰
생활상에서 발생하는 이슈들은 다양하다. 살면서 느끼는 수많은 필요와 문제를 스스로, 함께 풀어가는 활동-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협동을 통해 현실로 바꿔나가는 활동-이 곧 마을만들기이다.
“생활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먹거리, 교육, 환경, 문화, 여성 등)를 대안산업을 통해 조합원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 인천아이쿱생활협동조합을 소개하는 문구다. 표현만 달랐을 뿐 필요를 해결하는 방식이 마을만들기와 닮아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지역의 생활협동조합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인천아이쿱생협>과 만나보자.
▲이영희 이사장(좌), 권오남 활동국장(우)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천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1. 생활협동조합이 실생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단체/활동이다 보니, 먹거리만이 아니라 교육·환경·문화와 같은 굵직한 사안도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생협이란 무엇이고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요?
초창기 선배활동가들은 조직운동을 위해 생협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정치색이 짙었고, 정치색이 정치색으로 드러나면 공감을 얻기 힘들죠. 아이쿱 초창기 생협들이 대부분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부평생협은 인천에서는 최초의 조직인데 창립 멤버 중에 노동운동을 하시던 분들이 많았던 영향이 있었어요. 주민조직의 방편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의 정체성은 아이쿱. 윤리적 소비에 방점이 있어요. 인천아이쿱 초기의 주된 관심은 여성, 환경. 먹거리였어요. 구성 주체 중에 여성들이 많았고, 먹거리·환경이 주제가 되었던 것이죠.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면서 변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게 생협인 것 같아요.
▲인천공정무역 시민축제에 참여한 조합원들
2. 생활상의 사소한 것부터 스스로 해결하려는 시도들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막상 중요한 줄은 알아도 대부분 실제로 그렇게 살지는(실천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생협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나요?
조직활동을 크게 1)사무국, 2)매장, 3)활동국, 4)어린이집 의 네 분류로 나눌 수 있어요. 생활상의 필요 때문에 활동하는 분들도 있지만 환경문제나 바람직한 사회 변화에 관심 있는 분들도 계시죠. 그런 분들이 활동은 해야 되는데 애들 봐줄 곳은 없고. 뜻 맞는 어린이집마저 없으니 아예 우리가 만들자! 해서 생겨난 게 지금 <예슬어린이집>의 전신이에요. 방과후교실도 있었고요. 보육사업을 빼면 먹을거리와 관련된 활동이 기본이에요. 반찬가게도 했었고, 환경문제가 먹을거리와 직결되다 보니 친환경 생활용품들도 같이 취급하는 등 폭이 넓어졌어요. 생협에는 그런 생활상의 필요를 직접 만들어왔던 역사들이 있어요. 생활상의 필요가 생기면 실패하더라도 만들어가는(시도했던) 것이 인천아이쿱의 역사였던 것 같아요.
생협 조직만 봤을 때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에요 조직활동과 물품활동인데요. 아이쿱의 모든 조직이 마땅히 가지고 가는 활동이에요. 조직형성 활동인 <마을모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기본 조직이 있으면 전달하고 싶은 것들을 소통하는 통로가 되잖아요. 기본 방침이 조합원의 10% 이상은 마을모임에 참여하게 한다는 것인데 쉽지는 않아요. 다만 아이쿱 중에서도 인천생협이 조직률이 높은 편이에요.
조합원들이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고, 또 물품을 가지고 조합원을 만나는 활동이 기본이고요. 그 외에는 지역생협의 특징을 살려서 활동해요. 공정무역, 식품안전, 물품활동, 인문 동아리 등의 활동을 하는데 몇 년 전부터 인천이 <공정무역도시 인천>을 선포한 이후 인천생협이 사업자로 선정돼서 공정무역사업에 주력했어요. 올해는 전체 연합조직에서 10만인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 큰 이슈고요. 집중하는 과제들은 그래요. 그밖에 아이쿱 강사단이 학교 수업이나 강의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식품안전,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 사회적 경제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어요.
3. 친환경이 좋은 것인 줄은 아니까 ‘안전한 먹거리’ 등에 관심은 가지만, 마트에서 워낙 대부분의 것들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보니 친환경 상품은 일부러 애를 더 써야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결국 일부러 의식적인 측면에서 움직여야 하는 것인데, 보통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조합원이 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어떤 사례가 있나요?
생협 초기에는 의지만 있는 분들이 활동을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 모든 불편을 감소하고, 다섯 명이 물건을 나눠 갖기 위해 공급차가 올 때를 기다려 가며 손수 움직이던 때가 있었죠.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불편해요. 이틀 전에 온라인으로 주문해야 집으로 받을 수 있고, 그게 아니면 부평구에 하나뿐인 매장을 찾아가야 하니까요.
홍보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는 분들은 집안에 환자가 있거나, 자녀가 아토피가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필요에 의해 찾아오시는 분들이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대부분 조합원이나 활동가들의 이웃 분들인 경우가 많아요. 협동조합은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져야 운동이 되는 거잖아요. 어떤 의식화 작업이 아니어도 옆집에서 “계란한번 먹어 볼래?” 하면서 나누다가 써보고 좋아서 조합원이 되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조합원의 성향도 계속 변해요. 지금 조합원들은 코스트코 멤버십이랑 별 차이 없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어요. 출자금을 내고 시작하다 보니 고객은 왕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도 있고요. 주인의식이 삐딱하게 나타나는 경우죠. 그래서 2011년부터는 가입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어요. 조합원 가입 절차에는 출자금과 월 조합비를 내는 과정이 있는데 여기에 1시간 교육을 받는 것이 필수가 되었어요. 그래서 조합원이 늘지 않고 있어요.(웃음) 하지만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알고 가입하는 건 중요할 것 같아서 계속 진행하고 있어요.
▲조합에서 진행한 나눔활동
4. 두 분은 어떻게 생협 조합원이 되셨나요?
권오남 : 몸이 튼튼한 편이 아니었어요. 시골에서 자랐던 사람이라 도시에 나와서는 야채를 안 사먹었어요. 못미더워서요. 우연히 동네 아줌마가 생협을 소개하며 사먹어 보라고 권하셨던 게 계기가 되었어요. 솔깃해서 따라 왔다가 가입과 동시에 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죠.(웃음) 한 달에 한번 물건 써보고 의견만 주면 된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죠.
부모님이 농사를 지금도 짓고 계신데, 자라면서 ‘저 힘든 농사를 대물림하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부모님도, 나도 농사를 안 지으면 누가 생산하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소비자로서 생협 물건을 사용하면 나는 못하지만, 누군가는 해 줘야 하는 일에 대한 지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소비가 누군가에게는 농사를 짓게 하는 힘이 될 수 있겠구나’싶었던 거죠. 지금 잘 하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지금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 자신을 위해 그런 것 같아요. 나름대로의 기준인 것 같아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울고불고 하는 자식을 두고 주말에 이런 활동을 하면 다른 식구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하는 고민도 있었죠. 하지만 체력이 약한 내가 다른데서 경제활동을 할 수는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집에서 마냥 놀면서 동네 아줌마들과 계속 똑같은 얘기 하면서 시간 보내는 게 생산적인 것도 아닌 것 같고. 내가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만드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이영희 : 생협 활동을 하면서 가장 매력을 느낄 때는 변화가 눈에 보인다는 거예요. 사람의 변화, 조직의 변화. 가장 크게는 내가 변하는 것인데요. 활동가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늘 똑같은 갈등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먹거리를 지키기 위한 집회를 나갈 것인지, 집에서 우리 아이 밥을 해 줄 것인지’와 같은.(웃음) 왜냐하면 나는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해 집회를 나와 있는데 정작 우리 아이는 자장면을 시켜주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갈등이 생길 때 결론을 내린 게 “내가 지금 비록 너에게 자장면을 먹이지만,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세상은 나 같은 사람이 있어서 더 나아지지 않겠니?” 하고 말하게 되는 확신의 순간이 있었어요. 그럴 때 활동가로 남게 되는 것 같아요.
5. 지역 생협 간의 관계망은 어떤가요? 네트워크를 가져가고 있나요?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조직이 인천에 푸른두레생협이 있지요. 두레생협은 상황이 좋은 생협끼리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장사를 못해서 망해가는 곳끼리 연대한 것이 아이쿱의 전신이었죠.(웃음) 아이쿱은 양천, 부평, 부천, 대전한밭 등 6개의 조합이 합쳐지면서 만들어졌는데, 모아놓고 보니 부채가 엄청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장기적으로 구상하게 되었고,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지금까지 오게 되었죠.
아이쿱이 되기 이전에 이미 사업의 효율을 위해 연대체를 만들었는데, 얼마 안가서 물류센터에 불이 났어요. 그 계기로 결속력이 상당히 강해졌죠. 손실을 메꾸느라 조합원에게 차입금을 받기 시작했는데, 망해가는 조합에서 남아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봐야 얼마 남지 않았었고, 핵심 활동가인 남은 조합원들은 조건 없이 돈을 빌려주고, 물류센터 화재를 복구하게 되었죠. 당시에는 살아남아야 하니까, 채권 증서 하나 없이 살아남기만 하라는 마음에, 바라는 것 없이 돈을 날려도 할 수 없다는 심정으로 내줬던 거라고 들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생긴 아이쿱에만 있는 독특한 시스템이 많아요. 사업을 할 때 조합원에게 돈을 빌려서 사용하고, 은행 부채는 최소화해요. 이자를 은행에 주느니 조합원에게 돌려주는 거죠. 워낙 운동성이 강한 조직이어서 또 가능했을 것 같아요.
▲생산자와의 만남
6.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자이면서 소비자로 살아갑니다. ‘어떤 노동자가 될 것인가?’라는 자각은 있어도 ‘어떤 소비자가 될 것인지’에는 생각이 잘 이르지 않는 것 같은데요. 생협에서 말하는 윤리적 소비란 무엇인가요?
제일 어려운 부분이에요. 교과서적인 설명을 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윤리적인 소비를 정의하는 3가지 중요한 축은 1. 농업과 환경을 보호하고 2. 식품안전을 지키면서 3. 사람과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이 지속가능하게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7. 나만 잘 먹고 잘 살 궁리만 하면 사실 신경 안 써도 될 일들인데, 사실 또 내 궁리만 해서는 결코 나도 잘 살 수 없겠죠. 그런 마음들이 넓어졌으면 좋겠네요.
물품을 유통하게 되면 일련의 과정이 필요할 텐데 생산자를 어떻게 만나고, 매장 운영까지 이어지게 되는 건가요? 방식이 궁금합니다. 국내 유통물류 구조 안에서 한계를 느끼진 않나요?
아이쿱의 정책 방식은 ‘사업은 집중하고, 조직은 분화한다’에요. 물류는 연합조직에서 알아서 관리해요. 지역 조합은 그런 물품을 받아서 취급을 할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죠. 선정과정은 조합원들이 월1회씩 신규물품이 들어올 때 테스트를 해보고 결정해요.
생산자의 경우 생산자회가 따로 있어요. 파트너 생산지(주거래처)가 아닌 곳들 중에 물류 공급이 부족할 때 급하게 생산지를 수급해서 들여오는데, 수급생산지라고 불러요. 그런데 실제로 가보면 친환경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계속 지켜보는 과정이 필요하죠. 생산자도 정회원이 되면 출자를 해서 조합원이 되요. 그러면 생산자도 기금 혜택을 보게 되죠. 생산자를 보호하는 데에 수매선수금 제도 등이 활용되거든요.
사업연합회에서는 물류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전국물류센터를 운영해요. 생협 중에서 전국물류를 사용하는 데가 저희뿐이라 생협계에서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해요. 생협계의 SSM이라는 비판을 받는데 전국물류를 쓴다는 점에서 로컬푸드가 아니라는 지적이죠. 아이쿱이 생각하는 로컬푸드는 반경 200km에요. 전국물류를 통해 물류 효율화를 시켜서 가격을 낮추는 방식이죠. 조직이 전체적으로 원하는 것은 고객이 매장에 오면 원스톱 쇼핑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장기적 방침이에요.
8. 생협은 비영리 단체인데 사업 운용에 필요한 비용들은 어떻게 충당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쿱은 국내 생협 중에 유일하게 조합비제도가 있어요. 보통 민간단체들은 정부지원금을 재원으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생협은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마땅히 지원을 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민단체같은 경우 후원금이나 지원사업을 많이 활용하죠? 생협은 조합원들에게 조합비를 받아요. 매월 13,000을 받아서 일부는 연합조직을 운영하고, 일부는 지역조직을 운영하는데 써요. 원래는 운영비가 가장 기본이에요. 운영비를 가지고 조합활동을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조합이 활동이 길어지다 보니 사람들의 눈이 높아져서 활동비만으로는 활동하기 어려워요. 조합원과 운영진 눈높이가 다 높아진 거죠. 협동조합은 사업과 운동을 같이 하는 곳이에요. 사업에서 돈을 벌면 내부에 유보해야 되는 일정수준의 잉여금을 제외하고는 전부 활동에 쓰는데, 활동의 내용 안에 지역사회에 관여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그런데 매장이 흑자를 낸 적이 별로 없어요. 결국 조합비를 가지고 적자를 메꾸는데 인천이 유난히 장사가 많이 안 되는 편이에요.(웃음) 소비수준의 영향도 있고, 다른 친환경매장이 많기도 하고(두레생협, 한살림, 초록마을, 마트 내 친환경매장) 수도권이 매장 비중이 유난히 높기 때문이기도 해요.
9. 함께하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지 궁금합니다. 몇 명 정도의 조합원이 함께 하시나요?
인천생협 조합원은 2500명인데, 역사에 비해 되게 적은 숫자에요. 광주만 해도 전체 인구대비 1%가 넘는데, 인천이라는 지역이 조직이 잘 안 되고 소비도 잘 안되는 편이에요. 힘들어요.(웃음) 앞서 말했지만 아이쿱의 방식은 조직은 최대한 분화해서 조합원과 가깝게, 지역밀착형으로 가는 것이 목표라 조직을 분화해야 하는데, 보통 5천명이 넘으면 조직을 분화해요. 예전이야 조합원이 많지 않은 상태여도 워낙 거리가 머니까 분화를 했던 건데, 지금은 5천명은 되어야 서구와 부평을 다시 나누고, 그쪽에 이런 사무실이 생겨서 지역밀착형으로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서 많이 안타깝죠.
10. 조합원이 2500명이나 되니까 사무실 또는 매장 근처의 이웃과의 관계도 많을 것 같아요.
많았으면 좋겠어요.(웃음) 센터(조합 사무실)가 만들어질 때는 매장사업을 안할 때였어요. 왜 구지 갈산동이었는지 선배 조합원에게 물어보니 시작할 때 대우차 노동운동 하시던 분들이 주요 멤버중 여럿 계셨기에 이 근처를 벗어날 수 없어서 터를 잡게 되었다고 들었어요.활동하는 동선에 의해서 청천동 근방으로 이어진 것이고요. 처음 삼산 신도시 들어오며 매장을 열었다가 실패하고, 두 번째 들어갈 때는 아파트가 많아서 몫이 괜찮겠다는 입지만 보고 들어갔어요.
보통은 매장과 교육장이 같은 건물에 들어가는데, 사무실 자리에 어린이집이 있어서 어떻게 하지를 못해요. 매장사업을 하면서 사무실이 있는 4층짜리 건물 전체가 쓸 데가 없는 거죠. 조합원 교육이나 강좌를 할 때도 여기보다 매장 쪽에서 하다보니까 가까운 곳에 교육장을 새로 얻었어요. 거기는 활용도가 높아요. 매장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마을모임도 잘 되고요. 그래서 동아리 소모임도 그쪽 중심으로 만들어지곤 해요. 생각으로는 올 하반기부터는 동네 중심의 생활정치운동을 소소하게 시작하려 하는데, 주요 그룹이 매장 쪽 모임에서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마을모임이 정말 소중해요. 마을모임이 활동가를 키워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런데요. 한두 번 모임에 나오다가 마을지기가 되는 순간 활동가로 진입을 하게 되는 거예요.
조직사업에 관심을 갖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과 상관관계가 생겨요. 그전의 마을모임은 주로 생협의 이슈를 전달해가는 과정이었고, 지금 인문·문화 활동은 인문학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목적은 생활정치에요. 이 조직들이 장기적으로 생활정치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그룹이 될 수 있게끔 계속 만들려 해요. 다만 조합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하면 좋을까를 늘 고민하고 있어요. 센터의 교육강좌는 우리 정도 활동가 수준에 맞는 것 같아요. 조합원들에게 권했다가는 아마 조합을 탈퇴하겠다고 할 거에요.(웃음) 그래서 자녀교육과 같은 주제와 5:5로 섞어서 진행해요.
▲마을모임에서 만난 이웃들
11. 마을모임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나요?
신제품을 사용해 보거나, 조합에서 조합비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는 일부터 사회적 의제 등을 섞어가면서 이야기해요. 마을지기에게 이슈를 전해주면 지기의 눈높이에서 소화한 내용을 전달하니까 내용이 훨씬 가벼워지죠. 조합원과 어떤 식으로 얼마나 가볍게 만나고자 하는지는 늘 고민 중이에요.
요즘은 ‘예외없는 식품안전표시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요. 소박한 집밥, 소소한 브런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식품안전표시제, 우리 농업, 우리 쌀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거죠. 한번에 성큼 발을 내딛으면 부담스러워해요. 그 중심을 잡는 일이 가장 고민이고 제일 어려운 일이에요.
생활정치 같은 부분을 사진을 주제로 해서 동네에서 좀 바꿔봤으면 하는 곳들을 찾는 건데요. 다른 동네를 보고 와서 우리 동네에는 이런 것을 좀 바꾸자 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민원을 제기하는 방법을 전달하고 그런 거에요. 조합원이 볼 때 마을모임에 가면 거부감에 없겠다는 수준에서 결정해요.
▲부평구 갈산동에 있는 생협 어린이집
12. 어린이집 소개를 부탁드려요.
어린이집은 10년도 넘었고, 생협 초기부터 있었어요. 공동육아 개념으로 운영하다가 생협과 통합이 된 것인데요. 그 사이에 진통도 많았어요. 공동육아냐, 협동조합의 어린이집이냐, 아님 일반 어린이집이냐 하는 논란들도 있었고 지금도 여전해요. 지금은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법인으로서 운영 법인이 협동조합인 어린이집이에요. 가능하면 어린이집의 자율권을 침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 이 센터를 유지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이유가 어린이집이에요. 어린이집은 1층만 쓰는데도 이 건물을 통으로 쓰고 있으니, 협동조합이 아니었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선배들이 굉장히 힘들게 만들어놨던 일이기도 하고, 아이쿱 전국 80개중에 어린이집을 하는 곳이 저희 뿐이기도 하고, 쉽지 않은 사업이어서 자부심이기도 해요. 아이들, 교사들, 조합원들 모두에게 자부심이 되는 어린이집으로 어떻게 잘 운영할 수 있을까가 중요한 고민이죠.
아이를 보내려면 조합원이 되어야 해요. 일반 조합원은 출자금이 5만원인데 어린이집은 300만원을 출자해야 해요. 똑같이 조합원교육을 받아야 하고, 운영도 조합원이 공동으로 운영하죠. 운영은 분리되어 있다. 일반 교사를 채용해도 그분이 조합원이 되어서 참여하고, 마찬가지로 교육을 다 받아야 해요. 매장 직원도 마찬가지고요.
13. 부평 매장은 어디에 있나요?
지금은 산곡동에 하나 있어요. 삼산동에 맨 처음 1호점이 열렸는데, 아이쿱에서도 초창기 매장이에요. 적자를 내서 문을 닫게 되었죠. 그리고 아이쿱 역사에 길이 남는 사례가 되었어요. 이유가 궁금하시죠? 협동조합 매장은 조합원이 이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망했을 때도 이용하지 않은 조합원에게 책임이 있어요. 그래서 조합비를 올려서 그 빚을 작년 11월에야 다 갚았어요. 그래서 사례로 남게 되었죠.
▲조합원 활동사진
14. 협동조합의 가치에 동의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체로도 참 좋을 것 같다는 감상이 듭니다. 얘기하면서 줄곧 자생력을 길러 내는 부분이 와 닿았는데요. 풀뿌리 방식에 대한 고민도 있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대중과 함께하는 방식으로 변화했어요. 그래서 2-3년 전부터 인문문화활동에 힘을 싣고 있어요. 교조적인게 아니라 가볍고 편안하게 이야기하듯이, 춤추면서 하자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에요. 표현이 좀 거창하긴 하지만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가는 과정에 필요하다고 보는 건데요. 마을모임을 조직하는 것도 그런 일환이에요.
마을모임 나오는 조합원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게 마을모임 안건지를 보면 GMO가 어떻고, TPP가 어떻고 하는 주부들이 잘 모르는, 관심 없는 분야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한 번은 세월호를 가지고 몇 달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제 좀 그만하자고 하는 분이 생겨요. 1년 후에도 그런 얘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마을모임을 조직하면서 그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들이 느껴지는 게 참 좋아요.
▲전국쿱쇼 행사에 참여한 인천생협 조합원들
15. 생협 일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 벅찬 순간이 있었다면요?
20주년을 준비하면서 20명으로 합창단을 만들어볼까? 하고 제안했었어요. 그런데 처음 시도하는 거라 그런지 사람이 모이질 않더라고요. 상임이사 남편, 매장 정육 직원 등등 어거지로 불러서 20주년 공연을 하게 됐어요. 마침 전국단위 인문문화운동 차원에서 ‘쿱쇼’라는걸 했는데요. 전국단위 결선에 나가서 상을 받아왔어요. 지금은 그때 멤버들이 활동가로 남았고요. 함께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조합활동에 참여하게 되는,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사람들의 변화가 눈에 들어올 때 감동적이었어요. 노래가 좋아 노래를 부르러 왔을 뿐인데 생협의 활동가가 되어 있다는 것은 생협 입장에서는 고무적이죠. 생협이 원하는 활동의 방식도 그런 거예요. 그 다음에는 춤추는 댄스동아리를 만들었는데 권역단위 쿱쇼에서 공연을 하고, 춤만 추러 왔을 뿐인데 함께 복장을 맞춰 입고, 안무를 맞추고, 영상을 찍으며 하나씩 바뀌어 가는 과정이 좋아요.
이번 4월에 구례로 활동가 워크숍을 다녀왔어요. <자연드림파크>를 아시나요? 요즘 사회적경제 쪽에서 핫한 곳인데.(웃음) 아이쿱에서 농공단지 하나를 통으로 매입했어요. 거기에 아이쿱에 공급하는 공방, 라면, 유정란, 막걸리, 맥주 등을 4만5천평 부지에 마련해 놓았어요. 괴산에 210만평을 준비중에 있고요. 지금 사회적으로 뜨거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오로지 조합원 돈을 모아서 사회적경제 사례로서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이에요. 이제 막 마을지기가 된 분들과 함께 다녀왔는데, 초급 활동가 입장에서는 전국 80개 조합의 깃발이 행진하는 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사람이 만들어가는 과정이 드러나는 거죠. 구례에 자연드림파크가 만들어지고 나서 아이쿱의 실체를 사회적으로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 인상적이네요. 제가 활동하는 기간 동안 가장 눈에 보이는 성과였기 때문이에요. 그게 사람들이 모여서 구례를 만들었는데, 구례가 다시 사람을 변화시켜 내는 과정이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16. 생협 적자의 역사가 긴데요.(웃음) 활동에 장애물이 되는 것들, 부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당장 직면한 큰 문제는 건물의 대출 문제에요. 대출이자를 낮추고자 하는데 법인이 협동조합법인이라서 대출을 해주지 않아요. 담보를 넣고 대출하는데도 협동조합이니까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한 사회적 인식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고, 어려운거야 늘 어려운거니까. 특별히 뭐가 어려울까?(웃음)
활동가들을 놓고 보면, 조직에서 가장 선배인 제 입장에서 후배활동가들이 이 조직에서 오래 있었으나 전문가가 되지 못했을 때가 걱정돼요. 10년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는데, 활동을 접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도 있거든요. 시민단체 활동가의 퇴임식에 갔는데, 이후 영업직으로 직장을 구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런 사례를 접하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전문직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활동하는게 힘들 수도 있겠다는 안타까움이 들죠. 그러지 않기 위해서 조직 차원에서 연구중이긴 한데, 지금 저 친구가 나중에 선배가 되었을 때에도 여기에 아무 비전이 없으면 어떡하지?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성취로 충분하면 괜찮은데, 돈을 벌어야 하는 사람이라면 10년 후에 “이제는 진짜 돈 벌어야겠다.” 하고 나섰을 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경력으로 나올까봐 걱정이 되죠.
그 외에는 항상 돈 문제에요. 장사가 안 돼서.(웃음) 지금은 아이쿱이 생협 쪽에서 매출 1위인데, 언제부턴가 아이쿱에 신경도 안 쓰던 사람들이 “아이쿱쯤 되면 이런 거 해야하지 않아?” 하며 제안을 할 때 어디까지가 우리의 사회적 책임일까? 라는 고민과 갈등의 지점들이 생겨요. 작년인가? 조합원이 전체 가구 수의 1%에 도달했다고 하는데요.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회적 책임을 떠안게 도착했다는 되었다는 의미도 되니까. 어깨가 무겁죠.
▲우리농업지키기 소비자 10만인 대회에 참여한 조합원들
17. 요즘 관심은 무엇인가요? 고민도 궁금해요.
이영희 : 고민과 관심이 일치해요. 지금 10만인 캠페인을 진행 중인데, 예외 없는 식품안전표시제와 10만인 캠페인을 보는 시각이 조직 내에서도,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 간에도 달라요. 개인적으로는 조직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조직의 힘을 확인하고 사회적 역할을 보여주는 결집의 시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이게 그 계기라고 생각해요. 주제가 뭐든 간에 지금쯤은 아이쿱이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에 10만인 캠페인이 잘 돼서 사람들의 인식이 그게 식품안전표시제든 생활전반에 관한 것이든 많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거죠.
권오남 : 정말 하고 싶은 일은 크게 세상을 바꾸는 일이죠.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으니까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건데, 그게 조합원 정서에 맞게, 사람들 코드에 맞게 시작하고 있는지가 늘 고민인거죠.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요. 딸기밭에 딸기를 따러 가는 게 단순히 딸기만 따러 가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일중 하나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대로, 우리 의지대로 가고 있는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활동가든, 연대하는 활동이든 많아졌으면 좋겠는데 조합원이 많아지지 않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뜻이고, 그게 뭘까 고민에 빠지죠. 경기가 나빠지면 매장 매출이 떨어지는 게 눈에 보여요. 그럼 매장을 늘리고 조합원을 늘려야 하는데 그게 지금 시기에 맞는 일일까? 등 협동조합이라서 하는 고민들이 있어요. 조합원이 원하면 흑자를 못내도 조합원 확대를 위해서 해야 하죠. 조합원이 하고 싶은 걸 하려고 조합을 하는 거니까요. 근데 적자를 내면 어떻게 하지? 하는 갈등이 있고. 그게 저희에겐 가장 큰 이슈들이에요. 운동과 사업을 동시에 해야 하는데 둘 중 무엇도 안 되면 우리 탓이 되니까. 그게 가장 고민이죠.
글 : 이광민(사업지원팀)
사진 : 아이쿱생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