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 : 24/12/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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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정책 참여와 민간위탁 제도의 한계

김정열 |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장   지난 2024년 8월부터 시작된 인천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에 대한 민간위탁 폐지와 관련한 일련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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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열 |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장

 

지난 2024년 8월부터 시작된 인천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에 대한 민간위탁 폐지와 관련한 일련의 시민 저항운동은 일단락되었다. 민간위탁 센터의 효율성을 빌미로 행정에서 시작된 민간위탁 센터의 폐지 시도는 한때 유정복 인천시장이 민간위탁 센터의 폐지를 전격적으로 철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천시 의회의 행정 안전 위원회를 거치며 1차 부결되고, 본 회의에 재상정 하였지만 결국 그 문턱을 넘지 못하였다. 이 과정을 거치며 몇 가지 고민해야 할 부분이 여실히 드러났다.

시민의 의견이 무시되는 대의제도

제일 문제라고 인식한 것은 민간위탁 센터의 폐지를 결정하는 단위가 전적으로 행정과 의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이런 방식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행정 안에서 이런 일을 결정하고, 의회가 그걸 추인하는 과정을 갖는 것은 그동안의 관례로 보면 매우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민간위탁 제도는 단순히 행정의 필요를 충족하는 수단이 아니며, 나아가 행정과 의회는 시민이 대행토록 한 일들을 처리하는 기관이다. 독자적으로 결정하고 그 결정사항을 시민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대의민주주의 체제 안에서는 그릇된 방식이다. 물론 대의 제도는 선출직 공무원이든 의회의 구성원을 뽑든 시민이 권한을 위임하기에 그 재량 안에서 시민을 이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민간위탁 제도를 비롯한 시민의 참여가 보장된 영역 안에서는 시민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근원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있거나 의견을 취합할 수 있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원칙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시민이 직접 모든 것을 할 수 없기에 대의민주주의의 제도를 선택하고 사법과 행정과 의회로 구분하여 국가를 운영토록 한 것이다. 대의는 대행을 의미한다. 의회뿐 아니라 행정의 영역 역시 시민의 권한을 위임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런 위임의 관습이 오래다 보니 어느덧 시민의 설자리는 없고 모든 것을 대의 기관에서 결정하고 시민은 통보의 대상이 되었다. 

민간위탁 제도의 본질

특히 민간위탁제도는 그 목적에 부합하도록 운영되어야 한다. 본래 민간위탁제도를 도입한 취지와 목적은 “「지방자치법」 제117조제3항에 따라 인천광역시장의 권한에 속하는 사무 중 일부를 법인·단체 또는 그 기관이나 개인에게 위탁함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민간의 행정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사무의 간소화로 인한 행정능률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인천광역시 사무의 민간위탁에 관한 조례, 개정 2021.12.30.>. 다소 소극적이긴 하지만 민간위탁 제도가 갖는 본연의 의미 가운데 하나의 큰 축은 “민간의 행정 참여 기회를 확대” 하는데 있다.

여기에서 “민간의 행정 참여”의 의미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민간위탁 센터의 설립이나 폐지와 관련한 전체 과정에서도 민간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인천의 마을 지원센터를 설치하려던 초창기에는 마을공동체 관련한 조례(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 조례)를 만드는 일부터 민간과 유관 시민단체가 함께 토론하며 제정하였다. 시민과 행정과 조례를 만드는 의회가 만나서 토론과 합의 과정을 거쳐 조례를 만들었고, 센터를 민간위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민간위탁을 폐지하거나 심지어 조례를 폐지할 때는 토론은커녕 모든 과정을 행정이나 의회가 독점적으로 그 권한을 행사하려 하고, 그걸 매우 당연하게 여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본래 행정이나 의회의 근간은 대의, 대행에 있다. 국민이 세금을 내고, 대의 기관으로서 의회를 만들어 의원을 선출하며 행정 역시 공무원을 선출하여 행정을 대행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행정과 의회는 시민들을 대신하는 역할을 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시민의 의견을 묻고 청취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권한의 독점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되면서 의회의 기능을 수행하는 의원들의 경우 시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하지만 행정의 경우는 자치단체장 혼자 선출직이라는 생각에 공무원 제도의 벽을 넘지 못한다. 자치단체장들은 누리집의 민원으로나 만날 수 있고, 시민의 의견은 언제나 ‘민원’으로 이해된다. 국민은 세금을 내지만 국민의 의견을 내는 것은 그 경로가 불투명하고 제도화되어 있지 못하며, 대부분의 의견들은 ‘국민 신문고’ 안에서 답변될 뿐이다. 국민의 어떤 의견이 논의되거나 토론될 제도적 장치나 그 단위가 전무하다. 특히 이번 경우처럼 시민의 정책 참여의 영역같이 매우 중대한 사안을 결정함에 있어서 시민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대화나 토론은 형식에 그친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하여 시위를 조직하거나 기자회견을 이용하는 것이 전부이다. 도대체 이것이 정상적인 대의민주주의 제도이며, 시민참여의 보장이란 말인가?

권한을 독점하고, 권력화하는 것을 독재라 부른다면 작금의 행정의 행태는 독재에 가깝다. 본디 독재는 소수의 무리가 입맛에 맞게 재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독재는 근본적으로 타협과 협의가 생략되고, 제도 안에 공식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지 않는다. 그것이 의회이든 혹은 행정이든 이런 구조가 보장되지 않는 제도는 독재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간 우리는 민주화에 착념하여 오랜 시간 동안 군사독재와 그 잔재를 물리치는 일에 집중하였다. 80년대의 민주화운동의 결실을 맛보며 마치 우리는 완전히 민주화가 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을 한다. 하지만 언급한 것처럼 대의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의회와 행정이 시민의 의사와 반하는 행동으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은 온전한 민주주의 사회로 볼 수 없다. 군사독재만 사라졌다 뿐이지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시민의 의지가 박탈된 허구의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다. 시민의 의지와 의도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그것을 표현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전무한 사회가 정말로 민주화된 사회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큰 오해이다.

이번 마을센터 민간위탁 폐지와 관련한 과정을 겪으며 “왜 시민의 참여를 구걸해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을 가졌다. 시민이 진정 원하는 것을 시민참여 정책을 통해 진행하는 과정조차 끊임없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것은 참으로 모순이 아닌가? 행정을 독점하며 운영하는 것은 어떤 상식에서 가능한 것인가? 오히려 시민의 참여를 권장하고 설명하며 설득하는 것은 행정이나 의회가 시민을 대상으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더 나은 방향

제도가 성숙하려면 다양한 요인들이 필요하다. 특히 시민의 참여와 관련한 정책은 더욱 그러하다. 몇 해 전 서울시에서는 ‘사회 협약(Compact)’이라는 개념으로 시민의 책임 있는 참여를 위한 정책을 준비하였다. 이는 수직적인 민관의 관계를 수평적인 관계로 전환하기 위해 일련의 다양한 정책집행과 관련한 “권한”을 협약을 통해 명시하자는 의도였다. 사회 협약으로 명명된 이 정책은 영국에서 처음 시도하였다. 영국은 2009년 행정과 시민사회가 맺은 ‘사회 협약’의 목적을 “정부와 시민단체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영국의 시민사회와 지역사회에 혜택을 주기 위해 파트너십을 맺고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2010년판 사회 협약(Compact) 서문). 이 협약서를 근간으로 이행체계와 지원체계를 구성하고 더 나은 공공의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약속을 강화해 나갔다.

사회 협약은 우리가 경험하는 경제 위기나 여러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민간의 영역이 함께 대화하고 정책 협의를 시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를 통해 정부와 시민사회(지역사회)는 그간의 시행착오들, 일테면 상호 불신과 형식적 거버넌스,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 위원회 제도의 수준에 머물렀던 협치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사회 협약의 방향성은 행정과 시민사회, 그리고 더 작은 단위로 나누어져 있는 지역사회 간의 신뢰와 협력 관계를 확립한다. 그리고 공동의 정책 생산체계(co-production)를 구축하여 정책의 품질 향상과 공공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지향한다.

그간 시민참여의 일환인 민간위탁 제도가 단순한 계약관계에 기반한 것이라면 사회 협약은 민간의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고 헌신적인 활동에 대한 내용을 활용하며, 규정은 최소화하고 민간에게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할 뿐 아니라 위험과 책임을 공유하고 함께 분담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야말로 낮은 단위의 계약에서 상호 신뢰에 근거한 약속(협약)으로 더 진일보한 공동정책그룹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연 이런 협약이 우리 사회에서 가능하겠냐 싶지만 정책의 방향과 그 변화는 몇몇의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강렬한 염원과 그 사회가 직면한 사회현상 속에서 움트게 되어 있다. 지금은 민간위탁 제도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어느 시점에서 상호 신뢰에 근거한 사회 협약이 진행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다만 이런 방향에 대한 이해와 준비가 없이는 그 어느 것도 이행되기 어려우니 결국 깨어 있고 준비하는 시민이 필요한 일이다.

이제 인천시의 마을 운동 관련 정책은 그간 시민들이 반대했던 행정의 방식으로 운영한다. 그동안 진행해 왔던 민간위탁 폐지를 반대하던 비상대책위원회도 해산했고, 행정이 준비하고 의회가 추인한 대로 행정이 마을 정책을 시행한다. 드러나는 모습으로만 보면 이번 과정 전반이 남긴 것이 많지 않아 보이고 마치 직영을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전국적으로 지속되어온 마을 정책의 후퇴가 인천시에서만큼은 시장이 전격적으로 의견을 철회하는 결과를 얻었다. 그뿐만 아니라 계속 지적한 것처럼 현 상황 안에서 시민의 정책 참여가 얼마나 허무하게 부정당하는지도 명확하게 학습하였다. 그리고 이제 이런 경험치 안에서 향후 미래의 마을 운동에 관한 조망을 하게 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행정이 과연 마을 운동의 철학과 그 방향을 이해하며 운영할지에 관해서 부정적인 시각이다. 행정은 행정이 잘하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운동력이 필요한 마을 관련 정책들은 행정이 말하는 대로 효율성이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 효율성을 뛰어넘는 공공의 안녕과 이익을 위한 정책이 어떻게 유지될 것인지 그 귀추를 주목할 시간이다. 마을과 시민이 잠시 후퇴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역사는 진보하기에 더 나은 마을의 미래를 상상하며 더 의미 있는 마을 운동을 준비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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