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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여유를 갖고 찬찬히 마을을 돌아보면 평소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장소들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새로 생긴 가게들이 있는가 하면, 원래 있었으나 미처 보지 못했던 곳이 눈에 뜨일 때도 있다. 혹시 계산동을 가려고 생각 중이라면 한번 천천히 그 주변을 둘러보자. 그러면 ‘책방산책’이라고 쓰인 나무 간판과 귀여운 나무 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책방산책’은 동네 서점이다. 하지만 ‘책방산책’을 만들고 운영 중인 책방지기 홍지연 대표의 말에 의하면 동네 서점이면서 책놀이터이기도 하고 사랑방이기도 하다. 특히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책방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이렇게 마을 안에서 여러 역할을 하고 있는 책방은 어떤 공간일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교류가 일어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래서 볕이 잘 드는 오전에 책방산책에서 홍지연 대표를 만나 마을과 책방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홍지연 : ‘책방산책’은 서점이에요. 막연하게 마흔이 되면 책방을 하자는 마음도 있었고, 책방이 주는 느낌이 참 좋아서 책방을 열게 되었습니다. 책방산책은 서점이기 때문에 책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책을 보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공간이기도 해요.
책방을 하실 정도면 책을 많이 좋아하신 것 같아요.
홍지연 : 살면서 늘 책방이 가까이 있었던 것 같아요. 20대 까지는 계속 배다리에 있었고 대학가에도 책방이 있었고, 책방 아르바이트도 했었지요. 그렇게 책방을 갈 때마다 책이 주는 느낌이 좋았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좋았습니다.
또 마을살이를 시작하면서 마을 안에 아이들이나 어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꼈어요. 처음에는 부모님과 아이들이 편하게 와서 책도 같이 보고 고르는 과정을 생각하면서 책방을 열었어요. 그리고 동네에 책방이 하나쯤은 있어야 아이들도 책을 느끼고 책냄새를 맡으며 책을 가까이 하는 분위기를 가질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마을의 책놀이터라고 생각해요.
책방산책에 찾아오는 손님들은 어떤 분들인가요?
홍지연 : 일단 아이들이 책방 출입을 시작하면서 어른들보다 훨씬 더 편하게 자주 찾아와요. 어른들은 책을 파는 공간에 오면 반드시 책을 사야한다는 부담감이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친구들과 같이 왔다갔다하는 이 책방이 좋은 것 같아요.
지금은 아이들이 책을 차차 읽다가 문화상품권이나 용돈이 생기면 책을 사러오기도 하고, 어른들도 구매에 대한 부담감을 내려놓고 종종 들리시는 편입니다. 책방이 워낙 오랫동안 동네에 없었기 때문에 책방이 동네 사람들이나 손님들에게 다가가는 데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책모임이나 저자와의 만남 같은 책방 행사를 가지고 있어요.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어느 날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책방 앞에 멈추는 거에요. 그러면서 “체력을 쌓았으니 마음의 양식을 쌓으러 왔다”고 말하면서 책방으로 들어오더라고요. 그 후 책을 좀 읽으면서 물 좀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사실은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싶은데 아이들 나름대로 양심을 지키고자 책을 읽었던 거에요.
또 아이들이 부모님이나 할머니를 모시고 책방으로 와서 책방을 소개시켜주기도 했어요. 여기는 뭐하는 곳이며, 화장실은 어디고, 책은 어디서 읽는지 등을 재잘재잘 설명하는 거에요. 이런 것을 보면 책방이 익숙해져 가는 시간들이 무르익는 것 같습니다.
동네 주민들과 같이 어울리기 위해 책방산책에서는 어떤 행사들을 하고 있나요?
홍지연 : 책방산책에서는 주민들과 같이 책모임이나 ‘저자와의 대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어요. 일단 주민독서모임은 한달에 두 번 정도 있고, 청소년 모임은 현재 자발적 해산 상태에요. 자발적이란 것은 모임 구성원이었던 청소년들이 서로의 시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아 스스로 그만두는 것을 선택한 것을 말하고, 언젠가 스스로 필요함이 느껴지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에요.
저자와의 대화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열하일기 완독클럽’을 10주 동안 진행했어요. 열하일기라는 책 자체가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지만 혼자서 읽기는 어려운 책이에요. 출판사와 협력하여 박지원 전공자인 박수밀 교수를 모시고 진행했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자신감도 얻었고요. 최근에는 책 ‘시베리아 시간여행’의 박흥주 저자를 모시고 북토크를 진행했어요. 청소년들과 어른들이 함께 듣는 강좌로 기획했는데 이 역시 참여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어요. 혼자 하는 책방이라 마음 먹은 만큼 실행하기가 쉽지 않지만 욕심 내지 않고 꾸준히 하려고 합니다.
마을 속 책방의 책방지기로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홍지연 : 제가 책방을 운영하면서 대형마트를 덜 가게 되고, 마을살이를 제대로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동네에 있는 맛집 소개도 하고, 빵 잘하는 가게, 만두가 맛있는 가게 등등 마을 내 작은 가게들을 손님들께 소개해드리기도 해요. 보석 같은 곳들이 동네 안에 참 많거든요.
책방산책도 그런 곳들 중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이런 곳들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마을 사람들이 마을 속 가게들을 알아야 하고, 자주 이용하면서 소비가 일어나야 해요. 또 그런 작은 가게들이 청소년들이나 어린이들이 오고갈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온라인이나 대형 가게들은 빠르고 편리한 것이 장점이라면, 마을의 작은 가게들은 천천히, 정감있는 교류가 일어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류가 늘어나고 마을살이를 하다보면 그 분위기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마을 안에서 또다른 교류를 하게 될 거에요. 그러면 나중에는 가게 뿐만 아니라 서로 문도 열어놓고 다시 살 수 있는 모습도 되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마을살이를 하면서 저도 건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동네의 작은 책방 속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빠른 배송을 자랑하는 대형서점을 뒤로 하고 굳이 동네책방에서 책을 구매하는 것은 그만큼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다. 속도보다는 기다림. 그 기다리는 시간 속에서 온갖 교류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런 기다림이 즐거워지는 순간에 마을살이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가끔씩 볕이 잘 드는 날에 동네 속 작은 책방에 들러서 기다림에 한번 익숙해져 보는 것이 어떨까. 분명 그 옆에는 책과 사람이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글 홍보담당 / 사진 책방산책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