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 : 27/0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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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마을에, 우리가 살아요. – ‘마을의 발견’과 발맞추는 행정 –

돌멩이국도서관 임현진 관장 마을에 작은 공간 하나, 도서관은 도서관은 책 읽는 사람들과 앞으로 책을 읽을 사람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고 누구에게나 […]
Written by: doo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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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국도서관 임현진 관장

마을에 작은 공간 하나, 도서관은

도서관은 책 읽는 사람들과 앞으로 책을 읽을 사람의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열려 있는 곳이다. 작지만 소박하게 마을을 꿈꾸고 상상할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책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오늘의 일상’을 말하고 나누고 있다면, 백 여 년만의 폭염에 지치지 않고 무탈하게 하루 하루 잘 견디고 있는지, 삼복 더위 내내 가족의 때맞춤 끼니에 땀 흘리느라 정작 지친 몸과 맘에 ‘보신’ 생각은 해보기나 했는지, 여름 방학과 휴가에 재충전의 시간은 마련했었는지 묻다 보면 서로의 시간은 흐르고 마음의 길은 통하게 된다.

도서관 바닥을 잽싸게 온몸으로 기어 다니고 책상모서리를 물고 빨던 생후 8개월의 아이는 어느새 책상을 붙들고 서느라 부들부들 떠는 허리춤을 더위를 피해 오신 동네 아줌마 손에 맡기고 있다. 오랜 직장생활의 지루함과 무력감에 지쳐갈 즈음, 동네 아줌마는 아이와 그렇게 마을 작은 도서관서 인연을 맺었고 관계를 텄다. 어린 아이와 동네아줌마가 만나는 동안 아이 엄마는 생애 처음으로 ‘영어회화’ 공부에 자발적인 도전을 시작했다. 눈빛 하나에 교실에서 친구와 다퉈 속상했던 마음을 털어놓고, 시원한 물 한잔에 20여년 기간제 교사 생활의 고충을 토로하고, 그림책 한 자락에 불안한 미래와 흔들리는 오늘을 내보이느라 마을 도서관은 북적 북적, 세상살이 이야기가 넘친다.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말하고 들어주고 알아주고 고개 끄덕여주는 것은 마을 안에서 사람들이 조금씩 옆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어 더불어 살고 싶도록 관계망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마을 살이, 내 몫의 일이라면

마을을 살피고 나서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도서관 탐방에 나섰던 어린이집 친구 11명이 한 줄로 걸어가기에도 위험천만한 자동차 통행과 주, 정차와 사람이 얽혀 버린 복잡한 시장거리, 작은 모퉁이 틈틈이 마구잡이로 쌓여 있는 쓰레기, 2~3층 오래된 맨션, 연립 주택 사이 바닥이 패이고 어두운 골목들, 낡고 오래되어 고치고 새로 단장해야 할 거리와 담장과 건물들, 장을 보다 구부정하게 더 낮아진 허리를 펴느라 낡은 전봇대를 붙잡고 서 한숨 돌리는 할머니, 정신 사나운 길 사이사이 태권도 학원 차에서 뛰어내리고 또 다른 학습 학원 차에 올라타는 아이들… 옆에서 간간이 보기만 해도 마을 살이가 불편하고, 위험하고, 때때로 고단하고, 어려워 보인다.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일들이다.

마을 작은 골목을 따라 어슬렁 걷다 보면 만나는 일들이 있다. 오래된 연립 난간과 담장이 위태로워 몇 집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보수에 나서고, 전통시장과는 많이 다르지만 골목시장의 역할과 개성을 살려보려 하고, 유난히 부부와 형제, 가족들이 함께 오랜 시간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상인들과 옆집, 윗집 아줌마들이 삼삼오오 가게 앞 화분, 꽃이야기를 풀어놓으며, 함께 의지해 살던 마을을 단박에 허물어버려 싸그리 떠나버려야 하는 재개발로 누구 하나 떠밀려 나지 말자고 다독이는 이야기들도 만나게 된다.

그냥 슥 지나치는 눈으로 미처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마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공간과 사람과 이야기로 다가온다. 새로운 마을 이야기에 희망과 바람으로 상상력을 불어넣어 본다.

지금보다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골목길에서 걷고 뛰고 놀고, 어른들이 여유 있게 일상을 누리고, 어르신들이 편안하게 노후를 살 수 있다면, 그런 마을이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작은 공터와 놀이터, 쉼터로 한 뼘 공원과 옥상정원, 마을 공연장, 공동밥상, 주민햇빛발전소. 동네 공작소, 마을의 주택과 골목을 있는 그대로 살려 아이들이 노는 길들. 여기저기서 들어본 대안과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들, 꼭 하고 싶은 일들로 마을을 그려 보는 생각의 결과 마음은 다양했고 무궁무진했다. 상상만으로 즐겁고 신난다. 일터, 쉼터, 놀이터, 배움터가 한 마을에 있기를 바라는 것이 한결 같았다. 한 마을에 태어나 자라고, 배워 일하고, 놀고 나누기를 오래도록 함께 하면 좋지 않겠느냐.

자, 이제 해보자. 누가? 우리가 해 보자는 말에 주춤거린다. 아니, 왜 우리가? 굳이 우리가?

국민을 대신해서 공공의 일을 해결하라고 세금을 내고, 전문적으로 일을 하라고 ‘행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게. 그동안 행정은 마을의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어떻게, 우리가 할 수 있는가? 마을에 살고 있지만 마을 일이 우리 일, 내 일이 되는 건 낯설고 버겁고 당황스러운 일이다. 마을이 우리의 것이었고 마을의 주인이 나였던 적이 있었던가.

마을에 살고 있는 나와 우리가 불편하고, 답답하고 안타깝고 당장 필요하다면 마을 일에, 내 일에 나서는 것이 맞지 않을까. 목마른 사람이 목마르다고, 우물을 파자고, 우물을 파도록 도와달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나서고 한, 둘이 나서다 보면 어느새 함께 하고 있을지도.

행정은 마을에 살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니 우리만큼 불편하지 않고 우리보다 관심이 적지 않을까. 마을 사람과 이야기를 우리보다 더 모르고 우리처럼 더 귀 기울이기 어렵고, 그저 마을의 문제에 부딪힐 때 화들짝 더 놀라기만 하지 않을까.

행정이 마을 사람들과 발맞추려면

오래된 옆 마을, 오래도록 긴 세월을 그 마을에서 미용가게로 벌어먹고 사셨다고 고마워하시던 분은 내년에 마을기업으로 만두가게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협동 조합원을 모집하면서 동네 할머니들이 앉아서 하루 한나절만 일하시게 하려면 만두가게가 좋으리라 생각을 모으셨단다. 할머니들이 하나, 둘.. 동네에서 폐지를 줍기 시작하자,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싫으셨다고. 마치 내 엄마가 그러는 것 같아서. 어느 누구도 폐지를 줍지 않도록 하고 싶어서 그 때부터 여기 저기 사람들에게 투덜거리다 마을기업을 생각하는 여기까지 왔다고.

행정은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생활보조를 할 수는 있지만 폐지 줍는 일을 그만두게 하기는 어렵다. 마을 정책은 아직 마을 곳곳을 둘러보고,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는 일을 하지는 않는다. 하여, 마을마다 특이한 환경과 처지를 들여다보고 공감하고, 이해하고, 상상력조차 발휘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공간과 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원금을 보조해주는 것에 머물고 있지만, ‘동장공모제, 주민참여 예산제’ 는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스스로 질문하고 공부하고 결정하여 정책을 만들고 시도하는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지금부터 마을 행정은 도시의 대안적 삶으로 마을을 살아있는 공동체로 볼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을 배우도록 해 보자. 천천히 공동체적 마을살이를 고민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일을 하도록. 꿈꾸는 마을의 작은 모습하나라도 이루어 내는 일을 격려하도록. 마을 사람들의 다양한 환경과 처지를 알고 의견과 생각을 나누는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 내도록. 마을 사람 혼자가 아니라 함께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있다는 연대의 힘을 북돋도록 돕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 더불어 마을 행정가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마을 안에서 함께 일하고, 배우고, 쉬고 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제 삶의 주인으로, 마을의 주체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대안을 이끌어내는 일을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함께 해야 한다.

마을에서 사람과 삶을 발견하고, 오래된 마을의 미래를 새로이 쓰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두 팔 걷고 나설 때 뒤에서 받쳐주고, 소리 내어 말할 때 옆에서 귀 기울여, 앞장 서 힘든 걸음 내딛을 때 함께 발맞춰 나서준다면 마을 정책은 제 역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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