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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에서 만난 청년활동가 다섯,
라정민
·정성연
·신우정
· 박지혜
·장소영 님을 만나다
<청소년 인문학 도서관 느루>(이하 느루)를 기반으로 한 청년 활동가 다섯 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 시간을 맞추기 힘들어 한 자리에 모여 이야기하는 것도 토요일 저녁 여덟시. 자신의 시간을 아껴서 활동을 하는 청년들의 생각과 마음은 어떨까, 궁금했다. 다소 촉박하고 급하게 움직이며 서로를 챙기지 못하는 프로젝트도 틈틈이 봤었다. 그러나 <느루>를 기반으로 하는 청년활동가들은 조금 달랐다. <느루>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서일까. 지역아동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박지혜, IT융합학과를 다니는 정성연, 건축학 전공인 신우정, 미디어 교육관련, 문화예술교육 및 기획을 하는 라정민, 고등학교 3학년인 장소영까지 개성이 다른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청소년 인문학 도서관 느루>를 중심으로 현재 하시는 활동 및 이전에 하셨던 마을 기반 활동이 궁금합니다.
신우정 – 청소년 운영위원회 활동부터 시작해 가좌고등학교와 협업하여 오페라 공연을 한 진행한 적이 있고요. 제 전공인 건축학을 살린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는 중이에요. “느루 건축학교”라 해서 저도 아직 전문적이지는 못하지만 창의력을 활용, 자기만의 건축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학교를 계획하고 있어요.
박지혜 – <느루> 옆에 <사람사이 카페>가 있는데 여기에서 커피 머신 만지는 걸 배웠고 2011년부터 올해까지 하다가 잠깐 쉬고 있는데 쭉 그렇게 해 왔어요. 평일에도 하고 주말에 하고 있었는데 손님이 별로 없다보니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저도 <가좌시장 사람들> 잡지를 만들 때 디자인 부분으로 참여를 했어요.
정성연 – 저는 재작년 말 쯤에 <느루>에 처음 온 것 같은데 작년 초부터 올해 초까지 목요일에 한 시부터 아홉 시까지 자원봉사를 했어요. 여덟 시간을 있다 보니 심심해서 그림과 낙서한 것을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 작은 전시회도 하고 요리에 관심 있는 청소년들과 <심N식당>이라는 요리 프로그램도 하고 그랬어요. 잡지도 하고요.
▲요리에 관심있는 청소년과 함께 한 요리 프로그램 “심N식당”을 진행하는 정성연 님
라정민 – 저는 작년까지는 <우리동네문화복덕방>을 해서 동네 사람들과 관계를 만드는 활동을 했었고 올해는 가좌동 10년사, 잡지 프로젝트 진행을 하고 있어요. 저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니에요. 원래 저는 <느루>에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하러 왔던 교사였어요. 그림책 수업을 하고 나니 동네가 너무 좋아서 청소년과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프로그램도 하고 어쩌다보니 눌러 앉았어요.
– 직장이나 학업 또는 아르바이트와 같이 병행해서 활동을 하시는데 어려움이나 제약은 없는지, 같이 활동할 때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신우정 – 잡지 만들 때 주말을 통째로 써서 기사는 써야 하는데 이번 주까지 내야 하니 급하니까 이걸 먼저 쓰는 거예요. 과제도 못하는데 새벽 4시까지 기사를 써서 눈 빨개질 정도였어요. 학교에서 과제의 특성상 아예 네 시간을 쉬는 강의가 있어요. 그 수업 때는 교수님 몰래 자고 있고.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정성연 – 제가 수업을 적게 듣고 과제도 없는 수업이었고 다 적당히, 조금 조금씩 해서 힘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잡지 인터뷰를 하는데 어떤 아이가 지나가는데 말 걸어서 인터뷰 해달라고 하니까 안 해줘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
박지혜 – 잡지 하기 전에 카페에 와서 일할 때는 평일에 지역아동센터에서 일하고 주말에 와서 일해도 힘들지 않았어요. 재미있었거든요. 잡지 시작하고 나서는 1호가 나올 때는 거의 두세 시간만 자고 마감 날에는 직장 반차까지 썼어요. 낮까지 하고 출근하는 등 그런 게 힘들었는데 끝으로 갈수록 요령이 점점 생겨 재미있었어요.
라정민 – 저도 마찬가지로 재미있었어요. 인터뷰를 했는데 저부터도 시장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한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살았던 이야기들이 들리는 거예요. 장사한지 얼마나 되었고 시장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여쭈어보면 어떤 분은 귀찮아하세요. 어떤 분은 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많이 해 주세요. 인생 스토리가 다 나오는데 시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느루> 우리동네문화복덕방 프로그램 팀 워크숍
– SNS를 통한 교류나 직장 또는 학교에서의 만남으로 만족할 수도 있을 텐데 마을 또는 <느루>를 거점으로 마을 기반으로 만나고 활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우정 – 여기에 올 때는 논다는 느낌으로 왔는데 여기에 점점 신경을 덜 쓰게 되더라고요. 윗세대 언니 오빠들은 아예 안 오는 사람들이 있고 뜸하게 오는 사람들도 있고 가끔씩은 여기를 안 오면 내가 좀 더 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다보면 누가 제안을 해요. 그래서 잠깐 여기에 오지 말까, 라는 생각을 했는데 제가 중학교 때부터 책 많고 쉴 수 있고 카페에 가지 않아도 친구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해서 여기를 왔어요. 습관적으로 오게 되어요. 아이들이 잘 하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습관적으로 오고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어서 그런 것 같아요.
박지혜 – 저는 이 공간이 좋고 같이 활동 하는 게 재미있어서요. <느루>의 매력은 사람들이 좋은 것 같아요. 카페에서 일할 때는 사람들이 오잖아요.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는 게 좋더라고요.
정성연 – 여기에 오면 재미있는 일이 생기고 사람들도 좋고 제가 하고 싶은 것도 실행해볼 수 있어서 계속 오게 되어요. <느루>에 오려고 토요일은 항상 시간을 비워둬요. 제 성향이 느린 것을 좋아하고 느려서 자유로움과 여유로움, 느림이 잘 맞아요.
라정민 – <느루>라는 공간에 왔을 때 에피소드를 들었는데 여기 있는 책 정리하는데 4개월이 걸렸대요. 라벨지 하나 붙이고 막 떠들고. <느루>라는 공간 자체가 시간의 흐름이 급하지 않아요. 뭘 꼭 하지 않아도 되고 천천히 흘러가는 공간이에요.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이걸 꼭 해야 해라는 게 있어 걸리는데 <느루>는 사실 하고 싶은 걸 하고 하다가 힘들면 그만 할 수도 있는 공간이예요.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이 제일 큰 특징인 것 같아요.
– 활동하면서 에피소드가 있거나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신우정 – 저는 벽화 프로젝트인데 아이들 위주의 일이었어요. 특히 아이들의 의견을 모은다는 게 사실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 저 벽화는 아직 미완성이에요. 작업은 다 해 놓았는데 3층을 보니 원하지 않는 그림이 있었어요. 저거 고쳐야 되는데, 라는 생각을 1년 했어요. 처음에는 엉성한 디자인이 아니었어요. 페인트칠도 제대로 안 해놓고 굉장히 거슬려요.
일단 그것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제가 제일 먼저 주체로 했던 프로젝트 중에 하나에요. 힘든 거에 임팩트를 갖잖아요. 그래서 인상이 많이 남았어요.
박지혜 – 저는 <느루>에서 카페에서만 일해서 잡지를 해 본 게 제일 기억에 남아요. 저도 디자인하기 전에 우정이랑 같이 나가서 사진도 찍고 간판 찍는 것도 조심스럽게 물어보고는 했는데 어떤 곳은 흔쾌히 해 주시고 절대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정성연 – <느루>에서 목요일에 봉사하는 게 10개월 정도 되는데 저한테 큰 영향을 미쳤어요. 그전까지는 바쁘게 살았고 1분, 1초를 열심히 의미 있게 쓰자는 강박관념이 있었거든요. 마음이 항상 편하지 않았어요. 목요일에 오면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그 하루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컨셉을 잡아서 그 때부터 제 성향의 여유로움을 찾았어요.
라정민 – 저는 <우리동네문화복덕방>이 재미있었어요, 쉽게 이야기하자면 뭘 배우고 싶으면 서로 연결해주는 거에요. 해보고 싶어 그러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하는 거에요. <느루>에서 <느루>다운 프로그램인 것 같았어요. 잡지를 보시면 컬러프린트로 양면 인쇄해서 스테플러를 찍어서 얼렁뚱땅 후다닥 만들어갔는데 그러면서도 자체에 뭔가가 나오는 거예요.
– <느루>를 중심으로 청년활동가들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나 단점이 있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신우정 – 일단 무엇을 하자고 하면 다 해요. 그것에 관심이 있다면 왠만하면 다 해요. 보통 사람들은 이거에 관심이 있어도 난 시간이 안 되고, 개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사가 더 강하잖아요. 그런데 개인시간을 쪼개서라도 하고 싶다고 하면 해요. 약점은 일단 전체 인원도 조금 적은 편이에요.
정성연 – 외부에서 했던 활동과 비교를 해 보았을 때 활동 중심, 프로젝트 내용 중심, 능력 중심이었는데 여기는 팀과 관계, 사람 중심이에요.
박지혜 – 여기 청년활동가들은 각자 개성이 달라 뛰어나요.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은 여기에서 볼 수 있어요. 아쉬운 점은 일단 하고 있는 일들이 있어서 모이기가 힘들어요.
라정민 – <느루>는 제일 좋은 점과 조금 아쉬운 점이 똑같아요. 제일 좋은 건 굉장히 자유롭고 사람 중심이에요. 목표 중심적이 아니라 과정 중심으로 물 흐르듯이 가는 거지요. 그래서 <느루>가 거대한 것을 만들지는 않아도 조금씩 가는 거고. 약점도 같아요. 어떤 목표를 중심으로 일을 크게 하는 편이 아니니 일의 진행이 느른 부분도 있어요. 이런 게 <느루>의 색깔이기도 하니 어떻게 조화롭게 나아갈 거냐가 고민인거지요.
그래서 이번 가좌시장 프로젝트는 치열하게 한 편이에요. 마감이 있고 쓴 거 편집하고 교정보고 인쇄하는 전 과정이 바삐 움직여서 낯설어 힘들기는 했는데 압축적인 시간 동안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청년활동가로 지내면서 지켜나가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신우정 – 활동을 하고 직업체험도 여러 번 하면서 느낀 게 그 일이 나와 안 맞는 구나 라는 생각보다 이게 재미있다 라는 생각을 먼저 해요. 하지만 하고 싶은 리스트를 쭉 뽑으면 돈과 나의 시간과는 거리가 아주 멀어요. 항상 내가 이것을 정말 하고 싶을까 물음을 갖고 내 시간을 쪼개서 이 정도를 더 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정성연 – 무리하지 말자, 무리하면 여기가 마음에서 멀어지니까, 적당히 하자.
라정민 – <느루>의 속도, 색깔, 장점이 마음이 되게 들어요. 사실 프로그램을 할 때 조급증이 났었어요. 복덕방 할 때도 빨리빨리 하자 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저 혼자는 안 되는 것 같아요. 너무 빨리 가지도 않고 너무 혼자 가지 말며 이야기하는 과정 속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아서 같이 가는 것. 혹여 같이 가지 않더라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하면 사람들이 지켜봐줘요. 혼자 가거나 급히 가면 살펴보는 사람도 없어요. 천천히, 그냥 같이, 재미있게.
박지혜 –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재미있는 것을 하자”인 것 같아요. 여기 <느루>에서 있던 게 5년이었고 여태까지 재미있었으니까 지금까지 <느루>에 오는 것 같아요.
장소영 – 일을 할 때는 즐겁게 하자.
▲ <가좌시장프로젝트> – 프리마켓 사생대회 사진
– <느루>를 기반으로 어떤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이야기해주세요.
정성연 – 살기 편안한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제 주변에 육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거든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아기 키우는데 편하고 좋은, 키울만한 공간과 환경이 되었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라정민 – 쿡쿡 캥기는 게 저는 우리 동네에서는 아무 것도 안 해요. 잠만 자요. 유일하게 동네에 기여를 하는 건 분리수거를 열심히 해요. (웃음)
<느루>와 가좌동 근처를 생각한다면 “따로 또 같이” 갈 수 있는 마을. 다 같이 가자는 게 어떻게 보면 폭력적일 수 있어요. 같이 하고 싶은 게 있어 모이면 그것도 재미있게 하고 따로 할 것 또는 같이 할 수 있는 마을. 그러려면 따로 할 것들이 열린 공간이 있어야 해요. <느루>는 사실 그런 역할을 많이 하고 있어요. 동네에서 이런 공간이 조금 더 많아지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막상 조사해보면 목공도 배우고 싶어 하시는 등 하고 싶은 게 많으세요. <느루>가 그걸 모든 것을 받아 안기는 어려운 상황이고. 모든 동네에 많이 생기고 네트워크도 되어서 같이 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생기면 모든 것을 해 볼 수 있는 마을이었으면 좋겠어요.
신우정 – 자기의 취미 또는 공통 관심사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곁에 없으면 그 자체도 시들시들해요. 책을 읽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혼자서 읽는 것보다 그 책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면 더 좋고 혹은 만드는 게 있는데 그 친구가 만든 것과 당신이 만드는 것을 비교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굉장히 좋고. 그런 것 때문에 SNS, 인터넷 상에서 친분을 만드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주위에서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장소영 – 그냥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도와줄 수 있는 마을.
박지혜 – 살기 좋은 마을. 영화를 보고 싶으면 영화 볼 수 있는 공간들이 있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으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느루>는 또는 <마을공동체>는?” 을 물어봤다. <느루>는 쉼표, 놀이터다, 제 2의 집인 것 같다, 사람들과 관계 형성을 할 수 있는 곳, 작은 마을, 성장할 수 있는 계기와 발판을 마련 해 준 것 등을 이야기했다. <느루>가 가진 아우라보다 사람들이 모여 느리고 천천히, 그렇지만 자유롭게 모이는 공간이 되고 다시 채워지고 비워지는 연속에 <느루> 청년활동가들은 자신의 걸음으로 혼자 또는 함께 걷고 있다.
글
· 사진 : 홍보담당 양지나
사진 : <청소년인문학도서관 느루>, 라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