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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숭의동 김경남 실장을 만나다
‘숭의평화시장’을 아시는지. 도원역 인근, 인천 축구전용경기장 옆에 위치한 이 독특한 삼각형 모양의 상가는 1971~1978년 사이에 지어진 이래 묵묵히 이곳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시장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이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번영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이곳에는 문화예술을 통한 새로운 시도들이 움트고 있다. 앞으로 예술과 사회적경제를 실험하는 열린 공간이 될 예정이라고. 평화시장 소재의 에서 매주 월요일마다 여는 공연에 찾아가 보았다.
음악회에 찾아가다
Q) 어떻게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넓게 보자면 학생일 때부터 이런 꿈을 꾸고 있었다. 카페를 떠나서 그냥 노래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아마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것이다. 그러다가 공간이 생기면서 늦게나마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이제 “나만 준비되면 여기서 음악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없어 막연하고 맨땅에 헤딩 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관심만 있으면 얼마든지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어느덧 사람들이 모여들더라. 그러자 없던 장비도 하나 둘 생겼다. 마치 내가 끌고 간다기보다는 이끌려 가는 느낌이었다.
Q) 이웃들과는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나요?
따로 홍보를 하지는 않았다. 우리끼리 소소하게 시작하다 보면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볼 것이고, 그중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섞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길건너 목공소 사장님이 찾아오셔서 제안을 하셨다. “여기 공연장비가 조금 보이는데 누군가 음악을 하느냐”는 거였다. 본인은 색소폰 연주를 하고 계시다고. 그래서 앞으로의 공연 계획을 전하니 흔쾌히 연주하러 오겠다고 하셨다. 본업이 있으시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이 더 대단하시다. 그런 모습을 보면 지칠 틈이 없다. 아마 그런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보이지 않게 밀어주고 당겨주며 힘이 되는 것 같다. 처음엔 조촐했지만 한명, 두 명이 각자의 장비를 가져오면서 그렇게 아름아름 시작하게 됐다.
Q) 오늘 오시는 뮤지션들은 누구인가요? 소개해 주세요.
오늘은 7명 정도 오신다. 성악가, 색소포니스트, 기타, 노래 등 장르도 다양하다.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있다. 성악을 하셨던 분은 노래를 배우고 싶었지만 어머니로서의 역할 때문에 잠시 꿈을 접어야 했던 분이다. 여기서 노래를 할 수 있게 된 뒤로는 이제 조금씩 자신을 위해서 노래를 하신다. 다들 직업은 각양각색이다. 화가, 식당 운영 등등. 그렇게 보면 단순히 취미생활이 아니라 원래 더 하고 싶었던, 하지만 잠시 미루어 두었던 것들을 이제라도 할 수 있기에 오시는 분들이 더 많다. 어떻게 보면 힐링 같은 것이다.
Q) 나중에는 평화시장 내 광장에서도 상시적인 공연·행사가 열릴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남구청에서 무대를 만들고 행사를 진행한다면 지금처럼 비앙갤러리 음악회 팀들이 그동안 했던 것을 가지고 무대에서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혹은 매주 진행한 연주를 차곡차곡 모아서 우리만의 콘서트를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카페 앞쪽에 작은 무대를 만들어서 독자적으로 해보고자 한다.
Q) 꼭 콘서트나 대형 공연이 아니더라도 이런 게 일상적으로 이어지다 보면 동네의 문화로 안착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주간 공연을 진행하며 느낀 점이 있으시다면?
어떻게 보면 처음 시작할 때는 질서가 없었다. 순서도 없었고, 색소폰 주자 세분이 와서 번갈아가며 연주하는 식이었다. 그것도 좋긴 했다. 자유롭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연주하는 분들이 “순서를 정해주고, 진행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 악기 연주만이 아니라 중간 중간 노래도 하고, 다른 장르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제안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냥 카페에 와 주는 것, 이곳에 와서 서로를 걱정해 주고, “밖에다가는 이런 걸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아.”, “피아노 스피커 필요해? 갖다 줄게.”, “난 그거 가져올게.”, “손님들이 오면 이쪽을 보면서 노래하면 좋겠어.”처럼 제안해 주는 등,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어느새 다함께 하는 일이 된 것이 참 고맙다. 그래서인지 힘들고 지루한 생각은 아직 없다. 항상 즐겁다. 함께할 사람들이 늘어나면 가게 앞으로 나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다.
Q) 작은 이벤트(?)가 즐거운 일상으로 자리매김한 듯하네요!
원래의 취지도 ‘이 동네의 월요일은 음악 하는 날’이라는 인식을 만들고자 했다. 이제는 아마 이웃 상가에 계신 분들은 그렇게 아시지 않을까 한다. 공연은 9시가 되면 알아서 딱 끝낸다. 서로 피해주지 않고, 정도를 지켜가며 문화를 만드는 중이다.
▲CAFE와 갤러리가 동시 운영중이다.
카페 둘러보기
Q) 상호 BIEN이 무슨 뜻인가요?
프랑스어로 최고라는 뜻이다. 희망적인 뜻을 품은 단어이기도 하다.
Q) 어떻게 시장 내에 공간을 마련할 생각을 하셨나요? 세 분이서 함께 팀이 된 계기도 궁금해요.
어렸을 때부터 이 동네 일대를 봐왔다. 그때도 이곳은 낙후된 동네의 이미지였다. 입점되어 있던 인쇄소들이 나간 다음부터는 더 차가워진 느낌이었다. 그러다 관장님이 이곳을 죽이지 말고 살려보자고 제안을 하셨고, 나도 이 공간 위에 내 것을 얹어 보고 싶었다. 카페와 갤러리에 음악을 얹는 상상을 한 것이다. 하다 보니까 처음엔 이 모습이 아니었는데 긴 시간 공을 들이니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Q) 단순히 음악을 하고 싶은 공간이라면 여기가 아닌 다른 곳도 많은데요. 특별히 이곳이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특별한 애착이라던가 하는.
애착은 지금부터인 것 같다.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이곳은 여전히 낯설고 차가운 공간이었다. 단순히 ‘내 공간을 만들어야지, 그리고 음악을 해야지’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사람들과 어울리면서부터 이곳이 내게 굉장히 소중한, 따뜻한 공간이 되었다.
Q) 카페 운영의 측면에서는 유동인구가 더 많고, 지리적으로 유리한 곳을 선호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보면 오래되고 낙후된 곳인 장소이기에. 놀랍기도 합니다.
낙후되었기에 더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유명한 카페거리에서 하면 좋을 수도 있다. 영향도 많이 받고, 배울 것이 다양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상업적인 느낌이 싫었다. 거기 계신 분들이 상업적이라는 게 아니라 갖춰진 사람들만 올 수 있는 공간이 나랑은 맞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 여기는 그냥 편하게 가도 되겠는데?”하는 마음이 드는 곳, 공연을 하더라도 실력이 뛰어나야 오는 게 아니고 내가 좋으면 올 수 있는 공간, 부담감을 주지 않는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삼각형인 이 건물 자체가 예뻤다. 옥상에 올라가서 저 멀리 동네를 둘러보는 걸 좋아한다.
Q) 앞서 관장님과의 관계를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비앙 갤러리 팀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청소년기에 삶의 목표가 없어서 방황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친구 따라 관악부 생활을 했는데, 규율이 강하고 학생들도 드세다 보니 쉽게 탈선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때마다 은사님이셨던 관장님이 살펴 주시고 자기 일처럼 챙겨 주셨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이때의 고마움에 보답하고 싶은 바람이 크다.
카페가 갤러리 형태가 된 것도 미술을 하시는 관장님의 영향이다. 지나고 보니 그림이 인테리어 효과를 갖더라. 그림이 바뀌면 분위기도 바뀐다. 요즘 조금씩 그림을 알아가는 중인데 작품마다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손님들 각자의 눈에 맺히는 ‘좋은 그림’들이 다르더라. 작가들은 자기 작품을 2~3주 정도 전시한다. 신인작가도 전시할 수 있도록 틀을 마련해 두었다. 현재는 전시 일정이 꽉 차 있는 상황이다.
Q) 카페는 상업공간이기도 하지만 공간의 특성상 그 외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이야기들이 생겨나는지 궁금합니다.
카페 위에 있는 갤러리에도 작은 공간이 있다. 회의가 가능한 공간이다. 그 외에도 카페 입구에 양초공예 교육을 하는 분이 주고 가신 초들이 있는데, 요구가 있으면 공간을 빌려서 수업을 할 수도 있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처럼 위에서는 세미나를, 아래층에서는 논의를 마저 하고 가고. 자연스럽게 공예를 하는 다목적 문화공간이게끔 하자는 것이었다.
어디 가서 나를 소개할 때 “갤러리 카페를 운영합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동네를 문화마을, 에술인 동네로 만드는 데에 카페가 문화센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월요일은 오늘처럼 공연을 하고, 화요일은 쉐프 형이 요리를 만들어서 나눠 먹고 있다. 수요일은 공예를 해볼까 한다. 이렇게 월~토까지 프로그램을 잡아서 진행하면 어떨까?
Q) 오며가며 이곳에 들리는 분들과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계속 있으면서 느낀 건 손님들이 그냥 커피만 마시기 위해 오는 분들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손님(?)들이 없다. 차를 마시는 손님과 어느새 같이 얘기를 나누게 되더라. 구지 얘기하지 않아도 될 서로의 속내 등을 나누게 된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막 하게 되니 보통 카페에서 잘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생긴다.
최근에는 멋진 인연이 생겼다. 카페 문을 닫을 때쯤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가는 길에 인사를 건네셨는데, 무심코 나눈 한마디가 계기가 되어 새벽까지 대화가 이어졌다. 가게 문을 닫아야 되는데도 두 세 시간 웃고 떠들면서 그분의 살아온 이야기를 다 들었다. 덕담도 많이 해 주셨다. 이곳이 은근히 사람들이 찾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고. 비앙 갤러리도 좋아하게 될 거라고. 장사 잘 될 거라고.(웃음)
그렇게 놀다가 관장님 지인이 오셨다. 두 분은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같이 얘기하다가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되었다. 대체 우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갑자기 왜 이런 상황이 된 거지?(웃음) 싶었다. “아, 공간이나 문화는 계속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Q) 주인장이 가진 가치관의 영향 아닌가요? 특별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있는지.
그냥 사람이 좋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 것 같은데, 떠올려 보면 살면서 가족보다는 주위 사람이 나를 키워준 적이 많았다. 옆 사람이 나를 챙겨준 기억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에게 갚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함께 무엇을 하는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내 것만, 내 이익만 생각했다면 아마 돈 벌 궁리만 했을 것이다.
Q) 힘들게 만드는 요인들이 있을 것 같은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명함에는 실장으로 직함이 적혀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낙후된 곳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모양이니, 집에서 부모님이 보기엔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할 법하다. 그래도 무언가를 하겠다고 하니까 지켜봐 주시고, 걱정은 하시지만 딱 걱정까지만 해 주시고.(웃음) “잘 되니?”, “재밌니?”하고 묻는 정도라 그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한 일이다. 하나의 고비를 넘은 거라 생각한다. 그 외에는 가게 운영 정도? 하지만 운영은 잘되든 안 되든, 번화가든 아니든 비즈니스기 때문에 모든 가게가 동일하게 고민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런 걸 풀 수 있는 공간을 우리 안에서 만들어버리면 되니까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음악회 첫 날,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시끄러워서 미워하지는 않을까?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그렇지 않더라. 주변에서 긍정적으로 봐 주시고, 응원을 보태 주니 기뻤다.
Q) 감동적이네요. 요즘은 언제 제일 재밌고 행복하세요?
노래를 들을 때다. 카페에 있으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종일, 크게 들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가게 앞뒤로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우리보다 더 나이가 많은 나무다. 겨울동안 앙상했는데, 지금 보면 새싹이 돋고 있다. 이것도 하나의 추억이 되겠다는 생각에 블로그 일기장에 나무 이야기를 올리고 있다. 그렇게 “비앙갤러리도 숭의1·3동이 기억하는 추억의 한켠을 차지하게 되겠구나, 음악회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추억으로 하나하나 쌓여가겠구나.” 싶었다.
요즘은 커피에 관심이 늘면서 ‘커피가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림, 음악, 커피가 안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더라. 나도 모르게 비슷한 영역들을 접하게 되는구나 싶다.
Q) 앞으로 음악회는 어떻게 될까요?
오늘 찾아오시면 ‘노래나 하나 시킬까?’ 하고 있었는데 하실 건가?(웃음) 우리는 오시는 분들 노래부터 시키는데.(웃음) 음악회는 손님도 손님이지만 다 같이 함께하며 먹고, 마시고, 노는 흥겨운 날이다.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라, 그냥 같이 만나고 노는 게 즐겁다. 이야기하는 게 즐겁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 충분하다.
글/사진 : 이광민(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