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 : 22/05/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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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산다는 것’ <플레이 캠퍼스>

      ‘인천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마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지금 이 질문을 하는 […]
Written by: doo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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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에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아마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지금 이 질문을 하는 ‘이유’가 더 중요할 것 같은데요. 5월 2일부터 23일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청년들이 자기 삶을 이야기하는 <토크 콘서트>가 열린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경제수도 ․ 미래수도 인천”이라는 구호와, 자살률․이혼율 1위라는 지표가 뒤섞여 있는 이 도시에서 젊은이들은 ‘인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세우고 있을까요? 콘서트를 기획한 장한섬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천에 산다는 것> 토크 콘서트 사회 중인 플레이캠퍼스 장한섬 대표. 그는 인천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강조했다. “다른 지역에서 성공한 사업이라도 인천에서는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역사적 맥락을 모르면 사업이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장소는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곳인데 자본으로 뜯어 고치려고만 해요. 올바른 지역주의를 고민해야 합니다.”

 

Q) 누구나 사는 곳은 내 집, 우리 동네, 우리 지역임이 분명하지만 ‘사는 곳’이 인천일 뿐이지 ‘인천에 산다’고 해서 달리 자의식을 갖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한 지역에 오래 정주하며 사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공간을 통해 정체성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인천은 서울 옆의 부수적인 도시 이미지가 강한데, 왜 그런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이 외부에서 규정된 것인지, 스스로 결정한 것인지 말이죠.”

  “다만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거기에서 탈피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하면 서울로, 대학도 서울로 가려고 하는데 현실을 부정하고서 이미지만 좋게 만들 수는 없잖아요. 지금의 이미지를 인정하되, 그렇게 된 이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합니다. 정체성이라는 것이 과거에 ‘어땠다’ 하는 해석들이 모여 생기는 만큼, 그래서 어떤 시각으로 과거를 해석할 것인지, 앞으로는 어떤 비전을 선택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시에서는 인천의 비전을 경제수도 ․ 미래수도로 정했어요. 그게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곳이 송도인데, 송도를 뉴욕처럼 만드는 것이 인천의 정체성에 어떤 도움을 줄까요? (포스터를 가리키며) 동북아 트레이드 타워, 자연친화 공원, 전통한옥이 맥락 없이 공존하는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이 인위적이라는 감상을 줍니다. 갯벌 위에 지은 욕망의 허상이 인천의 미래라는 말인데,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비전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문화공간 플레이 캠퍼스’ 입구 좌측부터 정문 후문 (중구 율목동)

 

Q) 장소가 가진 맥락이 왜 중요한가요? 플레이캠퍼스가 있는 중구 율목동은 구도심 중에서도 구도심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된 까닭도 그런 이유인지 궁금합니다.
 

  “80년대 초반까지는 시청(지금의 중구청) 근처가 문화의 거점지역이었습니다. 중구에만 5개의 극장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시청 이전으로 인해 90년대 중반부터 행정, 금융의 중심지가 바뀌었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이 생기면서 문화의 중심도 옮겨갔어요. 사실상 그때부터 지역이 쇠락하게 되었죠.”

  “하지만 예전부터 인천의 문화 교류는 신포동-싸리재-배다리를 거쳐 서울과 왕래하며 이루어졌습니다. 장소는 역사를 기억하게 하는 곳이잖아요. 이곳이 가진 역사 ․ 문화적인 가치가 있는 거죠.”

  “플레이 캠퍼스는 행정상 중구에 있지만 정서는 배다리에 가까워요. 두 지역은 붙어 있지만 상당히 다른데요. 일단 중구는 돈이 많고 동구는 돈이 없어요(웃음). 중구는 재정자립도가 높아요. 빈곤속의 풍요랄까. 금융․행정․문화․예술 중심지였으니까요. 반면에 동구는 전국 각지의 노동자가 모여서 식자재를 납품하며 살던 달동네였어요. 자연스럽게 노동문화의 발상지가 되었죠. 이 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야겠다. 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가구거리 점포가 빠진 곳에 시립 율목도서관이 들어섰고, 문화공간도 들어서면 율목동이 중구와 배다리를 잇는 분수령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Q) 지금 플레이캠퍼스가 있는 곳은 1978년에 개관한 <돌체 소극장>이 있던 자리로 알고 있는데요. 인천을 대표하는 소극장이었고,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나중엔 완전히 버려진 공간이 돼서 떠안게 됐습니다.(웃음) 플레이 캠퍼스라고 이름을 지은 건 장소성을 살리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대학로에 ‘플레이 하우스’라는 곳이 있는데, 하우스는 사적인 공간이고, 캠퍼스는 좀 더 공적인 공간이잖아요. 연극의 공공성을 부각시키고 싶기도 했고, 인천지역에 대학이 적은 것도 이유였어요. ‘노는 학교’라는 공간 중심으로 가고자 한 겁니다.”

  “공간의 효율성․공간의 부동산화가 아닌 ‘공간의 놀이터화’ 를 하고 싶었던 거죠. 놀이와 연극을 분리하지 않는 학교. 지역사회와 관련이 있는 문화콘텐츠로 시민이 즐기고 소통하며 배울 수 있는 문화공간이고자 했습니다. ‘지역의 문화’라는 것 자체가 공공적인 것이기에 동구와 중구의 경계에서 문화예술을 고민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2001년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이 일어나고 아, 인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천에 대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죠. 화도진도서관에 관련 자료가 있었는데, 거기서 하는 1년 코스 교육을 수료했어요. 그 후에 수강생들끼리 자율적으로 뭔가 해보자! 해서 답사도 다니고 막걸리도 마시고. 사이트도 만든 게 ‘배꼽’이에요.
  우리가 조직을 싫어해요. 백제 비류가 문학산을 ‘배꼽산’이라고 불렀는데, 인천은 한국의 배꼽이고, 배꼽은 태아가 아닌 인간으로서 독립성의 상징이잖아요. 그런 뜻이었어요. 2008년에 돌체 자리로 씨알이 소극장이 들어왔고, 문화단체 배꼽주인 활동 중에 참여했다가 지금은 극단 대표들이 다 나가고 2009년 12월부터 플레이캠퍼스가 되었어요.”

 

Q) 지역의 문화가 공적인 것이라는 것은 수긍이 가는데요. 그걸 자신의 일이라고 느끼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계기로 지역의 역사문화 활동가, 연출가가 되셨는지요?
 

  “저항이에요. 일단 인천에 살면, 상경하지 못하면 패배의식을 가지잖아요. 저는 부평 출신인데요. 서울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경쟁도 치열하고, 왔다갔다 하기도 힘들었어요. 그래서 2007년에 여기로 왔고. 더 중요한 이유는 배다리 산업도로 때문이었습니다. 내 정체성이 청계천 ․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청계천 헌책방이 사라지면서 문화생태계도 파괴되었거든요. 근데 배다리마저 없어진다니까 정말 안되겠다 싶어서 저를 비롯해 문화예술인들이 집결하게 되었죠.”

 


▲ 플레이 캠퍼스에서는 인천과 관련된 기획공연, 문화예술아카데미(인문예술강좌), 뮤지컬, 문화예술기행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사진 : 인천여성회관에서 어머님들 중심으로 결성한 ‘연극 마실’의 ‘레이디 수크루지’ 공연장면. 1기는 지역사회와 소통하기 위하여 모집 형식이었지만, 2기는 자생적으로 극단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활동 잠정 중단)

 


▲인천 중 ․ 동구를 걸으며 지역에 대해 알아보는 프로그램 ‘인천발품’

 

Q) 인천 출신 작가의 작품이나 인천을 배경으로 한 소설(영화)을 매개로 인천 이야기를 풀어내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관작이었던 <크리스마스 트릭>이 발표된 2010년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어요. 반공도시, 이념도시였던 인천에 대해 문학을 가지고 극본을 쓴 거죠. 흥행은 실패했어요.(웃음) 앞으로는 5명 이하로 등장하는 극본만 쓰겠다고 다짐했죠.(웃음) 계속 실험적인 걸 하고 있어요.”
 

  “한번은 인천여성문화회관에서 어머님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들이 나중에 플레이캠퍼스에 공연을 보러 오시고, 가족이나 친구를 데려오기도 하세요. 지역에서 하다 보니 그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에요. 그래서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지역 토양의 문화가 중요해요.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니까요. 세익스피어 작품만 봐도 그렇잖아요.”
 

  “인천 사람에게는 99년도에 일어났던 ‘인현동 화재사건’이 크게 각인되어 있어요. 세월호 사건이랑 똑같잖아요. ‘가만히 있어라’, 그리고 책임자는 도망가고요. 인천발품을 진행하고 맨 마지막으로 가는 데가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 주차장이에요. 인현동 화재 추모비가 거기에 있거든요. 사람들은 거기 추모비가 있는지 잘 몰라요. 유족들만 기일에 와서 헌화를 하시죠. 상처가 집단화되지 못하고 개인에게 떠넘기는 형태로 남은 거에요.”

 

                   인천에 산다는 것. 청춘이 말하다 TALK CONCERT
 

“지금 자본의 전략은 ‘분열시켜서 고립시켜라’에요. 예전에는 아이가 있으면 동네에서 같이 키웠지만 지금은 전부 돈이잖아요. 소비하지 않고는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요. 집단이 아닌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거죠.”
 

  “인천은 객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비중이 높아서 ‘누구 아들’이더라 하는 족보 세탁이 가능해요. 서로 동향이라는 것을 확인하면 연결고리가 생겨요. 지역에 있을 때 다른 지역성에서 동질감을 찾는 역설이죠. 이런 상황들이 뒤섞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마치 기획한 듯이) 인천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게 된 거죠. 성비와 나이를 맞추려고 신경을 많이 썼어요. 지금은 청춘들의 토크콘서트이지만 향후에 시인, 여성, 노동자 편으로도 계획하고 있어요.”
 

  “우리 생활 대부분의 공간이 아파트, 부동산, 자동차잖아요. 이제는 다른 방식의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직선, 속도, 효율 말고 생활의 장에서, 전문가 영역에만 있는 예술 말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 좋겠죠.”
  “4년간 해왔던 프로젝트를 보면 플레이는 화려했으나 캠퍼스는 초라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청년플러스가 생긴 이후로 캠퍼스에 주력하려 해요. 신포동에 있는 예술가들이나, 지역 상인들과 함께 그때그때 불신과 집중 과정을 거쳐서(웃음) 패밀리 아닌 팀으로 함께해볼 수 있겠죠.”

 

▲차기 교육 프로그램

 

Play campus

인천광역시 중구 경동 187-9

http://www.playcampus.com/

 

 

글 : 이광민(사업지원팀)

사진출처 : 플레이 캠퍼스, 인천시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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