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 : 30/07/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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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과 예술인이 함께 만드는 문화마을 <우각로 문화마을>

        ‘우각로'(牛角路)를 아시나요?     우각로는 남구 숭의3동 일대에 있는 길 이름입니다. 이 주변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의 이름이 […]
Written by: doo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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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각로'(牛角路)를 아시나요?  

  우각로는 남구 숭의3동 일대에 있는 길 이름입니다. 이 주변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의 이름이 ‘쇠뿔고개’인데, 우각(牛角)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주변의 모습이 소의 뿔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지요. 이 길은 거미줄처럼 마을 사이사이를 통과하는 작은 골목길을 포함해서 동구 창영동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특히 쇠뿔고개 일대는 7-80년대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인데, 산동네에 옛 가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모습이 특징입니다. 재개발 계획이 15년 이상 지연되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갔고, 지금은 10여년 전과 비교해 30%가량 인구가 줄어 1,600여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빈집과 공터가 늘어나 잇따른 문제들이 생겨났는데요. 지난 2011년 10월부터는 지역 예술가들이 마을에 들어와 문화예술을 매개로 주민과 소통하고, 주민과 함께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문화예술 활동을 기반으로 <우각로 문화마을>이 생겨나게 되었는데요. 오은숙 사무국장님과 만나서 동네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우각로 문화마을 위에 성채와 같은 거대한 건물은 ‘전도관’이라 불리는 건물이다. 전도관은 한때 인천의 랜드마크였다. 동인천, 주안, 개건너는 물론 앞바다 섬에서 인천 항구로 들어 올 때도 (희미하지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이 건물이었다.*

*‘골목 살아지다 – 숭의동’ 인용

 

 

 

전도관 규모가 상당해서 인상적입니다.

  “이 터는 원래 알렌별장이 있던 자리에요. 알렌이라는 초대 주한 미국공사가 고종에게 부지를 선물 받아 1890년에 2층 별장을 지은 거죠. 알렌이 떠난 뒤 1927년에는 개미학원이라고도 불렀던 ‘계명학원’이 들어섰어요. 일종의 야학이었죠. 한국전쟁 이후에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나온 사람들이 이 주변에 판잣집을 짓고 살며 촌락을 형성했어요. 이후에 열광적인 종교 집회가 크게 성장했는데, 그 영향으로 별장을 헐고 1957년에 전도관을 세웠다고 해요.

  70년대 말, 종교단체가 개인에게 건물을 양도하게 되었어요. 종탑이 벼락을 맞아서 파손되는 바람에 신도가 줄었다나?(웃음) 중간에 신발 공장이었다가, 다시 교회가 들어서기도 했지만 10년 전부터는 빈 건물이었어요. 건물주는 사후에 전도관을 사회에 환원하려 했는데 후손들이 법적 절차를 거쳐서 15명의 소유주가 갖게 되었고, 그러면서 이 동네 분을 관리인으로 모시게 되었다고 해요. 예술가들이 처음 왔을 때 전도관은 창고로 쓰고 있었는데, 폐허가 된 이곳을 조금씩 정리해 가며 가끔 행사가 있을 때 사용했죠.”

 

이곳은 어떤 동네였나요?

  “전도관을 중심으로 한 숭의동 109번지는 행정명으로는 남구지만 동구, 중구와 밀접한 지역이에요. 생활권에서 따진다면 행정적 분류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요. 예전에 이곳은 산동네면서 우범지역이었다고 하는데요. ‘강도나 도둑이 이리로 도망치면 못 잡는다.’거나, 택시 손님이 내려서 ‘집에 가서 택시비 좀 가져오겠다.’고 나가면 골목이 복잡해 결국 돈을 떼이고야 만다는 이야기 등등.(웃음) 주로 안 좋은 얘기가 많았죠.

  전국적인 재개발 붐이 일었을 때,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어요. 타산이 빠른 사람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자마자 집을 팔고 나가고, 투자를 목적으로 한 사람들이 들어왔죠. 하지만 지금까지 재개발이 지연되면서 사람들이 떠나기 시작했어요. 이 동네 집들은 몇 채씩 붙어 있는 형태라서, 한 집이 관리가 안 되면 옆집도 위험해져 골치였어요. 집이 오래 되서 자연적으로 붕괴하는 경우도 있었거든요. 그 밖에도 동네 온갖 큰 쓰레기가 빈집에 쌓인다거나, 학생들이 으슥한 곳에 들어가 본드, 가스, 불을 피우는 등 우려되는 상황들이 많았죠.

  하지만 여전히 주민들이 살고 계셨어요. 문제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대부분 생활환경 개선에 대한 대안 없이 살고 계시더라고요. 지붕에서 빗물이 새도, 벽에 금이 가도 애써 고쳐봐야 재개발이 시작되면 헛수고가 되니까요. 하지만 ‘적어도 재개발 전까지는 안전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술가들은 먼저 빈 집 주인의 동의를 얻어 무상으로 임대를 시작하고, 그 곳을 거점 삼아 활동을 시작했죠.”

 

▲ 예술가들은 동네의 오래된 가옥을 수리하고, 고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예술인들이 이 동네와 매칭되었나요?

  “지역에서 활동하던 여러 예술인들이 자신의 창작활동을 통해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었어요. 특별히 ‘지역을 구해야 한다’는 공명심 같은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공가문제를 비롯한 동네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인들이 공동 작업을 할 수도 있다는 이해가 겹쳐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어디까지가 우각로 문화마을인가요?

  “딱 정해놓은 것은 아니에요. 처음에 예술인들이 모여서 이름을 정할 때 아무래도 지역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 좋으니까 <우각로 문화마을>이라고 짓게 되었는데, 이곳은 원래 ‘숭의 1 ․ 3동’이나 ‘전도관 동네’라고 불리던 곳이었어요. 이제는 “아 거기! 우각로!” 하고 불리고 있어요. <예술가 단체>와 <마을>이 섞이게 된 부분이 있지만, 고무적이라 봅니다.”

 

사무국장님 개인은 어떻게 문화마을 만들기에 함께하게 되셨나요.

  “의제21을 통해 우각로 문화마을 만들기 이슈가 처음 나왔어요. 당시 저는 의제21의 간사였는데,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시작하게 되었죠. 저는 예술가는 아니고, 문화활동가 정도로 볼 수 있겠네요. 당시에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안됐는데, 제가 젊은 편이라 실무를 맡게 된 면도 있어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잠시 쉬기도 했지만, 다시 합류해서 일을 하고 있죠.”

 

▲ 동네에 마련한 쉼터 모습

 

예술가들에 의해서만 마을을 조성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함께하는 단위는 없었나요?

  “예술인들이라고 해도 거의 개인으로 참여했어요. 지금 우각로 문화마을의 회원은 35명이고, 주로 활동하는 분들은 17명 정도에요. 아직 주민들 중에서 회원이 되신 분은 안 계세요. 재개발조합의 입장이 동네에서 중요하고, 뜻을 같이 하는 주민들이 계시기 때문이죠. 동사무소의 역할이 컸어요. 집 주인들과 연락하면서 빈집을 확보하는 일을 도왔고, 리모델링을 하면서 나온 쓰레기를 치우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현재도 좋은 협력관계이구요. 남구의제21에서는 초기 행사를 한두 번 지원해 주고, 재개발조합과의 갈등을 중재해 주기도 했어요. 지금은 대부분의 마을 일을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어요.”

 

▲ ‘우각로 행복길’과 벽화 모습

 

주민분들은 동네가 ‘문화마을’이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처음 왔을 때 주민들의 욕구는 오로지 재개발에 있으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당시 이곳은 이미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었고, 사회적 분위기도 더 이상 개발은 비전이 아니라는 흐름이었죠. 당시 재개발 조합과 소소한 마찰이 있기는 했어요. 예술가들의 활동이 재개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보셨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자기 돈 써가면서 빈집을 고치는 행동 자체가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죠.

  ‘재개발 예정지역’으로 선정되는 것의 문제는 재개발 전까지는 ‘당장 필요한 것’에 대한 예산지원이 없다는 거예요. 어차피 개발로 인해 백지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죠. 이 동네에서 몇 년간 구청장님이나 시장님을 볼 일이 없었는데, 예술가들이 들어온 이후 문화마을로 인해 행정 인사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조합에서는 “시하고 같이 재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와 있는 것 아니냐”며 항의하시기도 하셨어요. 그런 과정이 예술가 개인들에게는 힘든 과정이었을 수도 있어요. 힘과 시간, 노력들이 들어가니까 당시 지친 예술가들이 많이 나갔어요.”

 

▲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우각로 문화콘서트. 지금까지 여섯 번 진행되었다.

 

 

주민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계신가요?

  “활동 초기 약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 외에는 아직까지 마을에서 크게 부딪히는 과정은 없었어요. 하지만 갈등도 소통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갈등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더욱 견고해지기도 하거든요. 연태성 대표님은 오래전 건설 쪽에서 일을 하셨는데, 예술인들이 소소하게 뚝딱거리는 모습이 소꿉장난 같으니까 오셔서 도구도 빌려 주시고, 장비도 대 주셨어요. 예술가들이 사심 없이 일하는 걸 알게 되자 협력해 주신 거죠.

  재미삼아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하시던 동네 어르신들도 예술가들이 마을에 입주해서 주민으로, 또 이웃으로 행사를 진행하니까 그 모습에 점점 믿음이 생기셨는지 자주 찾아오세요. 늘 부딪히고 갈등을 겪던 동네 주민들 가운데서 적극 참여하시는 분이 생겨나기도 하구요. 3년차쯤 되니까 이제는 먼저 와서 제안을 해 주시기도 해요.”

 

▲ 마을활동들. 좌측 상단부터 전시, 탈 수업, 마을영화 촬영, 마을합창단, 실버교실, 주전부리 만들기 모습

 

 

어떤 분야의 예술가들이 계신가요? 또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요.

  “예술가 풀로는 시인, 연극인, 배우, 가수, 안무가, 미술가, 목공예, 설치미술가, 사진․영상가, 독립영화 감독 등 20여분 정도 계세요. 힘을 모아서 빈 집을 문화공간, 도예공방, 작은 도서관,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만들었어요. 목공예방도 있구요.

  ‘행복창작소’는 우각로 문화마을 활동의 독립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예술인과 지역주민이 함께 만든 협동조합이에요. 마을을 가꾸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주민 모두가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도예공방 ‘자기랑’에서는 쇠뿔고개를 본따 마을을 상징하는 기념품을 제작․교육․판매해요.

  ‘우각로 행복길’이 있는 곳은 전경이 좋은데 경사가 높고 길이 울퉁불퉁하거든요. 이곳을 청소년 봉사단체 학생들과 함께 벽면을 깨끗하게 칠하고, 화단을 보수해서 길을 조성했어요. 그밖에는 2013년부터 ‘우각로 문화콘서트’를 열고 있어요. 이제 7차를 앞두고 있는데, 지난번부터 동네 거리로 나와서 진행하고 있어요. 7차는 주민이 주인공이 되는 자리로 꾸며보려 해요.”

 

▲마을 목공소(위), 도예공방 ‘자기랑’의 도예교실(하단 좌측), 쇠뿔 모양 화분(하단 우측)

 

작년에 1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 우수 향토자원 30’에 선정되었다고 들었습니다. 17개 시․도 145개 향토자원 중 ‘부평 나비공원’과 함께 인천을 대표하는 우수 자원으로 우각로 문화마을이 선정되었는데요.

  “하지만 그 기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는 못했어요. 물리적으로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해요. 관광기념품 공모와 관련해서도 선정되었지만 적극 홍보할 기회를 놓쳤어요.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2년차에 큰 결과를 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애초에 결과를 바라고 했다면 못 했을 일이기 때문이죠. 하다 보니까 된 거라서 얼떨결인 부분도 있었고요. 회원 대부분이 예술가라 조직이나 단체 활동에 취약한 면이 있어요. 내부적으로 역할분담을 잘 하게 되면 다음 기회도 찾아오겠죠?

  우각로가 브랜드화 되면서 외부에서 볼 때는 이곳저곳에서 도움을 받겠다라고 보시곤 해요. 하지만 프로그램 지원과 같은 한시적인 지원 외에는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요. 생활문화공동체 지원이 끝나는 내년부터는 운영비 확보가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올해 잘 준비해서 내년부터는 어떻게든 예술가 풀을 활용한 수익 구조를 만들려고 해요. 비영리단체는 수익사업이 불가능하니까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목공예방, 도예공방, 게스트하우스, 문화예술교육 부서로 운영하고 있어요.

  하지만 지원사업이 끝나더라도 우각로 마을은 계속 갈 거고. 비용이 없어 잠시 쉰다 해도 계속 갈 거에요. 어떤 분께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는게 일을 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느긋하게 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 우각로 문화축제 모습

 

  “우각로에 구경 오시는 분들은 옛날 향수가 느껴진다고 하시지만, 사는 사람에겐 굉장히 불편하고 열악한 곳이에요. 도시가스도 안 나오고, ‘연탄길’이라고 불릴 만큼 겨울이면 길이 얼어서 보행이 힘들거든요. 옛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서 주민들께 계속 이대로 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인 거죠.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주민들이 재개발에만 기대지 않으셨으면 해요. 주민 중에는 세입자들도 있거든요. 아파트가 생긴다 한들 이곳에서 살 수 없어 또다시 이런 곳을 찾아서 떠나야 해요. 불편한 생활은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거죠. 재개발은 언덕을 깎아 평지를 조성해 아파트를 만드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럼 소뿔고개 언덕도, 골목길도, 전도관도 없어지게 돼요. 재개발이 아닌 재건축의 형태로 ‘골목이 살아있는 동네’를 만들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모쪼록 주민들이 내가 살 환경은 사는 동안만큼은 재밌게, 안전하게 만들자는 의지로 마을에 활력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우각로 문화마을

남구 우각로 122번길 19(숭의동)

032-772-0109

http://cafe.daum.net/art422

사진 : 우각로 문화마을

글 : 이광민 (사업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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