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 : 09/0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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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기본법의 의의와 과제

– 마을기금 관련 중심으로 – 신용인(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Ⅰ. 주권재민과 마을기금 나랏돈은 누구 것인가? 우리나라 2021년 정부예산은 555조 8,000억 원에 […]
Written by: doo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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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기금 관련 중심으로 –

신용인(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Ⅰ. 주권재민과 마을기금

  1. 나랏돈은 누구 것인가?

우리나라 2021년 정부예산은 555조 8,000억 원에 달한다. 2019년 말 기준으로 국유재산은 1,125조 원이나 된다. 한번 생각해 보자! 이 엄청난 규모의 나랏돈은 누구 것일까? 헌법 제1조 제2항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는 국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랏돈의 소유자는 주권자인 국민이다. 하지만 정작 국민인 우리는 나랏돈을 소유하고 있다고 체감하지 못한다. 그저 그림의 떡처럼 여겨진다. 그 이유가 뭘까? 법적으로는 국민이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어떤 물건의 소유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 있어야 한다. 소유권이란 물건을 관리·처분·사용·수익할 권리를 말한다. 누군가가 어떤 물건을 자기 뜻대로 관리·처분·사용·수익할 수 있다면 그는 그 물건에 대한 소유권이 있다. 그럴 때 그는 그 물건에 대한 소유자인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인 우리가 나랏돈을 자기 뜻대로 관리·처분·사용·수익할 수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민 대신 정치가와 관료가 나랏돈을 관리하고 처분한다. 사용·수익은 궁극적으로는 국민이 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이 어떻게 사용·수익할 것인지도 정치가와 관료가 정한다. 국민 스스로는 나랏돈을 관리도, 처분도, 사용도, 수익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법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국민은 나랏돈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념적으로는 국민이 나랏돈의 주권자라고 하지만 법적으로는 소유자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국민인 우리는 나랏돈의 소유자임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린 그런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산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주권자의 모습인가? 국민이 재정주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나랏돈을 직접 관리·처분·사용·수익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인 우리는 나랏돈의 진정한 소유자이자 주권자임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의제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현행 헌법 체제하에서 나랏돈의 전부를 그렇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나랏돈의 일부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랏돈의 일부만이라도 국민이 직접 관리·처분·사용·수익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방법이 나와야 주권재민이 부분적이나마 실질적으로 구현되지 않을까?

2. 정부는 나랏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백번을 양보해 정부가 주권자인 국민을 대리해 나랏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국민인 우리가 구태여 나랏돈을 직접 관리·처분·사용·수익하겠다고 나설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정부가 나랏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는 왕왕 있다. 그 예를 몇 가지 들어본다.

(1) 일자리 예산

2021년 일자리 예산은 30조 5,000억 원이다. 현 정부 출범 이후 4년 동안 일자리 예산으로 무려 100조 원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정부는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하고 있으나 유감스럽게도 일자리 창출효과는 별로 없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2월 16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의 연간 데이터 분석을 근거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취업자 수는 2,690만 명으로 전년 대비 21만 8,000명이 줄었고, 지난해 실업자 수는 110만 8,000명으로 외환위기 당시와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또한 장시간 일자리는 감소하고 단시간 일자리는 증가하는 등 일자리 질도 더욱 나빠졌다. 코로나 사태의 충격 탓도 있겠지만 과연 정부가 일자리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되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패널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현 정부 출범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가 95만 명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작년에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 탓에 비정규직 근로자 숫자도 2019년에 비해 다소 줄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현 정부 때 비정규직 증가 규모는 박근혜정부 때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일자리 예산은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많다. 일자리 마련을 위한 정부의 재정투입은 단기 응급처방에 불과하며 장기적으로는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좀비기업만 양산할 뿐이라는 비판도 크다.

(2) 저출산 대책 예산

우리나라의 저출산 상황은 거의 재앙 수준이다. 출산율은 매년 계속 떨어져 2020년에는 0.84%까지 떨어졌다. 이제는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가 한 명이 채 못 되는 것이다. 이는 OECD 국가 중 압도적 꼴찌 수준이다. 출산율이 2.1명은 되어야 지금의 인구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절반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인구절벽의 위기를 맞이할 것이 분명하다. 정부도 저출산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매년 엄청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시행계획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년 동안 225조 3,00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저출산 대책에 투입했다. 2020년에만 40조 2,000억 원이 사용되었고 올해는 46조 원을 지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출산율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이 현금 지원 위주의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는 등 핵심은 건드리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는데 그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16~2020년)’의 재구조화를 위해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한 ‘재구조화 비전팀’은 2018년 10월 25일 정부의 저출산 대책은 출산율 제고에 급급한 나머지 단기적 성과에만 매몰된 ‘정책 실패’라고 진단했다. 정부 스스로 천문학적인 돈이 헛되어 쓰였음을 자인한 것이다.

(3) 국고보조금

2020년 국고보조금 규모는 86조 7,000억 원이다. 국고보조금이란 지방자치단체나 개인 등 국가 외의 자가 행하는 사무 또는 사업에 대하여 국가가 이를 조성하거나 재정상의 원조를 하기 위하여 교부하는 돈을 말한다. 국민 혈세로 운용되는 국고보조금은 꼭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나 부정수급 등 보조금 비리가 만연하여 ‘눈먼 돈’,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줄줄 새는 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에 정부는 중복수급을 방지하고 투명한 보조금 관리를 위해 2017년 7월부터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e나라도움)을 운용하고 있으나 절차의 복잡 등으로 불만의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국고보조금을 받은 개인이 사업에 성공하면 그 이익이 전적으로 사유화되는 것도 문제다. 발생한 이익 중 개인의 노력이 기여한 부분을 개인이 취하는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공적자금이 기여한 부분은 공공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 정의 관념에 부합한다. 따라서 그 이익 중 국고보조금이 기여한 부분은 환수하여 공공으로 귀속시켜야 한다.

(4) 국가균형발전 사업

우리나라는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단일국가다. 그런 탓에 사람과 돈이 수도권으로 질주하고 있다. 국토의 12%에 불과한 수도권에 총인구의 50%, 상장법인의 72%, 총예금의 70%가 몰려 있다. 이처럼 수도권 쏠림현상이 심각하니 지방 소멸의 위기감이 팽배하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국 시군구 및 읍ㆍ면ㆍ동의 40%가 인구 감소로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9년 1월 29일 국가균형발전 사업에 2022년까지 175조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중앙정부가 무려 175조 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 있으니 2022년 이후에는 수도권 쏠림 현상이 해소되고 전국이 고르게 발전하는 국가균형발전 시대가 열릴까? 유감스럽게도 회의적이다. 오히려 토건업자의 배나 불리고 전국의 땅값만 들썩거리게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국가균형발전이 어렵다면 그래도 175조 원의 거금이 뿌려지는 것이니 주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어떤 혜택이라도 생길까? 잘 모르겠다. 국가균형발전 정책 사업에 투입되는 175조 원은 모두 국민의 혈세다. 엄청난 돈이 결국에는 혈세 낭비로 귀결될까 걱정이 크다.

(5) 주권재민의 실질적 행사

전국에는 약 3,500개의 읍ㆍ면ㆍ동이 있다. 2021년도 일자리 예산 30조 5,000억 원을 전국 3,500개 읍ㆍ면ㆍ동에 고루 배분하며 읍ㆍ면ㆍ동마다 평균 87억 원의 돈을 만질 수 있다. 2020년도 저출산 대책 예산 40조 3,000억 원을 전국 읍ㆍ면ㆍ동에 고루 배분하면 읍ㆍ면ㆍ동마다 평균 114억 원이 배분된다. 국토균형발전 정책 사업에 투입되는 175조 원을 전국 읍ㆍ면ㆍ동에 배분하면 읍ㆍ면ㆍ동마다 평균 500억 원이 생긴다. 그 돈들의 일부라도 읍ㆍ면ㆍ동 주민이 직접 관리·처분·사용·수익하면서 해당 읍ㆍ면ㆍ동의 일자리 문제, 저출산 문제,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그 경우 주권재민이 부분적이나마 실질적으로 구현되면서 문제들도 풀려나가지 않을까?

3. 유토피아 마을 공동체, 마리날레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에는 인구 2,800명, 면적 25km2인 마리날레다 자치시가 있다. 마리날레다는 자치시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읍ㆍ면ㆍ동보다도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마리날레다 주민은 월 2만 원으로 정원이 딸린 50~60평 정도 되는 주택에서 평생 살 수 있다. 따라서 내집 마련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마리날레다에서는 완전고용이 이뤄져 실업률이 0%라고 한다. 따라서 실직으로 인한 생계 걱정도 없다. 이처럼 집 걱정, 실직 걱정이 없으니 마리날레다 주민 중에는 빚지고 사는 사람도 거의 없다. 부동산 문제, 일자리 문제로 힘들어 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꿈 같은 마을이다. 그런 까닭에 마리날레다는 ‘유토피아 마을 공동체’로 불린다. 그렇다면 마리날레다는 어떻게 그런 유토피아 마을 공동체를 이룰 수 있었을까?

​ 마리날레다는 원래 대지주의 수탈로 신음하는 가난한 농촌 마을이었다. 대지주가 농토의 대부분을 차지해 토지 없는 농민이 대다수였다. 실업률은 60%가 넘었고 마을주민들은 며칠씩 굶기를 밥 먹듯이 했다. 하지만 1975년 독재자 프랑코 총통이 사망하고 스페인에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지방자치가 실시되자 마리날레다는 놀라운 변신을 시도했다. 1979년 시장 선거에서 서른의 젊은 나이의 역사교사 출신인 후안 마누엘 산체스 고르디요가 당선되었다. 고르디요 시장은 주민들에게 대지주가 독차지하고 있는 마을 땅을 주민 모두의 땅으로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에 주민들은 고르디요 시장의 지도하에 국가와 대지주에 맞서 가두시위, 단식, 점거농성 등을 벌이며 12년 동안 땅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했다.

주민들은 수없이 구타당했고 체포당했으며 재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투쟁한 결과 드디어 1991년에 주민들은 마을 면적(25km2)의 절반에 가까운 12km2(약 360만 평)의 대토지를 자신들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스페인 정부가 그 대토지를 대지주로부터 구입해 주민들에게 공동자산으로 제공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그 대토지를 기반으로 협동조합을 만들고 직접민주주의를 실시하여 경이로운 유토피아 마을공동체를 구현했다. 이처럼 마리날레다가 유토피아 마을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투쟁을 통해 대토지를 마을공동자산으로 얻었기 때문이다. 마을공동자산인 대토지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마리날레다도 없었음은 명약관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마리날레다 같은 유토피아 마을 공동체가 가능할까? 현행법제에서는 불가능하다. 우선 읍ㆍ면ㆍ동은 법인격도 자치권도 없다. 지방자치단체인 시ㆍ군ㆍ자치구의 하부행정기관에 불과하다. 읍ㆍ면ㆍ동의 주민자치기구인 주민자치회 역시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런 마을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마리날레다와 같은 유토피아 마을 공동체는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다.

4.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 길

경제 정의의 핵심은 토지 정의이고 토지 정의의 가장 큰 걸림돌은 토지 사유화에 있다. 토지는 인간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토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인간은 누구나 토지를 평등하게 사용할 천부인권을 갖는다. 그러나 토지 사유화는 소수의 토지 독점을 초래해 토지의 평등한 사용권을 무력화시킨다. 또한 부동산 가격의 급등, 불로소득을 노린 부동산투기,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등은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커다란 좌절감을 준다.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 확실한 방안은 토지 사유화로 인한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처방을 통해 토지사용권의 평등한 보장을 실현하는 것에 있다. 그 근본적인 처방이란 바로 토지의 공동소유다.

토지 공동소유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토지 국유화다. 하지만 나는 토지 국유화를 절대 반대한다. 토지는 권력의 원천이다. 토지를 소유한 자는 권력을 갖는다. 따라서 토지 국유화는 국가에 거의 무제한의 권력을 준다. 그 경우 국가를 장악한 소수의 중앙 엘리트가 국민을 총체적으로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로 가는 길을 열 수도 있다. 한마디로 토지 국유화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혹자는 헨리 조지의 지대조세제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것도 한 방안이기는 하나 지대조세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세저항의 문제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지대조세로 거둔 세금을 국가가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도 의문이다.

토지사유화로 인한 폐단을 극복하는 근본적인 처방은 토지국유화가 아니라 마을기금을 통한 주민의 토지 공동소유다. 마을기금은 증세도 필요 없고 사유재산권을 침해하지도 않으면서도 토지 사유화로 훼손된 경제 정의를 회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이다. 이는 지역공동체가 부동산을 공동소유하여 젠트리피케이션과 양극화에 대응하고 개발이익의 지역 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여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이 가능한 내발적 발전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그렇다면 마을기금이란 무엇인가?

5. 마을기금의 개요

마을기금은 읍ㆍ면ㆍ동 주민이 총유적으로 소유하고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주민 공동자산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마을기금의 대강은 이렇다.

(1) 마을기금의 소유 형태

앞서 본 바와 같이 소유권은 관리권·처분권·사용권·수익권으로 나뉜다. 마을기금의 소유권 중 관리권과 처분권은 주민 전체가 갖는다. 반면 사용권과 수익권은 주민 각자가 갖는다. 이러한 공동소유 형태를 법적으로는 ‘총유’라고 한다. 이처럼 마을기금을 마을주민의 총유자산으로 보게 되면 마을기금의 관리 및 처분에 관한 권한은 주민총회에서 행사하고, 주민 개인은 정관 등이 정한 바에 따라 마을기금을 사용·수익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예컨대, 마을기금이 건물 1동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그 건물의 관리 및 처분에 관한 사항은 주민총회에서 결정하고, 마을주민은 건물 중 필요한 부분을 정관의 규정에 따라 정당한 임대료를 내고 임차하여 사용하고 그 임대료 수입은 마을주민에게 1/n로 배당하는 것이다. 이 경우 주민은 마을기금에 대해서 소유자 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돈 가는데 마음 간다고 마을기금의 조성·운용에도 관심을 크게 갖고 참여할 것이다. 나아가 마을기금이 매년 불어나 수천억 원 이상 적립된다면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가난해도 그는 부자다. 수천억 원 재산의 공동소유자니까. 또한 그는 공동소유자의 자격으로 마을기금에 자신의 복지를 요구할 수 있다. 예컨대 무주택자인 주민은 주민총회에서 마을기금이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해 적정한 임료를 받고 임대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맞춤형 복지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또한 연말에는 주민 모두가 임대 수익을 현금배당 받아 살림살이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2) 마을기금의 재원

마을기금의 주된 재원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출연금이다. 기부금 등도 재원이 될 수 있다. 물론 처음부터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마을기금마다 수백억 원의 출연을 하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처음에는 주민참여예산 등을 재원으로 활용하는 방식의 작은 규모로 시작하면 될 것이다. 그래서 주민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이 되면 점차 출연금을 늘리면 된다. 시작은 미약하나 나중은 창대해지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3) 마을기금의 조직

마을기금의 대표는 마을주민이 직접 선출한다. 그래야 대표가 마을주민에게 책임을 지고 마을기금 운용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마을기금 운용위원회는 15~35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되 절반 이상은 추첨 선발된 마을주민으로 충원한다. 최고의사 결정기관인 주민총회에는 마을주민 전부가 구성원으로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한다. 이 경우 주민총회의 회원 자격과 관련하여 주소 외의 연고, 예컨대 직장 등을 둔 주민의 경우도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 등이 쟁점이 될 것이다.

(4) 마을기금의 운용

마을기금이 조성되면 주민 스스로 그 기금을 활용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에 투자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마을기금으로 해당 읍ㆍ면ㆍ동의 부동산을 매입하여 공공임대주택을 조성해 집 없는 마을주민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임대한다. 그럼 마을주민은 구태여 내 집 마련에 등골이 휠 이유가 없다. 또한 공공임대상가를 조성해 마을상인에게 적정한 가격으로 임대한다. 그럼 마을상인은 임대료 인상이나 젠트리피케이션 걱정 없이 사업할 수 있게 된다. 한편 마을기금은 해당 읍ㆍ면ㆍ동 밖에 위치하는 부동산을 매수·임차·사용하지 못한다. 만일 이를 허용하면 마을기금 자체가 투기세력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마을의 자영업자에게 저리 신용대출 및 지분투자를 한다. 지분투자의 경우 마을기금이 배당 우선권을 갖되 마을 자영업자의 경영권은 보장한다. 법률·세무·노무·경영 등 전문 컨설팅도 지원한다. 이처럼 마을기금이 공공상가임대, 지분투자, 전문 컨설팅 등으로 지원한다면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에게 든든한 비빌언덕이 될 것이다. 나아가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마을에 적합한 재생에너지사업 등을 할 수도 있다. 마을기금에서 나오는 임대수익은 매년 지역 주민 전부에게 1/n씩 현금으로 배당한다. 읍ㆍ면ㆍ동 차원에서 기본소득이 시행되는 것이다. 그럼 마을주민의 호주머니 사정도 좋아진다. 코로나19처럼 마을에 재난이 생기면 마을기금으로 재난지원금을 지원할 수도 있다.

(5) 마을기금의 통제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법이다. 마을기금 역시 부패를 막으려면 통제가 필요하다. 마을기금의 일차적 통제는 주민총회가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칫 주민 이기주의 내지 주민 다수의 횡포로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가 및 지자체의 보충적 통제가 있어야 한다. 특히 마을기금의 주된 재원은 국가 및 지자체의 출연금이므로 국가 및 지자체의 통제는 불가피하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국가 및 지자체가 통제를 빌미로 마을기금을 하부행정기관으로 전락시키는 우를 범하게 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그 통제는 사전통제가 아니라 사후통제가 되어야 한다.

(6) 사회적 자산화와 차이

마을기금은 최근에 논의되는 사회적 자산화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사회적 자산화는 아직은 그 개념이 명확하게 정립된 것이 아니지만 일단 부동산 급등으로 인한 양극화와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제기되는 것으로 지역 내 시민, 사회적 조직 또는 공동체가 공동으로 부동산 등 자산을 소유하는 형태의 자산화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상 사회적 자산화는 민간주도형 자산화와 민관협력형 자산화로 나뉜다. 사회적 자산화를 추진하는 사례로는 민간주도형으로 광진주민연대, 해빗투게더 협동조합, 공공그라운드 등을, 민관협력형으로는 앤스페이스, 빌드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추진 중인 사회적 자산화는 재정주권의 실질화나 직접민주주의 실현과는 결을 조금 달리하는 탓에 아쉬움이 있다.

마을기금과 사회적 자산화의 가장 큰 차이는 해당 지역의 주민 전체를 공동자산의 소유 주체로 요구하는지에 있다. 사회적 자산화는 지역의 주민 전부를 주체로 요구하지 않으므로 지역의 범위를 구태여 읍ㆍ면ㆍ동 이하로 한정할 이유가 없다. 기초자치단체의 범위는 물론 광역자치단체의 범위에서도 주민 중 일부가 의기투합하여 사회적 자산화를 추진할 수 있다. 또한 그 형태는 공공형이라기보다는 민간주도형이나 민관협력형이 된다. 반면 마을기금은 주권재민의 실질화라는 이념이 강하게 작용하므로 마을주민 전부를 주체로 요구하게 되어 지역의 범위를 읍ㆍ면ㆍ동보다 더 넓게 잡기는 어렵다. 또한 마을기금의 재원은 사회적 자산화의 경우와 달리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출연금 등 주로 공적자금에 의해 마련된다.

6. 소결

​위와 같이 주민이 총유적으로 공동소유하고 자주관리하는 마을기금이 읍ㆍ면ㆍ동마다 설치·운용된다면 재정주권의 실질화 및 경제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을기금은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다. 일찍이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우리가 경제성장으로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더라도 인간성과 환경이 병들어 버린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는지 물었다. 경제성장은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인간의 행복은 건강한 인간성과 환경을 전제로 한다. 인간성과 환경이 병들면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따라서 경제성장은 인간성과 환경의 건강성을 전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한 경제가 인간의 행복이라는 본래 목적에 종사하는 경제가 될 것이다. 슈마허는 그런 경제를 ‘작은 것’에서 찾았다. 우리가 거대주의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작은 규모의 경제시스템을 유지할 때 비로소 경제는 인간성과 환경을 건강하게 만들며 인간의 행복을 위하는 모습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마을기금은 읍·면·동이라는 작은 지역단위를 기반으로 하며 작은 것의 경제를 지향한다. 읍·면·동마다 마을기금을 기반으로 다양한 마을기업이 생겨 자립적인 마을경제 생태계가 구축된다면 인간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는 경제가 작동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마을기금은 슈마허가 강조하는 인간 중심의 경제를 실현하는 제도이기도 하다.

한편, 마을기금의 성공은 주민의 민주적 참여와 효율적 운용에 달려 있다. 주민이 마을기금에 민주적으로 참여하고 효율적으로 운용하지 못한다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마을기금의 성공을 위해서는 제도적으로는 명실상부한 주민자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명실상부한 주민자치 없이 주민이 자율적으로 마을기금을 운용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또한, 마을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전문 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Ⅱ. 기본법안의 쟁점 검토

올해 들어 주민자치 관련 다양한 법률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지방자치법 일부개정법률안」 3건(김영배 의원안, 이해석 의원안, 한병도 의원안)이 발의되었고, 「주민자치기본법안」과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도 발의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 중 김영배 의원이 2021. 1. 29. 대표 발의한 「주민자치기본법안」(이하 ‘기본법안’이라고 한다)에 관하여만 살펴본다. 또한 기본법안의 내용은 다른 발제자가 설명할 것이므로 여기서는 ⅰ) 마을기금 관련 규정, ⅱ) 주민총회와 주민자치회 관계, ⅲ) 주민자치회의 구성과 회원, ⅳ) 행정사무의 위임ㆍ위탁, ⅴ) 전문지원기관과 주민자치협의체의 5가지 쟁점을 중심으로 기본법안의 내용을 살펴보고 필자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 마을기금 관련 규정

현행법제에서는 마을기금을 설치ㆍ운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부행정기관에 불과한 읍ㆍ면ㆍ동 단위에서는 주민 총유적으로 마을기금을 설치ㆍ운용할 수 있는 법적 주체를 생각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을기금을 설치ㆍ운용한다면 우선 주민자치회를 그 법적 주체로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주민자치회는 법인이 아니고 비법인사단인지 여부도 불명확하다. 하부행정기관으로 볼 여지도 있다. 주민자치회에 법인격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따라서 주민자치회는 자체적으로는 재산 및 시설을 보유하고 운영할 수 없고, 기부금을 받거나 수익사업을 할 수도 없으며, 별도의 법인을 설치하여 운영할 수도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역시 주민자치회에 출연할 수 없다. 결국 현행법상으로는 주민자치회가 주민 총유적으로 마을기금을 설치ㆍ운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본법안의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어 읍ㆍ면ㆍ동 단위에서도 주민자치회가 주도적으로 마을기금을 설치ㆍ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선 포괄적으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주민자치회에 대한 행정적ㆍ재정적 지원 의무(안 4조 2항)를 규정하고, 국가의 경우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를 활용한 재정적 지원(안 18조 1항 4호), 주민자치회 및 주민자치 활성화에 기여하는 법인에 대한 출자ㆍ출연(안 18조 1항 4호),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주민세와 주민참여예산 등을 활용한 특별회계의 구성(안 18조 2항 7호), 주민자치회 및 읍ㆍ면ㆍ동 주민자치 활성화에 기여하는 법인에 대한 출자ㆍ출연(안 18조 2항 11호) 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주민자치회를 법인으로 하고(안 10조 1항), 주민자치회는 특수목적법인을 설치 및 운영할 수 있고(안 10조 3항 5호), 특수목적법인 등에 대한 출자ㆍ출연을 할 수 있으며(안 10조 3항 6호), 기부금을 받고 수익사업을 할 수 있고(안 13조 3항), 재산 및 시설을 보유하고 운영할 수 있으며(연 1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국ㆍ공유 재산을 우선 매수하거나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다(안 21조 1항).

따라서 기본법안이 제정된다면 주민자치회는 특수목적법인 형태로 마을기금을 설치ㆍ운용할 수 있다. 또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출연금, 기부금, 수익사업 등으로 마을기금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나아가 해당 읍ㆍ면ㆍ동 지역의 부동산 매수나 임차, 국ㆍ공유 부동산을 활용해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한 주택임대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마을기금이 성공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정교한 제도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을기금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대표적인 학자로는 미국의 경제학자인 엘리너 오스트롬(Elinor Ostrom)을 들 수 있다. 엘리너 오스트롬은 스위스 퇴르벨 사례, 일본의 히라노·니가이케·야마노카 사례, 스페인의 발렌시아, 무르시아, 오리우엘라, 알리칸테 사례, 필리핀의 잔제라 사례 등 공유재를 지속가능하게 관리해 온 소규모 지역공동체 9곳에 대한 사례 연구를 바탕으로 공유재의 비극을 해결하는 제3의 방법으로 지역공동체의 자치관리를 제시했다.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상호 감시와 상호 제재를 통해 공유재를 자율적으로 관리할 때 공유재의 비극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자치관리의 성공 특징을 분석하여 이를 여덟가지 설계원리(design principle)로 제시했다. 그러나 기본법안은 여덟가지 설계원리 등 마을기금의 성공적 운용을 위한 제도설계를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 점에서는 기본법안은 부실하다는 평가를 면하기가 어렵다. 오스트롬의 여덟 가지 설계원리 등을 참작하여 마을기금이 민주적이고 공정하며 투명하고 객관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교한 제도설계를 하여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본법안의 부실한 규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2. 주민총회와 주민자치회 관계

기본법안은 주민총회와 주민자치회를 별도의 기구로 규정하고 있다. 즉 주민총회는 읍ㆍ면ㆍ동 주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서(안 제3조 제4호) 주민자치회의 각종 결정을 승인하는 등의 기능을 수행하며(안 제9조 제5항), 주민자치회란 읍ㆍ면ㆍ동 주민으로 구성되어 지역사회 문제해결 및 지역발전을 위한 풀뿌리자치 활성화를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집행기구로서(안 제3호 제3호) 사무국을 둘 수 있으며(안 제12조) 주민자치 사무 전반에 관한 사항을 관장한다(안 제10조 제3항). 하지만 법리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먼저 주민총회를 보면, 우선 하부행정기관에 불과한 읍ㆍ면ㆍ동에 주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를 둘 수 있는지 의문이다. 기초자치단체의 하부행정기관인 읍ㆍ면ㆍ동의 최고 의사결정자는 읍ㆍ면ㆍ동의 지휘감독자인 기초자치단체장이다. 그럼에도 만일 주민총회가 읍ㆍ면ㆍ동 주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라고 한다면 읍ㆍ면ㆍ동의 하부행정기관의 성격과 충돌한다. 주민총회를 읍ㆍ면ㆍ동 주민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두고자 한다면 읍ㆍ면ㆍ동에게 법인격과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본법안은 주민총회의 법적 성격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아 그 법적 성격도 애매하다. 주민총회를 읍ㆍ면ㆍ동에 두는 하부행정기구로 볼 것인지 아니면 별도의 비법인 사단으로 볼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다음으로 주민자치회를 보면, 기본법안은 주민자치회를 주민으로 구성되는 법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주민자치회의 법적 성질은 지역 사단법인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주민자치회 내에서도 사단법인의 구성원인 주민의 총의를 반영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사원총회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사원총회가 사실상 주민총회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기본법안처럼 주민자치회와는 별도의 기구로 주민총회를 둔다면 기능의 중복 등으로 혼선을 빚게 될 것이고 자칫 주민총회가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주민총회가 주민자치회의 총회가 아니라 읍ㆍ면ㆍ동 총회라는 것은 해괴한 발상이며 주민자치회 조직의 중추요 필수인 주민총회를 주민자치회와 분리하는 것은 주민총회와 주민자치회를 모두 기형적인 조직으로 만들어 주민자치를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따라서 주민총회를 주민자치회와 별도의 기구가 아닌 주민자치회의 최고의사결정기관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1. 주민자치회의 구성과 회원

(1) 주민자치회의 구성

기본안에 의하면 주민자치회는 주민으로 구성하며 법인으로 한다(안 10조 1항). 따라서 주민자치회는 법률의 규정에 의해 당연히 설치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읍ㆍ면ㆍ동 주민이 주민자치회를 구성해야 설치된다. 이 경우 주민자치회를 구성하기 위한 기준과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가 문제된다. 예컨대 주민이 해당 읍ㆍ면ㆍ동에서 주민자치회를 구성하려고 한다면 그 기준과 관련하여서는 소수의 주민만으로도 가능한지, 아니면 주민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요하는지, 아니면 주민 전원의 동의를 요하는지 등이 문제되며, 그 절차와 관련하여서는 통상의 법인 설립절차에 의해 구성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자치헌장인 Home rule 제ㆍ개정절차와 같은 절차를 거쳐 구성할 것인지 등이 문제된다. 따라서 기본법안에는 주민자치회 구성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최소한이나마 규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기본법안은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을 두지 않은 채 조례와 자치규약에 백지위임하고 있다(안 11조 5호). 하지만 이처럼 기본법안에서 주민자치회 구성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도조례에 백지위임할 경우 읍ㆍ면ㆍ동 내 소수 주민이 자치단체장과 결탁하여 주민자치회를 일방적으로 구성하여 폐쇄적으로 운영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따라서 기본법안에 주민자치회의 구성에 대한 기본적인 요건과 절차를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 경우 주민자치회가 주민대표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그 구성과 절차를 규정해야 할 것이다.

원칙적으로 본다면 주민자치회가 아니라 읍ㆍ면ㆍ동을 법인화하는 것이 옳다. 즉 읍ㆍ면ㆍ동을 헌법상 지방자치단체와는 별개의 특수한 공법인으로 하고 주민총회와 주민자치회는 그 공법인인 읍ㆍ면ㆍ동의 기관으로 구성하는 것이 정석이다.

(2) 주민자치회의 회원

주민자치회의 회원 문제는 주민자치회 구성과 관련된 문제이기는 하나 또 다른 차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기본법안은 주민자치회는 주민으로 구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안 10조 1항). 따라서 주민은 주민자치회의 구성원인 회원이 된다. 그 경우 주민자치회 회원의 범위가 문제된다. 만일 참여를 원하는 주민만 회원으로 하는 경우 주민자치회의 회원이 아닌 주민은 주민자치에서 소외될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주민자치회에서 회원 가입 조건을 달아 진입장벽을 만든다면 헌법상의 평등원칙 위반 문제도 발생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풀뿌리자치 활성화라는 주민자치회의 취지에 비춰볼 때 해당 읍ㆍ면ㆍ동 주민 모두가 당연히 주민자치회의 회원이 되어야 하고 이를 명문으로 분명하게 규정해야 한다. 하지만 주민 개인 의사와 상관없이 당연하게 회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 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 해당 읍ㆍ면ㆍ동 주민이 당연히 주민자치회의 회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점에 대한 정당성 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방안 중 하나는 주민자치회의 구성절차 중 해당 읍ㆍ면ㆍ동 주민투표를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 경우 주민 전부가 주민자치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4. 행정사무의 위임ㆍ위탁

기본법안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자치회로의 행정사무 위임ㆍ위탁 사항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여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안 제18조 제2항 제3호). 기본법안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중 읍ㆍ면ㆍ동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무는 주민자치회가 행정사무 위임ㆍ위탁 형태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상적인 형태로는 주민자치회가 읍ㆍ면ㆍ동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무를 위임ㆍ위탁이 아닌 고유한 자치사무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한 술밥에 배부를 수 없는 일이니 일단 위임ㆍ위탁 형태로 규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읍ㆍ면ㆍ동 사무의 이원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현행 읍ㆍ면ㆍ동의 행정기능 중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무가 아닌 사무는 읍ㆍ면ㆍ동장이 담당하고, 그렇지 아니한 사무, 즉 현행 읍ㆍ면ㆍ동의 행정기능 중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무는 주민자치회가 담당하는 것이다. 나아가 보충성의 원칙에 입각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중 현행 읍ㆍ면ㆍ동의 행정기능에 속하지 않지만 읍ㆍ면ㆍ동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무는 원칙적으로 주민자치회에게 위임ㆍ위탁하고, 주민자치회가 처리하기 어려운 경우에 한하여 지방자치단체가 보충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주민자치회장은 강화된 주민자치회 권한과 함께 위임ㆍ위탁 사무도 관장하게 되어 읍ㆍ면ㆍ동장을 능가하는 권한과 지위를 갖게 되므로 그 선출에 있어 주민 직선 등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5. 전문지원기관과 주민자치 협의체

기본법안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자치 활동 전반을 행정적ㆍ재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전문지원기관을 운영하거나, 주민자치와 관련된 기관, 법인 또는 단체를 전문지정기관으로 지정ㆍ위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안 19조 1항). 또한 전문지원기관의 지정 절차, 사무의 범위 등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안 19조 3항). 그러나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전문지원기관은 자치 잘못하면 주민자치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자치를 지도ㆍ통제하는 기관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주민자치는 고난도의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므로 전문지원기관은 필요 없으며 그럼에도 국가가 종합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전문지원기관을 운영하는 등 주민자치의 주체가 된다면 주민자치에서 주민들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비판이 있다.

주민자치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면 전문지원기관을 별도로 둘 필요 없이 주민자치회의 연대기구인 주민자치회 협의체가 그 역할을 맡으면 된다. 한편, 기본법안은 주민자치회의 협의체로 시ㆍ군ㆍ구 주민자치회 협의체만을 구성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안 15조) 시ㆍ군ㆍ구 주민자치회 협의체로 한정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시ㆍ도 주민자치회 협의체, 전국 주민자치회 협의체도 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의 영글랜드 지방의 주민의회 전국협의회(NALC)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영국에서 우리나라 주민자치회와 유사한 주민대표기관으로는 주민의회(local council)를 들 수 있다. 주민의회는 우리나라의 읍ㆍ면ㆍ동 또는 리에 해당하는 타운(town), 커뮤니티(community), 패리쉬(parish) 등에 구성ㆍ운영되고 있는 풀뿌리의회를 통칭하는 말이다. 영국의 잉글랜드 지방을 보면 약 10,000개의 주민의회가 있고, 약 100,000명의 의원이 주민의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잉글랜드의 경우 우리나라의 광역자치단체인 시ㆍ도에 해당하는 카운티 단위와 잉글랜드 지방 전체를 포괄하는 전국 단위인 2단계로 주민의회 협의체를 구성하고 있다. 즉 카운티 단위로는 해당 카운티에 속하는 주민의회를 회원으로 하는 41개의 주민의회 카운티협의회(County associations of Local Councils, CALC)가 있고, 전국 단위로는 잉글랜드의 주민의회들과 41개의 CALC를 회원으로 하는 주민의회 전국협의회(National Association of Local Councils, NALC)가 있다. 이하 NALC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NALC는 주민의회 및 CALC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주민자치 이슈 캠페인 및 관련 기관 로비, 법률ㆍ회계ㆍ경영 자문, 조언, 보험 및 보상, 전국대회 주관 및 교육 지원, 출판, 미디어 대응 지원, 주민의회 창설 지원, 주민의회 및 CALC 홍보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의 경우 주민의회 협의체인 NALC가 기본법안이 규정하고 있는 전문지원기관 이상으로 주민의회의 활동 전반을 다양하게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NALC의 구조가 민주적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NALC의 조직으로는 최고기관인 전국민회(National Assembly)와 각종 위원회(committees), 사무국(team)이 있다. 전국민회는 각 CALC에서 1명씩 선출한 주민의회 의원으로 구성되며 현재 모두 41명의 의원이 있다. 전국민회는 각종 위원회의 위원을 임명하고 NALC의 업무 전반을 관장한다.

따라서 전문지원기관 규정을 삭제하고 그 대신 영국 모델과 유사한 지역협의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시ㆍ군ㆍ구 주민자치회 협의체는 시ㆍ군ㆍ구 추첨민회로, 시ㆍ도 주민자치회 협의체는 시ㆍ도 추첨민회로, 전국 주민자치회 협의체는 전국 추첨민회로 각각 발전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협의체를 구성ㆍ운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Ⅲ. 마치며

기본법안은 읍ㆍ면ㆍ동 주민이 마을기금을 설치ㆍ운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점은 획기적이다. 나아가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기본법안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모순인 집중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앞서 본 바와 같이 몇 가지 간과하기 어려운 맹점들이 있다. 앞으로 활발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그런 맹점들이 지혜롭게 보완되기를 바란다. 필자 나름대로 다음과 같은 보완점을 제시하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첫째, 기본법안이 규정한 마을기금 관련 조항은 마을기금에 관한 정교한 제도설계를 바탕으로 보강되어야 한다.

둘째. 주민총회와 주민자치회는 통합되어야 한다. 즉 주민총회는 주민자치회의 최고의결기관이 되어야 한다. 나아가 주민자치의 정도를 걷는 방안으로 읍ㆍ면ㆍ동을 법인화하고 주민총회와 주민자치회를 읍ㆍ면ㆍ동의 기관으로 구성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셋째, 주민자치회의 구성에 대한 기본적인 요건과 절차를 규정해야 한다.

넷째, 주민자치회 관할 지역 주민 모두가 당연히 주민자치회의 회원이 되어야 한다.

다섯째, 지방자치단체의 사무 중 읍ㆍ면ㆍ동 주민 생활과 밀접한 사무는 원칙적으로 주민자치회로 위임ㆍ위탁하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주민자치회의 활동에 대한 지원은 전문지원기관보다는 주민자치회의 연대기구인 주민자치회 협의체가 맡는 것이 타당하다. 주민자치회 협의회의 구성과 운영에 관해서는 영국 모델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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