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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다솜> 서지윤 선생님 인터뷰
▲어린이도서연구회(이하 어도연)의 가장 큰 사업은 좋은 책에 대한 방향을 제안하는 일이다. 회원들이 직접 좋은 책들을 읽어본 뒤 서평을 담아 ‘좋은 책 목록’을 만들어 전국에 있는 공공도서관과 학교에 배포한다. 이전에는 산발적으로 전교조 사무실, 주민도서관 세미나실, 지역의 작은도서관, 구립도서관 등의 공간을 빌려서 진행했지만, 지금은 마중물 도서관이 거점이 되었다. 현재 어도연 남동지회의 다섯 그룹 중 세 그룹이 마중물도서관에서 만난다. “동사무소나 도서관 등에서 진행하는 평생학습 동아리로서 책읽는 엄마들 모임은 다른 곳에도 많이 있어요. 다만 모여서 책을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아이들, 학부모, 교사에게 책을 권하기도 하고, 독후활동이 책문화활동으로 이어지게끔 하려 해요.” 서지윤 선생님의 말이다.
Q) 마중물도서관이 지역사회를 위한 역할을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 동네 주민들만 공간을 중심으로 만나는 줄 알았는데 여러 단체에서도 함께 이용하는 것 같습니다.
마중물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지역주민들 중에도 어도연 회원들이 많다. 그리고 어도연과 상관없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평생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아이와 함께 오는 엄마들도 많이 있다. 그밖에 여성회에서 모임을 갖는다던가, <만월산동네신문> 발행을 위해 월요일 오전에 회의를 하기도 한다. 격주 월요일에 어른들 프로그램인 문학회도 진행한다. 고정된 이용층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공간을 이용하는 층위는 다양하다.
Q) 책과 관련한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리 세대는 어릴 때 책을 많이 접하지 않고 자랐다. 책을 사놓는 일도 자주 있지 않았고, 부모님이 읽어줄 짬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반면 요즘은 엄마와 아이들이 같이 책을 보는 것이 익숙하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하는데, 아침 등교시간 8시 30분부터 20분 동안 책을 읽어줄 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야기를 듣는 눈빛을 잊을 수가 없더라. 책읽기는 꼭 공부가 아니고, 읽고 나서 독후활동을 해야 하는 과업이 아니다. 독서가 순순하게 재밌는 것으로 다가갈 수만 있으면 읽지 말라 해도 자기가 재밌어서 (책만 놓여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책을 펼쳐보게 된다. 그래서 어릴 때 습관이 중요한 것 같다. 기회가 될 때 내 아이 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Q) 자녀가 장성하면 시기적으로도 어린이도서 연구의 필요도 떨어질 것 같다는 상상이 드는데, 오랫동안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요?
자녀가 유치원생일 때 시작했는데 이제는 대학생이 된 회원들이 많다. 관심의 출발은 ‘내 아이’였을 수 있겠지만, 권하는 대상이 어린이·청소년일 뿐, 유아·어린이·청소년에 이어 역량 강화를 성인 책도 본다. 나중에는 지역의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파급하고자 하는 책문화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많다. 어린이도서연구가 어린이 책에만 국한되어있는 활동이 아니기 때문에 지속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지역아동센터나 공공도서관에 있는 아이들에게 좋은 책 한권이라도 읽히는 게 우리의 소명인 것 같다.
Q) 책문화활동이 아직 낯설게 들립니다. 독후활동을 다양한 콘텐츠로 진행하는 것이라 알고 있는데, 책문화활동의 범위와 내용이 궁금합니다.
기존의 학교교육에서 독후감을 쓰라고 하면 아이들은 독후감이, 논술이 싫어 책과 멀어지곤 한다. 책문화활동은 내용이 무궁무진하다. 엄마와 함께 몸놀이를 할 수도 있고, 흙장난으로 시작해 찰흙공작을 할 수도 있다. 그밖에 요리, 전래놀이도 있고, 일본에 있는 가미시바이(그림 연극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장의 그림으로 구성하여 한 장씩 설명하면서 구경시킴) 프로그램은 액자에 그림을 넣어두고 한 장씩 빼면서 이야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PPT상에서 빛그림을 음악과 함께 슬라이드로 보여줄 수도 있다.
Q) 단순히 책을 읽은 것과 다른 효과가 생겨날 수 있나요?
책에 대한 촉매 역할을 할 수 있다. 책에 관심 없던 아이들이 그림자극을 통해 “책을 이렇게 접근할 수 있구나” 하고 느끼게 되는 식이다. 기존 활동보다는 다양하게, 놀이로 접근하는 것이다. 문화예술 활동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중심에 책을 두는 것이다.
Q) 동화책을 아이에게 읽어주는 과정에서 자녀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요?
아이는 책을 읽으면서 자기 경험을 토대로 느낌을 내뱉는다. 학부모나 교사들은 종종 제재를 시키는데, 이곳에서는 최대한 아이가 이야기하는 걸 듣고 공감하려 한다. 듣는 이가 있으면 아이의 정서를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한달까?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한번은 학교에서 <화장실에 사는 두꺼비>책을 읽어주는데, 한 아이가 자기 어릴 때 아버지가 밤새 화장실에 가두어 두고 벌을 세웠던 적이 있다며 울기 시작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책을 잠시 끊고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런데 아이 입에서 “아빠도 처음 부모님이 되어서 그런 것이고, 세상에 완벽한 부모가 없으니까 괜찮다”는 말이 나오더라. 그때 책을 읽는 과정에서 아이의 감정을 제지시키거나, 입을 다물게 하는 것이(물론 필요하겠지만)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함께 책을 읽는 와중에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할지언정 재미가 있으면 집중하고 있게 마련이다. 이야기는 다 듣는다. 아이들의 표현을 존중한다. 인위적으로 끄집어내거나 막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Q) 책을 매개로 한 이웃간의 공동작업이 어떻게 마을사업으로 이어졌나요?
항상 책만 많이 읽는데, 읽는 건 늘 하는 일이니, 책을 읽고 뭘 해보면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책다솜 모임을 시작했다. 직접 뭔가를 하는 쪽에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일련의 활동이 나왔다. 책다솜 모임에 참여한 엄마들은 10명 정도였다.
처음엔 ‘책읽는 엄마’, ‘책맘’ 등 여러 가지 나왔는데 순우리말이 간직한 온기랄까? 책다솜이라는 말이 지닌 좋은 느낌이 있다. 또 부르다 보니 입에 붙더라. <청소부>가 형이라면 <책다솜>은 동생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Q) 책다솜에서 진행한 프로그램들이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겠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릴 때 옛이야기를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니니까, 아이들이 다른 것을 접하기 이전에 우리 것, 우리 뿌리 속에 있는 한국 정서를 옛이야기를 통해 들려주고자 했다. 책이 아닌 들려주는 형식의 구비문학의 특성을 엄마들이 느껴보고 아이들에게 들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진행했다. <그림책과 옛이야기>에 대한 강의를 통해서 지역주민들이 그림책을 하나의 매체로 충분히 받아들이시게 되었던 것 같다. 요즘은 그림책이 어른과 아이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 자리잡았다. 북콘서트인 <그림책 콘서트>는 아이들이 책과 노래, 악기연주를 접목시켜서 진행한 콘서트였다.
학교에서는 <책읽어주는 엄마들> 활동이 있다. 엄마들이 명예사서 활동 외에도 그림책 읽어주기를 등교 후 2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을 활용해 읽어주는 것으로 파급된 것이다. <갯벌체험>은 소래습지에 가서 해설사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습지박물관 관람과 함께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경험했다. 알고 보는 것과 그냥 보는 것은 다르다. 숲에 가서 마을 역사 이야기를 나누고, 만월산고개에 대해 듣고, 도롱뇽이 서식할 수 있는 생태가 왜 필요하고 유익한지 아는 것 등 좋은 교육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Q) 동네 이웃들과 함께했던 일중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그림책놀이 전시회>같은 경우는 이웃과 같이할 꺼리가 많았다. 커다란 광목천에 걸개그림을 크게 그려서 진행하는 파트와, 각자 작은 조각천에 그림을 그려 와서 재봉틀로 연결하는 파트로 진행했다. 그밖에 그림책 인형파트에서는 ‘줄줄이 꿴 호랑이’라는 책을 읽고 옛날 집, 아이, 호랑이, 참기름 먹인 강아지를 직접 만들어보았는데, 동네 분들이 많이 참여하셨다.
한번은 짚을 엮고 있는데 지나가던 할머니께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잠깐만 기다리라시더니 잠시 후 다시 오셔서 “이건 손에 침을 묻혀야 돼”라며 물기 없이 작업하던 초보들 앞에서 보란듯이 양 손에 침을 탁탁 묻혀 짚을 부드럽게 한 다음에 한참을 꼬아주고 가셨다. 그 작업이 금줄을 만드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새댁, 누가 애기 낳았수?”하고 물으시더라.(웃음)그런 경험들이 따뜻했다. 이웃 어르신과 만날 수 있어 좋았다.
Q) 관련 활동을 하시는 목표랄까, 강조하고자 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아이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이나 경험치를 작게 만드는 패턴. 그러니까 짜여진 일상 속에서 살게 하는 것들을 지양하고자 한다. A학원에 갔다가 시간 맞춰서 그다음 B학원에 가는 것이 육아의 측면에서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성적을 위해 짜여진 틀에 따라서 아이가 크는 것 보다는 멀리 보고 잘 자라도록 기대치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Q) 자녀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으신지요.
중3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와 함께 처음 독서활동을 할 때 이웃을 통해 ‘행복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는 말을 들었던 게 인상 깊게 남아있다. 길가의 흔한 보도블록 사이에 피어난 민들레꽃 하나를 봐도 예쁘다고 느낄 수 있으면 그렇게 바라본 자신이 행복한 것 아니겠나. 작은 것에서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는 것이 늘 마음속에 남아있다.
글 / 사진 : 이광민(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