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마을: 마주 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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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과 마을: 마주 닿다
백승훈(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청년특별위원회 위원장)
우리 마을의 청년은 다 어디에 있을까?
인천의 청년 비율은 약 28.4%로 83만 7천명의 청년이 인천에 살고 있다. 10명 중 3명 꼴로 청년인 셈이다. 우리가 길을 가다 하루 수백 명의 사람과 스쳐 지나간다고 했을 때 적어도 수십 명은 청년이다. 그러나 정작 마을공동체에서는 청년을 보기 어렵다. 우리 마을의 청년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단순히 ‘일하고 있겠지!’라고 넘기기에는 마을공동체가 체감하고 있는 청년의 빈자리가 크다. 청년이 마을공동체에서 활동하기 어려운 이유가 생업이 가장 큰 것은 맞지만 생업으로 모든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일하지 않는 시간대(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도 마을에서 청년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영역에서 청년의 빈자리에 대한 고민이 깊다.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위하여 청년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여도 청년과 맞닿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공동체를 설계할 때 미래지향적인 안목으로 방향성을 설정하여도 청년들의 욕구를 담기 어렵다.
청년이 마을공동체에 함께 할 수 있을까?
최근 교육부와 통일부가 발표한 ‘2022년 학교 통일교육 실태조사’에서는 통일에 ‘관심 없음/보통’으로 답한 청소년이 과반(관심 없음/보통 52.6%, 관심 있음 47.4%)이었다. ‘관심 없음/보통’의 비율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지만 결국 과반을 넘은 것은 유의미한 일이다.
이 통계발표를 보면서 ‘마을공동체’에 대한 청년의 인식도 비슷한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이 ‘통일’에 대해 답하듯 청년의 ‘마을공동체’ 인식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관심’이나 ‘감수성의 무뎌짐’에 가깝다. 효용이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런 경험이 부족할 수도 있고 다른 것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릴 수도 있다. 마을공동체가 청년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준 적이 없었을 뿐, 마을공동체가 청년에게 특별히 잘못한 적도 없지 않은가?
1인치의 벽
‘1인치의 벽’은 지난 2020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에서 언급되었다. 영어권 중심의 시상식에 대해 ‘자막’을 비유한 말이다. 대중문화가 이 ‘1인치의 벽’을 넘지 못하듯 마을과 청년 사이에도 이 작은 장벽이 있다.
첫째, 배려가 필요하다. 평일 낮에 모인다는 것은 ‘청년을 배제하겠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평일 낮 시간도 어렵게 정한 일정이리라 이해한다. 그러나 청년에게 평일 낮은 어렵고 쉽고의 문제를 벗어나 불가능이다. 초기 창업자, 취업자, 취업준비생, 학생 모두에게 ‘마을을 위해 시간을 내어주세요’라고 하기에 청년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요즘 청년에게 패자부활전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청년 담론에서 다양한 각론이 존재하지만 일단 중장년층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것만 알아두자.
모이는 시간문제를 타협한 사례를 하나 소개하자면 경기도의 모 청년위원회가 단순명료한 타협안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자체별 청년 기본조례에 따라 청년위원회를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필연적으로 행정/전문위원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게 된다. 명색이 청년위원회라 청년위원이 많게는 절반에 약간 못 미치게 위촉하여 구성한다.
경기도의 모 위원회는 청년들의 요구에 맞춰 평일 낮과 평일 저녁을 번갈아 가면서 회의를 연다. 행정/전문위원이 참여하기 좋은 평일 낮에 회의를 열면 다음 일정은 청년위원이 참여하기 좋은 평일 저녁에 회의를 여는 식이다. 회의 진행도 행정/전문위원 측 위원장이 한번 진행하면 청년위원 측 부위원장이 회의를 진행하기도 한다. 지난 회의의 결과는 회의록을 성실히 작성하고 다음 회의에 꼭 숙지하고 오는 것으로 숙의가 끊기지 않고 이어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행정/전문위원과 실무자는 야근이 부담스럽지만 청년에게도 저녁 시간은 소중하고 야근인 셈인 것이다. 단지 서로 이해와 배려로 가능한 타협안이다.
둘째, 경청이 필요하다. 청년의 목소리를 듣고자 각 영역에서 청년을 소위 ‘모셔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어렵게 모시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아들딸, 어느 가게 사장님 등 온갖 인맥을 동원하여 모시기도 한다. 하지만 어렵게 모신 청년이 회의에서 좋은 의견을 내거나 공동체에 정착하여 꾸준히 활동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경청의 부재’를 그 이유로 꼽고자 한다. ‘경청’이란 단순히 듣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청년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구색만 맞추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왕 어렵게 모신 청년, 제대로 경청해야 한다.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거나 의견을 내도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되면 청년은 더이상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디 가서 할 말 제대로 못하는 소심한 사람들의 모임’을 대변하여 조언하자면 회의의 가장 처음이나 가장 마지막에 청년에게 발언권을 주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청년의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회의진행자가 하는 나름의 배려지만 처음이나 끝은 부담스러운 순서다. 회의에 처음 참석하면 그간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어느 분위기에서 회의가 진행되는지 탐색이 필요하다. 탐색의 과정 없이 발언권이 주어지면 제대로 의견을 말하지 못하거나 원론적인 이야기 밖에 할 수 없다. 처음보다는 마지막이 그나마 낫지만 마지막 역시 이미 나온 의견과 겹치거나 유의미한 결론이나 정리하는 발언을 해야할 것 같아 부담이 된다.
가장 좋은 것은 회의 틈틈이 발언권을 챙기는 것이다. 조금씩 자주 주어지는 발언권이라면 부담을 덜어내고 이번에 별다른 의견을 내지 못해도 다음에는 좋은 의견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회의를 진행하면서 이런 부분까지 배려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마을공동체 모두가 회의 진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며 진행자 본인도 회의에 참여하여 다양한 의견을 내다보면 챙기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지만 건전한 토론이 민주적 공동체에 꼭 필요한 숙의의 과정이고 어렵게 모신 청년이 어려운 마음으로 참석한 자리인 만큼 좋은 의견이 나오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필요하다.
청년들의 욕구 엿보기
청년정책은 초기 서울에서 제안된 정책들이 지금의 전국적인 청년정책의 골자가 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서울에서는 다음의 4개 분야로 구분하였는데 ‘설자리, 일자리, 살자리, 놀자리’이다. 행정의 용어와 사뭇 다르다. 행정의 용어에 대응하자면 설자리는 참여/권리/사회안전망, 일자리는 취업/창업, 살자리는 주거/환경, 놀자리는 문화/예술/커뮤니티 등이다. 직관적이기도 하고 의제 중심적 접근을 하는 청년의 현실을 잘 표현하고 있다. 청년의 사고구조를 잘 반영한 만큼 연찬할 가치가 있다.
먼저, 눈에 띄는 단어는 ‘자리’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자리’를 ‘사람이나 물체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으로 정의한다. 청년정책이 사회에 대한 청년의 요구라고 한다면 청년은 우리에게 이렇게 호소하는 듯하다.
우리 마을에
‘제가 설자리가 없어요’
‘제 일자리가 없어요’
‘제가 살 곳(살자리)이 없어요’
‘누릴 수 있는 놀자리가 없어요’
사실 물리적 의미의 공간은 이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청년정책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청년정책을 공간을 통해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문제다. 공간조성과 유지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며 공간확보가 어려워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주민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우여곡절 끝에 조성한 공간이 교통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용이 저조하고 콘텐츠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면 지역주민과 청년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마을에서 청년에게 공간을 내어주면 어떨까? 마을은 교통인프라가 다소 부족할지라도 무엇보다 집과 가깝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다. 마을의 빈 공간을 내어줄 수도, 꽉 찬 공간을 내어줄 수도 있다. 집과 가까운 곳에 다양한 시설이 있고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면 나의 살자리는 14㎡(1인 가구 최저주거기준, 국토교통부 고시)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살자리가 된다.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공간에 있어서도 청년이 소비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가격과 상권부흥에 구원투수처럼 청년이 소비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낙후된 원도심이 활성화되어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면 기존 거주자 또는 임차인이 내몰리는 현상)의 주요 피해자가 청년임을 상기하자. 부동산 가격이 굳건한 곳은 청년시설 입주를 반대하고 원도심이나 상권 활성화가 필요한 곳은 청년시설을 유치하여 청년의 소비 여력을 흡수하고자 한다. 하지만 평소 청년이 찾지 않는 상권에 청년시설 하나 생긴다고 청년이 몰리지 않는다. 전국의 몇 가지 성공사례는 지역주민의 지지와 협력이 바탕이 되어 이룰 수 있었던 성과다.
물리적 공간과 함께 다른 ‘자리’도 중요하다. 설자리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중받고자 하는 욕구다. 청년을 과도기나 미성숙한 존재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다. ‘나 때는 말이야’하는 ‘라떼팔이’는 그만! ‘라떼’라는 용어가 대중화되었음에도 여전히 청년에게 라떼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청년이 인생 선배의 경험을 존중하는 만큼 청년도 존중 받고 싶어한다. 설자리는 청년 자체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소수자(약자)에 대한 존중, 자립을 위한 지원까지 포함한다.
일자리는 마을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인천지역은 청년들이 서울로 출퇴근을 많이 한다는 것이 고민이다. 좋게 표현하여 타지에서 벌어 인천에서 소비하는 것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타지에서 소비하는 금액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인천지역에 애향심이 옅어지는 것은 장기적인 고민이다.
한편, 청년들도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경기도에 살면 인생의 20%는 길에서 보낸다’라는 말은 인천에도 해당한다. 긴 출퇴근 시간과 그로 인한 피로 누적, 교통비 등은 청년에게 큰 부담이다. 청년 역시 할 수만 있다면 집과 가까운 곳에 직장을 얻고 싶어한다. 산업 규모의 차이로 절대적인 일자리 숫자의 차이가 나지만 임금의 차이, 직장문화의 차이, 발전 가능성을 따지다 보면 타 지역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밖에 없다. 임금이 약간 적은 것은 교통비와 시간을 생각하면 감수할 수 있으나 직장문화와 발전 가능성은 지역사회와 기업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살자리는 앞서 언급한 물리적 공간 문제와 맥락이 비슷하여 갈음한다. 놀자리는 문화/예술과 커뮤니티, 콘텐츠를 포함한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세대인 만큼 문화나 여가를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도 강하다. 마을과 지역에 향유할 커뮤니티와 콘텐츠가 부족하다면 결국 서울로 갈 수밖에 없다. 많은 청년이 서울에서 직장을 퇴근하고 모임(커뮤니티)까지 하고 귀가하거나 주말에도 서울로 이동한다. 대형 문화시설이나 상업 시설에 비해 마을이 갖는 강점은 접근성과 커뮤니티성이다. 특히 접근성은 마을공동체가 청년에게 호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우리 일단 만나서 얘기해
‘다음에 한번 보자’,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로는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역사가 되려면 일단 만나야 한다. 인생의 소중한 인연들이 만나기가 가장 어렵듯이 청년과 마을도 만나는 것이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하다. 마을이 청년에게 기대하는 것이 있고 청년이 마을에 필요한 것이 있다. 서로 협력할 수 있다면 만났을 때 새로운 역사가 쓰인다. 현재 서로 너무 먼 관계를 조금 좁혀보자. 마을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청년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열어야 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듯 초기에는 청년을 보기 어렵겠지만 청년은 몰라서 못 온다. 있는지도 몰라서,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몰라서, 가도 되는지 몰라서, 가면 좋은지 몰라서 못 온다. 분위기를 탐색하는 중일 수도 있다. 포기하지 말자.
공동체의 일원으로 초대한다는 것
마을에서 청년을 찾는 이유가 단지 마을의 일꾼이 필요해서 찾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을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청년을 초대하는 것이다. 초대는 청하고 자리를 마련하고 환대하고 대우하는 것이다. 적잖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청년 역시 에너지가 소요될 것이지만 청년이 에너지를 내기 위해 마을공동체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 청년은 마을공동체를 모르거나 무관심하기에 일단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청년을 글감으로 썼지만, 청년에게만 해당하는 내용은 아니다. 상당 부분은 청년을 일반화시켜도 적용되는 글이다.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 발언권에 소외되지 않도록 하고 의견을 경청하여 공감하고 수용하는 것, 사회구성원으로서 필요한 것들 모두 일반화가 가능하다. 요즘 청년세대를 MZ세대라고 하며 MZ세대의 등장에 사회가 당황하고 있지만, MZ세대도 결국 사람이다. ‘요즘 애들은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어’는 2000년 전에도, 2000년 전의 전에도 존재했다.
정리하자면, 청년이 마을공동체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마을공동체가 새로운 일원을 초대할 수 있는 준비가 먼저 필요하고 적절한 홍보와 함께 기다림이 필요하다. 무관심한 청년들에게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시간과 에너지를 내게 하기 위한 기다림이다. 성과를 보채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는, 마을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장기 프로젝트다.
참고 사진
무료 이미지(https://www.unsplash.com/)
인천광역시 마을공동체 만들기 지원센터 웹진 99호 동시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