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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구 청학동 <짱뚱이 어린이도서관>
윤은영, 손민순 선생님이 들려주는 도서관 이야기
도서관이 생기다
“<짱뚱이 어린이도서관>은 처음 <늘푸른 어린이 공부방> 안에 있던,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책방이었다.(2003) 공부방에는 한부모 자녀 · 조손가정 자녀 등이 모여 공부하곤 했는데, 책이 점점 많아지자 마을의 어린이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공부방에 붙어있으니 사람들이 특정 대상만 이용할 수 있는 줄 알고 선뜻 오지 못했다. 그러다 한화아파트 경로당에서 방 하나를 내어 주셔서 장소를 옮기게 되었다.
경로당을 이용하는 노인 수가 적어지는 바람에 방 하나를 비워 주신 건데,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니까 어르신들이 피곤해 하셨다. 집에서도 시달리다가 밖에 나와서까지 아이들 떠드는 소리를 듣기 힘드셨다고.(웃음) 그래서 다시 나오게 되었는데, 이사 갈 곳이 없어 2년 정도 창고에 책을 쌓아 두게 되었다. 주민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포스코 · 사랑의 열매 공동기금의 지원을 통해서 현재 위치로 오게 되었다.
어떻게 책이 구심점이 되었을까?
이 근처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동네의 책이 공부방 쪽으로 모이게 되었다. 모인 책들은 그림책이 대부분이고, 이용하는 대상도 청소년보다는 어린이들이 많다 보니 공부방 친구들만 보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가 열악한 편이라 동네 아이들을 많이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것이다. 덩달아 공부방도 많이 알려졌으면 했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지만 아무리 책 보러 오라고 권해도 ‘빌라 내에 있는 공부방’이라고 하니까 문턱을 느껴서인지 선뜻 발을 떼지 못하셨다.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주택에 아이들이 모여 있으니 시끄러워서 싫어하는 분들도 있고, 여러 관점이 있더라. 그래서 도서관이 되면 더 많은 친구들에게 책을 보여줄 수 있고, 엄마들도 많이 오게 되니까 서로서로 만나서 도울 일 있으면 돕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분리하게 되었다.
짱뚱이 도서관?
작명에 특별한 뜻은 없었다.(웃음) ‘짱뚱이 어렸을 적에’ 라는 만화가 있는데, 만화 속 주인공 아이의 별명이 짱뚱이다. 짱뚱이가 콧물 찔찔 흘리던 옛날 어렸을 적 시절 이야기인데 되게 재밌다. 아이들이 이곳에서 발랄하게, 재밌게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었다.
예전에 아이들을 키울 때는 작은도서관에 찾아와 자녀를 돌보고, 책도 읽히곤 했다. 공공도서관처럼 면학 분위기로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작은도서관의 장점이다. 사실 어린이들은 도서관엘 가면 힘들어 한다. 늘 딱딱한 분위기라서 조용히 해야 하고, 규칙도 지켜야 하니까. 어쨌든 당시에는 도서관 숫자가 워낙 적어서 많이 늘어날 필요가 있었다. 지금은 그 숫자가 꽤 늘어났고, 공공도서관도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요즘 엄마들은 큰 도서관을 많이 선호한다. 예전처럼 찾아오지 않아서 고민이다.
당시는 7~8명의 동네 엄마들이 있었고, 지금은 4~5명의 엄마들이 도서관에 있다. 지역활동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작년부터는 인천여성회 부설로 등록하게 되었다. 이전엔 공부방 안에서도 그런 일들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공부방은 돌봄이 중심이라서 지역활동을 하기 쉽지 않더라. 지금은 여성회와 함께 활동가도 기르고, 공동체 만들기도 시작했다. 도서관이 크기는 작아도 일이 되게 많다. 그래서 자원봉사자만으로 일주일을 채울 수 없다. 상근자를 두면 좋은데 경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내용들을 여성회랑 함께하면 같은 고민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지금도 여성회를 통해서 자원봉사 선생님이 와 주신다.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상근자가 오고 두 번은 자원봉사자가 와서 도와주고 있다.
엄마들은 어떻게 만나고, 모이게 되었을까?
교육을 통해서였다. 연수구에서 진행하는 북스타트 양성과정이라는, 아이에게 좋은 그림책 골라주고 책을 읽어주는 방법에 대해 교육하는 강좌에 참여했다가 서로 만나게 되었다. 교육 이후 흩어지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쉬워서 “아이들에게 읽어주려면 엄마도 많이 알아야 하니까 함께 공부하자”하며 수강생끼리 모였다. 그러다 보면 수다도 떨고, 육아 얘기도 하고, 그림책 공부도 같이 하다 보니 책 읽는 연습이 되어 실력도 늘고 친분도 생겼다. 엄마들은 다 비슷하다. 애 키우는 것 외에는 사회생활과 단절되다 보니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점점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를 논의하게 되었다.
도서관에서는 무슨 활동을 할까?
<오른발 왼발(2008)>동아리는 중증 장애인이 있는 ‘밝은마음원'(구 명심원)에 찾아가서 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한다. <책 읽는 오케스트라>팀과 함께 가기도 하는데, 평생학습원에서 연습하는 ‘리조이스’라는 팀이 자원봉사자와 함께 가서 책을 읽어 주고, 연주를 전한다. <개구리네 한솥밥(2014)>동아리는 책 읽어주는 자원활동가 모임이다. 마을에 있는 어린이집 친구들이 단체로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도서관에 오면 책을 읽어준다. 올해는 <사자어금니>라는 팀이 활동한다.
마을역사·북아트 연구모임인 <소금꽃(2013)>은 마을 역사를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고, 책으로 만드는 활동을 한다. 청학동만 해도 500년 된 느티나무, 백제 유물·유적, 외국인 묘지, 능허대 등 역사자원이 굉장히 많다. 직접 찾아가 살펴보고, 자료도 찾고, 관련 책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직접 북아트(다양한 방법으로 책 만들기)를 한다. 처음에는 우리 동네 역사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인천 역사로 확장할 계획이다. 올해 ‘미추홀 옛이야기 들려주기’라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상하반기 각각 10곳씩 총 20곳의 어린이집 등에 가서 책 문화 활동을 할 계획이다. 책 내용을 가지고 극을 구성해서 빛그림(그림자극), 북아트를 한다.
초등학교 3~4학년 교실에서 인천의 역사 공부를 하기도 했다. 같은 책을 가지고 북아트를 해도 똑같이 나오지는 않는다. 학교에 찾아가서 교육을 할 때는 샘플을 놓고 비슷하게 만들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자기 생각대로 만들기 때문에 내용은 같아도 다양한 아이디어로 나타난다. 옛 수인선을 주제로 이게 왜 생겼는지,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나누기도 하고, 인천항을 주제로 진행하기도 했다.
거의 대부분의 활동을 마을사람들과 같이, 마을에서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지역에 맞벌이 부부가 많다 보니 엄마들이 아이 손을 잡고 직접 오는 것이 어렵다. 전래놀이 연구모임인 <놀이나무> 에서는 작년에 한 달에 한 번 <별난 놀이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동네 친구들이 다 모이게 해서 그때그때마다 전래놀이도 하고, 행사도 진행했다. 연수구에 있는 <시소와 그네>라는 영유아 통합센터와 함께 진행했다. 놀이나무와 북아트 활동을 섞어서 하기도 하는데, 책 읽기와 몸 쓰는 일을 같이 하니까 아이들이 좋아해서 꾸준히 하고 있다.
어떻게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확장될 수 있었을까?
명심원에 봉사하러 간 것도 “이런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직접 찾아가 조율하고, 장애인 교육을 받은 다음 시작한 것이다. 그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올해는 뭐 배우고 싶어?” 하고 자연스럽게 의견을 모으게 되고,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전래놀이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옛날에 놀던 기억만 가지고 중구난방 하지 말고 제대로 배워보자”는 의견이 나온다. 그럼 <(사)놀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가 있으니 문의를 해보자, 해서 강사를 요청해 3개월 정도 배우고, 이후에는 교육받은 엄마들끼리 주에 한 번씩 만나 아이들과 같이 해보는 식이다. 그러면서 엄마들에게 집에 있는 옛 물건들, 친정에 있는 것까지 가져오라고 해서(웃음)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맷돌을 사용해서 두부나 화전 등을 만들어 먹고 그랬다. 역사공부, 북아트도 이런 흐름으로 갔다.
이런 과정에는 비용이 따른다. 엄마들 개인이 일일이 부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도서관에서 사업을 내보자” 해서 활용하곤 한다. 그래서 도서관 다니는 엄마들은 혜택을 많이 보는 편이다. 공공도서관에서는 책만 빌리고 끝인데, 작은도서관에서는 책은 하나도 안보고 놀다만 가고(웃음) 수다 떨고 떠들고, 먹기도 하고, 편하게 아이들 데리고 와서 만나고, 교육도 받으니까. 우리도 그런 케이스다. 엄마들과 동아리활동을 하면서 책도 읽고, 연구도 하면서 동네 아이들에게 알려주기도 하는 과정에서 많이 성장했다.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엄마들
그러면서 나도 많이 성장했다. 맨 처음에는 “어떻게 우리 아이 똑똑하게 잘 키울까” 하는 마음에 책을 잘 읽히는 것만 고민했다면, 같이 배우는 과정에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다 보니까 자격증도 받게 되고, 마음 맞는 엄마들과 교육 품앗이를 하기도 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나도 변화하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내가 잘하는 것이 이거구나” 라고 느끼고, 행복감을 느낀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른 것 같다. 만약 우리 애만 위해서 책을 읽다가, 아이가 이제 다 컸으니 이제 그만 도서관을 딱 끊었다면 지금처럼 내게 이런 재주도 있었는지, 내가 이런 것도 재밌게 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 같다. 책을 읽어주고, 놀이활동을 하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고 할까? 나는 아이가 크고 나서부터 조금씩 도서관 활동을 한 케이스인데, 그게 나와 잘 맞았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할머니가 되어서 계속 해도 좋겠다.(웃음) 사실 보람만 생각하면 오래 못한다. 나도 좋으니까 지금까지 10년간 오게 된 것 같다.
남의 아이지만 내 아이처럼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더 따뜻한 마을공동체가 될 것이다. 추운 겨울 길을 걷는데 옷깃을 채 여미지 않은 동네 아이를 발견했을 때 매무새를 잡아 주는 어른, 그런 마을이라면 참 좋을 것 같다. 마을 안에서 도서관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해관계가 없어도 계속 할 수 있는 힘
동네에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엄마가 공부방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찾아왔었다. 찾아올 때마다 전 도서관장님이 항상 책을 읽어 주셨다. 처음엔 소통이 안 되고, 고집도 세니까 쉽지 않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재미를 느꼈는지 아이가 점차 변해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오른발 왼발>활동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명심원 친구들은 자기 맘대로 몸을 쓰지 못한다. 지적장애도 있고. 그런데 우리가 가면 되게 반가워하고, 우리가 <오른발 왼발>이란 걸 알고서 따라 불러주고, 처음에는 전혀 기대도 못했던 그런 과정들에서 아이들이 눈빛으로, 손짓으로 우리를 되게 반가워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책을 읽어주면 듣는지 안 듣는지, 얼마나 이해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는걸 보면, 교감이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기까지 한 2년 걸린 것 같다. 1년째에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우리가 원맨쇼 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근데 2년이 지나니 점차 생기가 느껴진다. 놀라운 경험이다.
사실 매월 그렇게 찾아간다는 것 자체는 참 힘든 일이다. 하지만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게 특별한 것 같다. 그 친구들이 항상 우리를 기다린다.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대부분 작은도서관 활동이 비슷비슷한데, 우리가 오랫동안 해오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일이다.
요즘 관심하는 것들
현재 세월호 관련도서 기획전시를 하고 있다. <리멤버 0416>이라는 엄마들이 만든 단체에서 진행하는 일인시위에 짱뚱이 선생님들이 여성회와 함께 하루를 맡아서 나가고도 있다.
동아리가 계속 생명력을 가지고 유지되려면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다. 함께 공부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계속 같이 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놀이나무>를 진행하면 아이들은 한 시간씩 뛰어 놀아도 지치지 않는데, 어른들은 정해진 시간이 있으니까 아이들이 더 놀고 싶어 해도 한 시간만 하고 오곤 한다. “아이고 저렇게 뛰어놀 수 있는 아이들인데 공간 시간이 없구나.” 싶어서 그런 계기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지속할 수 있는 기반,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예전보다 아이들이 많이 북적대지 않아서 아쉽다. 마을 아이들이 많이 이사를 간 건지 아니면 집에서 공부만 하는지 줄어든 느낌이다. 방학 때도 마찬가지다. 작은도서관은 북적대야 하는데..
옛날보단 작은도서관이 활성화된 편이다. 다만 이용하는 주민들은 편한걸 아는데 행정기관 같은 곳에서는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웃음) 도서관 엄마들은 전부 자원봉사자인데, 프로그램 진행에 따른 재료비용 등의 마련이 지원 없이는 어렵다. 회원 구조의 한계가 있어서 외부 강사료 수입 등을 도서관에 기부해 가며 하는데 쉽지 않다. 공간 유지비용 등도 큰 부담이라, 자생구조가 필요하다. 지속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전문 사서가 지원되는 것도 아니라서 새로 도서관을 시작하는 분들은 힘들어 한다. 짱뚱이 엄마들이야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준 사서가 다 되었지만, 인력적으로나 경제적인 지원 기반이 있으면 한다.
도서관 앞에 있는 놀이터는 처음엔 방치되어 있었다. 어른들이 와서 술을 마시기도 하니 아이들은 무서워서 낮에도 잘 놀러오지 않는 공간이었다. 우리가 오면서 청소도 하고, 연수구청에 건의해서 깨끗하게 정비도 하고, 이름도 터널공원에서 이야기공원으로 바꿨다. 동네 주민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잘 활용되길 바랐다. 그래서 ‘별난놀이터’도 진행하고, 연극공연, 책읽어주기, 전래놀이, 운동회, 여름에는 물놀이도 했다. 올해는 구청 상황이 나빠져서 사업도 진행하지 못하게 되어 아쉽다. 이게 도서관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여러 단체가 분담해서 역할을 맡아 왔는데, 구 상황에 따라 단체들 활동도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계획을 못 세웠다. 안타까운 일이다. 많이 모일 땐 엄마들까지 백 명이 모이기도 했는데. 도서관이나 놀이터처럼 동네에 있는 자원들이 잘 활용되어서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한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사진 : 이광민(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