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 : 28/11/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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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배우고, 함께 돌보는 <해맑은 공동육아 연구회>

    함께 배우고, 함께 돌보는 공동체 ‘해맑은 어린이집·초등 방과후’     11/20일,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해맑은 공동육아 연구회’에 찾아갔습니다. […]
Written by: doog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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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배우고, 함께 돌보는 공동체

‘해맑은 어린이집·초등 방과후’

 


  11/20일, 계양구 계산동에 있는 ‘해맑은 공동육아 연구회’에 찾아갔습니다. 자두, 과꽃(아이들이 붙여준 별명)을 만나서 공동육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단순히 생업 때문에 육아가 힘들어 공동육아를 하는 것을 넘어서, 자녀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민주교육, 생활 ․ 생태교육, 관계 중심의 교육을 고민하며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방과 후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내곤 합니다. 그 외에 갈 곳은 소비를 위한 공간들이나 행정적인 공공시설이 대부분인데요. 과꽃 님은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라는 말처럼 육아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마을과 지역에 대한 고민으로 번져갔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이러한 현실 속에서는 개별적인 어린이집이 아무리 잘 한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다.”고 덧붙이시며 “지금은 동네에서 함께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 삶을 나누는 것과, 학교가 아니어도 아이들이 언제든지 찾아가서 놀고 배우고 즐길 수 있는(그러면서 이웃 누구나 오갈 수 있고 심지어 뭘 하지 않아도 되는) 제3의 지점을 궁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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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 어린이 역사탐험대’ 사진. 역사탐험대에서는 선사시대부터 고대,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기까지 흐름에 따라 장소를 정해 답사를 다녔다. (사진 : 개항 이후의 역사와 관련해 개항장 일대를 돌아보고 숭의동 우각로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엄마와 아빠. 육아의 주인으로 나서다!

자두 : 해맑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1998년 3월에 개원했습니다. 벌써 17년이 되었네요. 당시에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곳이 없어서 고민하던 부모, 하루 종일 갇혀 있어야 하는 육아시설에 아이를 보내며 불안해하던 부모, 각박한 도심생활 속에서 자녀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계산동에 모여 1997년 9월부터 6개월간 준비한 결과였어요.

과꽃 : 일정 보육료를 내고 아이를 맡기는 기존의 시설과는 방식이 조금 달라요. 공동육아는 조합원 부모가 출자금을 내고, 직접 운영하는 형태거든요.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머무는 ‘방’을 기준으로 한 ‘방모임’, 정기/임시총회 등을 통해 의사를 표현하는데, 그런 것들을 토대로 어린이집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보육에 있어서 부모가 수용자가 아닌 주체 역할을 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들끼리 원칙을 세우고 협의를 통해 내용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일반적인 어린이집처럼 원장님 한 분에 의해서 결정되거나 하지 않는 것이죠. 영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자금이 아이들에게 반영되는 점도 특징이에요.

자두 : 어떻게 보면 일반 사설 어린이집은 부모가 해야 할 일을 돈으로 대체하고 있는 셈이잖아요. 이곳에서는 모든 역할을 조합원이 분담해서 해결해요. 이를 위해 매년 운영에 필요한 모든 역할을 부모들이 직접 일일이 선출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합원 3년차 이상이 되면 1번이든 2번이든 모든 역할을 해 보게 돼요.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를 함께 키우다.

자두 : 명칭은 ‘해맑은 공동육아 연구회’지만, 정관에는 협동조합임을 명시하고 있어요. 모든 조합원이 균등하게 출자금을 내고, 정식 보육기관에 대한 정부지원도 전체 내역을 뽑은 뒤 가구당 수로 나눠 똑같이 적용하고 있어요.

과꽃 : 우리가 자녀를 함께, 같이 키운다는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합의가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아이 3명이 있는 방을 교사 1명이 돌보든, 아이 10명이 있는 방을 교사 1명이 돌보든 육아에 대한 비용은 같게 적용해요.

자두 : 조합 형태이기 때문에 조합원만 아이를 맡기고 있어요. 조합원이라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니에요. 다양한 분들이 있어요. 계산동에 거주하지 않는 분도 계시구요. 교사비중이 좀 높은 편이고, 그밖에 각종 다양한 직업군에서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왜 공동육아일까?

과꽃 : 공동육아에서는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자’나 ‘백지 상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자기 세계를 능동적으로 만들어 나갈 능력이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어른들은 그 과정을 돕는 역할만 하죠.

자두 : 아이들은 타고난 성품대로 어울려 지내면서 자유롭게 일상을 보내요. 그러기 위해 생활 리듬도 아이들이 주도하게끔 하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더불어 사는 삶을 배우고, 자연 속에서 생태적인 감각을 기르는 등 통합적인 교육을 경험케 하고자 해요. 그래서 아이들이 여기 와서 하는 것은 노는 거예요.(웃음) 아침마다 자연 속으로 나들이를 가고, 자유롭게 노는 게 일과에요.

과꽃 : 어쨌든 공동육아는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보호해 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뜻이에요. 함께 어울려서 살아가자는 것이죠. 단적으로 요즘 아이들은 형제가 별로 없잖아요? 더불어 사는 삶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끔 키울 필요가 있고, 그걸 공동체 차원에서 실현해 갈 필요가 있다고 봐요.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은 사회의 미래 구성원을 건강하게 양육하는 과정이기도 하니까, 부모뿐만 아니라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죠. 사회의 모든 조직이나 집단이 육아의 책임자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일인 것 같아요.

 

구성원들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과꽃 : 가장 특징적인 것이 반말 문화에요. 자기 엄마한테 이야기하듯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반말을 써요. 거의 초창기부터 있던 공동육아의 문화인데요. 모든 사람들이 수평적인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부모·자식·형제 같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시작했어요. 서로를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부르는데, 아이들이 직접 지어줘요.

  또 보통 어린이집은 연령별로 딱 나뉘어져 있는데, 여기는 연령을 통합하기도 하고, ○○반, □□반이 아닌 ‘방’으로 그룹을 구분해서 자유롭게 드나들다 보니 경계가 잘 없고, 가정집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자두 : 부모들 모임에서도 마찬가지에요. 나이나 직업과 관계없이 서로 반말로 평등하게 모임을 가져요. 주로 만나서 많이 놀고(웃음), 회의도 하고 그러다 보니 아이를 키우러 왔다가 어른들끼리 어울리게 됐어요. 무엇보다 사람 간에 정이 생기고, 서로 이해하게 되니까 참 좋아요. 재밌고 신나야 하는 것 같아요. 활동 연차가 좀 오래 된 조합원의 경우에는 사람이 좋아서 계속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과꽃 : 그냥 문제가 있거나 좋은 행사가 있으면 수시로 번개를 쳐요. “오늘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하면 그냥 보는 거죠. 축구 모임, 반찬 모임, 독서 모임이 있었고, 몸살림이라고 해서 몸 펴기 생활운동이란 게 있는데 매주 몸살림 운동을 하고 있어요.(웃음)

  특별히 꺼리가 없어도 일상적으로 만나서 놀아요. 심야영화 모임, 아빠들 모임도 있고요.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데도 2~3시까지 회의하기 일쑤에요.(웃음) 방모임 외에도 우리끼리 토론도 하고, 조합원 교육을 하기도 해요.

자두 : 보통 자녀에 대한 일은 보육 교사나 당사자인 아이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이웃과 관계가 잘 형성돼 있으니까 서로 이야기해 주고 그래요. 그럼 내 아이지만 더 잘 알 수 있게 돼요. 아이를 바라보는 관점이 나와 이웃이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함께 키우는 게 아이에게 훨씬 좋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모든 사람이 교사와 부모의 관계, 부모 간 관계, 아이들끼리 관계, 아이와 다른 부모와의 관계까지 중요하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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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 어린이집 활동

 

어린이집 10년, 방과후 학교가 생겨나다.

과꽃 : 서울에 있는 ‘신촌 어린이집’ 이후로 전국에 60여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생겼어요. 인천에도 문학산 근처의 ‘너랑나랑 어린이집’, 검단의 ‘너나들이 어린이집’이 있어요. 해맑은도 처음 5~6가구가 모여서 시작하다가 규모가 커지자 확장에 대한 고민이 생겼죠. 그리고 어린이집에서는 18개월에서 7세까지의 유아만 돌보기 때문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한 다음에는 방과 후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이었죠.

  이런 필요로 인해 조합원들이 출자를 했고, 생태건축 기법으로 어린이집을 신축했어요. 좋은 환경, 바른 먹거리, 좋은 교육 속에서 아이-부모-교사가 함께 공동육아를 실현해보자는 취지였죠.

자두 : 2007년 7월에 기존 부지에 신축을 했고, 방과후 학교를 열었어요. 2011년에는 어린이집과 초등 방과후를 공간적으로 분리하게 되었고, 2012년에는 운영도 분리해서 독립적인 곳이 되었죠. 방과후 학교에는 현재 16가구가 참여하고 있어요.

 

육아에서 마을을 고민하다.

과꽃 : 보통 공동육아 어린이집 이후에는 대안학교나 발도르프 교육 등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좋은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거죠. 일반 초등학교로 진학하는 경우라 해도 아이가 중학생이 되면 입시에 적합한 학군/학교에 따라 이주를 선택해요. 이 동네도 여유가 좀 있다는 사람들이 청라신도시로 빠져나가면서 인근 초등학교는 평균 3학급/학급당 20명 정도만 재학하게 되었어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히 마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이주가 잦아질수록 동네 상황이 점점 열악해지는 건 여기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떠나지 말고 동네에 함께 살면서, 인근 학교를 중심으로 아이들을 키우자”고 생각을 나눴어요.

자두 : 처음엔 여기 사는 조합원이 몇 가구 되지 않았거든요. “공동육아 때문에 일부러 멀리서 아이를 데리고 오는데, 그러지 말고 같이 살아보자”고 이사를 권유했어요. 현재 조합원 가구는 총 37가구인데, 지금은 1/3 정도인 13가구가 여기에 동의하고 모여 살아요. 물론 어린이집 졸업 후에 초등 방과후를 얼마든지 결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냥 선택일 뿐이에요. 마을에 살면서 아이를 키우겠다고 자발적으로 온 조합원만 있는 거예요.

과꽃 : 옹기종기 모여 살자고 했지만 마을로 확장은 되지 않았어요. 부모님들이 대부분 맞벌이시거든요. 외벌이 가정은 1/10정도 될까? 여력이 잘 안 생기죠. 그래서 ‘아이를 키우려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공감이 돼요. 혼자 아무리 잘 해봐야 마을에 있는 공간들은 대부분 소비를 위한 곳들인 데다 아이들이 모이는 곳은 학원뿐이에요. 변변한 공공시설도 행정적이고요.

  그래서 여전히 이 안(조합)에서는 부족하다고 느꼈고, ‘마을에서 해보자.’ ‘공동주택을 해보자.’라는 생각에 서울의 ‘성미산’이나 ‘소행주 세미나’에 다녀오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거라도 맞아떨어지는 시기가 따로 있나 봐요. 아직은 어렵겠더군요. 지금은 학교가 아니어도 아이들이 언제든지 찾아가 놀고 배우고 즐기는 곳, 동네 이웃들도 있는 그런 곳. 특별히 뭘 안 해도 모일 수 있는 제3의 지점을 고민 중이에요.

 

일부러 시간과 품을 할애해야 함에도 계속할 수 있는 이유

자두 : 물론 함께 사는 것을 결정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다만 공동육아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내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실현하기 위한 어떤 의식적인 차원에서의 활동이니까요. 힘들어도 더 애를 쓰게 되는 게 있고, 아이들이 좀 더 건강하고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에 대한 고민까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 거죠.

  조합원 대부분이 ‘공동체 생활’에 대한 지향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아요. 그리고 자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말씀하세요. 교육도 학원 교육보다는 민주교육, 생활·생태교육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 해서 공부를 등한시하자는 것은 아니에요. 학교에서 충실히 배우되, 시험을 위한 반복 암기 교육은 지양하자는 거죠.

과꽃 : 보통 조합원들이 5년 정도 활동을 하는데, 아이가 취학을 하게 되면 공동육아를 떠나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역사가 오래 된 공동육아지만 조합 활동의 결과물이 축적되기 어려운 점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새로운 조합원들이 오면 조합원 성향에 따라 많이 변화하기도 해요. 모든 걸 논의를 통해서 결정하기 때문이죠. 정형화된 것이 없어요. 누군가 격렬히 반대하면 못 하는 거예요.(웃음) 아까 새벽 3시까지 회의를 한다고 했는데, 모두가 인정할 수 있도록 협의가 될 때까지 하기 때문에 그래요.

 

Q) 지금 학교 공부는 입시 공부가 대부분이라, 성과가 남는 것만이 좋은 것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학교 밖에서 얻어질 교육적 성과는 다를 것 같은데 아이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자두 : 지금은 방과후 학교에 19명의 아이들이 등원하는데, 몇 명 되지 않을 때는 하원지도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오는 것을 창피해했다고 해요. 다른 아이들은 학원 버스가 와서 싣고 가는데 엄마도 이모도 아닌 웬 어른이 오셔서 3-4명씩 데리고 가니까.(웃음) 남들과 달라서 싫었던 거예요.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학원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가도 친구들의 엄청난 스케줄을 보니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거겠죠. 물론 학교 숙제는 집에 가서 해야 되지만,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는 “나는 학원은 보내지 말아줘” 라고 말해요.

과꽃 : 방과후에 다니면서 또래 아이들과 알게 되면서 학교에 가도 어딜 가도 아는 언니오빠들이 층층이 있으니 학교가 동네 일부가 되었어요. 다른 아이들은 학원 친구만 있는데, 방과후 아이들은 아는 선후배가 많은 거예요. 이게 자부심이 되고, 여기서 하는 활동들이 다른 친구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어른보다 더 바빠요. 학원과 학교에서 몇 번씩 배우고 반복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소모하고, 정신적으로도 학대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초등학교에 근무해요. 요즘에는 사춘기가 빨리 온다고 하는데, 10여 년 전 교단에서 만난 아이들이 훨씬 더 성숙하고 친구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자기중심화 된 면이 많아요. 사춘기가 빨리 오면 일찍 성숙해져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거죠. 청소년기에나 시작되었던 경쟁이 앞당겨지면서 놀이를 빼앗기고, 쉬고 사색하는 시간이 사라진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어차피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안 커요. 그렇게 만들 수도 없고요. 아이들은 지식을 가르칠 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우는 것 같아요. 어떤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어른들이 선택하는 판단과 행동을 보고 태도를 결정하는 거죠. 가르친다는 건 별다를 게 없어요. 각자가 타고난 기질이나 특징이 있는데, 그런 개인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바라봐 주고 지지해 주는 속에서 자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어린이 시기는 지나고 보면 10년도 채 안되는데, 그 짧은 시간동안 어린이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누리도록 건강한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자유를 즐긴 사람이 언제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어요.

자두 : 말은 그렇게 해도 이곳 아이들은 외부의 요구로 인해(웃음) 학급에서도 워낙 책을 많이 봐요. 어른들이 학교 성적이나 공부에 대해서 안달하지는 않지만, 지적 수준은 우수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인관계도 좋고요. 무슨 일이 생기면 선생님한테 쪼르르 가서 이르는 것이 아니라 “야 일단 모여 봐.”하고 회의를 한대요. 그런 것들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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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양 어린이 역사탐험대 사진

 

‘계양 어린이 역사탐험대’ 활동을 시작하다.

과꽃 : 역사에 관심이 많던 아이가 있었어요. 지금은 6학년이에요. 학교 공부에는 딱히 관심이 없는 편이었는데 한국사 뿐 아니라 세계사, 그리고 통사까지 꿰고 있는 거예요! 역사탐험대는 한 아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답사 프로그램이에요. 그리고 이왕이면 동네에서 함께 해보자며 시작했죠.

자두 : ‘수강자가 모이면 강사를 붙여 주고 준비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현직 중학교, 초등교사를 포함한 3명의 어른이 자차를 가지고 운전하며 답사를 다녔어요. 역사 공부를 위해 박물관에 갈 수도 있지만, 답사는 가족들과 가기 힘드니까 웬만하면 답사지로 계획을 짰어요.

과꽃 : 인솔자는 현직 중등 역사교사인데, 전국 역사교사 모임에서 20년 이상 답사를 한 베테랑 멤버에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할 때 너무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최대한 쉽게 하려고 체험 중심으로 진행했어요. 구석기-신석기 시대는 아직 발굴이 덜 된 곳에 가서 애들이 한나절 내내 파헤치고, 발굴하고 그랬는데요. 뭐 하나 만지다 오는 데에 그치더라도 어떤 특정 공간에 가서 해설을 들으며 새로운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그런 거죠.

자두 : 아침 8시 반에 출발해서 5시까지 다니는 일정이니 어른에게도 힘든 스케줄이에요. 처음에는 강사비도 없고, 차량도 직접 운전하고, 식비, 입장료 등을 부담해야 해서 참가비로 충당했는데, 지원사업을 통해서 비용적으로도 효과를 보고, 전세버스를 활용할 수 있어서 편하게 다녀왔어요.

과꽃 : 어린이집이나 초등 방과후가 조합원에 한해서만 열려있다 보니 다소 공개되지 않은 형태잖아요. 역사탐험대는 두 시설과 관련 없이 진행된 프로그램이에요. 한 아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지만, 동네와 함께 하려는 장을 열고자 했어요. 접점을 만들고자 한 거죠. 프로그램 하나 반짝 연다고 갑자기 마을이 생기기는 않겠지만, 이게 가진 의미가 주변에 잘 전달돼서 하나 둘 관계가 생기고 저변이 늘어나다 보면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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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작성한 답사 사전과제/사후과제

 

Q) 현장학습이라는 구체적 감각이 가져다 준 교육적 효과는 무엇이었나요? 참가한 사람들의 소감도 궁금해요.

자두 : 고학년에게는 ‘찾아가는 학습’, ‘배움에 대한 열린계기’였다고 자평하고(웃음), 저학년에게는 하루 종일 밖에 나가서 논다는 것, 학습지 공부 안하는 날, 마을에서 노는 날이었던 것 같아요. 그 해방감만으로도 너무 좋아해요. 나중엔 “아! 거기서 봤던 무언가가 그거였구나!”하는 생각이 들겠죠? 운영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참 좋은 기회고, 알찬 내용으로 구성되었지만 부하가 많이 걸린다는 걸 느껴요. 내부에서 모든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게 힘들어요.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주도하는 선생님 한 분 힘으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년에는 다른 사람들도 결합해서 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교과서에는 드러나지 않는 역사적 장소를 직접 다녔으니까 자습서와는 비교가 안 돼요. 당시 어떤 일이 있었고. 무슨 과정이 있었는지 구체적으로 직접 보고 머릿속에 담아왔으니까요. 답사 과정에는 사전과제나 사후과제가 포함되어 있어요. 스스로 준비해 와서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거예요. 학예회 때 ‘가볼만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곳’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는데, 5학년인 딸이 답사지를 소개할 마음에 신이 나서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어요. 아이는 “다른 애들은 절대 모를 거야.”라며 “역사탐험대 하기를 잘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직접 준비한 것은 오롯이 자기 것이 돼요.

과꽃 : 외부에 홍보를 많이 하긴 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증서라도 발급해 주고, 하나라도 더 자극을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외부에서 볼 땐 그냥 놀다 오는 것 같으니까 가르치는 것도 아니라고 보는 거죠. 저희는 살아가기 위한 모든 걸 배운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다 보니 참여도 교육열이 굉장한 분들이 더 관심 있어 해요. 전천후로 아이의 경험치(커리어)를 높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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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제 3의 지대’

과꽃 : 아무튼 마을에서 어떻게 같이 해볼까? 라는 생각이 ‘제3의 거점’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두 기관에 포함되지 않는 동네사람들도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어요.

자두 : 요즘은 매달 머릿속으로 별걸 다 만들었다 없앴다 하고 있어요.(웃음) ‘왜 공간이 필요할까?’부터 시작해서 ‘공간을 구해보자’, 그럼 어떤 공간? ‘일반적인 사랑방으로는 한계가 있다’, ‘공동부엌을 만들자’고 해서 밥솥을 가져다 두고 반찬을 해서 같이 저녁을 만들어 먹는 곳을 생각해요. 차도 마시고. 자유로운 놀이터이게끔 해서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곳 말이죠. 그런데 공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아요.

과꽃 : 결국 마을 사람들과의 접점을 만들자는 것인데 언제든 들러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상황이 되려면 아무래도 상근자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그렇다고 누군가가 직장을 관두고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수익이 나는 찻집이라든가 마을기업처럼 동네 책방이나 동네 부엌 같은 쪽으로 생각이 가곤 해요.

자두 : ‘헌책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실을 맺게 될지는 아직 모르고 과정 중에 있어요. 이 동네가 문화적으로 많이 척박해요. 인천 중구나 동구에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것처럼 같이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과꽃 : 문화적으로 척박한 것 뿐 아니라 지역 자원이나 유관단체에서 관심이 없다는 것도 아쉬워요. 지역에서 같이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서로 뭘 하는지 잘 모른 채 지내죠. 그래도 이곳은 사정이 좋은 편이에요. 교사들이 마을에 관심이 많거든요. 마을사업과 학교를 연결시키는 것은 낯선 영역이긴 해요. 그렇지만 이미 동네에 마을을 만드는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는 상황은 좋은 것 같아요.

  한번은 내가 왜 여기에 오게 되었고, 마을 같은걸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다가, 고등학교 때 친구와 했던 약속이 떠올랐어요. “학교, 도서관, 학원을 빼고 우리를 반기는 곳이 어딜까? 우리가 크면 청소년을 위한 문화공간을 만들자.”하고요.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웃음) 그때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갈 곳이 별로 없어요. 학교에서 벗어나 있으면 아이들은 놀아야 되는데.. 부산의 <인디고서원>같은 공간들이 이 아이들에게 필요하고.. 이 인원이면 대안학교도 만들 수 있는데, 그것보다 공교육을 변화시키는 것이 수혜자도 많고 문턱도 낮고 훨씬 쉬울 거예요. 대안학교를 가지 않고 지금 학교를 바꿔보려고 혁신학교 세미나 등을 쏘다니고 있어요.(웃음)

 

Q) 그래도 입시로 귀결되는 전체적인 사회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두 : 그래서 학교를 바꾸는 것은 사회를 바꾸는 것과 같이 가야 균형을 맞출 수 있어요. 아이들이 장성한 다음에는 사회에 나가서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학교의 질이 바뀌어도 사회가 똑같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죠. 생각할 수 있는 아이로 잘 키워야 사회에 나가서 뭔가 바꾸려고 노력하겠지요? 그래서 학교를 바꿀 수 있다면 사회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조금씩 힘을 실어 간다면 미약하나마 조금씩 바뀌지 않을까 해요.

 

지금, 여기서 함께하기

자두 : 다른 지역 마을만들기 사례를 보면 마을에 쭉 정주한 사람에 의해 독자적으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 경우는 잘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 외부에서 들어온 각각의 역량들이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생겨났더라고요. 이곳은 처음부터 여기서 자발적으로 시작한 사람들만 있어요. 오로지 여기의 커뮤니티만 가지고 하고 있으니 한계에 봉착하는 측면이 있어요.

  우리끼리 역량을 쪼개서 나눠 쓰다 보니 피로도도 올라가고, 재미가 떨어지게 돼요. 그걸 타개할 무언가가 필요한 상황이에요.

과꽃 : 마을을 위해서 함께할 수 있는 장을 열고, 사람을 연결하는 것들을 해야 하는데, 구성원들 모두 각자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려워요. 여기에 인생을 걸 1명이 나타나서 상근자 역할을 하기를 고민하고 있어요.

자두 : 마을만들기가 어떻게 보면 간단한 것인데도 쉽지가 않은 게 ‘여기서 다함께 늙어 갈 각오를 하자. 우리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같이 살자.’라는 결심이 필요해서인 것 같아요. 온 국민이 교육에 따라서 이사를 다니니까. 우리라고 거기에 흔들리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는 거죠. 최소한 여기서는 삶을 함께 하겠다는 믿음과 약속이 있어야 삶을 걸 수 있어요.

과꽃 : 마을은 아이들을 다 키우고 나서 만드는 게 아니라, 더 좋은 학원, 더 좋은 학교를 찾아 가려는 욕심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야 가능한 것인데 우리가 오래토록 함께 있을 거란 믿음을 계속 만들어 가고 싶어요. 그래서 <부양협동조합>을 하자는 얘기도 나와요. 자녀들한테 “공동육아해서 너희를 다 키웠으니 너희가 크면 우리를 부양해라”는 거죠.(웃음) 아무튼 다 같이 모여 살자는 이야기에요.

  우리 같은 활동에 대한 소개를 듣고 “인천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어서 함께 하면 참 좋겠는데, 이 지역의 거주환경이 썩 좋지는 않아요. 선뜻 들어오기 힘든 조건인 거죠. 어떤 측면에서는 우리 사는 곳이 ‘주택을 이루고 있는 곳’이지 ‘마을’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기도 해요. 여기서 20년을 살았는데도 마을사람들을 잘 몰라요. 왜 마을이라는 느낌은 안 들까? 나는 그런 정서가 없고, 집에 있는 가정주부들은 마을이라는 마음 드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어떻게 하지?(웃음)

자두 : 지금은 상황이 많이 좋아졌지만, 이전의 선배 조합원들 같은 경우에는 갈등이 많았을 거예요. 끊임없는 고민 속에서도 공동육아나 초등 방과후를 쉽게 만들지 못했어요. 누가 졸업하고 어떻게 되었다는 사례가 없으니까 명확한 확신을 갖기 어렵잖아요. 여전히 끊임없이 흔들리지만, “우리가 가는 길이 옳다”라는 자족감과, 함께 있으니까 가능한 것 같아요.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 참 중요해요.

 

 

 

 

계양구 해맑은 공동육아 연구회
계양구 향교로 18번길 6-1 (032)546-2889
해맑은 어린이집 : http://haeya.gongdong.or.kr/
어린이 역사탐험대 : http://cafe.daum.net/gye-history

 

 

글 : 이광민(사업지원팀)
사진 : 해맑은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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