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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아름다운 우里마을
마을기업 ‘다락’ 최장미 이사장 인터뷰
학익동 인근에는 문학산, 법원, 인하대학교 등이 있고, 제2경인고속도로가 있어 교통이 편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락이 활동하는 신동아 아파트도 8차까지, 4천 가구나 되는 큰 단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학익동은 위치가 참 좋다. 전통시장, 터미널, 백화점, 법원이 다 가까운 데다가 유흥가가 없어서 살기가 정말 좋다. 그런데 딱 하나가 없다. 학원이다. 교육열이 높은 엄마들은 아이들이 청소년기가 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딜레마가 있다. 공부를 시키려면 다른 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키우려면 여기 있고 싶은 거다. 어떤 것이 우선이냐에 따라 엄마들의 선택이 달라진다. 우리처럼 그냥 잘 할 놈은 잘한다(웃음)는 생각으로 동네에서 버티는 경우도 있다. 젊은 엄마들은 이사를 많이 가는 편이다.
신동아 아파트는 1~8차까지 있는 큰 단지인데, 규모가 큰데 단지가 분리되어 있어서 어려운 점이 많다. 일례로 부녀회 같은 조직이 전부 따로 있어서 분리된 느낌을 준다. 다만 건너 건너면 온 동네가 서로 다 알 정도로 연결고리가 이어져 있다. 원주민들이 오래 살다 보니 자녀들도 터를 잡고 계속 거주하는 경향이 있다. 단순한 이웃이 아니라 인척 친척 관계로 엮여져 있는 비율이 높은 것이다. 그래서 4300세대임에도 아름아름 연결이 된다.
다락은 5~10년 전부터 자녀를 통해 이웃이 된 10명의 엄마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공통분모를 가지고 만났기에 이런 모임까지 이어질 수 있었나요?
다락의 엄마들은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에는 도서관이 활성화되지 않은 탓에 사서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들끼리 책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경력이 쌓이면서 가까워지게 되었고, “우리 엄마가 시골에서 양파를 키우는데 올해 작황이 좋다”등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그래서 좋은 것은 나눠 먹자면서 교류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때문에 유정란 공동구매를 가장 먼저 시작했다. 항생제와 촉진제가 들어가지 않은 건강한 달걀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판로가 없는 양계농장과 연결이 되어서 좋은 물건을 저렴히 공급받을 수 있었다. 하다하다 보니 마을기업까지 하게 되었다.(웃음)
그 전에는 동네에서 이런 일을 감행할(?) 단위나 활동 자체가 없었나요?
부녀회가 활성화되어 있었을 때는 부녀회 주도로 명절, 계절별로 식재료를 제공하긴 했었다. 하지만 입주 단위가 워낙 크다 보니 원활하지는 않았다. 지금 동네는 새로 입주한 주민과 원주민 간의 갭이 있어서 예전처럼 자생단체 활동이 쉽지 않다.
어떻게 마을기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나요?
계란 공동구매를 진행하다 보니 다른 농수산물이 보였다. 물품을 구매한 다음 동네 단지에 있는 선비공원이라는 곳에서 공동구매 형식으로 진행했다. 현재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BAND’를 활용해 20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어떤 물품을 언제 얼만큼 구매한다고 올려 두면 필요한 사람이 신청하고, 수령해 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공동구매는 함께 구입하면서 모두가 합리적이고 저렴하게 물건을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수고스러운 부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름아름 진행해 오다 보니 조금씩 믿음이 생겨난다. 그런게 참 중요하다. 갑자기 나타나서 “우리 모임 것이 좋다”는 식이 아니라, 아이들을 중심으로 만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힘든 건 사업으로 진행될 때 공적 이윤을 내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좋은 식재료를 먹기 위해서 물품을 구입한다면 제값을 주겠지만, 단지 잘 나누어 먹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터라 거래에 필요한 부자재나 공간 유지비용 등을 직접 부담하면서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윤을 남기지 않은 채 시작했다 보니 엄마들 마음이 약해서 이윤을 붙이기 보단 받은 대로 공급하자는 마음이 많다. 한 번에 쭉 성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고 품목이 늘어나다 보면 성장할 거라 생각한다. 앞으론 마진이 높은 품목을 골라야겠지.(웃음)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마진을 붙이면 다 안다. 알면서도 산다. 가격에 비해 물건 품질이 좋고, 가격도 괜찮으니까 사는 거다. 무론 응원하는 마음에서 사 주는 것도 있다. ‘지금은 잘 못 골랐을 수도 있지만, 다음에는 잘 골라줄 거야’ 하는 믿음도 있는 것이다. 마을기업도 기업이지만 신뢰나 믿음과 같은 것들이 쌓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하는 활동은 굉장히 소소하다. 예전에 골목에서 가족의 안부를 이웃에게 들을 수 있었던 것처럼, 그날그날 생활 이야기, 자녀들 이야기 등을 사소하게 나누고 이웃이 잘 되면 함께 기뻐하고, 힘들 땐 서로 다독이면서 격려하고 그러는 거다. 엄마 강사들이 리본공예를 하고 온라인으로 소식을 올리면 서로 댓글을 달아 반응을 한다. “이런 강좌가 좋았다”, “이번 레몬청이 맛있었다” 등과 같이 같은 작은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우리 활동은 작년 봄부터, 사업으로 진행한 것은 10월부터다. 일단은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유대관계가 생겼다는 것이 중요하다. 또 사업의 관점에서 진행하게 되면서 사업적 마인드를 갖게 되었다는 점도 어찌 보면 주부들에겐 성과다.
다락이 관심하는 주 사업인 <공동구매>, <공유경제>, <엄마강사>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공동구매>는 좋은 물품을 공동구매로 저렴히 사서 먹는 것이고, <공유경제>는 1년에 몇 번 쓰지 않는 녹즙기, 건조기, 세탁기 같은 큰 비용을 들여 사기엔 아까운 것들을 나누어 쓰고, 바꿔 쓰는 활동이다. 다락 공간을 플랫폼 삼아 물건이 오고갈 수 있다. 가장 활성화되어있는 품목은 책이다. 주로 학습지 같은 도서관에 없는 책들을 구비하고, 자녀가 학년이 올라갈 때 사용하지 않는 자습서 등을 돌려쓰곤 한다. <엄마강사>는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싶은 엄마들이 많은데 처음부터 전문적인 일을 할 수는 없다는 점과 주부가 되기 전에 전문적으로 하던 직장에 다시 취업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집안일을 하면서 경력이 단절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간단한 보습이나 취미 특기 활동을 나눌 수 있으면 각자 재료비만 준비해 와서 재능나눔 형식으로 배우고, 그렇게 쌓이다 보면 다른 곳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다.
조금씩 해 오던 것들이 발전해 마을기업이 되었다. 사무실도 생기고 생각도 확장되었는데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찾는 중이다. SSM과 기업형 슈퍼마켓이 동네에 들어서며 상권이 죽고 있다. 마을 안에서 물건을 소비하지 않고 바깥에 나가서 물건을 구입하면 여기 돈이 밖으로 빠져나간다. 앞서 신동아 아파트의 특징을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기왕 쓰는 돈이라면 이웃이 운영하는 가게에 유용하게 쓰고 내 가족에게 돌아오게 하는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동네가 계속 침체될 수밖에 없다.
교육의 측면도 마찬가지다. 이 동네 학원이 유지가 되지 않는 이유는 경제력 대비 학원 단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민의 니즈와 현실적 여건 차이를 주민강사 등으로 우리가 채울 수 있으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집에서 쉬는 엄마들이 자녀의 과외 선생님이 되어줄 수도 있다. 엄마들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해 강사 풀을 만들 수 있다.
공동구매 물품 품목은 어떤 것들을 다루시나요?
식품 중심으로, 해당 계절이 제철인 품목 위주다. 지금은 구정이 가까워졌으니 김이나 사골 같은 것들이 좋다. 절기에 맞는 계절상품을 계속 개발 중이다. 계절마다 상품을 바꿔야 한다. 여름에는 더치커피가 많이 나갔다. 마을기업 박람회에서 관계를 맺게 된 곳에서 조청을 납품받아 거래하기도 했다.
품목은 회원들이 함께 결정한다. 우리가 소비자겸 생산자고 판매자다. 농사짓는 집이 있거나 로컬푸드 물건을 구입해 가져다 판매하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다. 오가는 길에 조금씩 거래하자는 취지로 공급한다.
물품 나눔을 할 때 내가 녹즙기를 가져와서 필요한 집에 제공했다고 가정했을때,
기증이 순환이 되기 위해서는 내가 필요한 품목도 채워질 수 있어야 할 듯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버리자니 아깝고, 가지고 있자니 쓸모가 없어서 누구라도 주려고 하는 마음이 제일 큰 것 같다. 꼭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거래 같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책을 여러 권 기증하면 공간에 있는 책 몇 권은 무상으로 빌려갈 수 있게 해 주는 식이다. 여러 권 가져다 놓고 필요한 책 하나 쯤은 바꿔서 들고 가도 되는 그런 거다.
엄마강사 시간에 진행하는 초등학생 과학교실, POP 글쓰기 강사를 해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배운 게 있으면 다시 내가 알려줄 것들을 설명해 주고 하는 식이다. 엄마강사 한명 한명이 갖고 있는 장기에 의해 수업이 결정된다. 전통교육이나 예절교육을 통해 우리나라의 절기별 예의와 법도를 가르치기도 했다. 교육 후 아이들은 우리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부모를 대하듯 인사를 잘 하게 되었다. 교육은 꼭 부모나 선생님만이 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웃이 칭찬해 주면 말 한마디에 아이들이 변하기도 한다.
마을기업을 선택하면서 “그냥 한 달에 한두 번 힘들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만만치 않다. 하지만 매력도 있다. 집과 가까우니 일 때문에 아이들에게 소홀해지지 않을 수 있고, 급하면 집안일을 잠깐 돌보고 올 수도 있다. 여기에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면 우리 동네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과 소소하게 즐기면서 만날 수 있어 참 좋을 것 같다. 다만 어떤 것이든 자기 몸에 익숙해지기까지의 시간은 오래 걸리고 힘든 법이다. 지금이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항아리(항상 아름다운 마을)라는 이름은 신동아 아파트 내의 네트워크에 붙인 이름이다. 마을기업 이름을 다락이라고 지은 것은 락(樂)이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찾는 즐거움은 동네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지내고, 이웃끼리 신뢰하고 믿는 가운데 즐거움을 찾자는 것이다. 그렇게 주민들이 함께 즐거운 동네를 만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