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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 인문대학 4기 – 1강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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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기 주민자치인문대학 1강

제4기 주민자치인문대학이 입학식과 함께

드디어 1강이 시작되다

 

[정의, 그 힘과 도덕의 투쟁]

 

1강 무엇을 해야 옳은 것일까

강의 : 김만권 교수(연세대 정치철학)

 

입학식과 함께

지난 6월 첫날, <정의, 그 힘과 도덕의 투쟁>이란 주제로 제4기 주민자치인문대학이 부평아트센터에서 마을주민과 마을활동가들의 참여로 김만권 교수(연세대 정치철학)의 열강이 펼쳐졌다.

그동안 주민자치인문대학은 작년 두 차례의 1기와 2기를 통해 왜 마을공동체만들기인지에 대한 가치와 철학을 공부하고, 마을과 노동이 만나는 지점은 무엇인가에 대해 마을과 노동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올 해들어 지난 4월에는 마을의 풀뿌리가 될 수 있는 일상 민주주의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고, 이번 6월에 시작하는 제4기는 불평등하지 않는 민주주의로 가기 위해 정의는 무엇일까에 대해 함께 생각하고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먼저 이혜경 센터장의 인사말과 함께 인천 마을에서 온 송경순(여, 석남3동(거북이마을))씨를 비롯하여 교육참여자들의 자기 소개와 더불어 강의를 통해 무엇을 원하는지 학습동기를 나누고 서로 인사하는 시간을 갖고나서 김만권 교수의 정의론 ‘그 힘과 도덕의 투쟁’ 중 1강인 ‘무엇을 해야 옳은 것일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 사회의 최소수혜자의 이익을 증대시킬 때만

사회내의 불평등을 허용할 수 있다

존 롤스의 <정의론> 중에서

김만권 교수는 ‘정의’라는 주제가 무겁기도 하고 듣다 보면 더 헷갈리 수 있다고 하며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서도 사실 답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고 하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고,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정의란 문제가 크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정의란 무엇인가?’란 이 질문이 있는데 사실 답이 없어서 문제가 되고 그런 책이 나올 수 있다. 그래서 답 없음에 대해 좌절하고 어디론가 떠나버릴 것이냐, 아니면 계속 답 없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질 것이냐는 서로 다른 것이다. 그 답 없음에 대해서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고 본다. 답이 없다고 해서 버려버리면 세상을 유지하는 것에 정의란 것들이 생각할 겨를이 없어 소용이 없게 된다.”

고 정의에 대한 질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어서 정의론에 대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What is right thing to do?)>를 떠올리지만 사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고 하며 이 책보다 먼저 존 롤스가 23년 동안 집필한 <정의론>이 1971년에 나왔다고 했다. 마이클 샌델도 존 롤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도덕적 관념으로 정의론을 펼치고 있지만 사실 정의가 무엇인지 그 답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존 롤스는 <정의론>을 집대성한 학자로 당대의 자유주의 정치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정의에 대한 내용으로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한 답을 말하고 있어 당대의 핵심적인 정의론 이라고 했다. 하지만 존 롤스가 그 정의에 대한 답을 내놓았을 때 그 답이 맞는냐 맞지 않느냐에 대한 엄청난 논쟁을 지금까지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그리고 김만권 교수는 존 롤스의 3번째 책이자 마지막 책인 <만민법>을 한국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말하는 정의의 원칙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한 사회에서 최소수혜자의 이익을 증대시킬 때만 사회내의 불평등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론을 말할 때 사회내의 불평등의 문제를 다루었던 것이다. 롤스가 <정의론>에서 말하는 핵심적인 주제는 불평등을 허용할 수 없다가 아니라 허용할 수 있는 불평등을 찾아야 그것을 통해서 인간의 삶을 더 좋게 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다른 학자들과 발상 자체가 달랐다.”

 

고 전했다. 이 사상은 자유주의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그들에게는 관용의 가치가 자유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는데 자유조차도 평등하지 않으면 그 자유가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똑같이 기본적으로 자유를 평등하게 공유할 때 그 자유가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평등의 가치를 자유세계로 다시 불러일으킨 충격적인 사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상은 복지정의에 가장 기초적인 토대가 되어 후생경제학자와 복지정책에서 기본소득이란 개념도 나왔다고 했다. 존 롤스의 정책을 일반적인 생활에서 찾자면 최저임금제나 비정규직의 전환직 문제를 들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철학의 기본은 실제 정책에 깊이 들어 와 있으며 정치와 철학은 크게 분리되어 있지 않다. 여기서 정치철학을 대할 때 뜬 구름을 잡는 내용이 아니라 무엇보다 열려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이 세상은 정의가 작동하지 않으면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다

김만권 교수는 계속 강의를 하면서 정의가 관성화가 되면 정의의 작동방식이 문제가 된다고 했다.

 

“정의에 대한 계속적인 자극이 있어야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기능을 한다. 내가 최선을 다해서 말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우리 세계에 있던 정의에 대한 질문과 생각해볼만한 가치이다.”

 

라고 말하며 정의의 작동방식과 정치철학에 대한 모순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치는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철학은 서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려면 몸을 멈춰야 하기 때문이다. 이 학문의 가치는 언제 움직이고 언제 생각할 것이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의에 관한 질문을 샌델과 다른 각도에서 질문하고 싶다고 했다. 마이클 샌델은 이미 정의론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정의론에서 들여다보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미국과 사회적, 정치적 배경도 우리나라와 맞지 않기 때문에 그의 말이 우리와 맞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샌델이 말하는 정의의 배경은 미국적 맥락에서 기본권이나 자유가 보장되는 분배론을 사회적 문제로 보고 있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아직도 기본적 권리나 정치적 권리가 보장되어 있지 않아 그 문제가 더 큰 문제라고 했다. 정의론 측면에서 바라보면 샌델의 말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정의를 보면 그렇지도 않다고 했다. 정의가 작동하는 것은 현실세계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정의가 작동하지 않으면 어이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절대 기본권이 침해되서는 안되는데 우리는 아직도 노동3권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민주화과정이라고 했다. 미국사회는 그만큼 그런 이야기를 나눌만큼 발달되어 있으며 서로 그 사회가 고통받는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그의 정의는 공감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보면 도덕적인 것이 정의를 세우는 게 아니라 힘이 올바름을 세운다는 정의이론이 더 오랫동안 존재했으나 이 이론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최초의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였다는 것이다. 도덕적으로 정의를 세우려고 했던 노력이 오늘날 학문의 세계에서는 통하지만 현실의 세계는 다르기도 하며 올바름이 꼭 승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정말 그런가에 의심을 품어볼 만하다고도 덧붙였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사회의 정의가 없으며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건 정말 알고 있었던 정의에 대한 지각변동이다. 뭔가 정의는 제자리에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정의가 중심주제일 것 같은데 우리가 사는 일상의 문제에 적용도 안 되고 쓰임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정의가 공적현실에서 작동하는 현실의 불일치가 불러온 절망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에선 힘을 바탕으로 정의관에 기반을 두고 작동하는 반면에 우리의 신념 안에서는 도덕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그런데 알고보면 정의에 대해 더 강한자, 힘센자, 더 나은자가 지배하는 것이 정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의 교육시스템이나 시장경제의 작동원리도 그 힘의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정의를 세우는 지 이해하지 못하면 현실과 이상이 멀어지는 세계가 되고 절망과 좌절만 높아진다. 이것을 이해하고 좁혀지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라고 말하며 서로 다른 정의에 대한 장치나 다른 정의에 대한 힘과 도덕에 대한 두 개의 틀을 이해해야만 정의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말한 정의에 대해 “정의로운 것은 강한 것으로 만들 수 없었던 우리는 강한 것을 정의로운 것으로 만들어왔다.” 고 하며, 파스칼의 말이 옳든 아니든, 분명한 사실은 현실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정의가 힘과 도덕사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적 지식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

이야기들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사회의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김만권 교수는 대한민국에서도 정의를 말하다보면 많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고부간의 문제, 남녀의 불평등, 학교나 교실의 지식의 불평등, 빈부격차 등 생활 속의 불평등의 요소는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철학 속에 들어가 보면 여기에 나오는 지식이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며 근본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이야기들을 나누는 과정에 속에서 해결하는 것이지 지식 자체는 그 이야기를 하는 재료일 뿐이라고 했다.

 

힘과 도덕사이의 관계와 투쟁의 역사가 어떻게 정의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근본적으로 헷갈릴 수 있다. 우리는 이미 힘을 부정이라 부르고 이 세계를 갈라놓았다고 생각한다.”

 

고 말하며 플라톤이 쓴 <국가>라는 10권 중 1권 1장에 나오는 최초로 정의에 대해 소크라테스와 말하는 사람이 트라시마쿠스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는 소크라테스에게 “강자들이 법에 자기의 이익을 심어놓고 그 법을 지키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면 약자들이 그 법을 지킨다면 결국 누구의 이익이냐? 그리고 이익이 증진되는 것은 강자의 이익인데 이것이 정말 정의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진짜 정의 포인트가 있으며 그 당시 헤게모니라고 했다. 이데올로기는 억지로 생각을 심어놓게 만들지만 헤게모니는 스스로 그 말이 자발적으로 맞다고 동의하는 구조를 가진다고 했다. 투표구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아무리 나쁜 정치인도 투표를 해서 뽑아 놓으면 자발적으로 자신이 한 행동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지금의 구조도 이런 헤게모니가 존재한다. 그 당시 소크라테스는 “나는 너무 정직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다하면 너희가 죽이기 때문에 정치 속으로 들어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만큼 진실을 쥐고 있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2500년전 아테네의 사건을 다룬 <변명>이나 <크립톤>읽다보면 지금의 대한민국의 정치적 분위기와 배경, 사건도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소크라테스적 인간들이 부족하다고 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정말 힘과 도덕이 맞붙는 문제로 소크라테스가 최초의 인물이었다고 했다. 그 당시 소크라테스는 “정의는 상황에 맞는 일이나 적합한 일을 저스티스라고 불렀고, 소크라테스는 그 시대에 그 상황 속에서도 옳은 것이 있고, 그 옳음을 따르는 것을 도덕적으로 따르는 정의, 즉 저스티스라 불렀고, 그 저스티스를 따르지 않고 힘을 따르는 것은 옳지 않다.”

 

고 말하면서 김 교수는 도덕적 정의는 평등한 구성원들이 전제해야 하는데, 민주주의만 희한하게 다수가 소수를 지배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인류가 만든 평등한 유일한 제도가 민주주의이고, 평등한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이다. 정의를 생각하면 민주주의만큼 도덕적 정의를 실현하는 기반이 없으며 민주주의를 아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의를 이야기하고 싶다면 반드시 구성원의 평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고 강조했다. 힘의 정의는 기본적으로 관계의 불평등이며 한 사회 내에서 불평등의 구조가 넓어진다는 것은 사회 내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정의가 없다고 말하는 것 중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불평등의 구조가 넓어지고 있다는 것이며, 나아가서 민주주의적 평등 구성원의 존재와 우리가 말하는 그 힘과 도덕의 관계를 살펴보면 우리가 말하는 기본권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정의의 수준이나 정의적 담론이 어떻게 가고 있는지, 한 사회의 평등 구조가 어는 정도로 실현하는지 가늠하고 잣대가 될 수 있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존 롤스는 갈등상황에서 가장 고민스런 선택을 ‘판단의 부담’이라고 했다. 존 롤스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갈등상황에서 고민스런 선택을 ‘판단의 부담’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존 롤스는 갈등상황에서 선택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합리적 인간이라면 최소한의 판단을 내릴 때는 어떤 상황이 먼저인지 우선순위에 따라 기본적 상식을 가지고 정의의 원칙에 의해 합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정의에 대한 갈증이 높으며, 극한 상황에서 정의의 문제가 나오기 때문에 무엇이 옳은지 중요하며 판단의 능력도 길러진다고 했다. 공익제보자의 판단의 부담을 말하기도 하고, 정의를 위한 선택과 비극적 상황에서 소포클래스가 쓴 <안티고네>의 예를 들어 설명하기도 했다. 무엇을 해도 옳은 상황에서 부담을 지는 상황이 높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정의, 힘과 도덕의 갈등에서 올바른 일을 한 대가가 판단의 부담으로 오기도 하여 정의를 외면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책에서 만나는 정의와

현실세계에서 만나는 정의는 다르다

 

김만권 교수는 강의를 마무리 하면서 오히려 현실세계가 더 큰 힘으로 누른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오늘 같이 나눈 이런 질문을 던지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 시간에는 실질적으로 힘의 논리와 실제 사례와 이론을 중심으로 풀고, 정의가 현실의 문제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말하겠다고 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힘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것처럼 보여도 때로는 소크라테스처럼 질문을 던지며 살아보기도 하고,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것처럼 돌에 좌절하는 게 아니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미소 짓고 살아보기도 하고, 정의의 문제는 힘의 작동 원리가 지배를 해도 도덕적 작동을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으면 좋겠다.”

 

며 다음 시간에는 질문을 많이 던지며 그 의견을 같이 나누자고 당부를 하며 마무리를 했다. 김 교수는 자신이 답을 줄 수 없으며 같이 질문하고 같이 마주하면서 같이 정의로운 틀을 만들면 좋겠다고 했다.

강의가 끝나고 난 뒤에도 교육참여자들의 질의응답이 오가며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아트센터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강의에서 나누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그동안 공부한 이야기와 함께 참여한 사람들과 정의에 대해 계속 담소를 나누며 피드백을 잊지 않았고, 그의 이야기는 뒷풀이까지 가서도 계속 되었다. 목이 아프고 힘들었을 텐데 최선을 다해준 김 교수에게 감사를 전하고 2강을 기다리고 있을 교육참여자들의 모습도 기대가 된다.

 

다음 2강은 6월 8일, 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부평아트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진행된다. 주제는 힘이 정의를 만든다는 내용을 가지고 시작한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란다.

 

글 기록 및 내용 정리 : 한오봉 (연구지원팀)

사진 : 이광민 (사업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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