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기 주민자치인문대학 4강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와 도덕
그리고 한국사회의 정의는 무엇일까?
강의 : 김만권 교수(연세대 정치철학)
지난 6월 22일 부평아트하우스에서 주민자치인문대학 4강으로 김만권 교수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와 도덕>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한국사회의 선거제도와 선택적 주민소환 투표 불참운동에 대해 옳은지 묻기도 하고, 특히 젊은 세대들의 정치참여가 필요하다고 하면서 한국사회의 정의 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세대간의 정의인데 세대간 엄청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386세대들이 독점한 것들을 나누어야 하며 소통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하면서 세대간의 이해가 있어야 마을이 이어진다고 하며 강의를 이어갔다.
정치사회 없는 상태에서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세계에서 힘의 논리를 잘 정리한 사람이 17세기 <리바이어던>을 쓴 토마스 홉스이며 그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고 하며 20세기 칸트로 불리는 존 롤스가 그 작품에 대해 “홉스보다 뛰어난 사상가는 있어도 <리바이어던>만한 책은 없다.”극찬했다고 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정치사회가 없는 상태에서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며 가장 강력한 주장을 하며 분쟁이 일어났을 때 객관적으로 판단해줄 제3자 없이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치다원주의는 종교적 다원주의에서 나왔고, 종교적 해석의 다원주의보다는 도덕적 상대주의나 도덕적 다원주의로 불리고 있다고 하며 도덕적 가치에서나오는 해석은 다 다른데 도덕적 가치를 중재해줄 제3의 요소를 국가로 보았는데 그 국가를 ‘리바이어던’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종교적 객관적 다원주의 해석을 들고 그것을 판단할 강력한 요소가 없다면 그 사이에 정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며 가치다원주의는 국가가 분쟁이 있을 때 국가는 독점적 판단권을 갖고 있다고 하면서 <리바이어던> 책 표지 그림에 상징적 표현이 잘 나타나있다고 했다.
“이 책에서 볼 수 있듯이 정의를 만들기 위해 국가사회가 필요한데 정의는 다르게 갔다. 국가사회에서 반드시 지니고 있는 절대적인 힘은 폭력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이 생각은 영미권에서 강했던 생각으로 영미철학의 정의를 들여다보면 폭력과 정의가 분리가 잘 안 된다. 영미철학의 전환점이 된 것은 존 롤스가 칸트의 영향을 받아 1970년대, 20세기 중후반부터 영미세계의 도덕이 정의 안에 들어오면서 기반이 되었고, 힘의 정의보다는 도덕적 정의가 학문에서 승리를 하고 있다.”
고 김만권 교수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책을 소개하면서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영미철학이 힘(폭력)에서 도덕으로 오기까지의 과정과 정의의 흐름까지 설명했다.
행복 추구, 고통 없는 삶을 추구한다고 ?
또한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란 책에서도 도덕적 요소를 포함하는 근대사상 중에 폭력적 요소를 포함할 수 있는 것이 공리주의라고 하며 이 책 역시 공리주의와 맞서고 있다고 하며 공리주의만큼 강력하고 단순한 사상은 없다고 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한 순간에 제압할 사상이며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 없는 삶을 지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재래미 밴덤의 <원형감옥>을 예를 들며 세계 국가가 추구하는 사상은 행복을 추구하고 고통이 없는 삶을 추구한다며 칸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는 일주일이 넘게 걸리지만 밴담의 사상은 5초만에 기억할 수 있는 사상이고, 사상을 설명하거나 설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개인의 행위일 때는 모순을 갖지 않으나 집단의 논리로 갈 때 문제가 생긴다. FTA나 WTO같은 국제기구에서 하는 일을 보면 도덕적 차원에서 볼 때 타인의 고통을 담보로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세계무역기구 역시 나라와 나라사이에 불공평해서 문제가 생기며 특히 농민들에 불이익이 가장 많이 돌아가고 후진국보다는 선진국에 무역조건이 유리해서 이익을 본다. 그런데도 세계는 철저하게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국가의 정책이 나오고 있으며 효용의 가치를 바라본다.”
라고 하며 가장 간단하고 쉬운 사상인 공리주의의 모순에 대해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도시에서 어떤 존재였을까?
김만권 교수는 소크라테스는 도덕이라는 정의를 추구하고, 도덕적 부담과 자기 목숨을 담보로 해야한다는 죽음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있을 때도 소크라테스는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했고, 무엇을 하는 것이 옳은지 도덕을 쥐고 있었고 전했다. 그런데 아테네는 그런 소크라테스에게 젊은이들을 길거리에서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고, 자신의 무지를 알게 하며, 명예을 먹칠하게 하니 철학을 그만두라고 했는데 그런 소크라테스의 행동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소크라테스는 행동을 멈춰야 하는지, 소크라테스처럼 하는게 옳은지 교육참여자들에게 물었다. 그러자 교육참여자들은 도시에서 소크라테스에게 한 행동에 대해 옳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한사람의 생각을 억압하고 개인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아테네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권리인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도시가 잘못한 것이며 소크라테스를 죽이지 말아야 했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또한 소크라테스 역시 크리톤이 감옥에서 탈출시키려고 왔을 때 “여기는 나를 길러준 고향과 같은 곳인데 부정의로 해야 하는지 마지막까지 남아서 그들을 설득해야 하는지, 내가 말로 설득할 수 없다면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행위를 보면 도시에 해를 끼치는 존재도 아니었고, 자신을 길러준 도시에 부정의하게 사는 사람들을 마지막까지 설득하며 사는 삶이 정의로운 삶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소크라테스에 대해 “소크라테스의 자기 성찰이라는 것은 나와의 모순이 없는 삶을 살 때 타자와 모순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이며, 나의 내면의 모순을 제거할 때 타자와도 모순 없이 살 수 있으며 그것은 공동체 삶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현실에서 도덕과 힘이 맞붙었을 때 도덕이 질 때가 많다고 하며 공익제보자나 성추행 고발했을 때도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요즘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자들이 별로 없다
김만권 교수는 근대 자유주의자들이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집착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자신들이 자유주의자들이라고 하는데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있어도 자유주의자들이 별로 없다고 했다.
” 요즘 한국 사회가 생각하는 자유,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데 이 때 목숨 걸고 나서서 ‘웃기시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개인의 자유 실현이 사회적 자유실현에 장애가 될 때 그것에 반대하고, 그것과 맞서 싸우는 것이 진정한 자유주의자이다. 그런 리버럴은 사회에 원동력을 준다.”
며 개인에게 최대한 자유가 주어질 때 사회적으로 가장 큰 공리가 주어진다고 하며 죤 스튜어트 밀의 말을 보태기도 했다. 그리고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공동체의 이익이 높아진다고 이상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언론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높은 나라를 검색하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가 나오는데 대부분 복지국가로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공동체의 이익과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과는 무관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품이 곧 정의이다
정치적 인간이 되지 않으면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없다
– 아리스토텔레스
이어서 김만권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성품의 상태’라고 생각했으며 뭘 더 많이 아느냐 상관없이 성품이 곧 정의라고 했다고 하며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날 수 있는 이론이며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이라고 했다.
“정치적 인간이 되지 않으면 행복한 인간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잘 사는 것과 잘 행위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요즘은 잘 사는 것에 잘 먹고라는 말이 들어갔다. 뜻밖에 잘 먹고 사는 것에 다 동의하고 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엇이 정당한 것인가를 결정하는 정의를 관장하는 일에 대해 행복(eduaimonia)이라고 했으며 그 행복의 본질은 정치적 인간이며 자기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원칙을 알고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성품은 올바르게 행동하는 어떤 추상적 체계나 원칙이 아니라 오리혀 어떤 일련의 배양된 성향, 태도, 좋은 습관 등과 같은 성품의 상태이며, 정치 속으로 들어가야 정의로운 인간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여 설명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민주주의 제도를 싫어했지만 민주주의 안으로 들어가야 많은 사람들이 정의로울 수 있고, 그 정치제제로 최대한 많이 들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철인정치를 주장해도 결국 민주주의를 옹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가장 늦게 주고, 가장 오랫동안 보장해주는 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의는 오직 평등한 관계에서 시작하는 대화여야 공정하게 이루어진다.”
김만권 교수는 시민적 평등이야말로 가장 민주주의가 성립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민주주의와 정치, 이 정의의 기반도 지적인 능력보다는 태도와 습관에서 나온다고 밝히며 우리나라 지방정치가 정당화할 수 있는 기반이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고 자치할 수 있는 중요한 장점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도 역시 민주주의라고 했다.
정치, 법, 도덕, 정의는 민주적인 평등체제에서 실현된다
입헌민주주의나 헌법민주주의 등 민주주의 체제를 법 안으로 들여온 사람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이며 그는 민주주의 정치를 정의와 법을 민주주의 체제로 바꾸어 놓은 사람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데모스들이 자기 맘대로 못하도록 법의 지배를 통해 제동을 걸 수 있어서 획기적인 사상이며 헌법이나 소수자의 권리도 방어해주기 때문에 민주주의 법을 기가 막히게 접목시켜 놓았다고 하면서 그 안에 정의와 행복, 법과 정신이 다같이 간다고 했다. 이에 김만권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들 사이에 정의를 논할 때 갈등이 가장 높은 것은 공직의 분배와 자원의 분배라고 했다. 가장 민주적 제도 중에는 추첨제가 있는데 보통 흔히 말하는 선거는 귀족 선발제로 민주주의적 제도라기보다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뽑는 것이다. 하지만 추첨제는 플라톤도 거부하지 않은 제도로 유일하게 신이 준 운명이라며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동체에 이익이 되며 정치 내부로 들어갈 수 있어야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추첨제야말로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이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정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제도가 바로 민주주의라고 하며 지금은 공적 분배의 시대와 달리 극대화되어 살고 있다고 했다.
한국사회의 정의는 무엇인가?
김만권 교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정치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체제가 바로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한국사회의 공직의 분배와 희소성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우선 우리나라 인구는 4천 5백만 명이 넘어가고 있는데 국회의원 자리는 겨우 300석 정도이며 국회에서 예산심의과정이 비공개로 되는 이유와 국회의원들이 국가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지 지역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지역을 돌보기 시작하면 국가의 일을 공정하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과 우리나라 선출공직후보자 기탁금 제도에 대해 문제제기도 하였다. 소위 정치참여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삶을 설립하는 게 원칙인데 현행 공직선거법 제56조 1항에는 말도 안 되는 기탁금이 들어가고 요즘 선거는 돈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 기탁금은 득표의 수에 따라 돌려주기도 하고 전액 납부하기도 하는데 유효득표수의 15%이상이 되면 돌려받고, 10%이하면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하며 거대 정당이 기탁금도 다 가져가고 소수정당은 없는 살림에 기탁금을 다시 내놔야 하는 형편이라고 하면서 후보자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기탁금으로 방지시킨 것이 옳은지 묻기고 하고 제도를 돈으로 묶어 놓는 것이 정당하냐에 대해 묻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본소득이라는 좋은 제도를 허경영씨가 말하는 바람에 농담처럼 되버렸다고 하며 누가 말하는지도 중요하다면서 국민들의 기본소득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카타르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고, 몇몇 유럽복지국가에서도 시도하고 있지만 그들은 이미 더 좋은 다른 제도들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선거관리위원회에서 돈으로 정해 놓은 것이 옳은 것인지, 소수정당이나 젊은이들이 정치에 도전할 수 있게 오픈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선택적 주민(소환)투표 불참운동 중에서 두 가지 사례를 들으며 옳은지 묻기도 했다. 2009년 김태환 제주도지사 주민소환 사례와 2011년 서울시 초중고무상급식 사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기도 했다. 주민투표는 일반선거와는 다르게 정책에 대해 찬성이나 반대를 묻는 것으로 선거보다는 훨씬 적극적인 민주적인 제도라고 했다.
“정치계에서 무상급식을 포퓰리즘이라고 말을 하는데 무상급식이라는 표현보다는 의무급식으로 말부터 바꿔야 한다. 그것은 언론에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이며 정책의 현실성보다는 일반 대중 인기에 따라 강력한 정치인의 말을 다 따라가는 현상이다.”
라고 꼬집어 말을 하기도 했다.
주민투표불참운동에 대해서 정치적으로 옳은 것이냐고 물었을 때, 교육참여자들은 찬반이 반영되지도 않고, 투표의견 자체를 무시하는 처사라 옳지 못하고 정치적 무관심을 유발할수 있다, 의사표시를 분명하게 해야 하는데 의사자체를 막는 제도여서 옳지 못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반대의사를 말하기도 했다. 이에 반하여 법적으로 하자가 없기 때문에 불참운동을 할 수 있다, 찬반투표에 문제제기를 어느 쪽에서 했느냐에 따라 선택적 반대와 찬선이 엇갈릴 수 있다, 투표율이 30%이하일 때 투표함 자체를 열지 못하는 것 자체가 더 문제이다, 투표하지 않는 권리도 의사표시이다 등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이어서 김만권 교수는 의무적 투표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면서 새로운 의사표시제로 ‘뽑을 사람 없음’이라는 칸을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미 유럽 의회에서는 시행하거나 준비하고 있다고 하며 ‘뽑을 사람 없음’이 황당한 건 아니라고 전했다. 그런데 너무 많아지면 대표자의 권위가 낮아질 수 있어서 한 차례 정도는 임팩트가 있지만 정치권위가 약하게 되거나 상실될 수 있다며 다양한 문제에 대해 이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영국에서는 자신이 지역구에서 뽑을 사람이 없을 경우, 다른 사람이나 다른 지역에 표를 넘겨주는 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면서 한국의 정치 참여에 대해 말하면서 젊은 친구들이 정말 정치참여에 관심이 없는지 몇 몇 교육참여자들에게 묻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20대들이 선거를 하지 않기 때문에 20대를 위한 선거공약도 나오지 않아 세대간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하며 젊은 세대들이 정치참여에 관심을 가져야 정치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한국사회의 금권정치화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며 이 정치는 아무런 철학적 근거도 없는 정치이며 돈이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게 만들었다고 하며 금권화는 곧 책임의 문제와 정의의 문제로 연결되어진다는 마르크스의 ‘교환의 정의’를 예를 들어 설명을 했다. “사람은 사람으로, 신의는 신의로 합당한 것으로 교환해야 한다”며 그 책임을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나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세대간의 정의도 바뀌고 있다
한국사회의 정의의 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세대간의 정의라고 지적을 하며 점점 이 세대를 물려받고 있는 정의의 관점이 힘의 논리와 승자쪽에 기울어지고 있다고 김만권 교수는 전했다.
“세대 간 엄청난 개입이 존재한다. 앞선 세대인 386세대들이 정의까지 독점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았다는 것에 동의한다. 오히려 젊은 청춘들한테 ’88만원 세대’,라고 하면서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 운운하면서 초라하고 불쌍한 세대로 만들었다. 젊은 세대들은 여유도 없고 경험도 부족하다. 앞선 세대는 도덕적 문제제기를 하고 힘의 논리를 비난하기도 한다. 정의가 사회통합의 문제라기보다는 세대를 갈라놓은 정의가 되고 말았다. 정의의 담론이 우리 세대 갈등을 만들고, 세대차이을 조성하고, 세대와 세대를 더 멀어지게 했다.”
며 세대간의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하며 이 문제를 접근할 때 앞선 세대들이 많을 걸 내려놔야 한다고 하며 아무 것도 내려놓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음 세대들에게 물려줄 정의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지에 대해 묻기도 했다.
“세대 간의 공정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공정하지 않는 세상이다. 젊은 세대들은 여기만 기대서도 안 되고, 자기들의 정체성을 자기들 스스로 찾아야 한다. 남들이 정해주는 게 아니다. 그 말이 아닐 땐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을 풀고 열 수 있어야 한다”
라고 하며 젊은이들의 디지털시대로 인한 ‘일방적 종결의 권리’에 대해 익숙하다며 SNS의 친구관계를 남들 모르게 클릭 한방으로 끊고 관계를 소비하는 세대라고 했다. 그러면서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달라졌다고 하며 지금 세대들의 디지털 관계의 좋고 나쁨의 관점보다는 인간들이 갖고 있는 환경방식의 차이라고 전했다.
세대와 세대 간의 이해가 있어야 마을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김만권 교수는 그동안 4강 강의를 마무리하며 우리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세대 간의 정의가 한국사회와 마주하는 현실이라고 하며 기회가 되면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마을공동체만들기에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 처음 접하는데 마을만들기를 하면서 세대와 세대 간의 이해가 있어야 마을이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마을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 마을이 이어지고, 그 마을이 있음으로 풍성해진다. 두 번째 틀을 만드는 것이 돈이 아니라 인식과 다른 세계관이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익숙하지는 않다. 인신 공격 하나에 자신의 삶이 무너지기도 한다.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장 쉬운 말로 이해하면 되는데 이해라는 말은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해는 제대로 받아주는 것이다. 이 이해들이 우리 사이에서 만들어지고 이 마을 하나를 지켜주는 것이 될 것이다. 주민과 시민은 서로 약간 의미는 다르지만 사실 정의의 문제를 개개인이 책임질 수 없으며 정의로운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가능하다. 정의의 문제를 더이상 고민하지 않도록 관계를 엮어주는 우리 세대들이 마음을 열고 윗세대와 아래세대를 이해해주는 세대가 되도록 준비를 하면 좋겠다.”
4강 강의내용 정리 : 한오봉 연구지원팀
사진 : 이광민 사업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