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업데이트 : 28/10/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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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발품 따라 도시 산책하기>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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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와 소비자로 살았다. 이제 시민이 되자!”


인천발품경계에서 관계로

속도통제, 마을잇기, 도시성찰

  “인천발품은 인천 발견을 위한 행사다. 인천의 근대성은 경인철도와 경인고속도로 등 질주를 위한 공간들이 많은데, 그로 인해 마을이 많이 달라졌다. 시민들과 함께 걸으면서 이 단절된 공간을 어떻게 연결한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함께 찾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장한섬(홍예門문화연구소 공동대표)

1호선 도원역 옥상에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참가자들이 모여서 프로그램에 대해 듣고 주변을 관찰했다.

한국철도 최초기공지(경인선) 기념비에서

인천과 서울의 관계가 시작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숭의 평화시장에 방문했다.

인천 남구청 문화예술과에서 공간 소개를 했다.


이곳의 건물들은 1971~1978년 사이에 지어졌다. 지금은 시장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상태이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번영했던 곳이라 한다. 남구청에서는 이곳에서 문화예술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작년부터 공간을 매입해 가며 준비중이다. 공간이 삼각형이라는 데에 착안해서, (작가들만의 공간이 아닌) 소통, 예술, 사회적경제를 실험하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한 장한섬 대표(홍예문 문화연구소)는 “개발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이 (집단의 이해에 의해) 물리적으로 성을 쌓게 되면서 외부에서의 유입을 통제하는 폐쇄적인 곳으로 변모하고, 나중에는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쇠퇴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도시의 흥망성쇠가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라고 말했다. 또 “인천이라는 도시의 성장을 고민할 때 평화시장이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할 것이며, 이러한 역사적인 장소를 집단의 기억으로 간직하면 앞으로의 비전을 찾는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방문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도시나 개인이 고립되지 않고, 자치를 위한 건전한 연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 보자고 제안했다.

우각로 문화마을에 방문했다.

이 일대는 한국전쟁 이후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았던 곳인데,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면서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주한 상황이다. 그래서 인천의 구도심에 남아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떠나지 못했다는, 냉소적인 정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 이곳에는 외부에서 예술가들이 들어와 이 일대의 문화적 자원을 모아서 문화마을로 만들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도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하는 중이다.

  구불구불 우각로 길을 따라 동구 창영동에 들어섰다. 장 대표는 “우각로 소뿔고개에 진입하면서 최초로 직선의 공학이 아닌 곡선의 미학으로 접어들었다”며 “산업사회때 곡선 길을 보려면 에버랜드에 가야 했다. 다른 곳에서는 직선이라는 효율적인 길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앞으로 효율의 문제가 아닌 미학의 시대로 접어들어서 곡선이 있는 골목, 언덕이라는 구도심에서 인천의 역사와 미래를 공존시켜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창영초등학교에 방문했다. 이곳에서 인천의 근대도시로서의 키워드 세 가지가 ‘여성’, ‘교육’, ‘노동’이며, 여성 교육의 산실이며 노동운동의 시발점이었던 배다리,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학교였던 창영초등학교가 이 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한국 최초의 미학자 우현 고유섭 선생이 한국적 미학, 생활 예술을 강조했다는 점을 들어 지속 가능성, 순환의 정치/경제구조가 중요한 화두가 된 지금의 시대에 인천의 비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생각하게 했다.

창영초교를 지나 우각로를 따라 배다리 텃밭, 스페이스 빔, 배다리 안내소를 방문했다.


  배다리 마을텃밭은 원래 주택가가 있었던 곳인데, 청라와 송도를 잇는 물류도로를 만드는 계획으로 인해 또다른 질주의 공간/ 단절을 상징하는 장소가 될 예정이었다. 도시가 고립되면 소통이 어렵고, 자연히 쇠락하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인천의 문화예술인들이 2007년부터 마을에 찾아와서 장소를 지켜내기 위한 활동을 벌였다. 지금도 어떻게 지속적으로 미래를 제시할 것인가를 고민중이라고 한다. 특히 “배다리가 생산과 생활이 분리되지 않은 곳”이라는 점이 중요했는데, 장 대표는 “인천 자치의 역사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런 역사가 자산이며, 이를 통해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설명이 아니라 어떻게 생활 속에서 호흡할 수 있을지를 답사를 통해 알아보자”고 말했다.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갯골이라는 지명에 대한 설명 등 근방에 대한 안내가 이루어졌다.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에 방문했다.

송현시장에 방문해 골목도서관 소개를 듣고, 시장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동인천의 양키시장, 희곡작가 함세덕 생가 터에 방문했다.


  인천이 항구도시임에도 해양문화가 많지 않은데, 함세덕이 쓴 작품에는 일제시대 일본 식민지 하에서의 경제적 수탈구조를 잘 드러나 있으며, 이는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의 문제와도 잘 맞물려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당시에도 조선의 어민들이 협동조합과 비슷한 방식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는 내용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화평동 냉면거리를 지나가며, 어려운 시대에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무리 도와줘도 돌아올 보답이 없음에도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준 인물을 재조명함으로 시민들의 공동성을 만드는 기초로 삼아볼 수 있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기말적 홍콩 분위기가 나는 화수 자유시장과 화도진 도서관에 방문했다.


화수부두와 만석부두, 북성포구에 방문했다.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로도 잘 알려진 만석동 괭이부리 마을에 방문했다.

마지막 장소인 용동 큰우물에서 모두 모여 떡을 나눠 먹은 뒤,

도시의 한 가운데에서 속도를 통제하고, 마을을 잇는 플래시몹을 준비했다.

인디밴드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함께 참여하여

‘우리는 바다로 향한다.’는 주제의 노래를 울리며 행진했다.


우현로 6차선 도로의 차선을 임시로 정차시키고,

도로를 가로지르는 현수막을 펼치며 사람들이 그 위를 걷는 플래시몹을 선보였다.

행진은 중구청까지 이어졌다.

인천 아트플랫홈까지 도착한 다음,

춤과 노래로 성황리에 마친 행사를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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