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4일 오후 7시부터 9시 까지 14기 주민자치인문대학 3강이 진행되었다.
[3강 ‘능력주의’는 어떻게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가?]
대한민국 사회의 공정성 문제
공정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등장한 ‘능력주의’. 능력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는 공정성 논란과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공정성 논란은 교통공사의 비정규직 전환과 조국 자녀의 입시 공정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논란은 공정성의 차원 자체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무임승차’에 대한 혐오이다. 개인의 노력이 무시되는 상황에 대한 분노가 논란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무엇을 공정이라 보는가. 2018년 리서치센터 자료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사람들 중 다수는 산술적 평등보다는 개인의 능력과 보수에 비례한 차등분배를 선호한다. 이 선호도는 사회 전체 계층에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능력보다는 노력을 선호한다.
그렇다면 필요에 따른 분배의 인식은 어떨까. 가정형편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높고 부양가족 수에 따른 임금 차이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높은 것을 통해 필요에 따른 분배는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차등 분배를 선호하는 사회에서 정작 그러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직종 진입은 전체 노동시장에서 약 12%만을 차지한다. 원하는 방식의 보상이 극히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노동시장 내의 격차는 매우 크다. 그렇다면 노동시장 밖의 사람들은 어떨까.
노동시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은 플랫폼 일자리다.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차등적 보상의 세계의 현실은 노동시장 내에서는 그 직종 간 보상격차가 너무 크고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면 재진입이 어렵다. 결국 노동시장 안팎에서 사람들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보상을 받는 기회가 매우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무임승차자를 경멸하게 되는 것이다.
능력주의란 무엇일까.
메리토크라시는 “부와 권력과 명예 등과 같은 사회적 재화를 어떤 사람의 타고난 혈통이나 신분, 계급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능력에 따라 사람에게 할당하자”라는 발상이다.
마이클 영은 민주주의 사회라면 설사 보통 사람들이 고위직에 선발된 자들에 견주어 타고난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하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재화와 권력을 받을 자격이 덜한 것은 아닌데, 메리토크라시는 그렇다고 말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메리토크라시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는 것이다.
다니엘 마코비치의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저자는 당대 불평등은 능력주의가 작동하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능력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말하며, 능력주의가 불평등에 대한 해법이 아니라 불평등의 성장한 뿌리라고 주장한다.
서양에서 1950-1960년대 능력주의 혁명이 일어난 후 엘리트들이 인적 자본을 쌓고 자녀들에게 고급 인적 자본을 대물림하는 풍조가 생겼으며, 자녀들이 최고의 엘리트가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자본과 수단을 통해 엘리트 코스를 밟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능력주의가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확산이 있다.
제한된 기회가 만드는 특권의식이 갑질 현상으로 드러나고, 차별 받는 을은 갑의 특권화에 반대하면서도 자신이 차별하는 대상으로서 병과 을을 거느린다. 병은 갑과 을의 특권화에 반대하면서도 자신이 차별하는 정을 거느린다. 이처럼 연대라는 사회적 미덕보다는 고도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과소주체화”된 사람들의 계단화된 공정성이 존재한다.
사회적 약자들은 정작 공정성에 대해 문제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공정성 프레임이라는 것은 사실 특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것이다. 특권에 진입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부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결국 능력주의가 강화될수록 부의 여유가 있는 자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며, 결국 능력주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