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마을활동가 워크숍을 마치며
지역순환경제를 만드는 씨앗
공동체기금, 어떻게 마련할까?
지난 5월 12~13일, 인천마을활동가들에게 주민주도의 원활한 마을활동을 위해서 마을공동체기금 마련에 대한 방법을 모색하고, 다양한 마을활동가들의 사례를 통해 마을공동체 활동을 공유하는 마을활동가 워크숍을 도봉숲속마을연수원에서 인천시마을공동체지원센터 주관으로 진행했다.
1강 청년들의 공동체 기금 마련하기
(현장학습 : 공동체은행 빈고 사례 중심으로)
공동체은행 빈고(빈마을 금고)를 찾아가다
“누구나 주인이자 손님”
2016 마을활동가 워크숍에 참석한 교육참여자들이 오전에 청년들이 공동체 기금을 마련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현장학습으로 직접 용산 해방촌에 있는 공동체은행 빈고를 운영하는 빈가게인 해방촌이야기를 찾아갔다. 빈고 상임활동가로 일하는 이정민과 그와 함께 하는 친구들을 만나 그동안 청년들의 공동체기금을 마련한 이야기를 들었다.
2008년 첫 빈집인 게스츠하우스에서 출발하여 환대, 자치, 공유라는 가치로 약 8년간 20여개의 빈집을 통해 삶을 나누고, 금융협동조합인 우주살림협동조합 빈고를 통해서는 빈집의 전월세 보증금을 모으고 권리와 의무를 나누는 주거생활협동조합으로 거듭나면서 오늘의 공동체은행 빈고가 되었다. 빈집 장기투숙객들을 비롯한 조합원에게 출자금 및 차입금을 모금하여 빈집 계약시에 보증금으로 대출하고, 해당 빈집 투숙객들에게 빈집세를 공동으로 모아서 납부하기도 하고, 여유금은 빈쌈짓돈, 채무탈출, 마을사업, 여행자금, 병원비용 등 상호부조 대출을 하며, 잉여금으로는 출자지지금, 빈집적립금, 지구분담금으로 이어진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빈집, 빈고, 해방촌사람들
그리고 빈마을
“빈집이라고 해서 빈집에 들어가서 사는 건 아니다. 빈집에서 전월세로 살고 있지만 사는 동안 따로 주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손님으로 들어가서 주인처럼 살고, 이 집을 늘 비워놓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빈집을 쓰고 있다. 보통 빈집에 5~6명이 살고 있으며 늘 열려있는 공간으로 운영자가 따로 있지 않고 다같이 공유하며 사는 공간이다. 8년 정도 이렇게 살고 있다. 그동안 빈집을 알아보니 20여 채가 되었고, 수백 명이 이 빈집을 거쳤으며 현재는 다섯 채 정도 남아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빈집에 살다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월세 보증금에 대한 문제가 가장 컸는데 보증금을 어떻게 나눠쓰는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당장 우리가 빈집에 살기 위해 보증금을 세 분이 다르게 낸다면, 돈이 있는 사람이 많이 내거나 돈을 적게 내거나 안 낸 사람은 서로 싸우게 된다. 다른 분이 사정이 생기면 빈집을 나가기도 하고, 보증금을 꺼내어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사람이 돈을 넣어야 하는데 돈이 없고 부족해서 나가야 하지 않나 라는 부담감이 생기기도 하고, 돈이 있는 사람은 좀 더 책임감을 느끼게 되어서 고민하다가 여러 명이 돈을 한군데로 금고에 모아서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출자금이 늘어나면서 빈고(빈마을 금고)라는 것을 2009년에 만들게 되었다.”
이정민 상근활동가는 개인이 하나의 금고에 보증금을 여러 명이 돈을 모으니 장기투숙객을 비롯한 사람들이 빈고를 이용하게 되고, 그냥 은행보다는 빈고가 더 편해서 출자금이 늘어났다고 했다. 돈이 생기니까 갑자기 필요하는 조합원들이 쓸 수 있는 돈으로 대출을 하게 되었고, 돈이 돈을 버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이득을 보고 있다고 전했다. 장기투숙객들의 이런 이해관계가 생기자, 돈들을 다 모아서 어디에 투자한다거나 나누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출자한 사람에게 출자금이나 예금이자를 주기도 하고, 빈집을 위해 적립을 하기도 하고, 공동체들의 확장을 위해 지구 분담금이라는 돈을 만들어서 기부까지 한다고 했다. 빈집에서 만난 사람들이 공동체은행 빈고를 만들어 출자하며 살아가고, 빈집이 여러 채 생기면서 빈마을이 되었고, 여기에 모여서 사는 사람들과 그동안 빈집을 거쳐가며 그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해방촌사람들이라 부른다.
빈고의 확산과 출자금의 쓰임새
또한 다른 지역이나 단체에서도 빈고를 이용하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도 늘고 돈이 점차 늘어났다. 빈고는 해방촌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부천, 청주, 부산까지 늘어나면서 빈집들만의 금고가 아닌 게 되었다. 빈집을 많이 만드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공동체 은행 빈고가 확장하고 유지하는 것에 대해 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30, 40명이서 빈집에 왔었는데 그런 식으로 가입해서 지금은 280명 정도가 조합원이 되었으며 자산도, 출자금도 늘어났다.
빈고의 출자금은 집이 새로 만들어질 때나 위기 상황이 벌어질 때 여기서 드는 비용을 그런 식으로 돈을 같이 모아서 사용하고 있다. 지구분담금은 네팔 대지진으로 피해가 컸는데도 복구가 안 되어서 빈고 조합원이 긴급지원을 요청했을 때도 사용했으며, 빈고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그런 순환구조를 갖고 있다. 은행에 돈을 넣었을 때와는 달리 공동체은행을 만들어 재미있게 돈 쓸 것들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빈고의 출자금은 이용자들에게는 공동체기금, 연대자에게는 지구분담금, 활동가 기금, 빈고 적립금으로 쓰여지고, 빈고에 조합원 중에 좀 더 마음과 시간이 있는 사람은 빈고 운영자로 활동하고, 빈고를 통해 지지 받은 곳은 빈고를 구상한다고 한다. 이 전체가 하나의 공동체로 자기를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같이 모인 사람들을 위해 쓰여 지고, 놀기도 하고 관계가 생기면서 하나의 공유지로 점점 확대가 되는 구조이다.
지금은 ‘해방촌이야기’와 공동 운영
지금은 ‘빈가게’ 공간이 비영리단체인 ‘해방촌 이야기’로 바뀌어 성공회 나눔의 집과 같이 사용한다. 나눔의 집에서는 어린이도서관, 한국어교실, 미사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해방촌 사람들은 공간을 이용한 대안화폐, 벼룩시장, 워크숍, 강연회 등을 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에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을 묻고 답하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두 단체와 사람들이 모였으니 빈고의 자발적 가난으로 이어가는 해방촌 이웃들에게 나눔의 집이 되기를 바라고, 해방촌에 살고 있는 지역주민들과 열린 공동체로 함께 그 가치를 이어가기를 바란다.
(▲ 위 내용은 5/12 2016 마을활동가 워크숍 현장학습 사례로 빈가게 상근활동가인 이정민 씨의 설명을 풀어낸 글입니다.)
2강 주민들과 지역사회와의 연대를 넘어서
(마을사례 특강 : 논골신용협동조합 사례 중심으로)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
오후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2강에서는 논골신용협동조합 유영우 이사장의 사례특강으로 이어졌다. 앞서서 ‘최후의 제국’ 편집본 다큐영상을 보여주면서 공생과 공존에 대해 강조하고, 복지사회건설이 신협의 지상목표이자 ‘일인은 만인을 위하여, 만인은 일인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이 그 신협정신을 대표한다고 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논골신협의 탄생배경과 설립과정부터 20여년 동안 논골신협의 경험을 지역사회중심으로 풀어나가며 시사점과 과제까지 고민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논골신협의 탄생배경 및 설립과정
논골신협이 있는 곳은 원래 서울의 대표적인 도시빈민 밀집지역으로 대부분 산동네로 주민들 대부분이 건축노동자, 일용직노동자, 파출부, 가내수공업 등 불안정한 직업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이 커서 병원비나 학자금 등 급전이 필요한 경우 은행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금리나 사채업자를 통한 대출 사용하는 주민들이 대다수였다.
1987년 산동네의 도시빈민운동(주민운동)에서 출발하였고, 1993년 본격적인 재개발사업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일상적인 활동으로 공부방, 탁아방, 어머니교실, 주민한마당 등 진행하며 주민과 만나며 지냈다. 1993년부터 재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며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이주가 불가능한 소수 주민들의 가열찬 철거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금호·행당·하왕십리 6개 개발지역 주민조직(세입자대책위원회)의 연대투쟁이 전개되어 철거투쟁과정에서 이후의 삶을 설계하며 협동공동체운동을 준비하였다. 성공적인 투쟁의 결과 ‘우리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라는 자신감과 자연스러운 공동체성 형성과 주민협동공동체운동의 밑거름으로 작용되었다.
1994 철거투쟁과정에서 주민협동공동체실현을 위한 금호·행당·하왕지역기획단을 조직하여 소액출자로 3년 동안 3억을 모금하여 96년 발기인총회, 97년 창립총회와 설립인가, 송학마을주민회관 내에 사무실을 얻어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신협설립 인가 후, 97년 IMF 경제위기 이후에 금융통폐합이 진행되면서 자산증대 직격탄을 맞으며 지역경제가 위축되어 산동네에서 대단위 아파트 단지 건립에 의한 지역주민 재편(약80%이상 교체)등으로 지역주민들로 기반하는 신협의 특성상 경영의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신협은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성장해가며 지금까지 왔는데 한쪽에서는 철거 싸움을 했던 따거운 시선과 철거민에 대한 편견, 가난한 사람들이 만든 신협이라는 불안감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지역재편, 재개발로인한 부동산 투기로 인한 집값 상승, 새로운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지역주민들이 분담금의 문제로 마을을 다 떠나기도 했고, 외지에서 온 충산층이 투입되고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소상인 상권과 지역상권 몰락으로 이어져 그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그래서 더더욱 지역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며 조합원들을 만나러 다녔다. 이어서 신협이 건물 매입하자 지역주민들에게 공신력과 신뢰도가 상승되었다.
논골신용협동조합의 경험
지역사회와 ‘더불어 함께’
현재 논골신협의 다양한 지역사회의 협력관계의 경험을 보려면 성동지역의 주민운동 영역을 보면 알 수 있다. 지역주민운동 차원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며 협동사회경제 영역의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논골이 성장하는 바탕이 되었다. 논골신협을 비롯한 금호행당하왕주민회, 성동두레생협, 성동주민회, 성동주민자치소통센터, 주거복지센터, 논골두레장학회, 논골기금, 하늘나무사랑방, 논골주민문화한마당 등 논골설립 인가 후 주민협동공동체운동이 본격화하면서 96년 ‘옷과사람들’ 설립지원을 위한 재정지원을 시작으로 예산책정을 통해서 지역사회에 지원도 하고 상호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다양한 협력구조를 창출하여 ‘더불어 함께’ 발전하고 신협의 비전 및 성장의 기본적인 전략으로 활용하였다.
그리고 요즘 논골신협 주변에 ‘블랙엔압구정’이란 중국집도 잘 되고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노동자협동조합을 만들어 어려운 가정환경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출자금을 대출지원해주고 있다.
논골기금은 지역발전기금으로 매년 일정액을 기금으로 기부하고 있으며 회비 외 기금으로 십시일반 동참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시작이 반이다.
그리고 논골두레장학회는 지역장학 기금으로 매년 일정액을 기금기부로 하고 있다. 예산 배정 5,6천만원으로 시작하고 이익이 없어도 변함이 없어도 한다. 지역사회의 발전이 곧 신협의 발전이기도 하고, 지금은 어려워도 씨를 뿌리면 지역사회가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고, 먼 미래를 보고 준비한다.
경쟁보다는 협동과 공생의 가치로
협동조합의 가치실현 측면에서 보면 논골신협이 지역사회에 함께 하는 이유는 인간은 원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므로 서로 상부상조하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을 망각하고 더 많은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에 의한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시작 전에 ‘최후의 제국’에서 보여준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을 통해 성장하는 게 아니라 이스터섬처럼 돈과 물질, 개인주의에 빠져 망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아누타처럼 협동하는 사회로 공생하면 다같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에서 미국이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미국의 빈곤율은 심각하다. 돈은 좋은 것과 잘 쓰는 것은 다르다. 사람중심의 협동조합방식을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공생의 가치 때문이다. 돈으로 인격이 결정하는 사회에서 협동조합의 가치는 경쟁보다는 협동, 물질보다는 사람,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협동하는 중요한 가치를 논골신협이 충실하게 여전히 진행형이지만 지금의 성과는 아주 작아 확산이 필요하다.
논골신협은 지역의 주민운동에서 출발하였고,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이전에 운동적 차원에서 다양한 협동조합을 실험하였다. 실질적으로는 1971년 마을만들기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으며 주민운동, 빈민운동, 협동조합의 실험의 장이기도 했다. 대부분 다 실패하는데 냉혹한 시장경쟁에서도 신협은 지역사회에 기반하며 다양한 지역사회운동이 확산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지역사회의 발전이 곧 신협의 발전이라는 미션과 역할, 잉여금의 지역사회 환원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운동에 함께 해왔다.
▲2강을 듣고 교육참여자들과 유영우 이사장님이 함께 찍은 모습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그동안 신협은 지역사회발전에 기여를 했다. 3만명 이상 퇴직자들이 소리 소문 안나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어서 위기극복을 잘 해야 한다. 신협은 지역사회 밀착형 관계금융으로 지역주민들의 소득증진 강화와 사회적 경제의 연대, 신협의 중요한 역할, 금융기관, 마을운동도 금융과 비슷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적재적소에 혁신과 도전이 함께 일어나야 한다. 신협의 내면의 가치가 더 중요하며 협동조합의 가치와 철학도 중요하다.
요즘 사람들은 머리로만 판단하고 따뜻한 감성이 없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니까 감성이 들어갈 틈이 없다. 인간의 존엄성과 사랑, 관계에서의 진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 세상은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냐 ,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느냐로 결정된다. 그래서 다같이 함께 걸어가야 한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질의응답 시간이 오고갔다.
(위 글은 유영우 이사장의 강의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3강 마을공동체기금, 어떻게 마련할까? 워크숍
(지역별 모의 크라우드 펀딩 워크숍)
도봉숲속마을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소회의실에 모여 김성기 교수(성공회대, SE임파워)의 진행으로 마을공동체기금,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해 나누면서 마을공동체기금의 의미, 마을공동체기금의 필요성과 원칙, 사례를 통해 커뮤니티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와 다양한 사례를 학습하고 지역별 4조로 나누어 크라우드펀딩 기획 워크숍을 실시했다. 그룹별 프로젝트 발표와 공유의 시간을 가지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마을공동체활동의 지속성에 대한 의미를 다시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
▲3강 워크숍을 진행하는 김성기 교수와 참여자들의 모습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기획하는 조별모습
▼1조 남구팀 : <같이 살아요 용자씨(용일자유시장)>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기획하는 모습
▼2조 서구팀 : <원테이블 밥상 하나 多> 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 기획하는 모습
▼3조 부평·계양팀 : <영성마을 주민 커뮤니티센터 시설 설비 기금 마련> 프로젝트 기획하는 모습
▼4조 연수·강화팀 : <잃어버린 꿈을 찾아드립니다> 크라우드펀딩 워크숍에서 가장 많은 포인트를 받고 기뻐하는 모습
지역별 모의 크라우드펀딩 기획 워크숍에서 다른 팀에서도 번쩍이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가장 많은 포인트를 얻은 팀은 4조 연수·강화팀에 돌아갔다. 다음날 연수원 인근 카페에서 커피 10잔을 마실 수 있는 티켓이 주어졌다. 크라우드펀딩도 이처럼 후원에 대한 혜택이 주어지면 적극적인 참여방법이 된다는 것도 실감할 수 있었다.
<소소한 대화모임>
5월 13일 오전, 전날 워크숍을 마치고 나서 도봉숲속마을연수원 휴게공간에 교육참여자들과 다같이 모여 소소한 대화모임을 통해 워크숍 평가와 향후 계획을 나누었다.
어제 워크숍을 진행한 1강에서 3강까지 기억을 떠올리며 옆 사람과 1분 동안 한 가지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고, 다시 다섯 명이 모여 3분 동안 돌아가면서 한 가지씩 이야기를 하고 다시 한 명이 그동안 나온 이야기들을 정리하며 발표를 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 워크숍 평가와 향후 계획을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의견과 생각을 나누었다.
[참석자들의 의견]
– “그동안 다른 곳에서 교육 많이 받아보았는데 이번 교육은 효과적이며 이것가지고 실행에 옮겨보고 싶고, 여기 오신 분들 활기차고 당당함 느껴서 기분 좋다.”
– “너무 열정도 많고 우리 동네 할 일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젊은 사람들이 생각이 빠르고 회전 놀랍다. 이번 교육 통해 좋은 영향 받았다. 모이는 것도 밤에 힘든데 밴드 만들어서 공유하자.”
– “워크숍 처음인데 많은 생각하면서 왔는데 청년들이 있으니까 그 에너지가 좋았고, 어제 모임 속에서 느껴지는 것이 감성적인 열정이 청년으로부터 충전되는 것 같아 좋다. 주제 통해 제 자신의 꿈을 찾아가게 된 것이 좋고 감사하다. 관심 갖게 되어 좋았다.”
– “어떤 시스템을 가서 보아도 나와 같을 수 없고 그 안의 정신이 중요하다. 빈고의 청년들의 활동, 신협의 정신, 소셜펀딩 모임했지만 대세적 흐름이자 모금이 절박한 동네 공동체조직들의 현실 좋았다. 다음에는 2박 3일로 하기를 바란다.”
– “저는 어제 논골 신협의 유영우 이사장님의 머리보다는 가슴으로 일해야 한다는 그 이야기에 뭉클했다. 우리는 어는 순간에 머리로 하고 있구나 느끼고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원테이블 밥상 언제부턴가 신포동에 있는 ‘빙고’ 카페 원테이블 너무 좋아 이런 상이 동네마다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오늘 워크숍에 했던 것을 오마이펀딩에 신청하는 작은 꿈도 생겼고, 김성기 교수님은 마을공동기금 마련의 출발이라서 비즈니스맵 워크숍을 올 해 안에 고대로 같이 모여서 어떨까 한 가지 생각이 든다.”
– “마을만들기의 영원한 숙제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인데 공동체 기금마련도 교육을 받고 나니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머리만 복잡해졌다. 우리가 참여하는 것이 우선이다.”
– “어제 빈고 좋았고 청년들이 모여서 십시일반 이런 작지만 모여서 끊임없이 해내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운영의 어려움 치부 드러낸 것 놀랍고 감추기보다 꺼내놓은 것이 좋았다.”
– “저희가 있어서 지속가능한 발전 있지 않나 싶다. 좋은 가치를 쫒아가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좋고 그 길을 가는 선배와 후배 만나서 좋았다.”
– “공동체의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가치를 넘어 성숙되어가는 주민운동들이 과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작년 워크숍 왔는데 장소는 매번 좋았다. 전 년도 것은 기억 안 나는데 올해 배운 것은 내년에도 기억에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센터의 교육을 듣거나 오면 자부심과 지혜가 느껴져 좋다.”
– “아직 어려서 학교 기억밖에 없은데 초중고 경쟁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을 꿈꿔왔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여기 오면서 깨진 거 같아요. 같이 윈윈할 수 있는 방법 있구나 싶어 이 방면에 약간 깨워주셔서 감사하고 이런 프로그램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
– “마을에서 활동하면서 의도치 않게 제가 쏘시어패스 역할 하지 않았나 돌아보고 공동체 작업 해나가야 겠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일을 하겠다고 생각한다.”
– “여기 오기까지 일을 쌓아놓고 오면서 답이 보이지 않아 걱정 많았는데 여기오니 힐링이 되고 인천의 금융기관도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다.”
– “유영우 이사장님 말씀이 ‘일단 해봐라’, 정주영 회장이 ‘해봤어?’ 일단 마을에 가서 일을 터트려보자라고 긍정적인 생각이 든다.”
– “이론적으로는 신자본주의 폐혜와 양극화문제, 비정규직 양산 등 그런 것이 왜 생겼나 정리가 되었다. 협동조합 대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어려움을 뚫고 이렇게 만나니 뭉클하고 배우는 과정에 함께 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런 마음들을 고스란히 담아 마을현장에서 실천해주셨으면 한다.”
1박2일 동안, 2016 마을활동가 워크숍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참석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시는 분들에게도 위로의 감사 드린다.
글 내용정리 : 교육지원 한오봉
사진 : 홍보지원 양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