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가 촉촉이 내리는 4월 16일 화요일 오전,
13차시 마을기록가 교육과정을 함께 할 활동가들을 맞이하는 설렘으로 아침부터 센터는 분주했습니다. 또한 과정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과 다짐을 마음에 담고 오셨을 29명의 참여자들이 제물포스마트타운 13층 대회의실로 바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센터에서 준비한 맛난 간식과 말랑말랑한 환영 인사를 시작으로 긴 여정을 함께 할 활동가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자기 이유를 확고히 하고 기대하는 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조성하 활동가는 “마을기록에 관한 교육 경험이 처음이라 기대 반 걱정 반이네요. 요즘 저의 관심사는 제가 살거나, 활동하는 마을에 대해 저만이 느끼는 마을의 매력을 함께 나누는 것인데요.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 마을을 기록해 보고, 마을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어요.”
박현아 활동가는 ”먼저 잘 짜인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어 기뻐요. 공공에서 다루지 못하는 소수의 이야기와 정보를 기록하고 싶어요. 기록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남기고 보존할 수 있는지도 알고 싶고 제가 살고 있는 마을을 보물찾기하듯 관심과 애정으로 들여다보고 재발견하며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네요.“
작년에 이어 진행되는 2024년 마을기록가 집중과정은 기록의 중요성과 가치를 확인하고
사진과 구술을 매개로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마을의 이야기를 담으려는 시도에서 출발했고 올해는 만석동 일대를 대상지로 노동운동, 산업화의 파고, 상업의 흥망 등 외부적인 환경에 따른 각자의 마을살이가 어떠했는지 지극히 주관적인 주민들의 삶을 현재 시점에서 포착하려고 합니다.
“소실되는 마을은 소멸하는 인간과 같다”
1강은 인천시마을지원센터 김정열 센터장님이 마을공동체의 이해와 마을기록의 중요성이란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주셨습니다.
# 마을공동체 가치
과거 우리 삶의 다양한 문제에 정부, 시장(기업)이 해결 주체였고 그 외 비정부조직, 기구, 단체들이 제3 섹터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다 사회적 영역에서 기업, 조합 등이 등장하면서 개인적 이윤이나 기업의 이윤 추구만이 아닌 사회적 기여를 중시하면서 제4 섹터를 조성했습니다.
근대화, 산업화 이후 시민의 등장과 더불어 다양한 방식의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방식이 출현하고 개인이 활동의 주체로 마을 스스로가 공동체를 형성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한 논의, 저항, 수용, 실천법으로 직접 참여를 하는 등 제5 섹터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 우리가 절실히 느낀 것은 국가 단위의 문제해결 한계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마을, 공동체 단위 움직이지 않으면 즉, 큰 사안의 결정권이 시민에게는 없지만 시민 주체가 행동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변화될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였습니다.
마을의 중요성은 사회적 자본형성의 작은 단위가 마을공동체이며 마을이 과거에는 공간 중심의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공간 중심의 경계였습니다. 지금은 활동 중심의 정의가 포함되면서 돌봄, 환경, 주민자치 등 영역별로 마을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마을사업, 사회적경제, 다양한 혁신 사업 등에서 마을 안에서 주민들은 교집합으로 만납니다.
하나의 마을은 생태계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좋은 마을을 위한 지향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 기록의 중요성
기록은 인간 본능에 속하는 행위입니다. 처음 기록의 목적은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어떻게 해서든 후대에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기록은 기억을 보존하는 하나의 방법이며 과거를 현재로 가져와 끊임없이 미래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갈지 알 수 있게 하는 방향타입니다.
익히 알고 있는 간송미술관 전형필 선생님은 아키비스트의 시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 문화유산을 수준 높은 안목으로,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연구하여 이를 보존하고 계승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1976년 3월,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앞세운 월간지 ‘뿌리깊은나무’를 창간한 한창기 님도 팔도소리 판소리 음반, 민중 자서전 출판 등 외면하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들의 아카이빙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김정열 센터장님은
“현재 인천의 마을 공동주택 보급률이 80%가 넘어요. 반면에 원도심은 소실, 소멸하여 가고 있어요. 우리의 직면한 문제인 사라지는 사람들, 허물어지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우리가 알고 있던 토대와 과거가 유실되면 결국 미래 사이에 간극이 생기게 돼요.
그걸 채우는 주체가 마을기록가이며 마을기록의 의미가 여기에 있어요.”라는 말로 마을기록의 중요성을 피력했습니다.
“살아가는 우리의 소소한 삶도 결국에는 거시적인 역사에 반영이 된다.”
푸릇푸릇 연둣빛 잎새와 이름 모를 풀꽃들이 봄을 알리는 전령이 되는 화창한 날 4월 23일 오전,
총 총총 발걸음을 재촉하는 소리, 꽃과 같은 미소를 머금은 웃음, 약간의 상기된 표정으로 오늘의 교육 시간을 기대하신다는 나긋한 목소리가 마을기록가 과정 2강을 맞아 주었습니다.
본격적인 마을기록에 대한 총론인 2강은 (협)아카이빙네트워크연구소 손동유 대표님이 마을기록의 기본원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주셨습니다.
# 만들어 온 기록의 역사
기록을 만들고 공유하고 선별하는 것- 기본적으로 아키이빙 능력을 갖춘 현대 사회 속에서
현대사 순간마다 시민들의 힘으로 제도적 민주주의를 실현, 정착시키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87년 대통령 직선제 부활의 승리감은 잠시 후퇴와 전진을 반복한 민주주의 흐름 속에서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안고 기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자료를 찾아보니 온전히 관리가 되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고 기록의 필요성이 부각되었습니다.
1999년 기록관리법이 제정되면서 정부기록보존소를 국가기록원으로 명칭이 변경되고 승격되면서 규모를 갖추었지만, 중앙행정기관에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2006년 기록관리법이 전부 개정되었는데 그 첫 번째 이유는 디지털 환경의 변화로 전자 기록을 전제로 한 법이 필요했습니다. 두 번째는 대통령 기록에 대한 중요성이 사회적으로 환기가 되었고,
세 번째는 민간에서 생산, 소장하고 있는 기록이라도 국가적 보존 가치가 있다면 국가기록관리 체계 안으로 유입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현대기록관리는 우리나라의 단절된 기록문화를 계승해야 하는 소명이 있고 지금도 꾸준히 발전해 나가는 민주주의와 궤를 함께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발전 속에서 행복하고 건강하며 풍성한 삶을 살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집중된 것이 마을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정보공개법, 기록관리법 등으로 제정된 법과 제도로 인해 일반 시민들이 공공기관의 기록이 무섭지 않게 되었고 디지털 환경에서 우리가 모두 아카이빙 능력을 갖추게 된 시대에 공동체 활동이 점점 활성화되면서 삶의 기록 현장과 관계의 기록이 중요하다고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걸어온 사람들, 스스로 관계 맺어온 과정이 소중했기에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거고 과거 기록의 소환은 시행착오를 교훈 삼고 밑거름이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아카이브는 보존 가치가 있는 기록을 훼손, 폐기하지 않고 영구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것 또는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한 기록을 다루는 기관, 기구를 말하기도 함
*아카이빙은 아카이브 가치 있는 기록과 가치 있는 기록을 다루는 일련의 행위를 포괄적으로 말함
# 왜 마을기록인가?
마을기록은 간접적인 소통, 사람을 사귀는 일, 우리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사람, 사건, 장소를 기준 삼아 기록해 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마을공동체 기록 활동의 특징이고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저장소의 부재, 공유방법의 부재, 수많은 활동의 소실 등으로 많은 마을공동체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서 디지털상에 저장공간을 늘리면서 네트워크화하면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공공기관에서의 선별기준은 역사적, 행정적, 법적 가치에 따른 분류를 한다면 민간 분야, 공동체, 개인의 영역에서의 기록은 좀 더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이 있습니다.
나대로의 어떤 중요한 것과 그 사람과의 관계 등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 개인의 기준이 되고
공동체 단위에서는 무엇을 남길지, 우리 안에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어서 기준을 만듭니다. 이렇게 풍부한 이야기 속에 우리에게 가치 있는 기록은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함께 정하는 것, 긴 안목으로 우리 주변, 내 일상과 함께 가는 게 아카이빙 작업입니다.
손동유 대표님은
“우리가 우리와 이웃과의 삶을 직접 말하고 남기고 역사 무대에 올리는 일…그런 자부심이 기록활동이에요.” 라는 말로 소소하지만 결코 하찮치 않은 마을기록의 자기 이유를 만들어 가자고 했습니다.
4월 30일 화요일 오전, 마을기록가 과정 3강에서는
일상과 공동체 기록의 의미와 맥락, 아카이빙 방법에 대해 손동유 대표님이 2강에 이어 진행해 주셨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아카이브 분야의 전체적인 발전 속도는 더디지만, 구간속도는 최근에 관심과 참여도가 굉장히 빨라지고 있습니다.
한낱 유행처럼 지나가는 일들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함께 해야 할 사안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지역공동체의 기록 가치 사례
‘박정희 할머니의 행복한 육아일기’는 개인적인 일기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교사를 하셨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6‧25전쟁을 겪었습니다. 꾸준히 일기를 쓰셨고 개인 일상의 기록이지만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기록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동두천 마을기록의 경우는 지금보다 더 밝고 건강하게 만들려는 긍정의 결과물이 아닌 현재 우리가 부정할 수 없고 인정해야 하는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고 교훈 삼기로 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멋지고 훌륭하며 내세우고 싶은 결과물을 만들고자 하는 게 보통 인지상정인데 흠결들을 드러내는 당당함이 삶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카이빙 방법은
기록의 3 격(格)은 골격, 품격, 자격이며 그 중 자격에 해당하는 내용, 구조, 맥락은 기록의 3요소로 꼭 기억해야 할 중요 포인트입니다.
내용, 구조, 맥락이 함께 확보되어야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은 기록물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 즉, 내용물이며 구조는 형태, 어떤 모양을 띠고 있느냐이며
맥락은 기록물이 생성되어서 오늘날까지 온 이력 중에 중요한 사안들을 말하며 내용을 구성하는 배경정보가 됩니다.
기록은 정리 및 분류가 매우 중요하며 정리는 물리적 배열을 말하고 분류는 논리적 배열을 뜻합니다. 컴퓨터의 탐색기 폴더 구조처럼 한 4~5 단계 정도로 간결화시켜야 하고. 소장처인 센터에서 파일이름을 지정하고 생산일, 생산자, 주요 내용을 반영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
기록활동을 하는 우리는 조별로 좀 더 가까워지면서 관심사를 확인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구술기록의 속성은 주관성이므로, 주관적인 기록은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기만의 기억과 경험을 충분하게 말로 하게 해서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덧붙여
“스토리의 전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서사대로, 서술 방식대로 하는 자율성이 확보되어야 해요. 객관적 사건의 발생, 면담일지 내용의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과 주관성을 충분히 확보하려는 노력을 합쳐서 서사적인 진실을 만들어 내 가는 것이 구술채록의 본질이에요”라는 말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_나태주
타인과 관계를 맺고 공동체를 이루며 그 안에 소속되고 애정과 사랑, 인정을 받기를 바라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갈망이 우리의 근원적 욕구라면
서로를 자세히 보아주는 것,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해 한 사람 한 사람을 역사의 무대에 등장시키는 일은 어쩌면 사람을 살게 하는 일이라고 말하겠습니다.
마을기록은 조금은 가벼이, 조금은 소소하게 시작하지만, 어느 역사기록 못지않게 소중히 다루어질 미래의 어느 때를 위해, 미래의 누군가를 위해…사부작사부작 함께 시작해 보았으면 합니다.